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5 |
1980 |
1985 |
1990 |
1995 |
2000 |
2001 |
2002 |
2003 |
2004 |
2005* |
27,553 |
43,911 |
56,296 |
93,192 |
150,437 |
192,887 |
198,409 |
208,636 |
215,067 |
220,238 |
229,780 |
세계의 에너지자원은 고갈되고 있는데, 에너지자원을 거의 모두 수입하고, 이와 동시에 소비가 급증하고 있다는 것은 한국이 조만간 에너지 파국을 맞을 가능성이 있다는 어두운 예측을 가능하게 한다. 더욱이 가파르게 올라가는 지구평균기온 상승과 이로 인한 기후변화가 한국에 가할 타격의 징조는 어두운 예측을 더 어둡게 만든다. 한국은 1919년 기온측정을 시작한 이래 평균기온이 지금까지 거의 섭씨 1.5도 상승했다. 강수의 강도가 더 강해졌고, 겨울이 따뜻해졌고, 기상재해로 인한 재산피해가 최근 들어 크게 늘어났다. 한국도 전지구적인 기후변화로부터 벗어날 수 없고, 다른 지역보다 더 심한 영향권 안에 들어와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모두 고려할 때 한국이 화석에너지의 소비를 급격히 늘려가는 것은 에너지 파국을 향한 질주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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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구적인 에너지자원 고갈과 기후변화라는 어두운 현실 속에서도 희망의 싹은 솟아오르고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갈되지 않고 기후변화도 일으키지 않는 재생가능 에너지를 이용하려는 움직임이 서서히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일년동안 인류가 얻을 수 있는 재생가능 에너지의 양은 인류가 일년동안 소비하는 에너지의 15000배에 달한다. 우리에게는 아주 깨끗한 에너지가 풍부하게 존재하는 것이다. 이러한 에너지를 주로 서유럽에서 발전과 난방, 그리고 자동차 연료용으로 적극적으로 개발해가고 있다. 지금까지 얻어진 성과도 꽤 크다. 덴마크는 전체 전기의 거의 20%를 풍력발전으로 공급하고, 독일은 5%를 공급한다. 스페인도 상당한 양의 전기를 풍력발전으로 생산한다. 태양열을 이용한 온수생산은 오스트리아, 독일, 네덜란드, 그리스 등지에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태양광 발전도 아직 절대량은 적지만 빠른 속도로 퍼지고 있다. 이들 국가에서는 앞으로 50년 후면 대부분의 에너지를 재생가능 에너지로부터 얻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독일은 2050년까지 에너지 소비를 40% 정도 줄이고, 나머지 필요한 에너지의 60% 이상을 재생가능 에너지로 충당하려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장기 계획을 세워서 에너지 전환을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이라고 해서 에너지 소비 감소와 재생가능 에너지의 확대를 통해서 에너지 전환을 실현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시민사회의 힘이 부족하고 정부의 정책의지가 없기 때문에 기존의 에너지 수급 패턴을 계속 연장해가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에너지 전환은 우리의 생존을 위해서도 반드시 이룩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소비 감소와 재생가능 에너지 확대를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에너지 소비를 줄이는 길은 다양하다. 자연채광을 확대하고, 조명용 전등이나 가전제품을 절전형으로 바꾸고, 대기전력을 줄이고, 건물의 단열을 강화하면 에너지 소비를 크게 줄일 수 있다. 그 중에서도 건물의 난방용 에너지를 줄이는 것은 전체적으로 커다란 에너지 소비감소 효과를 가져온다. 난방용 에너지는 건물로 들어오는 열을 최대로 잡아두고 빠져나가는 열을 최소로 유지할 때 가장 잘 절약할 수 있다. 이러한 방향으로 건물설계와 시공이 최적으로 이루어지면 겨울철에 난방을 하지 않아도 된다. 