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주사 와불 / 권정우
천 개의 부처가
뿔뿔이 흩어져버린 뒤에도
나 당신 곁을 떠나지 않을 테지만…
당신 곁에
또 다시 천년을 누워있어도
손 한 번 잡아주지 않을 걸 알면서도…
천 개의 석탑이
다시 바위로 들어가 버린 뒤에도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 변치 않겠지만…
내가 당신 곁에
얼마나 오래 있었는지도 모르는 당신은
다시 천년이 지나도
하늘만 바라보고 있을 테지만…
ㅡ 시집『손끝으로 읽는 지도』 (파라북스,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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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정우 시인
1964년 서울 출생.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1993년 《문학사상》 신인상 평론, 2005년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 시 등단.
시집 『허공에 지은 집』 『손끝으로 읽는 지도』,
산문집 『세상에 없는 풍경』.
현재 충북대에서 한국 현대문학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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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색 표지 시집을 펼쳐 첫 번째 만난 시다. 자꾸만 읽게 된다. 어느 겨울비 내리는 날 찾아갔던 운주사 생각도 나고, 노벨상 작가 르 클레지오의 `운주사 가을비`라는 시 생각도 났다.
시인의 표현처럼 운주사 와불은 내가 옆에 있는지도 모른 채 하늘만 바라보고 있다. 사람들은 누워 있는 부처가 내 손 한 번 잡아주지 않을 걸 알면서도 무엇엔가 홀린 듯 운주사를 찾아간다.
구름을 이고 있는 언덕을 돌아, 실개천을 건너고, 배롱나무 늘어선 길을 지나 `누워 하늘만 보는 내 사랑`을 찾아간다. 운주사는 힘이 세다. 누워 있는 부처가 일어나는 날, 내 그리움은 열반에 들 것인가?
- 허연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