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 이제 불혹을 넘었다. 더불어 내가 지방의 작은 마을에서 생활한 지도 또한 그만큼의 연륜이 쌓였다. 지지리도 못나서, 남들처럼 도시로의 탈출은 꿈도 못 꾼 채, 그렇게 세월을 흘려 보낸 것이다. 그저 작은 마을에 엉겨서 뒤웅박도 못된 못난 중생으로 살아온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내 삶의 편린에 아무 불만이 없다. 화려한 조명 아래, 화려한 의상을 입고 활보할 수는 없지만, 거무튀튀한 몰골로 누더기처럼 엎디어 사는 현재의 삶에 불만이 없다는 이야기다. 도시로 떠난 이들의 꿈결 같은 이야기에 솔깃했던 적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으나, 그저 잠시 뿐 다음 날에는 다 잊고 이곳의 생활에 충실했던 것이다.
이 마을 사람들의 주업은 어업이다. 조석간만의 차로 형성되는 갯벌에 나가 행하는 어업이다. 마을 사람들이 갯것으로 통칭하는, 자잘한 어패류 등속을 잡는 그런 류의 하찮은 어업이다.
밀물에서 썰물 사이, 불과 세 시간 정도에 행해지는 작업이지만, 그 작업은 펄과 함께 이루어졌다. 썰물로 드러난 그 광활한 갯벌에 나가 바지락, 굴, 게 등 갯것을 잡아 생계를 꾸려 가는 것이다. 그 갯것 중 게를 이용한 것이 가장 맛있는 음식이다. 똘젱이, 능젱이, 황발이, 사시랭이, 박하지, 꽃게 등으로 불려지는 각양의 게들이 다양한 음식을 만들어 낸다. 그중 사시랭이, 박하지, 꽃게 등을 간장에 박아 먹는 게장은 일품이다.
내가 이 마을을 떠나지 못한 이유는 바로 그 게장으로 인해서이다. 무슨 거창한 인연의 끈으로 인하여, 또는 친불친(親不親)의 인과에 의하여서가 아닌, 그놈의 게장 때문이다. 막 잡아 펄펄펄 뛰는 게를 항아리 속 간장에 숙성시켜 먹는 게장, 바로 그것 때문이다.
그렇다하여 내가 무슨 귀족풍의 미식가인가. 아니다. 철철이 계절 음식을 찾아 전국을 유람한다는 그런 식도락가가 아니라는 말이다. 단지, 게 하나만을 좋아하여 지지고, 볶고, 삶고 하다하다 보니 그중 나은 것이 게장이란 것을 맛보아 알게 되었고, 하여 그것만을 고집하게 된 것이다. 그 게장 한 접시면 고봉밥 한 그릇도 뚝딱 해치울 수 있으니. 그렇게 먹는 밥을 사람들은 게장 백반이라 하던가. 바로 그 게장 백반, 그것이 나를 이 마을의 일원으로 만든 것이다.
나는 우리의 전통 음식인 장(醬)의 종류가 얼마나 많으며, 어떤 재료가 쓰이는지 잘 알지 못한다. 단지 내가 즐겨 먹는 간장, 된장, 고추장 등 실제 섭취해본 것 밖에는 알 수가 없다.
그중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것, 그리하여 불혹이 넘은 지금까지 이 마을을 떠나지 못하게 하는 것은 게장이다. 그저 손으로 쭉 찢어 아무렇게나 잘려진 모양새와 간장에 버무려져서 심심하게 발효된 게장을 보면 입안 가득 군침이 돌 정도이니 두말하면 무엇하겠는가. 특히, 노랗게 익은 게의 속살은 그 어떤 맛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라 할 수 있다.
가객 김천택의 시조집 청구영언에 수록되어 있는 작품이다. 게 장수와의 대화 및 상거래를 보여 주고 있는 이 작품은 솔직한 서민적 감정이 드러나 있는 대표작이다. ‘게젓’이라는 쉬운 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외골내육’ 등 어려운 한자를 섞어 쓰는 데 대한 빈정거림도 오히려 웃음을 자아낸다.
굳이 사설시조의 형태를 취했는데, 작중 화자의 게에 대한 묘사가 너무나 멋지다. 게의 모습을, ‘밖은 뼈, 안은 고기, 두 눈은 하늘로 향해있고, 앞으로 가고 뒤로 가고, 작은 다리 여덟 개, 큰 발 두 개’라 묘사하였다. 이 얼마나 멋진 표현인가. 설설 기는 게의 모습이 보이는 듯하다.
또한 게장에 대하여도 ‘푸른 장맛이 아스슥하는’이라 표현하였다. 진하지 않은 간장인 청장에 간을 맞춘 게장을 ‘아스슥’ 씹어 먹는 장면은 또 얼마나 맛깔스러운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군침이 돌게 한다.
그 아름다운 게장을 담그는 데는 반드시 간장이 필요하다.
간장은 소금물에 메주를 담가 만든다. 장독에 메주를 띄운 뒤 약 달포 가량이 지나면 짠맛이 나는 흑갈색의 액체가 생긴다. 그 액체를 달여 음식의 간을 맞추게 되는데, 바로 그것이 우리 전통의 간장이다. 이름하여 조선 간장이라 불리는 우리 고유의 조미료이다. 간을 맞추고, 정을 넣어 일궈낸 참된 우리의 맛이다.
