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세기에는 성경과 관련하여 두 차례의 고고학적 발견이 있었다. 곧 사해 근처의 쿰란의 여러 동굴에서 ‘히브리어 성경’ 관련 문서들을 발견한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헬라어 정경화 과정에서 배척된 나그 함마디 문서라 불리우기도 하는 체노보스키온 외경 문서들의 발견이다. 특히 김용옥과 같이 반정경적인 행태를 보이는 직업적인 신학자들에게는 나그 함마디 외경 문서는 큰 반향(反響)을 일으켰다. 나그 함마디 외경 문서는 파코미우스(Pachomius, A.D. 292-346)에 의해 세워진 이집트의 파바우 수도원에서 묻은 것으로, 이는 AD 367년 3월 말 알렉산드리아 주교 아다나시우스(Athanasius)로부터 발송된 한통의 서신 때문이었다.
외경적 텍스트들은 이단자들의 날조에 불과한 것들이다. 사도의 이름을 팔기도 하고, 마치 고문서인 것처럼 집필시기를 위장하기도 하여 순박한 영혼들을 타락시킨다. 이제 (마태복음으로부터 요한계시록에 이르는) 27서 이외의 문헌은 읽어서도 아니 되며 소장되어서도 아니 된다. 이제 정경과 외경을 확연히 구분하는 신중한 분별심을 가지고 외경은 없애버려야 한다(김용옥, 기독교성서이해).
이 서한의 내용을 통해 당시 회당이나 수도원에서 읽혀졌던 책들의 성향을 어느 정도 짐작케 한다. 어쨌든 367년 아다나시우스의 서한으로 인해 파바우 수도원에서 보관되던 다수의 외경들이 모두 지하로 묻히게 된 것이다.
그러던 1578년이 지난 1945년 12월 어느 날 천연비료 사바크(sabakh)를 캐던 소년들에게 발견되기까지 지하에 묻히게 된 것이다. 오늘날 이집트의 게벨 알 타리프 절벽에서 발견된 문서들 중에 특히 도마복음서에 많은 관심을 보인다. 김용옥 역시 이 외경에 주석을 달아 3권의 책을 펴낸 바 있다. 물론 개신교인들은 이 나그 함마디 문서들보다는, 1947년 산양을 좇던 베두인 양치기 소년에 의해서 발견된 쿰란 문서들에 더 관심을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어쨌든 나그 함마디 외경 문서들은 정경 과정이 얼마나 치열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며, 또한 진리의 기둥과 터가 되는 하나님의 거룩한 교회가 얼마나 이러한 외경들로 인해 혼란을 겪어야만 했는지를 반증하기도 한다. 다음에 제시된 나그 함마디 외경 문서들을 보면 이해가 될 것이다.
Ⅰ, 1 사도 바울의 기도(The prayer of Apostle Paul)
Ⅰ, 2 야고보 비서(The Apocryphon of James)
Ⅰ, 3 진리의 복음서(The Gospel of Truth)
Ⅰ, 4 부활론(The Treatise on the Resurrection)
Ⅰ, 5 삼부대론(三部大論, The Tripartite Teactate)
Ⅱ, 1 요한 비서(The Aporyphon of John)
Ⅱ, 2 도마 복음서(The Gospel of Thomas)
Ⅱ, 3 빌립 복음서(The Gospel of Philip)
Ⅱ, 4 지배자들의 실체(The Hypostasis of the Archons)
Ⅱ, 5 세계기원론(On the Origin of the Word)
Ⅱ, 6 영혼의 해석(The Exegesis on the soul)
Ⅱ, 7 변자(辯者) 도마서(The Book of Thomas the Contender)
Ⅲ, 1 요한 비서(The Apocryphon of John)
Ⅲ, 2 이집트인 복음서(The Gospel of the Egyptians)
Ⅲ, 3 축복받은 자 유그노스토스(Eygnostos the Blessed)
Ⅲ, 4 예수 그리스도의 지혜(The Sophia of Jesus Christ)
Ⅲ, 5 구세주의 대화(The Dialogue of the Savior)
Ⅳ, 1 요한 비서(The Aporyphon of John)
Ⅳ, 2 이집트인 복음서(The Gospel of the Egyptians)
Ⅴ, 1 축복받은 자 유그노스토스(Eygnostos the Blessed)
Ⅴ, 2 바울 계시록(The Apocalypse of Paul)
Ⅴ, 3 제1 야고보 계시록(The First Apocalypse of James)
Ⅴ, 4 제2 야고보 계시록(The Second Apocalypse of James)
Ⅴ, 5 아담 계시록(The Apocalypse of Adam)
