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삼동패총과 조도 패총 유적지
▣답사일자 : 2014년 7월 5일(토)
▣소 재 지 : 부산시 영도구 동삼동 749-8
1930년 일본인 요코야마(橫山將三郎)·오이카와(及川民次郎) 등에 의해 부분적으로 발굴되었다. 1963∼1964년 미국 위스콘신대학의 모어(Mohr, A.) 및 샘플(Sample, L.L.)에 의해 시굴이 행해졌다. 본격적인 발굴조사는 1969∼1971년까지 3년간에 걸쳐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실시했으나 정식 발굴보고서는 아직 발간되지 않았다.
여러 차례의 조사를 통해 이 유적은 한반도 남해안 일대 신석기시대의 조개더미로서는 규모가 가장 크고 또 여러 문화층이 겹쳐 있음이 밝혀져, 우리 나라 신석기시대의 문화연구를 위한 중요한 유적으로 간주되고 있다.
그러나 가장 본격적인 발굴조사였던 국립박물관의 발굴보고서가 아직 발간되지 않은 상태여서, 학자들간에는 이 유적의 층위(層位)나 출토유물의 성격 등에 관해 서로 다른 견해들을 가지고 있다.
이 유적의 층위는 발굴자에 따라 3∼5개층으로 형성되어 있다고 하는데, 가장 최근에 조사한 국립박물관의 발굴관계자는 표토 아래에 흑갈색 토층·패각층(貝殼層)·혼토패각층(混土貝殼層)의 3개층이 있고, 이들 각 층은 각각 그 성격을 달리하는 별개의 문화층이라 말하고 있다.
출토유물로는 토기·석기·골각기(骨角器)·패기(貝器) 등이 비교적 풍부하게 있으며, 유구(遺構)는 노지(爐址)와 분묘로 보이는 적석시설이 발견되었다.
토기는 둥근바닥[圓底]·납작바닥[平底]의 원시민무늬토기·세선돋을무늬토기[細線隆起文土器]·압날문토기(押捺文土器), 전형적인 빗살무늬토기[櫛文土器]·붉은간토기(丹塗磨硏土器], 겹아가리[二重口緣]의 민무늬토기, 태선돋을무늬토기[太線隆起文土器], 변형빗살무늬토기 등 특징적인 것이 많이 출토되었다. 이 중 둥근바닥 및 납작바닥의 민무늬토기·세선돋을무늬토기·압날문토기는 가장 이른 시기인 신석기시대 전기에 편년되는 토기이다.
전형적인 빗살무늬토기는 뾰족바닥[尖底] 또는 둥근바닥에 홑아가리를 가진 V자형 또는 U자형의 심발형토기(深鉢形土器)이다. 이 토기의 아가리부분에는 평행사단선문(平行斜短線文)이 있고, 복부에는 굵은 침선(針線)을 한 줄씩 그은 태선횡주생선뼈무늬[太線橫走魚骨文]가 있어 이 유적에서는 가장 대표적인 토기 중의 하나이다. 이 전형적인 빗살무늬토기의 시기는 신석기시대 중기에 편년되며, 이 시기 토기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
변형빗살무늬토기는 아가리 주위에만 2, 3열 정도의 조잡한 선문(線文)을 두른 것이다. 전형적인 빗살무늬토기와 비교해볼 때, 시문(施文)한 부위도 좁아지고 위치도 아가리 주위에만 한정해 놓은 것 등 문양에 있어서도 큰 변화가 나타난다.
이 변형빗살무늬토기, 겹아가리의 민무늬토기, 태선돋을무늬토기 등은 모두 신석기시대 후기에 속하는 것으로 동삼동 후기 신석기문화의 특징적인 토기가 되고 있다.
석기는 규질암제(硅質岩製) 반간돌도끼[半磨製石斧]·삼각형 석설(三角形石銛), 역석(礫石)의 박편(剝片)으로 만든 스크레이퍼(scraper), 간삼각형돌살촉, 흑요석제(黑曜石製) 석거(石鋸)·인기(刃器) 등이 출토되었다. 시기적으로는 신석기시대 후기가 되면 흑요석제 석기가 성행하는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골각기는 골침·골촉·조침(釣針)·시문구(施文具) 등이 출토되었다. 패기로는 패천(貝釧)·패도(貝刀)·패면(貝面) 등이 있다.
