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1년 8월 10일 금요일 맑음.
새로운 날이 밝았다. 숙소에서 제공해 주는 아침을 먹는다. 프랑스 파리에서 먹는 동태국과 김치, 돼지고기 볶음이라니 참 반가운 일이다. 든든하게 먹고 숙소를 나선다. 숙소 정원에는 꽃과 허브, 나무들로 시원해 보인다. 우리 차가 마당을 모두 차지하고 있다. 오늘도 전철을 타고, 걸어서 파리 시내를 더 살펴볼 것이다. 첫 목적지를 루브르 박물관으로 잡았다. 숙소에서 만난 부부와 함께 집을 나섰다. 포항 연구소에서 근무한다는 부부다. 전철을 타고 가서 루브리 리볼리(Louvre – Rivoli)역에서 내렸다. 출근시간이라 사람들이 많다. 우리도 발걸음을 부지런히 옮겨 루브르 박물관으로 간다. 박물관을 입장하려면 여름에는 줄을 길게 선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아침 8시 경, 아직 박물관은 문도 열지 않았는데, 벌써 3~4명씩 서서 거의 100m 정도 길게 늘어서 있었다. 우리도 줄을 섰다. 세계 최대 미술관이라고 불리는 루브르 미술관, 건물에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입구의 피라미드가 인상적이다. 루브르 궁전의 양쪽 날개에 안겨있는 안뜰을 카루젤 광장이라고 한다.
이곳의 카루젤 개선문이 눈에 들어온다. 이 개선문은 나폴레옹 1세가 거둔 수많은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1808년에 건립되었다. 높이 14.6m, 너비 19.5m이며 8개의 대리석 기둥위에는 병사들 상이 있고, 문 위에는 원래 나폴레옹이 베네치아에서 가지고 온 네 마리의 황금빛 말이 장식되어 있었다. 1815년 이후에는 왕정복고를 상징하는 여신상을 중심으로 한 마차와 병사의 상으로 대치되었단다. 루브르 박물관에 들어섰다. 입장료는 성인 46프랑, 학생 30프랑인데 교사는 무료로 입장이 되었다. 국제 교사 증을 만들어오지 못한 것이 후회되었다. 둘이서 92프랑(16,284원)을 내고 아무 생각 없이 설레는 맘으로 인파에 밀려 유리 피라미드 밑으로 들어간다. 층계를 돌아가며 내려간다. 사람이 많다. 어디서부터 구경할지 몰라 잠시 주변정리를 하느라 멈춰 섰다. 이 박물관은 웅장한 프랑스의 왕궁으로부터 루브르 박물관으로 자리 잡은 지 200년이 되었단다. 세계 3대 박물관 중의 하나인 이 박물관은 소장 작품만 40만점으로 1분씩 할애해도 다 보는데 4개월이 걸린다.
외부 모습 중 벽면에 왕들의 이름이 약자로 새겨져 있다. L자가 두 개 겹친 것과 B는 루이 14세, K자는 샤를르 9세, H자는 앙리 3세, HG는 앙리 4세, LA자는 루이 13세란다. 유리 피라미드는 1983년에 착공하여 1989년에 완공된 것으로 20억 프랑을 투자했단다. 이것은 중국계 미국인 건축가인 이오 밍 페이(Iedo Ming Pei)의 작품으로 뚤루리 공원과 베르사유 공원을 설계한 정원사 르 노트르의“ 풍경적 정원”의 개념을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 하였다고 한다. 초기에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논란의 대상이 되었으나 그 준공은 루브르 역사에 새로운 장을 열었다. 나선형 계단을 내려와 중앙 피라미드를 올려다보니 그 모습이 더욱 웅장해 보이고 신기했다. 실제 규모는 220m의 길이와 폭 110m인데 기울기는 이집트의 기자 피라미드의 각도인 50.70도를 취하고 있단다. 피라미드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유리는 쌩-고뱅 회사에서 제작했고 순수 수정과 같은 맑은 투명도를 갖도록 영국에서 표면을 처리했단다.