그렇게 빚어진 간장을 항아리에 채우고 사시랭이, 박하지, 꽃게 등을 박아 놓는다. 이때 소용되는 간장은 반드시 달여 써야 한다. 약 일주일쯤 그렇게 박아 놓은 뒤 간장을 다시 달여 또 붓는다. 그렇게 하기를 서너 차례, 이후 게를 꺼내 먹으면 그만 게장이 되는 것이다.
그 맛이란 너무나 정갈하고 고결하다. 한 송이 국화와 같다 할까. 어떤 가식이 없는 향기까지 동반한다. 하여 그 맛에 빠진 사람들은 언제까지나 그것을 동경하여 마지않는다. 먼 곳 먼 길을 다녀온 뒤의 나른함과도 같은 정말이지 깔끔한 맛이다.
윤오영 선생의 깍두기처럼, 게장은 규범 없이 만들어 먹는 것이 제격이다. 그 껍질을 곱게 채로 치거나, 보기 좋게 썰거나, 다리까지 썰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렇게 예쁘게 썰지도, 고춧가루로 시뻘겋게 버무리지도 않아야 그만이다. 그 점에서 게장은 무법이요 격식 없는 격식의 대담한 파격이라 할 수 있다.
이 말은 결국, 평범을 가장한 기존의 가치관을 평범한 음식으로 깨트렸다고 할 수 있다. 가장 평범하게 찢은 게장이 가장 맛이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신선로(神仙爐), 탕평채(蕩平菜)의 귀한 음식을 제치고 내 가슴의 반상 오첩에 올라 중앙에 놓이게 되는 이유는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오늘, 쓸쓸한 계절의 끝에 내가 있다. 모든 식솔을 버리고 홀로 남은 저 나목(裸木)의 가지 끝에 늦가을이 있다. 곧 눈이 내릴 것이다. 그 숫눈발을 맞으며, 나는 또 그 아름다운 게장을 기다린다. 한 그릇의 밥과 함께.
# 당선소감
내가 이 지방에 기거한지도 어언 이십 년이 다 되어 간다. 그동안 작으나마 내 집도 마련하게 되었고, 연이, 원이 두 아이놈에 지윤숙 여사, 그 아름다운 이름의 집사람까지 거느린 가장이 되었다. 이 땅의 가난한 소시민으로 가장이란 직함을 유지하기가 좀체 수월하지 않음을 느끼면서도 그나마 토끼 같다는 올망한 자식놈들 덕에 살아온 것이다.
물려받은 재산이 없었던지라 단칸 셋방마저도 대출금으로 충당하였던 서글픈 시절도 있었고, 독에 쌀이 떨어져 일주일간이나 라면으로 살았던 때도 있었다. 그러다 혹여 내 월급을 받게 되는 날이면, 나는 만사 제치고 일찍 귀가하였다. 이름하여 감자탕, 그 얼큰하고도 구수한 냄새가 셋방 가득 넘쳐나는 날이기 때문이었다. 정녕 그 냄새란, 맛이란 잊을 수도 잊혀져서도 안될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었으니.
코끝을 후비고 혀에 침이 고이게 하는 그 독특한 냄새, 그 맛. 나는 그 하나만을 위하여 지금껏 살아오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감자탕을 좋아한다.
이제 내 향기로운 감자탕을 꺼낼 때가 된 모양이다. 이 땅에서 가장 튼튼한, 경남신문의 식탁에 수필이란 수저를 놓고 먹게 된 것이다. 알맞게 간맞추고, 소중히 끓여서, 늘 먹음직한 탕이 되도록 노력할 것이다.
언제나 마음을 써 주시는 부모님과 우리 태안여고 학생 및 모든 선생님께 이 영광을 돌린다. 또한 경남신문사와 부족한 글 뽑아주신 심사위원님께 큰절을 올린다. (충남 태안군 태안읍 남문리 416번지)
# 심사평
수필 응모작품 대부분이 신변잡사를 소재로 한 것들이었다. 신변잡사를 소재로 할 지라도 개인적인 기록 차원에 머물고 말면, 신변잡기가 되고 만다. 그러나 개인적 체험이 인생의 발견과 의미부여를 통해 모든 사람의 체험으로 확대돼 공감을 획득할 경우에만 수필로서의 진가를 나타낸다.
`신춘문예`는 우선 참신한 소재와 수필에서 인생의 경지와 인격의 향기를 보고, 가능성 있는 신인을 발굴하려는 의도로 시행된다. 그러므로 주제의 통일성, 소재의 참신성, 구성의 효율성, 정확한 문장의 구사 등을 토대로 가능성을 감안하여 심사에 임하였다.
최종심에 오른 작품은 `게장 백반`과 `걸레`였다.
`게장 백반`은 미각 이미지를 절묘하게 형상화시킨 작품으로 전통 음식인 `게장`을 맛깔스럽게 우려냈을 뿐 아니라, 게장 담그듯이 문장도 숙성시켜 깔끔하게 다듬는 솜씨가 있었다. 감각적인 문체, 간결하면서도 정확한 문장이 가능성을 예감케 하여 당선작으로 선정하였다.
당선작과 함께 토론의 대상이 된 `걸레`도 보기드문 작품이었다.
`걸레`에 대한 새 관점과 걸레를 통해 보여준 맑고 깨끗한 삶과 마음은 인생의 결지를 말해주고 있다. 아까운 작품이었지만, 1편만을 선정하기에 選外가 된것이다.
`게장 백반` 당선자에게 축하를 보내며 앞으로의 정진을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