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공천입니다.
이번에 토론할 내용은 유표에 관련된 내용입니다. 이번이라는 말 붙이기도 뭣하지만...;
연의안에서 유표라는 남자의 이야기는 그리 많이 나오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와 상반되게 천하를 움켜질수 있는 강력한 군웅들 중에 한명이였죠. 제가 제목을 유표를 '관망자'라 칭한 것은 강력한 세력에 반해 그가 대외적으로, 야망을 위해 한일이 형남 사군 점령, 이것 하나 밖이기 때문입니다. 삼국지 혼란기에 관망자가 한둘은 아니였겠지만 이 처럼 강한 세력을 유지하면서 그 세력을 불리려고 노력도 하지 않던 군웅은 거의 없었습니다. 있다면 유장쯤이 겠죠.
1. 유표 세력의 성장
유표는 뭐 대부분 군웅들이 그러하듯 대장군 하진 수하의 장수였습니다. 그러다가 형주자사 왕예의 후임으로 형북에 가게 됩니다.
세력을 가지는 것 조차도 수동적으로 이루어지다니! 여튼 유표는 어지럽던 형북을 완벽히 제압해 놓습니다. 형북의 호족이였던 채모등을 포섭하면서 말이죠. 도적들도 다 쳐내고.... 형북에서 세력을 불려가는 걸 보면 그의 재능이 부족해서 천하가 바쁘게 돌아가는데도 그걸 관망만 하고 있진 않았던 것 같습니다. 천성이 전쟁을 그리 좋아하는 편은 아니였나보군요. 후에 동탁이 낙양에 들어와 난리치는것에 제후들이 일어난 반동탁연합에도 참여합니다만 직접 낙양까지 올라가진 않았던 것 같습니다. 아니면 활약을 전혀안했던가...
상황이 어찌돌아가든 유표는 형주라는 주에서 무럭 무럭자랍니다. 형주가 워낙 좋은 땅이니까...
2. 유표, 전성기의 시작
연의를 읽으면서 유표한테 전성기라는게 있었나... 싶었습니다. 아니 적어도 조조가 원소를 다 잡아먹기 전까지만 했어도 어느정도 전성기가 지속되었을거라 생각합니다. 세력이 강해도 워낙 한게 없으니 좀 애매하군요. 유표가 전성기를 맞이하게 된 결정적 사건은 바로 '손견의 양양침공' 일듯 합니다. 사건의 전말은 아시다시피 원술이 유표에게 곡식좀 꿔달라고 하지만 유표는 매몰차게 거절합니다. 당연한거죠. 원술을 어떻게 믿고.... 여튼 원술은 이 일로 유표와 사이가 틀어집니다. 유표를 공격하고는 싶은데 세력이 그 만큼 안되니 손견에게 유표 좀 공격해 달라고 합니다. 겉으로는 상관의 명령이지만 손견은 야망이 있는 사내! 강동과 형남에 걸친 그의 거대한 세력권은 당시 손견이 얼마나 강력했는지 알수 있습니다. 원술의 명령을 핑계로 유표가 있는 형북을 공격합니다. 번성에서 황조를 깨뜨리면서 손견이 유표의 세력을 잡아먹나 싶을때! 아시다시피 손견이 돌과 화살을 맞고 죽어버립니다. 이때를 놓치지 않고 유표는 대반격을 시작해서 손견의 세력은 순식간에 와해되고 유표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순식간에 형주에서 유일무이한 세력이 되어버리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연출됩니다..전성기를 맞이한 유표. 이제 승승장구만 남은걸까요?
3. 라이벌이 죽고 세력 불리기만 남은 유표, 하지만..