우리는 먼저 드농관(Denon)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워낙 방대한 양이 전시되어 있어서 미리 공부한 곳에 잠시 머물러 확인, 감상을 하고 부지런히 걸어 다녔다. 서양 미술이 그랬듯이 주로 성경 이야기, 그리스 로마 신화, 역사적 사건과 역대 왕과 귀족들의 초상화 등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다행히도 출발 전에 조용진 교수의 ‘서양화 읽는 법’, 이주헌의 ‘50일간의 유럽 미술 체험’, ‘그림으로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 그리고 서양 미술 건축사, 가이드북 등을 공부한 것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곳에서 만난 부부와 7~8명의 대학생들이 나의 얄팍한 지식으로 설명해 주는 것에 부지런히 따라다니며 귀 기울여 주어서 더욱 재미있고 신났다. 아는 것만큼 보인다는 것이 더욱 실감났다. 그림을 따라가다가 안토니오 까바노의 작품인<사랑과 프쉬케>가 제일 먼저 낯익은 모습으로 눈에 들어왔다. 그 다음에 고대 그리스 조각들 중에 가장 유명한 작품 중 하나인 <사모스 레이스의 승리> 조각상이 층계 위에 멋지게 자리 잡고 있어 반가웠다.
박물관의 이동에 있어서, 기준으로, 중심으로 자리를 잡은 듯하다. 이 작품은 에게 해 북동쪽 까르비 신전의 무너진 잔해의 돌 더미 속에서 발굴된 것이란다. 전함의 뱃머리에 장식되는 기념상이란다. 날개 달린 승리의 여신 니케상이다. 운동화의 로고가 된 형상이다. 사모스 레이스(Samthrace) 섬의 신전에 만들어져 있었다고 한다. 해전에서의 승리를 상징하는 힘찬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비상하는 듯한 동세와 생동감이 넘치는 날개의 모습, 해부학적으로 완벽한 여인의 모습에서 헬레니즘 문화의 특징을 볼 수 있다. 두 팔과 머리 모양을 찾지 못했는데 오른손만 추가로 발굴되어 이 조각 옆에 보관되어 있다.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 초상>이다. 그리고 그 옆에는 <성모 마리아, 아기예수, 성녀 안나>의 작품이 있다. 렘브란트의 작품 중<목욕하는 밧세바> 가 눈에 들어오고 그의 여러 작품들이 나열되어있다. 우리 눈에 익혀져 있는 <나폴레옹 대관식> 그림이 크게 자리 잡고 있다.
이는 다비드 작품으로 베르사유 궁전에서 본 것이다. 베르사유 궁전의 그림은 루이 필립 왕 때 그려진 복사본이란다. 어떻게 복사를 진짜같이 할 수 있지? 궁금해진다. 들라크루아의<키오스 섬의 학살> <사르다나팔의 죽음>, 앵그르의 작품들, 쿠르베의 그림들, 라파엘로, 루벤스, 촛불의 화가 - 조르주 데 라 투르, 알베르트 뒤러, 카라바조, 사랑의 화가 프라고나르 등 프랑스, 이탈리아, 네덜란드 등 유럽과 고대 로마, 그리스의 작품들로 꽉 차있다. 특히 들라크루아의<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루벤스의 연작인 <마리드 메디치의 대관식> 장면들, VANITAS(바니타스)의 허무, 무상을 주제로 그린 정물화들, 지오토의<성흔을 받는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 조각중의 조각<밀로의 비너스> 주위에는 사람들이 바글바글하다. 이 균형미가 교과서적 표본이란다. 제리코의<메두사의 뗏목>은 현실을 소재로 한 것이란다. 다리가 아파서 종종 쉬면서 정신없이 다녔다. 작품 공간을 중심으로 지도를 보며 찾아간다. 만나는 작품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설명하는 것도 재미있다.
좀 더 많은 시간과, 철저한 공부가 있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카펫 전시관, 공예소품들, 조각실의 대리석과 청동작품들, 프랑스 고전주의 조각들이 가득한 리셜리외 관의 중앙 홀에서 잠시 쉰다. 루브르 박물관에서 느끼고 배운 것들과 아는 상식을 확인하는 것도 한참이 걸리는 것 같다. 대충 넘어가기로 하고 포기했다. 나의 작은 지식을 들어주던 여학생들과 헤어졌다. 정리하자면 밀로의 비너스, 승리의 여신상, 모나리자가 가장 으뜸인 것 같다. 거기에 하나 더 붙이면 나폴레옹 대관식이라고 할 것 같다. 지구상에서 하나밖에 없기 때문에 더 소중하게 여겨진다. 루브르 박물관에서 거의 반나절을 보내고 지상으로 올라왔다. 광장에서 사진을 찍는다. 에메랄드 빛 원형지붕이 보이는 오페라 극장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점심을 해결하기로 했다. 먹기 쉽고 구하기 쉬운 피자를 먹기로 했다. 허름하게 보이는 피자집에 들어가니 아랍계인 듯한 주인이 우리를 맞아준다. 피자 종류가 많아서 그림을 보고 골라 한 접시씩 들고 온다. 야채 한 접시와 커피를 함께했다. 131프랑(23,200원)을 지불했다. 아래층이 붐벼서 2층으로 나무계단을 따라 올라가 자리를 잡았다. 이름을 몰라서, 언어가 통하지 않아서 음식을 시켜먹는 것도 힘들다. 오래된 식당인 듯, 벽에는 옛날에 사용하던 원시적 스키들을 전시해 놓았다. 오랜만에 편안한 웃음과 대화가 주어진다. 먹고 쉬며 얘기하는 시간이 제일 여유가 있어서 좋다.