Ⅵ, 1 베드로와 열두 제자 행전(The Acts of Peter and the Twelve Apostles)
Ⅵ, 2 천둥 지혜서(The Thunder: Perfect Mind)
Ⅵ, 3 정교론(正敎論, Authoritative Teaching)
Ⅵ, 4 우리의 큰 권능(The Concept of Our Great Power)
Ⅵ, 5 플라톤의『이상국가론』콥틱 번역, 588a~589b(Plato, Republic)
Ⅵ, 6 팔천(八天)과 구천(九天)(The Discourse on the Eighth and Ninth)
Ⅵ, 7 추수감사기도(The Prayer of Thanksgiving)
Ⅵ, 7a 사경자주(寫經者註, Scribal Note)
Ⅵ, 8 아스클레피우스 21-29(Asclepius 21-29)
Ⅶ, 1 셈 이설(易說, The Paraphrase of Shem)
Ⅶ, 2 위대한 셋의 대속론 제2서(The Second Treatise of the Great Seth)
Ⅶ, 3 베드로 계시록(Apocalypse of Peter)
Ⅶ, 4 실비아누스의 가르침(The Teachings of Silvanus)
Ⅶ, 5 셋의 3부 찬송가(The Three Steles of Seth)
Ⅷ, 1 조스트리아노스 계시(Zostrianos)
Ⅷ, 2 빌립에게 보내는 베드로 서한(The Letter of Peter to Philip)
Ⅸ, 1 멜기세덱(Melchized다)
Ⅸ, 2 노레아의 생각(The Thought of Norea)
Ⅸ, 3 진리의 증언서(The Testimony oj Truth)
Ⅹ, 예언자 마르사네스(Marsanes)
Ⅺ, 1 영지 해석(The Interpretation of Knowledge)
Ⅺ, 2 발렌티누스 우주론(A Valentinian Exposition)
Ⅺ, 2a 기름부음에 관하여(On the Anointing)
Ⅺ, 2b 세례론 1서(On Baptism A)
Ⅺ, 2c 세례론 2서(On Baptism B)
Ⅺ, 2d 성찬론 1서(On the Eucharist A)
Ⅺ, 2e 성찬론 2서(On the Eucharist B)
Ⅺ, 3 알로게네스 계시(Allogenes)
Ⅺ, 4 휩시프로네 계시(Hypsiphrone)
Ⅻ, 1 섹투스 교훈집(The Sentences of Sextus)
Ⅻ, 2 진리 복음서(The Gospel of Truth)
Ⅻ, 3 단편들(Fragments)
ⅩⅢ, 1 프로텐노이아의 세 형상 계시(Trimorphic Protennoia)
ⅩⅢ, 2 세계 기원론(On the Origin of the Word)
BG, 1 마리아 복음서(The Gospel of Mary)
BG, 2 요한 비서(The Apocryphon of John)
BG, 3 예수 그리스도의 지혜(The Sophia of Jesus Christ)
BG, 4 베드로 행전(The Act of Peter)
(김용옥의 기독교 성서이해 참고)
위 나그 함마디의 외경문서들이 비록 367년 아다나시우스의 정경선언 이전에 기독교인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었다 해도, 그것은 결코 27권의 정경과 동등하게 취급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아다나시우스의 서한에 크게 반발하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순교가 미덕인 당시 상황에서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된 성경을 외경으로 치부하여 제거하라는 명령이 하달된 것이라면 분명 항명(抗命)이 있었을 것이다. 알렉산드리아 주교의 명이어서 어쩔 수 없이 파바우 수도원 사람들이 따랐다고 주장한다면 참으로 불합리한 주장이다. 어쨌든 위에서 살펴본 52종의 13개의 콥틱어 코덱스는 모두 정통 교회에서는 제거된 외경문서이다. 이것들은 장로교의 신앙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웨스트 민스터 신앙고백서에서 밝히고 있는 바와 같이 그리스도인의 믿음으로 사는 삶에 유익이 조금도 없는 것들이다. 곧
일반적으로 외경이라고 불리우는 책들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정경의 일부가 아니며, 따라서 하나님의 교회에서 아무 권위가 없고, 또한 다른 인간적인 저작물보다 더 나을 것이 없으며 사용 가치가 있는 것도 아니다.
