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디 마을 입구에 있는 석조패방. 후씨 집안의 인물로, 명나라 만력제 때 교주자사를 지낸 후원광(胡文光)의 업적을 기리는 기념물이다. 1578년에 세워졌다고 한다.> 중국의 안동 하회마을 - 시디(西遞 )와 홍춘(宏村) 시디와 홍춘은 중국의 안휘성 인근의 옛 문화인 휘(徽)문화를 대표하는 마을로 200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곳이다. 황산시의 서북쪽에 자동차로 약 40분 정도 거리에 있다. 두 마을은 자동차로 약 15분 정도의 거리로 떨어져 있다. 휘문화의 기원은 춘추전국시대로부터 남송시대까지 사회의 주도 세력이 되지 못한 한족들이 남하하여 지금의 안휘성 산간 마을로 들어와 은둔하며 주경야독하는 한족들로부터 기원되었다고 전해진다. 이들은 점차 지방 토착 세력화하여 명,청 시기에는 봉건 선비계층을 형성하였고, 당시 신흥 학파이었던 청하오(程顥), 청이(程?), 주시(朱熹) 등의 정주학을 그들의 기본 이념으로 받아 들여, 14~19세기에 걸쳐 사상, 문화, 예술, 건축, 민속, 음식, 언어 방면에서 독특한 문화의 체계를 형성하고 전성기를 구가하였다. 이 휘문화는 격변하는 근세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버렸지만, 안휘성 인근의 몇몇 마을에는 아직도 그 옛 문화의 전통과 생활방식이 그대로 살아 있어, 최근 다시 중국의 옛 지방문화를 대표하는 문화의 하나로 재조명 받고 있다 특히 시디와 홍춘은, 16세기 명.청 시기의 건축물 360채가 거의 완전한 형태로 남아 있어, 북경 자금성의 황실 건축물 들과 견주어, 민간 건축 양식의 보고가 되고 있다. 이곳 두 마을의 주요 특징은, 1) 사람이 거주하는 집들을 주변의 산과 강에 어울리게 배치한 자연친화적인 마을 건설, 2) 펀창따이와(粉墻黛瓦-석회로 칠한 흰 벽과 검푸른 기와), 3) 마토우샨치앙(馬頭山墻-지붕보다 높게 세운 벽)의 독특한 건축양식, 4) 정밀하고 예술성 넘치는 산디아오(三雕?벽돌, 나무, 돌 조각) 건축장식, 5) 고색이 넘치는 도자기와 글씨, 병풍, 액자, 현판 등 실내 진열 장식문화 등이다. 시디(西?) 시디(西?)는 11세기 초 북송시대에 조성된 마을로, 후(胡)씨 집안의 집성촌이다. ‘후’씨 집안의 족보에 의하면 시조인 후창이(胡昌翼)는 당나라의 마지막 황제인 짜오종(昭宗)의 아들이다. 양왕 주온의 정변(政變)때 이름과 성을 바꾸고 떠돌다가 안휘성에 도착하여 정착하였다. 그리고 이 후씨 집안의 5대조인 후스량(胡士良)이 주변의 풍수지리를 보고, 지금의 황산시 이시엔(?縣)의 개천의 서쪽에, 전 집안을 이끌고 이사하여 마을을 만들고 이름을 시디(西?)라고 정했다고 한다. 후씨 집안의 자손들은 그들이 정착한 지방이 산이 많고 경작지가 넓지 않으며 인구가 많은 곳이라 일찍부터 생존을 위하여 외지로 돈을 벌러 나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중국 전국 각지의 곡식과 목재, 소금과 면화, 은행과 전당포 등 금융업에서 큰 수완을 발휘하였고, 곧 양자강 중.하류 일대의 주요 교역 도시들의 상권에서 두각을 나타내어 거상이 되었다. 이들은 나중에 17~19세기 후이샹(徽商-휘주상인)이라고 불리는 중국의 유명한 상인 그룹이 되어 막대한 부를 축적하였다. 유학의 가르침인 충효를 중시하고, 존비와 장유의 구별을 명확히 하는 등, 유학의 이념을 실제의 상업 활동의 배경으로 삼았으므로 루샹(儒商)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 우리나라 18기 중엽의 실학파 중의 중상학파가 이들의 영향을 받지 않았나 추측해 본다. 후씨 마을은 이러한 상업활동에서 얻은 막대한 이익으로 비약적으로 발전하였으며, 지금의 마을의 모습은 이때 형성된 것이다. 또한 이들은 근검절약, 사치하지 않으며, 마을에 서원을 세우고, 학문을 적극 장려하여 과거에도 응시하는 등 관직에도 많이 진출하였다. 명.청 대에 걸쳐 고위관료 115명 하급관료 298명을 배출하였다고 한다. 결국 이들은 점차 권력과 상권을 결합하여 지역 경제의 부를 조직적으로 독점하였다. 역사상 기록에 의하면 청 치엔롱(乾隆)황제 시기에 약 600여 채의 집과, 40채의 사당과 서원, 99개의 골목, 90여 개의 우물이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14~19세기의 사당 3채, 고저택 224채가 남아 있다고 한다.