이러한 건축물을 보통 자연형 건물(passive house)이라고 부르지만, 좀더 적극적인 의미에서 태양건축이라고 부를 수도 있다. 물론 태양건축은 난방을 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조금 넓은 개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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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에서 소비하는 전체 에너지 중에서 난방을 위해 들어가는 에너지의 비율은 매우 높다. 가정의 경우 위도에 따라서 다르지만 독일의 경우 이 비율은 76%나 된다. 모든 건물 전체를 놓고 따지면 31%가 넘는다(Deutscher Bundestag, Nachhaltige Energieversorgung, 2002). 한국은 에너지 통계가 가정과 상업을 구분하지 않기 때문에 통계가 정확하게 나오지는 않는다. 2002년 가정과 상업 부문에서의 최종에너지 소비는 전체 에너지의 21.4%였다. 공공부문까지 합하면 23.3%였다. 이 중에서 70%가 난방에너지라고 하면, 전체 에너지 소비 중에서 16%가 난방용으로 들어가는 셈이 된다. 여기에 산업체 난방용으로 들어가는 에너지까지 합하면 20% 정도는 될 것이다. 그렇다면 태양건축을 통해서 전체 에너지 소비의 20%까지 절약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제 에너지 전환에서 태양건축이 차지하는 의미가 분명해졌다.건물의 절약가능 포텐셜이 매우 크기 때문에, 태양건축을 통해서 에너지 절약을 상당히 많이 할 수 있고, 이는 에너지 전환을 앞당길 수 있다는 것이다. 태양 건축이 에너지 전환에서 이러한 의미만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단순한 절약을 넘어서 대안을 통한 절약이라는 점에서 심리적인 효과도 크다. 우리가 보통 이야기하는 에너지 절약은 여름철에 실내온도를 26-28도로 유지하도록 에어컨을 조절한다거나, 겨울철 실내온도는 18-20도를 유지하도록 난방을 하는 것 정도이다. 그리고 안쓸 때는 전등을 끈다거나, 조금 더 나아가서 대기전력을 줄이기 위해서 멀티탭을 사용한다는 것이 에너지 절약을 실천하는 것에 들어간다. 그런데 이러한 방식의 절약은 소극적인 것이고, 항상 유의해야 한다는 것 때문에 피곤하게 만드는 것이고, 뚜렷한 한계가 있다. 에어컨이나 난방장치를 조절한다 해도 건물이 제대로 단열되어 있지 않으면 많은 에너지가 투입되어야만 한다. 건물 자체를 바꾸지 않으면 아무리 절약하려고 노력해도 제대로 절약할 수 없는 것이다. 조명이나 가전제품도 일정한 수준 이상은 사용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여기서도 금방 절약의 한계가 드러날 수밖에 없다.
이러한 한계로 인해서 지금까지 한국에서의 에너지 절약운동은 성공한 일이 없다. 아니 절약 자체가 돌진적으로 급속하게 성장하는 것을 최고 미덕으로 보았던 한국 사회에 걸맞는 것이 아니었다. 더 많은 생산, 더 많은 소비, 더 많은 수출을 추구해왔던 한국 사회에 절약이 들어설 자리는 없었던 것이다. 최근에 들어서 급증하는 에너지 소비가 국민경제에 점점 더 큰 압박으로 다가옴에 따라, 정부에서 시민단체를 움직여서 에너지절약을 유도하기 위해 해마다 많은 돈을 시민단체에 지원하고 있지만 이들 단체에서 벌인 절약운동에서조차도 가시적인 성과가 나온 일이 없다. 절약을 목표로 한 운동이 이렇게 어려운 것이다. 사실 절약운동은 네거티브 캠페인과 같은 것이다. 쓰는 것은 나쁘다, 그러므로 쓰지 말라고 하는, 에너지 소비에 대한 부정을 통해서 목적을 달성하려는 것이다. 이러한 일을 즐겁게 하기 어렵다는 것은 자명하다.
그런데 자연형 태양건축(passive solar architecture)을 통한 에너지 절약은 네거티브 캠페인의 성격을 지닌 것이 결코 아니다. 반대로 이것은 포지티브 캠페인 같은 것이다. 에너지를 잔뜩 사용하는 기존의 건물보다 훨씬 쾌적하면서도 에너지를 적게 쓸 수 있는 대안을 내놓고, 이걸 선택하면 자연스럽게 에너지 절약을 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연형 태양건축에서는 금욕적인 자기 감시를 요구하지도 않고, low tech만을 고집하지도 않는다. 각종 첨단기법을 동원하면서도 자연스럽게 에너지 절약이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럼으로써 궁극적으로 에너지 전환이 앞당겨지도록 만드는 것이다.
