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우희, 조익수의 묘 (曺遇禧, 曺益修의 墓)
고려 후기 판전의사 좌시중을 지낸 창성부원군 조우희 선생과 조선 초기 경상도 병마절도사,
초토 안무사를 지낸 조익수 선생의 묘이다. 봉분 아래에는 둘레석을 두르고 있으며, 비석은 높이 1m 정도이다. 이 묘들은 고려와 조선 초기의 전형적인 양식을 띠고 있어 당시의 묘제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이 묘들은 고려말(高麗末) 명신(名臣)으로 판전의사(判典儀寺) 좌시중(左侍中)을 역임한 창성부원 군 조우희 선생과 , 조선(朝鮮) 초기(初期) 경상도(慶尙道)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 초토안무사(招 討按撫使)를 역임한 조익수 선생을 모신 곳이다.
이 묘들은 고려와 조선 초기의 전형적인 묘제(墓制) 양식(樣式)으로 묘 둘레에는 둘레돌(護石)을 두르고, 묘 앞에는 상석(床石), 향로(香爐)가 있다. 묘비석(墓碑石)은 고려와 조선초기 묘제 연구에 중요한자료가 되고 있다.
자료출처: 문화재청
관동 마을 서쪽 서재골로 가는 길 위쪽 산 능선에 동향으로 있는 창녕 조씨(曺氏)의 분묘인데 그 봉분이 특이 하고 거대하므로 인근에서는 조능(曺陵)이라 불린다. 이 분묘는 고려시대의 형식을 가지고 있으므로 당시의 묘제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또 피장자는 고려 때의 사람 창성부원군 조우희와 조선조 초기 관직을 지낸 병마절도사 조익수이다. 조우희는 고려말 이성계와 함께 위화도회군으로 유명한 창성부원군 조민수 (曺敏修) 장군의 아버지이며 조익수는 조 장군의 바로 아래 동생이다. 조우회의 아버지는 조원주(曺元柱)이다.
조우희의 묘는 산 능선의 상부에 있는데 원형이며 그 아래에 있는 조익수의 묘는 그 분묘의 모양이 고려 때의 분묘 특징 그대로 나타낸 사각형 분묘로 기단석은 잘 다듬어진 장대석으로 사각형의 기단을 쌓고 그 위에 성토하여 봉분을 만들었다. 고려 시대의 분묘의 특징을 잘 남아 있다하여 도지정 기념물 60호로 보호되고 있다.
1999년 읍지편찬위원회 조사위원의 조사에 의하면 위에 있는 조우희의 묘는 봉분 전면에 거대한 화강암 장대석이 호석(護石)처럼 봉토를 받치며 있는 묘비가 있다. 이것은 아래변 길이가 3.m, 윗변 2.4m, 높이가 70cm로 [麗朝正順大夫判典儀寺事贈左侍中府院君昌寧曺公諱遇禧之墓] 그 왼편에 계속하여 [配贈貞敬夫人星山李氏墓有昌寧龍藏寺西子坐]라고 새겨져 있다.
봉토의 둘레는 13.8m(전면의 호석 겸 비석과 합하면 16.8m), 높이는 1.5m이다. 넓고 얇은 상석과 높은 향로석이 앞에 있으며 축대 좌우에 문무석이 2기가 서 있다. 이 문무석의 높이는 1.2m 정도가 되었다. 축은 내축, 외축 등 1단씩 3개의 축대로 되어 있다.
조우희의 묘 아래에 있는 분묘 앞 왼쪽에 [曺益修墓] 라 새겨진 고색창연한 묘비가 있다. 조선 초기 경상도 병마절도사 초토안무사를 지낸 조익수 묘비의 비신(碑身)은 높이 120cm, 너비 50cm, 두께 21cm이며, 좌대는 거북 형상인데 길이 130cm, 높이가 20cm, 폭이 67cm이며, 이수는 용의 조각이 아름다운데 높이가 60cm로 전체 높이는 200cm이었다.
비문은 당시의 행적과 증직이 기록되어 있었을 것이나 오랜 세월 비바람에 마멸이 심해 비의 전후면에 많은 작은 글씨가 새겨져 있음은 확인되었으나 알아 볼 수 있는 글이 적어 그 내용은 알수가 없다. 좌대, 비신과 이수는 전형적인 고려시대의 방식으로 되어 있어 고려시대 사회제도와 관직의 연구자료로 가치가 높다.
분묘는 장대석 8개로 기단을 만들고 그 위(지상)에 2단으로 장대석을 8개씩 쌓았는데 전 후면에 3개씩 좌우에는 상대석 2개를 걸쳐 사각으로 짜 눌러 놓은 축대 형식으로 전면의 너비가 360cm, 옆면 길이가 420cm로 분묘는 직사각형의 형태이다. 2단의 축대 높이는 97cm이며, 그 위에 봉토를 평평하게 올렸는데 기단에서 봉토 위까지 높이는 110cm 정도가 되었다. 2단째의 보통 장대석 하나의 길이가 220cm, 높이가 33cm이며 그 아래 장대석은 길이는 위와 비슷하나 높이가 60cm정도가 되고 돌을 잘 다듬어 빈틈이 없도록 쌓았다.
묘 앞 좌우에 문무석이 2기가 서 있는데 높이는 160cm이며 내축 외축 등이 1단씩 3개의 축대가 있고 상석이 넓고 얕은데 향로석은 없어지고 그 기초만 있다. 이곳 문무석은 뒤쪽 조우희 묘의 문무석보다 조각 솜씨가 좋아 보였다.
작성자: 창녕군문화관광해설사 성득용
자료출처 : 오종식해설사의 카페
보존상태 : 현재까지 아주 관리가 잘되고있다
찾아가는길 : 남지IC-우회전(5번도로)-고속도로 굴다리 지나서-오거리-우회전(1021번도로)-상대 포-황새목-200m-좌회전(관동)마을 좌측 관동리의 뒷산
출처: 우포가 있는 풍경 cafe.daum.net/01044400480 |
첫댓글 수년전에 인천종회에서 참배를했던 산소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