<마을의 골목길은 푸른 청석으로 잘 포장이 되어 있고 무척 깨끗하다. 주요 골목들 사이로 관광객들에게 개방된 집들은 벽에 팻말이 붙어 있다. 자유로이 관람할 수 있다. 모든 집은 실제로 마을 주민들이 살고 있는 집이다.>
모든 집들마다 모두 다른 문양의 나무, 벽돌, 돌 조각들로 가득하다.
건축은 매우 엄격하게 제한되어 있는 듯이 일반 가옥들은 규모가 그리 크지 않고 일률적이다. 하지만 그 짜임새가 아주 치밀하며, 불필요한 과대 포장이 없고 실용적이다. 전반적으로 소박하면서 절제된 미가 있다. 부유하고 화려한 느낌은 많이 나지만 호사스럽거나 사치스럽지 않다.
능소화를 이곳에서 보니 정겹다
땅에서 지붕 위에까지 수직으로 올린 벽을 마토우샨치앙(馬頭山墻)이라고 부른다. 지붕의 기와는 숫기와가 암기와보다 크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것에 비해 크기가 작다. 따라서 특히 지붕의 가장자리는 비바람에 취약하기 마련이다. 벽을 지붕보다 높이 쌓아 취약점을 보완한 듯 하다. 또한 화재시 불이 쉽게 옆집으로 번지지 않게하는 역할도 한다. 석회로 벽을 하얗게 칠한 것은 여름의 무더위를 피하기 위함인 것 같다.
이곳은 특히 집들의 독특한 형식과 아름다움으로 동양화를 전공하는 미술 학도들이 많이 찾는다고 한다.
어느 농가의 벽에 걸린 도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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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 감사합니다. 다시 한 번 가보고 싶은 곳....그 때는 주변의 다른 곳들도 돌아보고 싶습니다. 언젠가 기회가 있겠죠. ^^
지금도 홍촌 집앞에 흐르는 개울 물은 오전 10시 이전에는 食水로... 10시 넘으면 설겇이.. 12시 넘어서는 빨래를 하는 生活用水로 사용 한다고 하던데요
오! 선배님 오랜만입니다. 안녕하시죠? 다시 중국에 나와서 일하고 있습니다. 심양에 들르게 되면 한 번 연락드리겠습니다.
제가 4월13일에 ....인천 ㅡ모스코바ㅡ아제르바이젠ㅡ구루지아 에 여행을 떠나서 5월10일에 인천 도착 입니다.
아주 잘보았습니다..나중에 가게되면 안내좀 해주세요
이곳도 꼬옥 가보고 싶은곳...^^
나도 가고싶소......
좋은 정보 잘보고 오래도록 간직하려고 스크램 합니다. 감사 합니다.
대단하십니다 익히 빼징아저씨 실력은알고있었으나 어느한곳 험잡을수없을만큼 휼륭한 곳곳을 알려주시니 감사합니다 사진잘보고갑니다.
현대-카님도 오랜만입니다. 안녕하시죠?~~~^^
먹는것에 관심많은데,, 두부를파는것은알겠는데 호떡같은것은 무엇을 파는것인가요??
흑임자라고 하나요? 검정 깨와 좁쌀로 만든 호떡을 만들어 팔더라고요. 그 지방에서 즐겨 먹는 떡이라고 해서 한 번 사먹어 보았습니다. 속은 없이 그냥 기름에 부쳐서 먹는 것이더군요. 고소하니 괜찮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