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그리는 일은 흰 바탕이 있은 이후에 한다. 본질이 있은 연후에 꾸밈이 있음.
[출전]『논어(論語)』 팔일(八佾) [내용]자하가 물었다. "'교묘한 웃음에 보조개여, 아름다운 눈에 또렷한 눈동자여, 소박한 마음으로 화려한 무늬를 만들었구나.' 하였으니 무엇을 말한 것입니까?" 공자가 말했다. "그림 그리는 일은 흰 바탕이 있은 후이다." "예는 나중입니까?" 공자가 말했다. "나를 일으키는 자는 그대로다. 비로소 함께 시를 말할 수 있게 되었구나." 동양화에서 햐안 바탕이 없으면 그림을 그리는 일이 불가능한 것과 마찬가지로 소박한 마음의 바탕이 없이 눈과 코와 입의 아름다움만으로는 여인의 아름다움은 표현되지 아니한다는 것이 공자의 말이다. 이에 자하는 밖으로 드러난 형식적인 예보다는 그 예의 본질인 인(仁)한 마음이 중요하므로 형식으로서의 예는 본질이 있은 후에라야 의미가 있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참고1]이 구절의 전체적인 의미에 대하여는 이론이 없지만 다만 회사후소(繪事後素)의 해석에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우선 전체의 의미를 먼저 읽어보기로 하지요. 자하가 시경(衛風의 碩人)의 구절에 대하여 그 뜻을 공자에게 질문했습니다. “‘아리따운 웃음과 예쁜 보조개, 아름다운 눈과 검은 눈동자, 소(素)가 곧 아름다움이로다’ 이것이 무슨 뜻입니까?” 공자가 대답하였습니다. “그림은 소(素)를 한 다음에 그리는 법이지 않은가.” 자하가 말했다.“ 예를 갖춘 다음입니까?” 공자가 말했다. “네가(商) 나를 깨우치는구나! 더불어 시를 논할 수 있겠구나.” 이러한 일반적 해석과 달리 회사후소(繪事後素)를 ‘그림을 그린 다음에 흰색으로 마무리하는 법이다’로 해석합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예후호(禮後乎)도 ‘나중에 예로써 마무리를 한다’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이러한 해석상의 차이는 크게 문제가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공자와 자하가 나눈 이 대화의 핵심은 미(美)에 관한 것이며 그런 의미에서 소(素)를 먼저 한다, 아니다 나중에 한다고 하는 해석상의 차이는 부차적인 것이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대화의 핵심은 이를테면 미의 형식(形式)과 내용(內容)에 관한 담론이라고 생각합니다. 미소와 보조개와 검은 눈동자와 같은 미의 외적인 형식보다는 예(禮)가 더 근본적이라는 선언입니다. 그러므로 회사후소(繪事後素)에 대한 해석상의 차이는 근본적인 것이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회사후소를 그림을 그린 다음에 소(素)를 하는 것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소이위현(素以爲絢)에 대한 해석상의 차이도 마찬가지로 근본적인 것이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흰 칠로 마감하여 광채를 낸다’고 해석하여도 상관없습니다. 문법적으로도 크게 무리가 없습니다. 어느 경우든 소(素)는 예(禮)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 예(禮)가 요구되는 시점이 어느 때인가는 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바탕칠(下塗)을 한 다음에 그림을 그리든 또는 그림을 그리고 난 후에 흰 칠로 마감하여 완성하든 그 순서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경우든 예(禮)가 아름다움의 바탕이라는 의미이거나 아니면 예로서 미를 최종적으로 완성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크게 보아 양자간에 큰 차이가 없습니다. <신영복 고전강독> [참고2]자하는 공자 말년제자로 본시 위(衛)나라 사람으로, 나중에 위문후의 스승이 되어 제(齊)나라 직하학파의 모델이 된 위나라의 학단을 형성했다. 자하는 문학적 상상력이 탁월했던 인물이다.
자하가 위나라 사람이었다는 것을 생각할 때, 자하가 위나라의 노래, 위풍(衛風)의 한 수를 인용한 것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것이다. 이 노래는 위나라 장공의 제나라 태자 득신의 여동생인 장강을 아내로 맞이했는데, 그 제나라의 여자가 너무도 아름다워, 그녀가 시집올 때 위나라 사람들이 그녀의 아름다움을 찬미한 노래라 한다. 이 노래는 오늘날의 <시경>속에 위풍(衛風) "석인(碩人)"으로 편집되어 남아있다. "석인"이란 훤칠하고 늘씬한 여인을 뜻한다.
공자가 말하는 '회사후소'란 이러하다. 그림을 그리는데 먼저 색색의 물감으로 모든 형체를 구현하고 제일 나중에 흰 물감으로 그 형체를 명료하게 드러내어 광채나게 만드는 최종 텃치를 하는 것과도 같이, 인간의 예라는 것은 온갖 갖가지 삶의 경험이 이루어지고 난 후에 최종적으로 그 인격의 완성을 최종적으로 텃치하는 것과도 같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하는 말하였다: "그림에서 흰 물감이 제일 뒤에 오듯이, 인간의 인격형성과정에 있어서는 예가 제일 뒤에 온다는 뜻이겠군요?" 결국 석인의 아름다움의 최종적 치장은 예가 되어야 한다는 뜻이 되는 것이다.
이에 공자는 기뻐서 말하였다. 이 때 '상(商)'이라는 것은 자하의 실제 이름이다. 애정이 듬뿍 담긴 친근한 호칭이다: "상아! 넌 정말 나를 계발시키는 사람이로구나! 이제 너와 더불어 시를 논할 수 있겠구나!" '기여자'의 '기(起)'는 단순히 감정의 흥기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제자라 할지라도 그 깨달은 바가 선생인 나를 앞서는 면이 있어, 내가 미처 생각치 못했던 것을 깨닫게 해준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도올 논어강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