행복한 왕자
지은이: 오스카 와일드
옛날, 어느 작은 도시의 광장에 왕자님의 동상이 하나 서 있었어요. 높은 연단에 세워져 있는 그 동상은 온 몸이 금과 화려한 보석들로 장식되어 있었지요. 왕자님의 동상 밑에는 늘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았어요.
“저 행복한 왕자님은 이 도시의 자랑거리야.”
“찬란한 황금과 보석이 빛나는 저 늠름한 모습을 좀 봐.”
사람들은 왕자님의 동상을 행복한 왕자님이라고 불렀어요. 보석과 금으로 반짝반짝 빛나는 모습이 정말 행복하게 보였거든요. 물론 예쁘고 아름답기도 했지요. 울던 아이들도 행복한 왕자님 동상을 보면 눈물을 뚝 그칠 정도였어요.
“깃털 시려워, 날개 시려워. 겨울 바람 때문에.... 에이취!”
추운 겨울이 되었어요. 제비가 밤하늘을 열심히 날아가고 있었지요.
“어휴, 나 혼자만 늦어버리고. 얼른 남쪽 나라로 가야 하는데..... 힘들고 피곤하고 지치네. 어, 저건?”
제비의 눈에 동상이 보였어요. 바로 행복한 왕자님이었지요. 제비는 왕자님의 발치로 내려앉았어요. 하룻밤을 쉬다가 다시 날아가기로 했거든요. 제비가 꾸벅꾸벅 졸다가 잠에 빠지려던 순간이었어요.
“어? 뭐지? 비가 오려나?”
머리 위로 물방울이 똑 떨어지지 뭐-예요. 하지만 밤하늘은 별이 총총 맑기만 했지요. 그것은 비가 아니라 행복한 왕자님의 눈물이었어요. 제비는 깜짝 놀라 물었어요.
“왕자님, 무슨 일이 있으신가요?”
“세상에는 참 슬픈 사람들이 많아.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리면서 불쌍하게 살아가고 있어. 그게 나를 슬프게 해.”
“그렇지만 왕자님은 행복한 왕자님으로 소문이 나 있잖아요.”
“사람들이 내 겉모양만 보고 그런 거야.”
행복한 왕자님의 푸른 눈에서 눈물이 뚝 떨어지네요. 그 모습을 보니 제비도 덩달아 슬퍼졌어요.
“왕자님, 그만 우세요. 행복한 왕자님이 그렇게 눈물을 흘리면 어떻게 해요.”
“하지만 내 눈에는 슬픈 사람들이 보이는걸. 저기 길가에 창문이 열린 집을 보렴. 아픈 아이를 간호하는 어머니가 울고 있어.”
“약을 살 돈이 없나봐요.”
행복한 왕자님은 제비에게 부탁을 했어요. 자신의 칼자루에 박힌 빨간 보석 루비를 저 집에 전해달라고요.
“네, 제가 금방 가져다 주고 올게요.”
“고맙다, 제비야.”
제비는 피곤함도 잊고 보석을 부리에 물고 날아갔어요. 그리고 창틀에 빨간 보석을 톡 떨어뜨렸지요.
“세상에, 이것만 있으면 약을 살 수 있어! 천사님, 정말 감사합니다.”
아이를 간병하던 어머니는 창틀에 루비를 발견하고 안도의 눈물을 흘렸어요. 제비는 그 모습을 지켜보다 별이 총총한 밤하늘을 날아 다시 행복한 왕자님에게 돌아왔지요.
“저 보석을 팔면 아이는 병원에 갈 수 있을 거야. 그럼 병도 씻은 듯 낫겠지? 그러면 엄마도 아이도 모두 행복해질 거야.”
“그럼요. 꼭 그렇게 될 거-예요.”
다음날 아침, 제비는 남쪽 나라로 날아갈 준비를 했어요.
“전 더 추워지기 전에 남쪽으로 가야겠어요. 왕자님, 안녕히 계세요. 만나서 즐거웠어요.”
그런데 행복한 왕자님의 눈에 다시 눈물이 고이지 뭐-예요. 제비는 울상이 되어 물었어요.
“왕자님, 또 무슨 슬픈 일이 있나요?”
“제비야, 바쁘겠지만 내 부탁 하나 더 들어주고 가지 않으련?”
왕자님은 제비에게 변두리 집에 있는 다락방을 보라고 말했어요. 그곳은 한 가난한 소설가의 방이었지요.
“저 젊은이는 며칠째 굶고 있단다. 글을 써야 하는데 연필을 들 기력도 없어 힘들어하는 모습이 안타까워.”
왕자님이 슬퍼하자 제비 역시 슬퍼졌지요.
“제가 어떻게 하면 될까요?”
“젊은이가 굶어 죽기 전에 내 눈동자인 푸른 보석 사파이어 하나를 빼서 전해주지 않을래?”
“하지만 그건 왕자님의 눈이잖아요.”
제비는 내키지 않았어요. 그러나 왕자님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지요. 결국 제비는 사파이어를 부리로 물고 날아가 젊은이 몰래 주전자 속에 톡 떨어뜨리고 나왔어요.