오후 일정은 몽마르트 언덕이다. 같이 다니던 부부는 우리와 일정이 달라 여기서 헤어졌다. 전철 표를 10매씩 한꺼번에 사면 낱개로 사는 것보다 2~3매 정도 이익이다. 10매에 61프랑(10,800원)이다. 전철을 타고 몽마르트를 향해 출발했다. Anvers역에서 하차하여 역을 나오니 약간 언덕진 길에 낡은 표지판이 보인다. 사람들이 그 길로 내려오고 또 올라가는 이들이 보인다. 우리도 따라 언덕을 올라갔다. 파리에서 거의 평지만 가다가, 여름에 약간 언덕을 올라가니 땀은 흐르지는 않지만 발걸음은 무겁다. 파리 시내에는 5개의 작은 언덕이 있다. 그중에서 몽마르트 언덕이 해발 130m로 가장 높고, 다채로운 모습을 갖고 있다. 도로 바닥도 돌로 되어있다. 거리의 모습도 오래된듯하다. 뚜벅뚜벅 오르자니 테르트르 광장에 들어선다. 조그만 사각 광장이다. 초상화를 그려주는 사람들, 그림을 파는 사람들, 사진과 엽서를 파는 사람들, 관광객들과 어우러져 걷기도 힘들 정도로 붐비고 정신이 없다. 초상화를 그려주는 사람들과 무명 화가들이 관광객들을 유혹한다.
이곳은 루이 14세 때부터 대혁명까지 교수대가 설치된 장소였다. 1814년 이곳에 주둔한 러시아 군대의 술집이 생기고, 1848년에는 ‘자유의 나무’가 심어져 자유로운 분위기가 시작되었단다. 몽마르트파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단다. 고흐의 그림이 간판으로 매달린 선술집이 보인다. 고흐의 그림‘선술집’의 모자 쓴 중년 남자의 모습이 간판으로 작게 매달려 그냥 지나치기 쉬웠다. 세잔느, 르노와르, 고흐 등의 인상파 화가들이 많이 출입한 플랑제뜨 식당이다. 초상화의 유혹을 뿌리치고 꼭대기에 있는 샤크레 퀘르 대성당(예수 성심 대성당)으로 계속 발을 옮겼다. 드디어 정상에 우뚝 솟은 하얀 대리석의 로마네스크 양식의 멋진 성당이 눈에 들어왔다. 이 성당은 1876년 건축가 아바디의 설계에 따라 지어졌다. 비잔틴 양식이 배합되었단다. 프랑스 남부 배르그시의 생프롱 성당을 모방했다고 한다. 94m의 높이에 있는 종탑에는 알프스 산맥을 끼고 있는 싸브와 지방 주민들의 헌정으로 만들어진 ‘싸브와야르드’라는 18t의 종이 걸려있다고 한다.
성당 앞에는 시내를 향해 작은 광장이 있다. 옛날에 세워진 171개의 대포 문이 있었던 담이 있다. 광장에서는 거리의 재주꾼들이 재미있는 특기들을 보이며 푼돈을 모으고 있다. 층계에는 여행객들이 앉아서 멀리 바라보고 있다. 벤치에 앉아서 멀리 파리 시내를 바라본다. 멀리 에펠탑이 한눈에 들어오고 라데팡스의 건물들과 자세히 보면 퐁피두 센터 등 주요 건물을 찾을 수 있어 재미있다. 내부에 들어서니 사람들이 많이 서 있고, 안에서는 예배를 드리고 있다. 설교하고 있다. 설교의 울림이 메아리치며 성당 내부를 꽉 채운다. 그 울림이 이스라엘의 예루살렘에 있는 성 안나 교회의 울림과 비슷했다. 성당 중앙 앞면에 흰옷 입으신 예수님의 팔 벌린 모습이 위엄 있어 보는 이의 심정에 경건함을 갖게 한다. 잠시 휴식을 취한 후에 이제 하나밖에 남지 않았다는 포도밭을 지나간다. 몽마르트 박물관의 화장실에 무심코 들어가 사용한다.