한국에서 자연형 태양건축은 시작단계에도 들어서지 못했다. 이러한 건물이 유럽에서는 이미 수천개 이상 세워졌지만, 한국에는 아직 한 개도 없다는 것이 이를 보여준다. 생태건축에 대한 관심은 꽤 높은 편이지만, 이 말이 지닌 모호함 때문인지 그 관심의 중심은 건축 재료에 놓여 있다. 지구 생태계를 생각할 때 가장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할 에너지가 중심 컨셉트로 자리잡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의 관심은 건축가나 일반시민의 관심에도 미치지 못한다. 건축가나 일반 시민 중에서는 생태건축에 대해서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는 사람이 점차 늘어가지만 정부는 생태건축에 대해서조차 거의 관심이 없다. 자연형 건물에 대한 정부의 관심이 거의 없다는 것은 지속가능성과 기후변화와 에너지 고갈에 대한 정부의 무관심의 반영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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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부문에서는 순수하게 시민이 주도해서 운동을 벌이는 것이 쉽지 않다. 건축이라는 것이 비용이 많이 들고 각종 인허가 문제가 뒤따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정부에서 제도를 통해서 어느 정도의 조건은 만들어주어야 한다. 그렇다고 이 조건만으로 충분한 것은 아니다. 정부 주도만으로 자연형 건축이 널리 퍼져나갈 수 있다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정부에서 앞서 나가더라도 건축가와 일반 시민이 주체적으로 동참하지 않으면 실패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광주가 솔라시티로 선정되어서 수년 동안 각종 사업을 벌여 왔지만 지금까지 정부 돈을 들여서 건설한 몇몇 태양에너지 설비를 제외하고 시민 차원의 성과를 보여주지 못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라 할 수 있다. 대구도 솔라시티로 선정되었지만 지지부진한 것도 시민영역과 함께 나아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시민 차원에서의 관심과 뒷받침이 없으면 자연형 태양건축도 재생가능 에너지 확대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성공하기 어렵다. 대구의 경우 시장이 바뀐 후에 솔라시티 사업이 더 지지부진해졌다고 하는데, 시민의 관심과 힘이 형성되어 있었다면 시장이 바뀌었다는 것이 큰 변수로 작용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최근에 정부에서 부안 핵폐기장 건설문제에 돌파구가 열리지 않아서 그런지 지속가능발전위원회를 통해서 에너지 대책연구팀을 꾸렸다. 여기에 수십명의 전문 연구자가 참여하는데, 나도 에너지 공급시스템을 검토하는 팀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지속가능발전위원회에서 꾸린 것이지만 연구팀에 참여자 대다수는 지속가능성이나 지속가능한 에너지 시스템에 대한 관심이 거의 없다. 대부분 시장주의적인 관점에서 에너지 문제에 접근하고, 단기적인 시간표 속에서 에너지 문제를 바라본다. 지속가능성을 수십년 정도로 보는 사람도 있다. 이것이 현재 한국의 현실이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에너지 전환을 꿈꾼다는 것은 대단한 의지와 소신을 요하는 일이다. 이번 행사도 그 의지의 소산이다. 이 행사를 통해서 건축가, 일반 시민, 행정담당자들의 태양건축에 대한 관심이 좀더 커질 것을 기대해 본다.
III. 세계 에너지 현황과 건축에서 에너지의 중요성
1. 세계 에너지상황
유엔환경계획 사무총장 클라우스 퇴퍼는 2005년 9월 초 베를린의 신문과 가진 인터뷰에서 석유로부터 해방되는 것이 인류의 핵심과제의 하나라고 주장했다. 그는 현재의 늘어나는 석유 수요에 비추어볼 때 유가가 떨어질 가능성은 없으며, 따라서 석유로부터의 해방이 경제적으로나 환경정책적으로 인류의 미래의 중심 과업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주장 - 유가가 올라갈 것이고, 인류가 석유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매우 중요 과업이라는 - 은 10년 전만 해도 웃음거리에 지나지 않았다. 당시에 미국상품거래소의 유가는 배럴당 20달러도 채 되지 않았고, 2000년 말에 유가가 크게 올랐을 때에도 배럴당 30달러선에 머무르는 정도였다. 그러나 2002년 배럴당 16달러 선에서 상승하기 시작한 유가는 약간의 부침이 있었지만 계속 올라가서 현재 미국상품거래소의 유가는 배럴당 70달러 선에 도달한 상태이다.