“어, 이건 보석이잖아. 이런 게 왜 여기에? 아, 그래! 분명 뮤즈의 선물이 틀림없어. 문학으로 이 세상을 위로하라는 뜻일 거야.”
소설가는 물을 마시려다가 주전자 안에서 사파이어를 발견했어요. 그는 별이 반짝이는 밤하늘을 향해 손을 모으고 감사의 기도를 올렸지요.
“고맙다, 제비야.”
한쪽 눈이 없어진 왕자님이 돌아온 제비를 맞아주었어요. 외눈이 된 왕자님을 보니 눈물이 나올 것 같았지요. 제비는 그날 밤을 왕자님과 함께 보내고 다음날 남쪽으로 떠나기로 했어요. 그런데 제비가 작별 인사를 하고 높이 날아오르자 왕자님이 간절하게 말하는 거-예요.
“제비야. 한번만 더 내 부탁을 들어주련? 저기 광장에서 성냥을 팔고 있는 소녀가 성냥을 웅덩이에 빠뜨리고 울고 있구나.”
왕자님은 자신의 하나 남은 사파이어 눈동자를 소녀에게 전해달라고 부탁했어요. 제비는 화들짝 놀라 왕자님을 말렸지요.
“안 돼요! 그건 왕자님의 하나뿐인 눈이잖아요. 그럼 왕자님은 더 이상 앞을 보지 못한다고요.”
그러나 왕자님의 간곡한 부탁을 거절할 수는 없었지요. 결국 제비는 하나 남은 푸른 보석을 떼어 성냥팔이 소녀에게 주었어요.
“우와, 이것만 있으면 동생들과 추위에 떨지 않아도 돼! 분명 하느님의 선물일 거야.”
이제 눈을 모두 잃은 왕자님은 소녀가 행복해하는 얼굴을 볼 수 없었지요. 하지만 정말 행복한 표정으로 웃었어요. 제비는 그런 모습에 차마 떠나지 못할 만큼 가슴이 아팠지요.
“제비야. 그동안 고마웠어. 더 추워지기 전에 어서 남쪽 나라로 가렴.”
“아니요. 왕자님, 제가 곁에 있을게요. 없어진 눈 대신 제가 도시를 살펴드리겠어요.”
“그건 안 될 말이야. 겨울이 되면 제비 너는 그 추위를 견디지 못할 거란다.”
“하지만 제가 없으면 왕자님은 더는 도시를 살필 수 없잖아요.”
왕자님과 제비 덕분에 그 도시에서는 불쌍한 사람들이 하나둘 사라졌어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릴 때마다 왕자님은 매우 행복했지요. 그러나 그럴수록 왕자님의 모습은 보기 흉하게 변해 갔어요. 보석은 다 빠지고 금박도 거의 다 벗겨져 사람들은 더 이상 왕자님을 우러러 보지 않았어요. 사정도 모르고 왕자님을 흉보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제비는 가슴이 아팠지요.
“제비야, 괜찮니? 이제라도 남쪽 나라로 가는 게 어떨까.”
시간이 흘러 눈 내리는 겨울이 되었어요. 왕자님은 제비가 걱정되었지요. 하지만 제비는 왕자님 곁을 떠나지 않았어요.
“전 이제 멀리 날지 못해요. 힘이 없거든요. 대신 왕자님이 외롭지 않게 옆에 있고 싶어요.”
행복한 왕자님과 제비는 차가운 바람이 몰아치는 추위를 함께 견뎠어요. 그러던 어느 날, 날씨가 조금 풀리자 오랜만에 사람들이 광장으로 나왔어요.
“저 동상을 없애야겠어. 흉물스러워서 도시 미관을 해치잖아.”
“어머, 발 밑에 제비까지 죽어 있네. 세상에, 끔찍해라.”
사람들은 행복한 왕자님의 동상을 쓰러뜨렸어요. 그리고 죽어 있는 제비와 함께 쓰레기장에 버렸지요. 이때 하늘 나라에서 하느님이 세상을 내려보다 천사 한 명을 불러 말했어요.
“지상으로 내려가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 두 가지를 가지고 오너라.”
천사는 땅으로 내려가며 고개를 갸웃거렸어요.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 두 가지가 뭘까?’
하늘을 날던 천사는 눈 속에서 죽은 제비와 쓰러진 동상을 발견했지요.
“제비가 왜 추위에 떨며 죽어 있지? 남쪽 나라로 갔어야 하는데?”
천사는 도시 뒤에 산에서 오랫동안 아래를 내려보았던 소나무를 찾아갔어요. 소나무는 바람에 가지를 흔들며 말했어요.
“행복한 왕자님을 돕다가 그렇게 되었지요. 왕자님은 볼품없게 변했지만 행복해졌고, 제비는 추위에 떨었지만 많은 사람들을 돕는 기쁨을 알았지요. 그런데 사람들은 겉모습만 보고 저렇게 홀대하는군요.”
천사는 감동적인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였어요.
“알겠구나. 하느님께서 말씀하신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 두 가지란, 왕자님의 심장과 제비를 말하는 것이었어.”
그리하여 천사는 왕자님과 제비의 영혼을 천국으로 인도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