나그 함마디 문서 외에 헬라어 정경 과정에 나타난 외경들은 대략 복음서 외경, 행전 외경, 서신서 외경, 계시록 외경 등으로 나누어볼 수 있다. 그러나 나그 함마디 외경들 외에도 당시 로마 제국 하에 있던 교회에서는 각기 나름의 외경들을 보유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또 제작되고 있었다. 이를 다음에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1) 복음서 외경 : 히브리 복음서, 베드로 복음서, 도마 복음서, 니고데모 복음서, 이집트인들의 복음서, 맛디아 복음서, 빌립 복음서, 유년기 복음서, 야고보 원복음서, 도마 유년기 복음서, 영지주의 복음서, 진리의 복음서, 수난 복음서, 유다-그리스도교 복음서, 에비온파 복음, 나사렛파 복음 등 다수
2) 행전 외경 : 바울 행전, 요한 행전, 안드레 행전, 도마 행전, 베드로 행전, 베드로와 12사도 행전, 사도 계시 행전 등
3) 서신 외경 : 라오디게아 서신, 바울과 세네카의 교환서신, 바울과 고린도교인들의 교환서신, 예수님과 압가루스의 교환서신 등
4) 계시록 외경 : 베드로 계시록, 바울 계시록, 아담 계시록, 제일 야고보 계시록, 제이 야고보 계시록 등 다수
위 외경들 중에 바울 사도의 행적을 더 말하고자 하는 욕구로 인해 바울행전이 인위적으로 만들어졌고, 또한 골4:16의 ‘이 편지를 너희에게서 읽은 후에 라오디게아인의 교회에서도 읽게 하고 또 라오디게아로서 오는 편지를 너희도 읽으라’는 기록으로 인해 라오디게아 서신이 서투르게 조작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베드로 복음서는 세라피온이 금하기까지 로소스(Rossos) 회중들 사이에서 널리 읽혀졌으며, 요한 계시록과 같은 장르인 베드로 계시록은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에 의해 사도 베드로의 작품으로 인정되기도 했다. 클레로몬타누스 사본은 이 책을 정경으로 인정하는 듯하다.’ 혹자는 다음과 같이 외경 저작 이유를 좀더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 모든 저술들은 두 가지 목적 중에 하나를 갖고 있었다. 어떠한 교리적 견해를 조장하기 위해서, 혹은 신약 성서의 인물들에 대한 빠진 행적들을 보충하기 위해서이다. 후자의 경우에 있어서는 기독교인들의 호기심이 예수님의 생애나 사도들의 기록되지 않은 경력들에 대해서 더 많은 정보를 요구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종종 공상적인 결과들을 초래하였다. 외경 속에 들어가 있는 일부 이야기들은 그 저자들의 날조된 이야기였다. 다른 것들은 교회의 회원들 사이에서 발전된 전승들의 산물이었다. 많은 예에서 신약에 기록된 서술들의 교묘한 윤색을 보게 된다. 사실상 이 저술들은 신약 인물들의 생애와 사상에 대한 우리의 지식에 아무것도 더해 주지 못한다. 그들의 주요한 의의는 교회사의 영역에 있다....그들의 존재함 자체가 교회로 하여금 심각하게 정경성의 본질을 숙고하게 하였고, 또한 정경을 종료시키도록 만든 중요한 요인의 중의 하나였다.
이러한 외경의 발흥 외에도 속사도 시대에 제작된 저술들에 있어서도 문제가 되었다. 예를 들면 클레멘트전서, 디다케(Didache, 혹은 열두 사도들의 가르침), 바나바의 서신, 그리고 헤르마스의 목자(Shepherd of Hermas)와 같은 책들이다. 클레멘트전서와 헤르마스의 목자는 스스로 성령의 조명하시는 역사를 자칭하고 있으며, 디다케 또한 사도들의 권위에 호소하고 있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는 바나바의 서신을 비롯하여 클레멘트전서, 디다케 그리고 헤르마스의 목자까지도 정경(正經)으로 인정했다. 물론 유세비우스와 아다나시우스는 이것들을 단호히 배격했다.