유가는 원래 부침이 심하다. 상승과 하락을 반복한다. 크게 뛰었다가도 6개월 정도만 지나면 원래 자리로 되돌아온다. 2000년 말 경에 30달러를 넘어었던 유가가 2001년 중엽에 20달러로 떨어진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2000년 당시 갑자기 크게 올라간 유가 때문에 전세계는 여기저기에서 항의시위가 벌어지는 등 상당한 혼란이 있었다. 한국에서도 대통령까지 나서서 에너지절약을 강조하고 대체에너지 개발을 권장했다. 그러나 몇 달 후 유가가 원래 가격으로 떨어지자 한국은 물론이고 전세계가 다시 잠잠해졌다. 이렇게 유가는 등락을 거듭한다. 1973년의 1차 오일쇼크, 1979년의 2차 오일쇼크 때에도 갑자기 오른 유가는 곧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2002년 20달러 선에서 올라가기 시작한 유가는 4년째 떨어질 줄 모르고 계속 상승중이다.
두번의 오일쇼크를 비롯해서 지금까지의 유가상승 국면은 모두 갑자기 닥친 것이다. 몇 년에 걸쳐서 꾸준히 상승한 적은 한번도 없다. 1973년에는 하루아침에 유가가 수배 이상 뛰었고, 1979년에도 최저점에서 최고점까지 올라가는 데 1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1990년 걸프전이 일어났을 때 유가가 두배이상 뛰었다가 원래 자리로 돌아오는 데는 6개월밖에 걸리지 않았다. 지금처럼 2002년부터 거의 4년 동안 계속해서 유가가 올라간 일은 없었다. 두 차례 오일쇼크 때의 유가상승과 현재의 유가 상승이 이처럼 다른 양태를 보이는 데는 어떤 중요한 원인이 있을 것이다. 원인은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다. 오일쇼크 때는 석유 생산능력은 충분한데 인위적으로 생산량을 줄였기 때문에 유가가 상승했다. 그후 석유 생산을 늘리자 유가는 떨어졌다. 반면에 최근의 유가상승은 석유생산을 인위적으로 줄였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전의 경우와 정반대로 석유 수요는 늘어나는데 생산량을 그에 맞추어서 빠르게 늘려갈 여력이 점차 사라져가기 때문에 발생한다.
세계 석유소비의 4분의 1을 사용하고, 이로써 세계에서 석유를 가장 많이 소비하는 미국에 추운 겨울이 닥치면 국제유가가 크게 오르고, 멕시코만의 해저유전이나 뉴올리언즈의 정유시설이 피괴되자 유가가 뛰는 이유는 바로 산유국의 석유증산 여력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전세계 산유국의 석유 증산능력은 거의 한계에 달했다. 바로 이런 상태이기 때문에 석유수요에 약간의 변동만 생겨도 유가가 크게 출렁이는 것이다. 앞으로 세계 석유수요는 계속 늘어간다. 미국 에너지정보청이나 국제에너지기구에서는 지금부터 20년 후 석유수요가 40% 늘어날 것으로 전망한다. 이에 반해서 석유 생산이 앞으로 20년간 수요를 제대로 충족시킬 만큼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는 곳은 거의 없다. 셰브론이나 엑손 같은 초국적 석유자본들조차도 그러한 전망을 내놓지는 않는다. 오히려 셰브론은 2005년 7월 에너지문제에 대한 관심을 촉발하기 위한 캠페인을 시작했다. 캠페인에서 셰브론은 세계의 석유가스전의 상당수는 노쇠해 가고 있고, 새로운 에너지는 물리적,기술적, 경제적,정치적으로 추출이 어려운 지역에 존재하며, 수요와 공급이 빠듯하게 만나면 에너지원을 차지하려는 경쟁이 치열해질 것이라는 경고를 하고 있다.
