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시력은 과거형과 미래예지형이 있다.
과거형은 일어난 일에 대해서 투시를 하는 것이며
미래 예지형은 아직 일어나지 않는 일에 대해 예지해 내는 것이다.
투시력이 어떻게 작용하는가에 대한 많은 이론이 있기는 하지만
우리는 그것의 실제 법칙을 정확히 알지 못한다.
투시가는 보다 확대된 의식을 통하여 대상 인물에 관련된 어떤 힘을
감지하고 그것이 현상 그대로 작용할 때 예상되는 결과를 추리한다.
일반인들이 알고 있는 투시력은 매우 단순하여 그들은 당신이 영을
볼 수 있는 사람이거나 미래를 예언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버린다.
그러나 영을 식별하는 것은 그처럼 쉬운 일이 아니며 미래를 예언하는
행위는 그 자체에 함정이 숨어 있다. 세상에서 미래 예지 능력을 시종
일관하게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에 지나지 않으므로 투시력을
개발하려는 사람은 자신의 투시 능력이 미래 예지력까지 보장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자료 인용 / 초감각투시에서
윗글 본문에서 투시력이 어떻게 작용하는가에 대한 많은 이론이 있으면서
정작 투시가 어떻게 작용되어지는지 그것의 실제 법칙을 정확히 알지 못
한다는 점은 보다 근원적으로 접근하여 연구해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또한 투시가가 보다 확대된 의식을 통하여 대상 인물에 관련된 어떤 힘을
감지하고 그것이 현상 그대로 작용할 때 예상되는 결과를 추리한다는 것은
투시가 개인의 생각이 개입되어 맞을 수 도있고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이니
함정이 있을수 있다. 투시란 결과를 추리해는 것이 아니라 본 것을 그대로
말해야 하는 것이다.
일반인들이 투시하는 능력을 영을 볼 수 있는 사람이거나 미래를 예언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버리는 것처럼 어쩌면 투시 그 자체가 영을 보는 것인지도
모른다. 투시나 사이코 메들리, 오라감식, 심미안이 각 각 다른 것처럼 보여지지만
사실은 보통 사람의 육안으로 보여지는 것이 아니라 특별한 단련으로 눈에 보이는
것만큼 어떤 사물에 기록되어진 희미한 음영의 그림자인지 사람의 기운이 묻어있는
것인지 영으로 보여지는 것인지 식별하기는 어려울 것이며 보통사람들이
그것을 이해하는데는 투시가의 솔직담백한 고백에 달려있다.
무속인들이 많이 모여드는 기도 장소에 가면 투시때 보여지는 것과 같이 희미한
음영의 그림자나 무속인의 염력, 영의 기운이 반드시 보이거나 느껴진다.
대표적인 산은 지리산, 계룡산, 태백산 등이다.
삼각산(요즘의 북한산)에도 강한 기운이 있으나 지리산, 계룡산 태백산만큼
강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나 무속인들의 왕래가 없는 장소에 가면 그런 느낌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투시가들이라면 이들 장소에서 무속인들처럼 볼 수 있고 느낄수 있어야 할 것이다.
무속인이 영을 보는 능력이나 투시가들이 투시하는 것이 별 차이가 없기때문이다.
미래를 예언하는 행위는 그 자체에 함정이 숨어 있는 특이한 능력을 지닌만큼
자만심과 교만함 오만함 거만함을 버리지 못하고 사람들 사이에서 군림하거나
때로는 격한 감정에 휘말려 들면서 마음의 안정을 잃어버리거나
갑작스런 충격으로 정신이 혼미해질 때 능력이 사라지게 되니 세상에서 미래
예지 능력을 시종 일관하게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에 지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영을 식별하는 것이 어려운 것은 정말로 영을 볼 줄아는 능력을 얻었는지에
달려 있다. 정신 질환자들도 가끔 영을 보는듯한 능력을 보여주기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