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장에 인접한곳에 있는 거북바위의 모습
아래에서 들여다본 거북이등 모양의 거북바위인데 아마도 유구에 거주하시면서 수~수 ~십년을 지나셨어도 스쳐만 갔을뿐!
아마도 처음보는 분들이 대부분일듯 싶다! 천년을사는 거북바위가 유구를 보살펴주신다는 토속신앙이 존재했던 시절이 몇십년전 인데!
거북바이의 옆에서 본모습~
바로옆에는 또 큰~~~바위가 넘어질듯이 위험해 보이게 서있는데 약 50여녀전 까지만해도 서낭나무를 보호하기 위해서 써진 문구가~~나무하면 처벌한다 라고 써져있었고!그후엔 군사혁명으로 무섭게 몰아붙히고 독려하기위한 수단과 방법으로 학생과 군인등은 인사를 ~~~재건!이라고 큰~소리로 외치는 거수경례를 의무적으로 제도화했던 때도 했으며 노래나 모든 구호에도 재건을 외치던때가 있었는데! 그흔적이 바로 이바윗돌에 남아서 흐릿한 재자와 뚜렷한 건자가 존재하고 있다,이글자 두자가 오늘의 우리를 있게했고!!!!!!!!!!!먼저가신 선배 님들에게 잠시나마 감사의 뜻을 전해보고 싶다~~~양쪽 바위 사이에 아련히 보이는 벽돌로 평상처럼 만들어진 자리엔 서낭나무가 있었으며 문화의발달로 주위가 아스팔트가 깔리고 심한 매연으로 아마도 사라진듯 싶은데 지금도 정초엔 그곳에서 위하는 이들도 있을듯 싶다,(손발이 다닳토록~~헐벗고 굶주린 이들의 힘으로 디딤돌되여~~현재는 세계의 선두 주자로~~국력이 신장 됨으로서 세계화를 부르짖는다!
창말다리와 바로그 아랫부분의 돌로만든 징검다리는 홍수로 늘어난 물로인해서~그~흔적만이 남은채로 물구비만 요란하고~바로옆에 보이는 제방의 한부분은 야생화로 단장을 하기위한 유구읍의 노력으로 원추리 꽃밭인데 마침 한송이가 그 소재를 알려주는듯 싶다
창말다리의 석남리쪽의 옆부분엔 정자가 있고, 이곳도 법정 유구리이며 아마도 유구인들의 대부분은 석남리 라고 알고 있을듯싶다, 창말이란 어원은 알고있지만 유구의 소재지가 구한말 까지도 신상면 유구리로 되어있었고 유구지역의 반가들도 창말에 집중적으로 살고 있었으며 유교사상이 국법으로 다루어지고 과거시험 제도가 유교의 경전에서 출제되던 시절엔 富와 貴가 공유함으로 창말 동내엔 이엉을 엮은 노적가리와 곡식창고가 많이 있었기에 창고가 있는 마을이라고 창마을이란 지명이 붙었다고 전해져 네려왔다,하지만 창말에대한 깊은 역사는 아는분들이 점~점~ 사라지고 지역에대한 사학자들도 글구 고향에 대한 깊은 관심도 또한 수십대씩 살아오던 전통적인 풍습 등등도 개의치 않음은 물론 쉽게 이사를 오가는 현 시대와는 너무 먼듯한 느낌이 있기에 더욱 아쉬워진다,
앞에 보이는 물구비치 는모습은 옛모습을 되살려서 돌로 만든 징검다리이며 2~3일만 지나면 물량이 줄어들기에 조깅과 로드워킹을 하는 이들은 이곳 징검다리를 건너는 재미로 무척이나 좋아하고 또한 50대이상의 어른들은 어릴적에 건너던 상상도 해보며! 다시금 동싱에 젖은듯 즐거워한다
창말다리 위쪽의 모습이며 물이흐르는 왼쪽의 마을이 수촌이며 반야산을 휘감고 돌아서 흐르는 물의방향이 직선 방향으로 장비도없던 시절엔 매년 년중행사로 제방이 무너지면 말둘을 밖고 가마니에 돌과 흙을담아서 쌓은둑을 만들어 놓으면 2~3년에 한번씩 찾아오는 홍수피해로 제방은 유실되고 상습 침수되는등 홍수에 연약한 저지대로서 주민들이 살기에 불편을 격어왔다고 옛!어른들의 말씀으로 전해져 네려오며!그때문에 수촌이라고 명명 되었으며 보통 주민들의 불르는 어원은 수천 이라고 하고있다,
창말 다리에서 유마교 방향을 바라다보며 찍은 사진인데 저~~멀리 유마교가 보이며 다리위로 보이는 산이 풍수학 적으로
유구를 그리고 유구리를 생겨나게된~~~~보호막처럼 잘~~휘감은 수구막이라고 하며 유구의 어느 방면에서 보나 환상적임은 틀림없고 일제 점령기에 인공으로 옥녀봉으로 부터 힘차게 네려온 용(산 허리)을 잘라내서 큰~인물이 나오지 못하도록 만들었다고 하며 바로 그자리를 목을 터쳐버린 곳이라고 : 터진목: 이라 지역 주민들이 불러오고 있으며 점차 사라져가는 일제 강점기 때문에 생긴 쓸아린 역사의 증거물이다
창말 다리건너서 시내쪽의 일부분이며 멀리 운무가 스쳐가는 윗부분의 봉우리 두개중 왼쪽의 봉우리가 觀佛山이며 예로부터 유구의 중앙에서 보면 태화산과 관불산과 옥녀봉이 정통으로(앞면 )멋스럽게 보이기에 풍수학적 으로도 十昇地의 地域임을 강조해 네려왔다
龜巖도러의 산머리가 보이며!주민들은 거의가 구얌도러 라고 부르고있으나 !거북이 모양의 바위가 있기에 거북구자와 바위암자를 써서 구암도러 라고 써야맞는다,구암도러에 바윗돌의 아랬부분은 영락없이 거북이등과 똑같을 정도로 묘~한 모습을 하고있다,내가 찍어올린 어느부분을 살펴보면 알수가 있을 것이다
유마교건너서 백교리 쪽을 바라보며 찍은 어도의 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