석유생산이 수요를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고 있고 얼마 있으면 공급부족 사태가 일어난다는 경고를 내놓는 분석가는 시간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일부 주류언론이나 정치인 그리고 일부 국가의 정부에서도 이제는 이 문제에 깊은 관심을 표하고 있다. 석유 가격이 앞으로 계속 올라갈수록 이러한 관심은 점점 더 높아질 것인데, ‘비관적’ 분석가들에 따르면 석유가격이 떨어질 가능성은 크지 않기 때문에, 석유 문제는 앞으로 더욱 세계적 관심거리가 될 것이다. 이들 분석가들은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해서 발생하는 석유부족 사태가 멀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이들에 의하면 석유 생산이 정점(oil peak)을 지나면 생산량이 줄어들기 시작하는데, 반면에 수요는 계속 늘기 때문에 시간이 갈수록 석유부족 현상이 심각해지게 된다. 석유생산의 정점은 이들 석유 정점론자(peakist)들이 예측하는 바에 따르면 2010년 경에 닥칠 것이다. 그 다음부터는 수요와 생산의 갭이 점점 커질 것이고, 석유를 차지하려는 경쟁이 격화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석유정점에 대비해야 할 것인가? 2004년 3월 국제유가가 크게 올라가기 시작했을 때 한국정부에서는 유가상승이 이라크 정정불안 등으로 인한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발표했다. 그후 8월에는 미국 텍사스유의 가격이 40달러를 넘어 50달러에 육박하면서 제3차 오일쇼크에 대한 우려가 나오자, 산업자원부 장관은 석유 생산이 수요보다 많기 때문에 오일쇼크는 없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10월에 텍사스유의 가격은 배럴당 55달러가 되었고 지금은 70달러가 되었다. 정부에서는 이제 감히 단정적인 주장은 하지 않는다. 지금까지의 모든 발표가 들어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도 여전히 연평균 석유수입가격을 비롯 석유에 관한 전망수치를 수정하기 바쁘다.
석유가격은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2005년 3월 골드만삭스에서 전망했듯이 배럴당 105달러까지 올라갈 가능성이 높다. 이에 대해서는 꽤 논란이 벌어질 수 있겠지만,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새로 발견되는 유전이 석유소비량에 비해 아주 적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 더 적어진다는 것이다. 현재 인류가 해마다 소비하는 석유의 양은 발견되는 석유의 거의 세배이다. 격차는 앞으로 더욱 벌어질 터인데 그렇다면 한국 정부의 믿음대로 석유가격이 안정화되기는 불가능할 것이다.
유가가 오르면 다른 연료의 가격도 올라간다. 에너지원 중에서 석유가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우리 이목은 석유가격에 집중되어 있지만, 전세계적으로 소비가 늘어나고 있는 천연가스도 유가상승과 함께 계속 올라갔다. 석탄과 우라늄도 마찬가지다.
2. 한국의 상황인식과 과제
한국정부에서 석유가격상승의 충격을 완화하고 석유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선택한 전략은 해외에서 직접 유전을 개발하고, 시베리아와 사할린에서 남한까지 오는 파이프라인을 건설하고, 수소연구에 매진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중 어느 하나에서도 성공가능성이 분명하게 보이지 않는다. 해외 유전개발은 한국 석유소비의 일부만을 덮을 수 있을 뿐이다. 러시아와 중국을 통과하는 파이프라인은 언제 건설될 것인지 매우 불투명하고, 설사 건설된다 하더라도 석유가스의 수급안정성을 조금 높이기는 하겠지만, 가격을 안정시킬 수는 없다. 수소는 대통령까지 나서서 국가차원의 ‘수소경제’ 선언을 했고, 2040년경 자동차의 절반이 수소로 달리게 하겠다는 로드맵까지 나왔지만 이 로드맵이야말로 실현가능성이 거의 없는 것이다. 오히려 국민들에게 수소에 대한 환상을 심어줌으로써 에너지위기의 해결을 더 어렵게 만들 뿐이다.