문제는 또 다른 곳에도 있었다. 곧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된 정경들에 대해서도 혼선을 빚은 것이다. 오리겐(AD 185-254)이 논란이 되는 책들이라고 밝힌 곳에는 히브리서, 베드로후서, 요한2서, 3서, 야고보서, 유다서 등이 있었고, 가이사랴의 유세비우스(대략 AD 260-339) 역시 논쟁 대상서(antilegomena)로 야고보서, 유다서, 베드로후서, 요한2, 3서를 들었다. 알렉산드리아의 디디무스(398년 사망)는 베드로후서가 위조이며 정경에 속하지 않는다고까지 했다. 그리고 시리아 교회에서 사용된 페쉬타역은 베드로후서, 요한2, 3서 그리고 계시록이 정경에서 배제되었다.
약 175년경 크리소스톰의 정경에도 계시록 외에 베드로후서, 요한2, 3서, 유다서가 빠졌다. 특히 동방교회에서는 베드로 계시록, 바나바서, 히브리인의 복음서 등과 더불어 요한계시록을 배격했음을 본다. 그러나 서방교회에서 가장 논쟁의 대상이 되었던 책은 계시록이 아니라 히브리서였다. 1740년 밀라노에 있는 비블리오데카 암브로시아나(Bibliotheca Ambrosiana)의 사서였던 무라토리(L. A. Muratori)가 도서관에서 발견한 2~3세기의 단편(발견자의 이름을 딴 무라토리 정경이라 칭함)에도 히브리서, 베드로전후서, 야고보서, 요한삼서 등이 누락되어 있다. 그리고 363년 라오디게아 회의에서 가결된 정경 목록에는 요한계시록이 배제되었다.
시리아 에데사 왕국에서 활동했던 타티안(Tatian, AD 160-175년 경 활동)이라는 사람에 의해 편집된 마태, 마가, 누가, 요한 복음서가 오늘날의 공관복음서와 유사한 형태의 혼합된 복음서라 불리던 디아테사론(Diatessaron)이 사용되었다. 이 혼합복음서인 디아테사론은 431년 에베소 공회의 때에 이단으로 정죄된 네스토리우스 이단들에게 관심을 끌었다.
더욱이 히브리어 성경 전체를 부정하고 배격했던 2세기 중엽부터 5세기 중엽까지 지속되었던 이단자 마르시온파는 누가복음 1권과 바울의 10개의 서신 곧 갈라디아서, 고린도전후서, 로마서, 데살로니가전후서, 에베소서, 골로새서, 빌립보서, 빌레몬서 등 일명 ‘아포스톨리콘’이라 불리는 이들 만을 정경으로 채택했다. 그러나 393년 히포 회의와 397년 카르타고 회의에서는 현재의 27서의 목록을 갖추고 있었다.
이를 보건데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고 정통 교회의 근본을 헐고자 했던 아리우스파의 도전을 몸으로 막았던, 알렉산드리아 주교 아다나시우스의 367년 정경 선언은 참으로 기억될 만한 역사적 사건이 아닐 수 없다. 그의 정경 선언이 비록 오늘 우리의 히브리어 성경과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해도, 그의 헬라어 성경 27권 정경선언은 오늘 우리가 믿음으로 사는 삶에 크게 이바지 한 것은 틀림없다. 이제 그의 말을 들어보도록 하자.
많은 사람들이 외경적이라고 규정지을 수 있는 책들을 가지고 근사하게 장난질을 쳐서 하나님의 감동을 받은 성경과 혼동시키고 있기 때문에, 나는 여러분들에게 하나님의 것으로 간증되고 우리에게 전승되어 온 정경(the Canon) 속에 들어갈 수 있는 책들의 목록을 제시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히브리어 정경 목록 생략)....이제 또다시 여러분에게 신약(the New Testament)의 책들을 열거하여 말하는 것이 결코 지루한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우선 4개의 복음서가 있는데, 그것은 마태, 마가, 누가, 요한에 의한 것이다. 그 다음으로 사도행전이 있고, 또 가톨릭(보편교회적)이라고 부를 수 있는 7개의 서한이 있다. 그 7개는 야고보의 편지 하나, 베드로의 편지 둘, 요한의 편지 셋, 그리고 유다의 편지 하나이다. 이에 덧붙여 바울의 14서한(히브리서 포함)이 있다. 그것은 다음의 순서대로 쓰여진 것이다. 제일 먼저가 로마 사람들에게 보낸 편지이다. 다음으로 고린도 사람들에게 보낸 두 편지가 있다. 이 두 편지 다음에 갈라디아 사람들에게 보내 편지가 있다. 다음에 에베소 사람들에게, 다음에 빌립보 사람들에게, 그 다음에 골로새 사람들에게 보낸 편지가 있다. 이것들 다음에 데살로니가 사람들에게 보낸 두 개의 편지가 있고 히브리 사람들에게 보낸 편지가 있다. 그것들 다음에 디모데에게 보낸 두 개의 편지, 디도에게 보낸 하나의 편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빌레몬에게 보낸 편지가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것 이외로 요한계시록이 있다.
