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관에 짐 풀고 또 배가 고파서리 음식을 시켰는데(맨날 자고
먹는 예기만 하게 되는군요^^) 개들은 그걸 맜있다고 먹는지...차라리 날 죽여라!!! 비위가 상하더군요.
기름을 너무 넣어서 그런가? 역 근처의 잡화점 같은 곳으로 가서 라면, 빵, 커피(중국에서는 커피라고
하면 모릅니다. 얻어 먹고 싶으면 카페라고 하시길...)등을 사는데 옆에서 쭝국 공안이 왈(중국말로 뭐라
뭐라)...나중에 빈관측에서 뭘 한장 더 쓰라고해서 왔다갔다하며...요즘 탈북자가 많다던데 그 때문이었
던것 같음) 나중에 담배 한대 피우려고 밖으로나가니(호텔바로 건너편이 중국 공안국이었슴) 그 넘이 폼
잡고 계속 째려봐서(한건하려고 하는 모양인데 그래! 너도 나중에 한국 함~와라 하며(속으로) 들어와서
잠. 아! 운명의 여신은 우릴 버리는지...피곤해서 쫌 늦게 일 났습니다. 아침먹고 버스 타려고 나간게 8시
반 정도. 근데 떠났담다...백산에서 장백으로 가는 버스는 하루에 한대. 그럼 어쩌냐구요? 빈둥데며 하루
를 보내야한다는...일단, 사모님께 전화를 드렸더니 송강이란 곳으로 오면 버스가 자주 다닌다해서 송강
편 버스를 타서 아무한테나 "송강!송강! 창바이, 창바이"하는데 조선족 한 명이 "한국에서 왔어요?"해서
알아보니 송강가도 차가 없어 하룻밤을 자고 아침에 갈 수 밖에 없다는...나중에 택시를 대절했습니다.
근데 한 넘이 600원이라고하다가 1000원이라고 해서 탔다가 내리는등 우여곡절을 겪고...600원에 합의
를 보고 장백으로 출발했습니다(600원이면 울 돈으로 7만 8천원 정도). 근데 3시간정도 걸린다는 장백
현은 나오지 않고, 가도가도 산이고 또 산이고 ㅜㅜ. 정말 골짜기라는 표현의 의미를 알 것도 같더군요.
이럭저럭 자다가 둘이서 예기하다가 또 담배 피다가하면서 가는데 옆에서 전무 왈 "아! 김정일지도자 동
지란 글 봣어요!" 옆을 보니 북한인 것 같더군요.
산에 나무라곤 찾아보기 힘든 민둥산... 5시간 넘게 걸
린것같은데 장백현에 도착해서 다시 방을 잡으러 돌아 다녔습니다.
전에 잤던곳이 망했는지 대 공사중이더군요. 더 북쪽인 심양도 따뜻했는데 장백은 정말 추웠습니다.
입이 덜덜 떨리더군요. 압록강 상류란게 그런 모양입니다. 한참 뺑뺑 돌다가 금도란곳에 짐을 풀
고 한국음식 전문?이란 곳으로 가서 밥 시켜 놓고 선생님께 전활 드렸더니 공안국 앞에 나오셔서 한
참 기다리다가 들어가셨다는...그게 그 말이엿구나...도착해서 쭝국넘 기사 왈! 손짓을 해 가며 뭐라해서
도착했다는 뜻인줄 알고 쎄쎄 어쩌고하며 내렸었는데 그게 사모님과의 통화였을 줄이야~~~. 그러면
바꿔 주든지...어쨌던, 식당에서 선생님과 사모님을 뵙고 인사드리고 다시 빈관으로 가서 그 간의 사정
과 찾은 이율 설명드리고 댁으로 갔습니다. 깨끗하게 정돈 되어 있는것이 사모님의 성품인 것 같더군요.
중국에선 층집이라고 아파트나 연립을 표현하더군요. 다시 아침에 찾아 뵙기로하고 돌아와서 또 잤습니
다. 촬영준비등을 마치고 댁으로 가서 2시간 정도 선생님 주변 이야기 및 수박등에 관한 증언과 기타등
등을 찍고 했습니다. 그때 장백현문화관 관광, 외사과 과장이란 분이 와서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그 전에 장백현문화관 부관장이란 분이 한국의 수박협회와의 교류, 협정에 관해 동의를 해서 만나기로
되어 있었는데 아침에 선생님께 전화를해서 하는 말이 중국은 민간 교류가 직접적으로 되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중국측의 공식 라인을 일단 통해야 한다는... 어쨌던 문화관의 전 관장과 현 관광, 외사과과장
등과 이야길했으니 언제든지 장백현문화관은 울 집안처럼 생각해도 될 듯^^.
신기한게 어딜 가기만 하면 수박이나 그 주변 정보가 생긴다는 믿지 못할 개인적인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번에도 선생님과 예기중에 ㅇㅇㅇ이란 분
말이 나왔는데 첨엔 그 쪽의 민속을 수집, 정리하시는 분이라 했던것같은데 나중에 수박춤자료를 가지
고 있을지 모른다해서 빡, 빡 우겨 가지고 사모님을 앞 세워 쳐 들어 갔습니다. 몸이 불편해서 못 오신다
기에...걍~올 내가 아니지~~~만나뵈니 건강이 좋진 않은것 같은...몹시 마른 체형이었는데 인터뷰도
사절하고 비디오 찍겠다는것도 완강하게 거절해서 잠시 멍하게 앉아, 이런저런 예기로 풀어 나가던 중
에...1950년경에 김만석이란 분의 수박춤과 그에 대한 형식, 설명절때의 연희등에 관한 예기가
나오고해서 아주 강하게 설득 작업?에 들어 갔습니다. 증언을 남기셔야된다고 안 그러면
큰일이라도 나는것처럼 약간은 오바?해서 엥! 수박춤으로 작품을 짜서 젊으실적에 공연도 하셨다더군
요. 그래서 한껏 그 분을 추켜 세웠더니 나중엔 기분이 좋아 지셔서 쑬쑬 예기가 나오더군요. 아! 나
도 정치나 함 해 볼까^^. 그래서 증언등을 찍고 수박춤에 관한 그 분의 시 한편이 실린 장백산이란 잡지
원본도 얻어 가지고 귀환.
급하게 식사 대접을 받고 장백-심양가는 워푸(침대버스)를 탔습니다. 근데 쫌
가다가 울 전무님이 뒷 좌석의 누군가와 예길해서 "뭐라고 하냐?"했더니 "탈북자레요~~~". 엥!!! 그 순
간 어떻게 처신을 해야할지 오리무중...정신을 가다듬고 이리저리 물어보니 자강도에서 양강도를 거쳐
탈출한지 3일 되었다는데 조선족식당에 숨어 있다가 버스를 탔다는...심양의 한국대사관에 데려다 달라
고해서 별로 어렵지 않은 부탁이라고 생각되어 전무와 상의 후에 그러겠다고 했는데...그게 간단한 일이
아님을 잠시 뒤에 알게 되었습니다.
2편에 계속...
2편 예고; 북한 평양의 진흥중학교, 평양요리전문학교출신 김정옥씨(22세)와의 북한의 수박치기,
놀이에대한 대담. 글고 위의 탈북여성과의 이야기...쭝국 마사지에 대한(전신받는데 20원~25원정도
하더군요. 울 돈으로 2천5백원에서 3천원이 안 되는것 같은데...1시간 정도 해줍니다) 아!!! 씸양에서
그거나 받으며 살 순 없을까-,.-;;;
이게 왠쑵니다-,.-;; 뭔 말인지 알 만한 사람은 다 알 수 있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