이 유적의 연대는 앞서 토기의 특징에 따라 그 시기의 대강을 말한 바와 같이, 우리 나라 신석기시대 거의 전기간에 걸쳐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방사성탄소연대측정을 통해 최하층은 서기전 3230년, 서기전 2995년, 서기전 2930년, 상층은 서기전 1450년이라는 절대연대를 얻은 바 있다.
패총인들의 생활상은 그들이 남긴 인공유물 외에도 각종의 자연유물에서도 나타난다. 이 동삼동패총에서도 생활상을 반영하는 각종의 자연유물이 출토되었다. 조개류 31종, 도미 등 각종 생선뼈, 고래·사슴 등의 짐승뼈가 그것이다.
고래뼈의 존재는 실제로 이 동삼동패총인들이 원양에서 포경활동을 한 것인지, 아니면 해안에 들어온 고래를 포획한 것인지 확실치 않다. 그러나 큰 굴껍질은 깊은 바다에서의 잠수활동을 말해주고 있다.
일본의 승문토기(繩文土器)는 바다를 통한 생활이 주생업인 어로활동 외에 일본과의 교역도 이루어졌음을 보여준다. 이 승문토기는 바다를 통한 원격지에로의 교역 내지는 고대의 문화교류활동 등을 알려주는 좋은 증거가 되고 있다.(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동삼동 패총 유적지(국가사적 제266호)와 전시관은 한국해양대학교 입구에 위치 하고 있다.
한편 해양대학교 교정에는 '조도 패총 유적지' 표지석이 있다.
현, 동삼 패총 발굴지역
발굴 당시의 모습
1930연대부터 2006년까지 10여차례이상 조사된 우리나라 신석기 시대 연구의 기준이 되는 대표적인 유적이다.
전시관
왼쪽에 동삼동 패총을 대표하는 조개가면이 있다.
보통 각 박물관에는 대표적인 유물을 이렇게 명칭 앞에 넣는다.
조개가면
한국해양대학교
아치섬, 조도(朝島)
태종대에서 동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첨봉을 떠받고 있는 섬인 듯이 아닌 듯이 보이는 작은 섬이 보인다. 영도의 또 하나의 섬인 ‘아치섬’(141m)이다. 아치섬 바로 앞은 1970년대까지만 해도 바다였으나 지금은 매립되어 ‘동삼혁신도시’로 지정되어 해양 관련 공기업이 하나둘 입주하고 있다.
부산항 입구에 오륙도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것이 ‘아치섬’(일명 조도·朝島)이다.
아치섬은 영도 남단 1.8㎞ 지점에 있는 영도에 딸린 섬이다. 아치섬은 영도에 딸려 있으므로 ‘섬의 섬’이라 할 수 있으며, 섬 둘레가 고작 6km로서 작은 면적을 갖고 있다.
부산만 북항 입구에 있는 섬으로 동래부지(東萊府誌)에 따르면 원래는 동백나무가 많아 ‘동백도(冬柏島)’라고 하였다고 한다.
그러다가 임진왜란 당시 부산포 해전 때 아군이 섬에 주둔해있던 왜군의 기치(旗幟)를 눕히고 섬을 탈환하면서 ‘와치도(臥幟島)’로 바뀌었고, 시간이 흐르면서 ‘아치도’라고 부르게 되었다.
‘아치’란 이름은 예쁘고 작은 것을 표현할 때 '아지'라는 말을 쓰는데, 이 섬이 동생같이 작고 귀엽다는 뜻으로 아지섬에서 아치섬이라 부르게 되었을 것이라는 설도 있다.
부산에서 아침이 제일 먼저 시작되는 곳이란 뜻이며, 다른 이름으로 ‘조도(朝島)’라고도 한다. 참고로 아치섬을 아침섬, 까치섬이라며 조도(朝島, 鳥島)라고 하지만 부산대 김봉모 교수에 의하면 아치와 ‘까치(까치설날)’는 모두 ‘작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고 한다.
‘아치’란 이름은 예쁘고 작은 것을 표현할 때 '아지'라는 말을 쓰는데, 이 섬이 동생같이 작고 귀엽다는 뜻으로 아지섬에서 아치섬이라 부르게 되었을 것이라는 설도 있다.
부산에서 아침이 제일 먼저 시작되는 곳이란 뜻이며, 다른 이름으로 ‘조도(朝島)’라고도 한다. 참고로 아치섬을 아침섬, 까치섬이라며 조도(朝島, 鳥島)라고 하지만 부산대 김봉모 교수에 의하면 아치와 ‘까치(까치설날)’는 모두 ‘작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고 한다.
