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내내 무대인사 다닌 후 시간 나면 강릉 할머니댁에 갈 겁니다
어머니와 새로 생긴 손주까지 4대가 모여요
영화 '수상한 그녀' 심은경·박인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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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쉿, 저희가 커플인건 비밀 입니다.”‘수상한 그녀’의 짝사랑 커플, 박인환(오른쪽)과 심은경. 박인환도 영화 끝에 스무살로 돌아간다. 그는“워낙 예쁘고 귀여운 모습이라 은경이도 다시 생각해볼지도 모른다”고 했다. 한복협찬: 박술녀 한복
은은한 미색(米色) 저고리에 꽃분홍색 치마를 받쳐 입은
심은경(20)이 탈의실에서 나오자 박인환(69)이 옅은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은경이 참 곱다, 고와." 20일 서울 논현동 한 스튜디오에서
때로 가족처럼 또 친구처럼 속닥속닥 이야기를 주고받은 두 사람,
'수상한 커플'이었다.
영화 '수상한 그녀'(22일 개봉)에서 심은경은 어느 날 20세가 된
70세의 오말순 역을 맡았다.
젊어서 남편을 잃고 억척스레 아들(성동일)을 키워낸 어머니다.
교수가 된 아들을 끔찍이 아끼지만, 며느리를 못살게 구는 바람에
요양원으로 보내질 상황에 처한다.
뒤숭숭한 마음에 사진관에 들어가 영정 사진을 찍고 나왔더니
뽀얀 피부와 날렵한 몸매를 가진 스무 살로 돌아간다.
정체를 숨기기 위해 그가 쓴 이름은 좋아하는 여배우 오드리 헵번
에서 따온 '오두리'.
박인환은 소년 시절부터 오말순을 짝사랑한 박씨 역을 맡았다.
그는 영화에서 일흔의 오말순과 스무 살의 오두리를 "아가씨"라고
부르며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더니, 이날도 '아가씨'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개봉 첫 주말 100만 관객을 모은 두 주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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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우 심은경
'수상한 그녀'를 보면서 한 번도 웃지 않는다면 안면 근육이나 뇌신경 손상을 의심해봐야 한다.
아직 소녀티를 벗지 못한 아가씨(이지만 알고 보면 할머니)가 좋아하는
남자 앞에서 "남자는 처자식 안 굶기고 밤일만 잘하면 되여"라고 능청스레
말하는데, 당해낼 도리가 없다. 보는 사람이 이 지경이니 연기하는 사람들은
오죽했을까.
"은경이가 나이는 어려도 어른스러운 아이예요. 또래 연기자들과 달리
상대역의 호흡을 잘 맞춰주고, 배려까지 해주니까요. 보는 사람을 즐겁게
만들어주고, 꿈을 꾸게 해주는 배우니까 이런 동화 같은 영화에도
딱 어울리죠."(박인환)
"선생님이 현장에 나오시면 스태프가 다 웃었다니까요. 분위기 메이커였어요.
저에겐 그 현장이 연기 대선배와 함께한 값진 배움의 시간이었죠."(심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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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우 박인환
박인환과 심은경은 "유쾌하고 편안한 현장이라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고 했다.
"박씨가 오두리의 다리를 치료하는 모습을 딸에게 들켜서 난리가 나는
장면이 있어요. 박인환 선생님이랑 김현숙 언니가 그 왁자한 소동 속에서도
어찌나 척척 호흡을 잘 맞추는지,
저는 웃음을 겨우 참고 연기를 했다니까요."(심) "이 영화 촬영하면서
워터파크라는 데를 처음 가봤어요. 그렇게 큰 파도가 치는데 젊은 사람들은
소리를 지르며 좋아하더라니깐.
아이고, 난 좀 무섭고 힘들었네요. 허허."(박)
영화에서 “왕년에 노래 좀 했다”는 스무 살짜리 할머니는 손자의 밴드에
들어가 가수가 된다. “요즘 여자 같지 않아, 완전 특이해”라며 다가온 청년
때문에 가슴이 두근거리면서도 여전히 아들 걱정에 손자 여자 친구 행세까지
한다.
박인환은 “삼대가 보고 즐길 수 있는 영화다. 자식은 자식대로, 부모는
부모대로 자기 감정을 대입해볼 수 있다. 특히 힘들게 키운 아들에게 상처받은 오말순의 모습을 본 자식들은 부모님의 모습을
떠올릴 될 것이다”라고 했다.
갓 성인이 되자마자 어머니 역할을 맡은 심은경은 영화 속 아들인 성동일(47)을 안아주는 장면에서 “너무 눈물이 많이 나서
NG를 냈을 정도”라고 했다. “엄마 생각이 가장 많이 났다. 고맙고 사랑하지만, 가족이다 보니 애정 표현을 한 번도 못 했다”는
것이다.
심은경이 아역 배우를 시작할 때부터 지난해 말 회사에 소속되기까지 어머니는 그의 매니저이자 운전기사,
스타일리스트였고 연기 선생님이기도 했다. 그의 하얀 피부와 동그란 눈은 어머니의 그것을 쏙 빼닮았다.
“에이, 아무렴 제가 더 낫죠, 흐흐. 엄마는 맨날 ‘난 처녀 시절에 더 예뻤다, 넌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하시지만요.
그래도 둘이 닮았단 얘기는 언제 들어도 좋네요. ‘내가 엄마 딸이구나’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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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수상한 그녀’에서 젊은 남자로부터 말순(심은경·오른쪽)을 지키려고 워터파크에 따라간 박씨./CJ E&M 제공
영화가 설 일주일 앞두고 개봉하는 바람에 심은경은 “연휴 내내 무대 인사를 다닌 후, 시간이 나면 강릉에 계신 할머니 댁에
갈 것”이라고 했다. 장남인 박인환은 “어머니와 동생들, 자식들에다가 새로 생긴 손주까지 4대가 모인다”며 “다들 정신이
아기에게 쏠릴 게 분명하다”고 했다.
“배우는 많은 사람을 만나고 다양한 인물을 연기해야 하니까 넉넉한 그릇이 필요해. 은경이는 그런 그릇을 이미 갖추고 있어.
올해 좋은 작품 만나서 배우의 그릇을 더 키워나가야지.”(박)
“그동안 제가 선생님께 배운 건 연기만이 아니었어요.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시길 제가 언제나 기도할게요.”(심)
50년 뛰어넘은 수상한 커플 "저희 잘 어울리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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