옛날 물랑 루즈 였다는 풍차달린 건물 앞으로 가서 몽마르트 묘지를 찾아간다. 길이 지도와 많이 달라 헷갈렸다. 길을 물으니, 나이 많은 영감님이 친절하게 자기 지도를 꺼내 현재 위치와 묘지 위치를 알려주었다. 묘지를 가로지르는 도로를 따라 건너가 묘지로 내려갔다. 도로에서 보니 쓸쓸하고 을씨년스러운 오래된 곳이다. 묘지 입구에는 입장료가 없었다. 이 묘지에는 유명한 음악가, 미술가, 정치가, 발명가 등이 잠자고 있다. 하나하나 찾는 것이 쉽지 않다. 다행히 한국 여행객이 건네주는 안내지도가 있어 약간은 쉬웠다. 우리는 이리저리 찾아 헤매다가 독일 시인 하이네의 무덤을 찾고서 반가워했다. 하이네의 무덤에는 ‘이 피로에 지친 나그네는 어느 곳에 묻힐꼬, 남국의 야자수 밑이런가, 라인 강의 보리수 밑이런가’. 라는 글이 적혀있다. 친구들이 세웠다는 스탕달의 묘비에는 이탈리아어로 ’알리고베이르 밀라노인. 쓰고, 사랑하고, 살았다.‘ 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더 찾아보고 싶어서 안내지도를 들고 밀레의 묘에 갔다. 울고 있는 여자상이 있다.
에밀 졸라의 묘 옆에는 재수 없는 고양이가 눈치를 보며 웅크리고 있다. 인기가 있다는 춘희의 무덤을 찾았다. 이 묘비는 “여기 알퐁신 프렌시스 잠들다. 1824년 1월 15일 태어나 1842년7월 25일에 죽다”라고 적혀있다. <춘희>의 여주인공 마르그리트가 이 프렌시스로 실제 인물이었고, 상대인 아르망은 <춘희>의 작가인 뒤마 피스였단다. 몽마르트에서 활약하고 진혼곡을 작곡한 베를리오즈의 묘, 천국과 지옥의 서곡으로 유명한 작곡가 오펜바흐는 이곳에서 캉캉 춤 곡을 작곡했는데 그의 무덤도 있다. 콩코드 형제의 묘를 찾아보고 돌아서려니 나이 지긋한 한국 중년이 혼자서 여러 사람의 묘를 찾고 있었다. 공짜로 얻은 지도를 건네주지 못한 나의 옹색한 태도가 자꾸만 마음에 걸린다. 왜 그 영감님과 나는 숨바꼭질 하듯이 죽은 자의 무덤을 찾고 있을까? 을씨년스러운 묘지를 조용히 빠져나와 산자들이 흥청거리는 분주한 거리로 나왔다.
캉캉 춤을 추는 사진과 그림이 화려한 물랑 루즈 카페가 화려하게 보인다. 술과는 거리가 먼지라 그냥 눈으로 살펴보고 돌아섰다. 전철역으로 향했다. 아침에 나올 때 숙소 권사님께서 말씀하시던 유람선 할인권을 사 왔으면 저녁 야경을 보며 유람선을 탈 수 있었을 것이다. 깜박 잊고서 그냥 나와 다시 들어가 입장권을 준비해서 다시 나오기로 했다. 저녁도 사 먹는 것 보다 숙소에서, 배낭 속 양식을 처리하는 것이 더 경제적일 것 같았다. Blanche 역에서 전철을 타고 숙소로 왔다. 종일 걸어서 인지 피곤해서 잠시 눈을 감았다. 밥과 깻잎, 참치, 미역국으로 저녁을 맛있게 먹었다. 숙소 달력이 보인다. 파리장로교회(이극범 목사 시무)이름이 보인다. 잠시 쉰다. 유람선을 타기 위해 저녁 8시경에 표를 사서 세느 강변으로 출발했다. 강변에서 표를 사면 45프랑(8,000원)인데 할인권은 35프랑(6,000원)이다. 우리는 2번 선착장에서 유람선을 탔다. 이미 날은 어두워졌다. 시내 조명이 다 들어왔고 가로수에는 반짝이는 불빛이 있다.