아치섬은 1876년 부산항이 국제 무역항으로 개방됐던 당시만 하더라도 인가가 예닐곱 채쯤 있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일제 강점기에 일본 해군 요새사령부 관할로 편입되면서 일반인의 접근을 금지시켰으나 8·15광복 이후 해산물 채취를 위하여 사람들이 거주하게 되면서 사람들이 몰려들게 되었다. 아치섬과 하리 사이에는 아가리배로 불리는 도선이 유일한 교통편이었다.
섬은 원래 주민들이 고기잡이와 해산물 채취로 생계를 이어가는 조그만 어촌 마을이었다. 그런데 1950년대 중반부터 갑자기 ‘밀수 소굴’로 둔갑, 전국의 유명세를 탄 적이 있었다. 1960년대 이후 강력한 단속으로 밀수는 사라져갔지만 당시 아치섬은 대한민국 최대의 밀수 근거지로 불리기도 한 섬이다.
해양대학교가 들어서기 전까지도 100세대가 넘는 주민들이 살았던 곳이었으나 1974년 이곳에 거주하던 103세대의 주민들을 집단으로 이주시킨 후 부지를 조성하여 중리에 있던 한국해양대가 이전하면서 방파제가 육지와 연결되어 지금은 섬 아닌 섬이 되었다.
아치섬은 섬 전체가 대학 캠퍼스다.
캠퍼스가 아치섬에 들어오기 전에는 동삼중리에 위치한 지금의 남고등학교가 해양대 자리다.
국립 한국해양대학교는 1919년 문을 연 진해고등해원양성소를 모태로 1945년 ‘해양입국’ 기치를 내걸고 설립됐다.
1946년 진해해양대학으로 승격된 후 1947년 학교를 인천으로 옮기면서 국립해양대학교로 교명을 바꿨다. 같은 해 학교를 다시 군산으로 옮긴 후 1953년 부산으로 학교를 옮겼다.
1991년 종합대학으로 승격하면서 ‘한국해양대학교’로 교명을 변경했다. 국립 목포해양대학교와 함께 해양전문인력을 양성하는 ‘국내 유이(唯二)’의 종합대학으로 특히 해운·항만·물류산업 분야, 조선·해양 분야, 정보통신 분야, 국제지역연구 분야를 특성화 분야로 선정해 중점 육성하고 있다.
참고로 아치섬에는 선박들의 안전한 운항을 위한 ‘해상교통관제(VTS)센터’가 설치되어있다. 아치섬 정상에 보이는 일군의 하얀 건물들이 그것이다. 공항에 항공기의 안전한 이착륙을 유도하는 관제탑이 있듯이 항만에도 통항 및 입출항 선박을 통제․관리하는 곳이 해상교통관제센터다. VTS센터는 각종 통신시설을 이용해 항만 내부나 입출항 항로를 운항하는 배들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이들 선박과의 통신 등을 통해 안전 항해에 필요한 각종 정보를 제공하는 업무를 맡고 있는 국가 기간시설로 우리나라는 1993년 경북 포항항을 시작으로 현재 전국 14개 주요 항만에 VTS센터가 개설돼 있다.
부산항에는 부산신항VTS센터와 아치섬 정상에 자리 잡은 부산항VTS센터 등 2곳이 있다. 호출명칭이 ‘항무부산’인 부산항VTS센터는 1998년 설립돼 365일과 24시간 내내 부산항과 선박의 안전을 지키고 있다.
이곳에서는 북항과 남항, 감천항, 다대포항 등 부산항에 드나드는 하루 250여 척의 선박을 비롯, 부산항 항계와 인근 해역을 지나는 선박까지 매일 500척에 달하는 각종 선박을 관제하며 해당 선박에 항만․해상․기상정보를 실시간에 제공하고 있다.
또 항만당국의 해상교통관제를 위해 국제항해에 나서는 500t급 이상 선박은 반드시 AIS를 탑재, 각종 운항정보가 자동으로 해당 항만의 VTS센터에 제공되게 해야 한다. 부산항의 관제대상은 모든 외국적 선박과 국적선 중 300t 이상 선박, 위험물 적재 선박, 길이가 200m 이상인 선박 등이다.
[출처 : 검색인용, 일부편집. 사진 - 청현]
첫댓글 동삼동의 역사 탐방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