전세계에서 수소경제가 오리라고 믿는 사람은 극소수이다. 수소가 약간의 에너지저장수단으로 기능하리라는 것을 부정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나 수소가 에너지 부족과 기후변화를 일거에 해결하리라는 이야기는 웃음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천연가스를 가지고 수소를 만드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천연가스를 수소로 바꾸지 않고 그대로 써도 수소로 할 수 있는 모든 일 - 자동차연료, 발전, 난방 등 - 을 할 수 있는데, 변환과정에서의 에너지손실을 감수하면서까지 수소를 만들려는 어리석은 짓을 누가 하려 하겠는가? 수소경제라는 말은 한국정부와 우리사회의 에너지문제에 대한 인식부족과 어리석은 낙관주의를 잘 드러내는 것이다.
결국 한국이 선택할 길은 스웨덴과 같이 석유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벗어나는 길은 한편으로는 에너지 소비를 줄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대체물을 찾는 것이다. 현재 한국의 일인당 에너지 소비량은 일인당 국민소득이 한국의 3배나 되는 일본이나 독일보다 더 많다. 상황이 이미 매우 심각한 것이다. 이제 석유와 원자력이 아니라 재생가능 에너지에 희망이 있음을 분명하게 확정하고, 장기적인 전환노력에 들어가야 한다. 화석연료외 원자력에 의존하고 97% 이상의 에너지자원을 수입하는 지속불가능한 에너지수급체제를 재생가능 에너지에 의존하는 지속가능한 에너지수급 체제로 바꾸어야 하는 것이다. 현재 한국의 에너지체제는 기후변화를 유발하고, 에너지안보 면에서 취약하고, 방사능과 방사성폐기물로 끊임없이 사회적 갈등을 부추기며, 에너지소비를 조장하는 체제이다.
한국의 에너지수급체계를 지속가능한 것으로 전환하는 전략은 장기적인 시간표에 바탕을 둔 것이어야 한다. 50년에서 60년의 장기 계획을 짜고 차분하게 실행해나가야만 전환이 달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전환의 한가지 축인 에너지 효율향상은 20-30년 정도의 기간 안에 상당한 효과를 거둘 수 있다. 기존발전시설을 열병합발전시설로 교체하고 단열을 강화하는 것 등은 20여년 안에 효과를 볼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른 축인 재생가능 에너지의 확대는 50년 이상의 긴 계획을 수립하는 것이 필요하다. 세부적인 연차적 달성목표를 세우기는 어렵지만 50년 동안 꾸준히 차근차근 추진한다고 하는 기본계획과 의지가 반드시 전제되어야 한다.
한국의 에너지소비는 현재도 여전히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에너지수급체제의 전환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에너지소비 증가를 줄이는 수급조절 노력을 대대적으로 벌여야 한다. 수급조절은 단순한 절약이 아니라 효율향상을 통해서 이루어져야 한다. 효율향상 방법으로는 첫째 에너지효율이 낮은 석탄화력을 축소하고 원자력발전과 석탄화력을 대신할 소형 가스열병합 발전소를 확대하는 것, 둘째 분산형의 초소형 열병합 발전소를 보급하는 것, 셋째 건축물의 단열요건을 강화하여 건물의 에너지 낭비 요소를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것, 넷째 교통체계를 대중교통 중심, 기차 중심으로 전환함으로써 자가용 승용차와 화물자동차에 의한 교통부문의 에너지 낭비를 줄이는 것, 육류 소비를 줄임으로써 육류 생산과 수입에 들어가는 에너지를 줄이는 것 등이 있을 것이다.
3. 건축물의 에너지 소비 감소와 에너지수급 시스템 전환
건축물에서 소비되는 에너지는 전체 에너지의 약 4분의 1에 달한다. 이러한 상황은 유럽의 선진국이나 한국 모두 비슷하다. 유럽 선진국의 경우 전체 에너지의 약 25% 가까운 양이 건축물의 냉난방이나 조명용으로 사용되고 있다. 한국에서는 2005년 에너지경제연구원 통계와 에너지관리공단 자료에 따르면, 건물에서의 에너지소비가 전체 에너지소비의 23%에 달하는 것으로 나온다. 건물에 들어가는 에너지의 양이 전체 에너지소비 중에서 이토록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면, 이 에너지의 소비를 줄이지 않고는 에너지의 효율적인 이용과 에너지소비의 감소는 불가능해진다.