참으로 놀라운 감격의 순간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이후로도 정경 논쟁이 종종 있었지만, 아다나시우스의 367년 부활절 선언 이전과 같이 혼란스럽지 않았다. 그런데 부분적으로 정경 논쟁에서 혼란을 야기했던 유다서에는, 노아의 조부 에녹을 빙자한 에녹서 1:9의 기록이 인용되고 있다. 곧 유1:14의 ‘아담의 7세 에녹이 사람들에 대하여도 예언하여 이르되 보라 주께서 그 수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셨나니’라는 구절은 외경도 아닌 위경 1:9의 기록을 인용하고 있다는 것이 논란의 원인이 되었다. 에녹서는 70인 역에 포함되어 있는 외경(apocrypha)이라기보다 오히려 성경의 인물을 빙자한 위경(Pseudepigrapha)에 더 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다서 저자는 이러한 위경을 인용하므로, 이에 대한 평가가 매우 달랐다. 다음에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터툴리안은 유다의 증거 때문에 에녹서 전체가 영감 받은 성경으로 그 진정성이 인정되었다고 주장하고는 성령께서 그를 통해서 말씀하신 가장 오래된 대언자가 에녹이라고 했다. 다른 한편으로 제롬에 의하면, 유다가 감히 위서를 인용했기 때문에 유다서의 정경성을 거부하는 이들이 많았다고 한다. 다행히도 어거스틴이 취한 중간 입장이 널리 인정되었는데, 그는 유다가 에녹서의 한 문장을 인용한 것은 그가 그렇게 함으로써 에녹서 전체에 정경적 위치를 부여하는 것으로 생각지는 않았으리라고 보았다.
외경 논쟁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유다서의 위경 에녹서 인용문제는 메쯔거의 다음과 같은 말이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
바울이 고린도전서 15:33에서 희랍의 희곡작가 메난더(Menander)의 희곡 타이스(Thais)에서 한 줄 인용할 때나, 누가가 바울이 아덴에서 한 설교를 보도하면서 스토아 철학자 클레안더(Cleanthes)가 저작한 범신론적 ‘제우스 찬양’에서 한 부분을 인용할 때나(행 17:28), 디도서 저자가 1:12에서 그레데인들에 대해서 반은 전설적으로 에피메니데스(Epimenides)가 풍자한 것을 되풀이 할 때나, 이 어느 경우에도 신약성서 기자들이 그것들을 인용했다고 해서 인용된 말들에 특별한 거룩함이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제까지 헬라어 성경의 정경화 과정에 나타난 외경 문제에 대해 간략하게 살펴보았다. ‘나는 평소 불교 대장경을 읽으면서 왜 불교는 이토록 많은 경전을 다 성경으로 존중하고 불교신앙의 자료로 삼고 있는데 왜 기독교는 겨우 달랑 27서 쬐끄만 책 하나만 바이블로서 강요하는가 하고 의구심을 품어왔다.’는 김용옥의 궁금증에는 ‘하나님의 감동’으로 되었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프쉬키코스인의 한계 때문이다.
정경화의 과정에서 아다나시우스가 이미 그의 서신에서 언급했다시피 '하나님의 감동(divinely inspired)'을 기준으로 삼은 것은 오늘날까지도 유효하고 앞으로도 지속되어야 마땅하다. 다만 정경 내용과 하나님의 감동에 관한 보다 확실한 증거가 필요할 뿐이다. 이에 대해 오늘날 ‘성경의 자증성’을 주장하지만, 그 자증성에 대한 근거는 여전히 오리무중(五里霧中)이다. 16세기 교회 개혁자 루터(M. Luther)는 정경의 기준으로 ‘사도저작’과 ‘그리스도에게로의 인도’를 피력했다.
* 본 내용의 참고문헌은 필자의 강론집에는 표시되어 있으나, 본 글에는 생략되어 있음을 미리 밝혀 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