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올가미에서 주님 은총으로 -김대중 자서전 황영준
김대중 전 대통령은 죽음의 고비를 몇 차례 겼었던 분이다. 그의 자서전은 정치인으로서의 삶만 아니라 한편으로는 신앙 인물(천주교)로서의 진솔한 간증을 담고 있다.
1973년 8월 8일 일본그랜드호텔에서 납치된 사건. 몸이 묶이고 무거운 것이 채워진 채로 바다에 수장될 절체절명의 순간, 그에게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올무에서 풀려나는 이야기. 자서전을 읽는 동안 분노하고 긴장하면서도 ‘아멘!’하고 혼자 소리쳤다. 동교동 집에서 다시 만난 가족, 그 앞에서 하는 말이 놀라운 감동이다. “하느님께서 살아 계심을 체험했다. 주님의 은총으로 살았다. 우리 모두 기도하자.” 모두 무릎을 꿇고 감사기도를 드렸다. p.318
그 감동적인 이야기를 본인의 자서전에서 한 번 읽어보자. (중간 중간 원문 그래도 발췌했다.) ----------------------------------------
1973년 8월 8일, 오후 1시 15분께 호텔 방을 나섰다. 그때 어디선가 건장한 사내 대여섯 명이 뛰쳐나왔고 그들 중 두 명이 갑자가 내 멱살을 잡았다. 나는 옆방으로 끌려 들어갔다. 나를 침대 위에 팽개치더니 손수건을 코에 대고 눌렀다. 순간 마취제일 것이라는 생각이 뇌를 스쳤다. -제1권.p.310
사내들은 나를 묶고 있던 끈을 풀고 옷을 벗겼다. 입에 물린 헝겊도 빼냈다. 시계와 양복 주머니를 뒤져 현금과 신분증, 명함 같은 것을 뺏어갔다. 허름한 옷으로 갈아입히고 신발도 운동화로 바꿔 신겼다. 다시 끈으로 몸을 묶었다. 화물 포장용 강력 테이프로 얼굴만 남기고 몸 전체를 둘둘 감았다. 모터보트에 태워졌다. 내 머리에 보자기 같은 것을 씌웠다. 갑자가 깜깜해졌다. 죽음이 가까이 온 것 같았다. 묶인 손가락으로 성호를 그었다. 죽음을 각오했다. 사내 하나가 내 배를 걷어차며 옥설을 내뱉었다. “이 새끼가.” 바다 위를 한 시간쯤이나 달린 것 같았다.
이번에는 커다란 배로 옮겨졌다. 누군가 시간을 묻자 12시50분이라고 대답하는 것을 들었다. -제1권.p.311 갑판 밑 선실로 끌려갔다. 이번에는 더 꼼꼼하게 묶기 시작했다. 두 손을 가슴에 모으게 하고 묶었다. 두 발도 묶었다. 칠성판 같은 판자 위에 눕히더니 몸의 위, 아래, 가운데로 나눠 송장처럼 세 군데를 묶었다. 입에는 나뭇조각을 물게 하고 붕대를 둘렀다. 흡사 시체에 염을 하는 듯했다. 두 손목에는 30~40 킬로그램 무게의 돌인지 쇳덩인지를 달았다. 대여섯 명이 나를 밧줄로 촘촘히 묶었다.
나는 크리스천이다. 매일 기도를 올렸고, 납치되어 이동 중에도 하느님을 찾았다. 그런데 마지막 순간에는 기도할 생각이 나지 않았다. 기도할 생각보다는 바닷속에서 맞이할 최후의 모습이 어른거렸다. 아니다. 살고 싶다. 살아야 한다. 아직, 할 일이 너무 많다. 상어에게 하반신을 뜯어 먹혀도 상반신 만으로라도 살고 싶다.‘ 눈앞이 깜깜했다. -제1권.p.310 그 때 바로 그 때 예수님이 나타나셨다. 나는 기도드릴 엄두도 못 내고 죽음 앞에 떨고 있는데 예수님이 바로 앞에 서 계셨다. 아, 예수님! 성당에서 봤던 모습 그대로였고, 표정도 그대로였다. 옷도 똑같았다. 나는 예수님의 옷소매를 붙들었다. “살려 주십시오. 아직 제게는 할 일이 남아 있습니다. 우리 국민들을 위해 해야 할 일들이 있습니다. 저를 구해 주십시오.” 나는 세례를 받은 후 처음으로 예수님께 살려 달라, 구해 달라고 매달렸다.
그러자 순간 눈에 붉은 빛이 번쩍 스쳐 지나갔다. 갑자기 엔진 소리가 폭음처럼 요란하더니 배가 미친 듯이 요동치며 내달렸다. 선실에 있던 사내들이 “비행기다” 라고 외치며 갑판으로 뒤쳐나갔다. 폭음 같은 것이 들리고 배가 전속력으로 달렸다. 무슨 일이 긴박하게 벌어지고 있었다... 사위가 조용해졌다.
“김대중 선생님 아니십니꺼?” “선생님은 이제 살았습니다.” 입에 감긴 붕대를 풀더니 담배를 불에 붙여 물려주었다. 그리고 손발을 풀어주었다. ----- 배는 9일과 10일 이틀 동안 바다에 떠 있었다. 한 고비를 넘긴 듯했지만 여전히 내 앞길은 알 수가 없었다. 내 운명은 바다 위에 떠 있었다. 언제 죽음이 파도처럼 덮쳐 올지 몰랐다. 11일 새벽쯤이었을 것이다. 주위가 소란스러웠다. 한국말이 들렸다. 배가 한국의 어느 항구에 정박한 것처럼 보였다. 의사가 선실로 찾아와 나를 진찰했다. 손발에 난 상처도 치료해 주었다.
납치 엿새째인 8월 13일. “김대중 선생, 얘기 좀 합시다.” “왜 선생은 해외에서 국가에 반대하는 투쟁을 벌이는 겁니까?” “그런 게 아니오. 내가 박정희 정권을 반대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자유민주주의와 반공 체제를 부인하거나 반대한 일은 없소. 나는 대한민국에 대해 한 번도 반대한 적이 없소, 내가 반대하는 것은 독재정권이지 국가가 아니오.” 그들은 나를 차에 태우고 달렸다. 그들은 자신들이 ‘구국동맹행동대’라 말했다.
이윽고 차가 멎었다. 그들은 나를 차에서 내리게 했다. 주유소 간판이 낯익었다. 나는 동교동 우리 집 근처 골목에 서 있었다. 달빛이 밝았다. 보름달이 둥실 떠 있었다. 나는 살아서 돌아왔다. 맞다. 한국전쟁 때도 그랬다. 공산당의 무차별 학살로 끌려가면서 죽어야 했던 그 고비를 넘기고 교도소를 빠져나왔을 때도 이처럼 달이 밝았다. 달빛은 이리 험한 내 운명을 비추는 걸까. 세 번째 죽음의 올가미에서 빠져나왔다.
밤은 깊었다. 대문 앞에 서서 문패를 올려다봤다. ‘김대중 이희호’ 문패가 물끄러미 나를 내려다보았다. 골목 안은 조용했다. 집안에서 불빛이 새어나왔다. 대한민국, 한여름 밤, 나는 초인종을 눌렀다. 막 퇴근한 가장처럼. -제1권.p.316, 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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