주거용 건물의 경우 에너지소비를 정확하게 나타내거나 외국의 경우와 비교하려면 단위면적당 에너지소비를 얻을 수 있어야 한다. 단위면적당 에너지소비가 많으면 건물의 에너지 효율이 낮은 것이고, 적으면 효율이 높다고 말할 수 있다. 유럽의 경우 건물의 에너지 효율은 신축 건물일수록 높아지는 것으로 나온다. 50년 전에 지은 건물과 2000년대에 지은 건물의 에너지 효율은 거의 3-5배 정도 차이가 난다. 한국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50년 전에 지은 건물과 2000년대에 지은 건물의 에너지 효율은 차이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차이는 유럽처럼 크지 않을 것이다. 유럽 독일의 경우 30-50년 전에 지은 집의 에너지소비는 제곱미터당 약 250kWh이다. 2000년대에 지은 집의 에너지소비는 약 70kWh이다. 한국의 경우 30년 전에 지은 집의 에너지소비는 제곱미터당 약 300kWh가 넘을 것이다. 2000년대에 지은 집의 경우 단위면적당 에너지소비는 그 전보다 적을 것이다.
대형 사무실 건물의 경우 일부 건물을 대상으로 조사결과가 나와 있다. 에너지관리공단에서 1990년대에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이들 건물은 제곱미터당 연간 약 200kWh 이상의 에너지를 사용한다. 아파트의 경우에도 여름철의 냉방과 겨울철의 난방에 들어가는 에너지를 모두 합하면 제곱미터당 연간 200kWh의 에너지가 소비될 것으로 추정된다.
1990년대 말에 이루어진 에너지관리공단의 조사에 따르면 주거부문의 에너지소비가 전체 에너지소비의 약 15%에 달하는데, 이는 우리의 주거생활에서 소비하는 에너지도 우리사회 전체를 생태적인 삶으로 만들어가는 데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이러한 주거부문에서의 에너지소비를 어떻게 줄일 것인가? 주거용 건물에서 냉난방과 온수용으로 들어가는 에너지의 비율은 대략 80% 정도 될 것이다. 나머지가 조명, 가전기기용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냉난방과 온수를 위해 투입되는 에너지가 가장 많은 셈인데, 이 에너지를 줄이는 방법은 건물을 겨울에는 안쪽의 에너지가 가능한 한 빠져나가지 않고, 여름에는 바깥쪽의 에너지가 가능한 한 안으로 들어오지 않도록 철저한 단열을 하는 것이다.
정부에서는 2004년 12월 국무총리 주재로 제10차 「국가 에너지절약추진위원회」를 열어 「에너지절약 및 이용효율향상 종합대책」을 확정하고, 이를 통해 향후 3년('05∼'07)동안 우리나라 에너지소비효율을 8.6% 개선해 나가겠다고 발표했는데, 여기에서도 건물의 에너지 소비에 관한 안이 나온다. 그중의 하나는 신축건물 설계 시 단위건축면적당 에너지사용 한도 내에서 설계토록 하는 에너지소비총량 규제를 2007년 중에 도입하는 것이다. 또한 2007년에 에너지절약설계기준의 단열 및 설비효율 요구수준도 선진국수준으로 강화하고 제출대상도 리모델링 건축물 등 대폭 확대한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이러한 정부의 발표를 보면 정부에서도 건물의 에너지 소비를 줄이는 것이 필요함을 인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문제는 정부의 계획이 실현되려면 전국민의 호응이 필요할 터인데, 국민들을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는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계획의 목표는 에너지원단위를 개선하기 위함이다. 즉 경제에 초점을 맞춘 것이지 유럽 국가들처럼 지속가능한 에너지수급 시스템을 확립함으로써 기후변화를 억제한다는 고려는 들어있지 않은 것이다. 에너지를 많이 소비하기 때문에 에너지경제성이 낮아진다는 이유로 국민들을 설득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 정도는 국민들이 아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세계 에너지 현황에 비추어볼 때 에너지수급이 위협받고 기후변화가 빠르게 진행되기 때문에 에너지 소비 자체를 줄이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통해서 설득해야만 어느정도 설득이 될 것이다. 이렇게 설득을 하면서 건축에서의 에너지 소비 총량제를 도입해야만 정부의 계획도 실효를 거둘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