유람선의 조명에도 밤벌레들이 분주하게 날아든다. 멀리 에펠탑이 보인다. 마주 오는 유람선은 즐겁기만 하다. 우리의 위치는 악마교와 토비리교 사이인 것 같다. 사람들이 많아 2층에는 앉을 자리가 없다. 아래는 약간 자리가 비었다. 첫 번째 다리로 배가 지나간다. 2층에 자리 잡고 앉아가다가 선장실과 연통에 시야가 가려 1층과 2층 사이의 계단에 서서 구경을 했다. 2번째 다리가 알렉상드로 3세교로 나폴레옹의 무덤이 있는 앵발리드로 들어가는 입구다. 양편에 서 있는 기마상이 조명아래 멋져 보인다. 반대편에는 콩코드 광장의 원형 관람차가 조명에 빛나며 천천히 돌아가고 있다. 다음 다리 콩코르드교를 지날 때에는 화려한 유람선이 마주 지나가 여름밤에 즐거운 놀이를 하는 듯하다. 철다리로 된 솔페리노교를 지나가다보니 오른쪽 건물 오르세 미술관인 듯한 건물 벽의 대형시계가 밤 10시 10분을 가리키고 있다. 세느 강변에는 연인들이 대화를 나누며 밤을 보낸다. 퐁루아얄교를 지나서 카루젤교, 퐁네자르교에는 N자가 보인다.
나폴레옹과 관계있는 이니셜이란다. 다음에는 세느강 위에 있는 시테섬 오른쪽으로 접어들었다. 퐁뇌프교를 지나니 멀리 노틀담 사원의 야경이 눈에 들어온다. 까만 하늘을 배경으로 하얗게 비쳐진 모습이 멋지다. 강변에는 삼삼오오 사람들이 모여 있고 진한 키스로 시선을 모으는 젊은 연인도 보인다. 생미셀교를 지나 다음 다리로 간다. 다리 위에서 손을 흔들어주는 가족의 모습이 행복해 보인다. 이르슈베세교를 지나니 우리가 점심을 먹던 오를레앙 강변의 의자가 나타난다. 이곳은 생루이 섬이다. 쉴리교를 지나니 유람선은 유턴하여 섬 반대편 쪽으로 달려간다. 쉴리교를 지나 마리교를, 루이필립교를 지나니 오른편에는 파리 시청이 눈에 들어온다. 노틀담교를 지나 상주교를 지나기 전 콩세르 쥬리의 시계탑이 눈 익어 반갑다. 상주교를 지나니 시테섬 베르갈랑 광장에 있는 앙리4세 기마상이 아주 작게 잠시 눈에 비친다. 퐁네프교를 지나며 아까 갈라졌던 강을 다시 만났다. 에펠탑에서 쏘아대는 불빛이 등대 불빛 같다. 돌아가며 까만 밤을 가르고 있다.
다리도 같은 다리가 없고 다리마다 조각상들이 있어 구석구석 빈곳이 없다. 천사가 앉아있는 상, 어느 노인 상, 남녀 상 등이 눈에 보여 느린 유람선의 지겨움을 약간 덜어준다. 우리 선착장인 2번을 지나 더 내려가니 드디어 에펠탑이 멋지게 한눈에 들어온다. 에펠탑에 조명이 비쳐지니 딱딱한 것이 황금색 화려함으로 바뀌어서 가관이다. 파리 야경의 백미는 에펠탑이라고 해도 반대할 사람이 없을 것 같다. 시내를 벗어남인지 현대식 건물이 눈에 보인다. 시계탑에는 22시 43분이라고 선명하게 보인다. 빌아켐교를 지나니 조그만 섬이 나타나는데 자유 여신상이 세워져 있다. 미국 뉴욕에 있는 자유여신상보다 작지만 모양은 똑같다. 이곳에서 다시 유턴하여 돌아간다. 우리 일행은 만족한 표정에 얼굴이 환하다. 갑판 위에 서서 멋진 에펠탑의 불타는 듯한 모습에 몇 번이고 탄성을 지르며 쳐다본다. 파리에서의 마지막 밤이 아쉬운 듯 모두 감탄사를 연발하며 기뻐한다. 좀 더 확실한 기억을 만들어 보려고 애를 쓰며 흘러가는 시간을 아쉬워하는 모습이다.
우리는 흥분되어 자리에서 일어나 어쩔 줄 모르고 있다. 주변 사람들은 더 차분해 지는지 자리에서 일어설 줄 모르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표정이 무겁다. 유람선에서 내리니 밤 11시 40분 정도다. 2시간정도 배를 탄 것 같다. 멋진 밤이다. 전철을 타고 숙소로 향한다. 역에는 사람들이 없고 있는 사람들도 발걸음이 바쁘다. 신기한 것이 전철 바퀴가 쇠가 아니고 고무 타이어다. 레일 위를 고무바퀴로 달리는 것이 신기해, 다음 열차가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시 확인했다. 소음이 적고 쿠션이 부드러운 것 같다. 파리의 마지막 밤이 아쉽고 부족한 것이 많지만 모든 것을 만족하게 보고 느낄 수는 없는 법, 이제 하루 밤을 자고 내일은 파리를 벗어나 다음 여행지로 가야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