손견이 허무하게 죽고 형주, 양주에서 그와 겨룰 상대는 찾아 볼수가 없었습니다. 더 넓게 가서 중원의 조조 조차도 그 당시 유표 세력에 비해 매우 약한 세력 밖에 형성하지 못했죠. 이제 남방에서 유표의 세력이 넓혀가는 것만이 남은 걸까요? ... 아쉽게도 유표는 그 자리에서 그대로 멈춰버립니다. 손견과의 전투 이후로는 미미한 전투하나 치루지 않습니다. 급박하게 움직이는 난세에서 아무런 움직임도 없이 제자리에 멈춰 있다는 것은 곧 세력의 퇴보를 말하는 것입니다.
퇴보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다른 세력들이 앞서 나가겠지요. 그 이유는 그 누구도 자세히 알수는 없죠. 아마 그의 성격이 전쟁을 싫어하고 상황을 파악하는 능력이 조금 뒤떨어졌나 봅니다. 만약 그의 세력이 이 만큼 강하지도 않았다면 이미 훨씬 전에 멸망당했겠지요. 치세에서 그가 군주였다면 모르겠으나 그 시대는 난세, 난세에서 그와같은 성격은 독입니다. 결국 시대에 따라가지 못하고 멈춰만 있다가 조조가 공격해옵니다. 타이밍 쩔게 유표는 노환으로 죽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유표만큼 편안하게 산 사람이 그 시대에 어디 있을 까 싶습니다. 공격할 구상, 방어할 구상도 거의 하나도 안하고 잘 지내다가 죽었잖습니까? 선대에서 시대에 구합하여 살지 못한 죗값이라면 죗값을 후대에 유종이 받게됩니다.
4. '만약' 유표가 시대착오 적인 사고를 바꾸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사실 제 토론 글에서 4번이 가장 핵심적인 내용입니다. 다른 문항의 내용은 아마 이 글을 읽고 계신 회원분들도 다 알고 계시겠지요. 유표는 다양한 면에서 삼국지 장수 중 유일한 행운아입니다. 강성한 세력에 평생을 편안하게 지내고(보통 편안히 지낸게 아닐듯.)... 사실 이건 야망에 찬 군웅에겐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은 방향으로 행운이지요. 그럼 무엇이냐! 바로 그가 세력을 확장할 수 있었던 결정적 시기가 여러번 찾아왔었다는 것입니다. 이 점이 형주의 거대한 세력을 운영한 군주가 '유표'라는 것이, 그의 성격이 매우 안타깝게 만들죠.
역사 흐름순으로 한번 설명해보겠습니다. 유표가 손견을 깨뜨리고 손견의 세력이 와해되었을때, 그때 형남과 양주(강동)은 빈땅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엄백호나 왕랑, 유요같은 녀석들이 있다고 해도 당시 유표의 입장에서는 아무것도 아니였죠. 손견을 깨뜨리고 나서, 군을 정비하여 강동을 공략하려 했다면 그리 어려울 것도 없었습니다. 강동와 형주, 두 곳을 기반으로 세력을 키워나가며 중원을 공략하려 했다면 충분히 가능 했었습니다. 조조가 있었다하나 유표 세력에 비하면 아직 약한 세력! 중원을 깨뜨리고 원소와의 한판 대결도 한번 기대해 볼만 했을 겁니다.
앞이 첫번째이고 둘째로는 손견을 깨뜨린 후에 군을 더욱 보충한다음 곧바로 조조를 노렸으면 어떨까 싶습니다. 손견이 192년도에 양양에서 사망하였으니 194년, 조조와 여포가 연주를 두고 건곤일척의 승부를 벌일때, 그때에 유표가 연주를 공격하여 조조와 여포를 둘다 잡았으면 어땠을까요? 중원의 판도가 완전히 달라졌겠죠. 그렇게 되었다면 중원에서 세력을 다지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을 거라고 봅니다.
세번째, 유장을 공략한다...? 처음에는 가능 할것 같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이건 조금 어려울 것 같군요. 유비 입촉 때 처럼 내부 동조자가 있는 것도 아니고 ... 유장 공략을 제외하고 세번째, 조조와 원소가 관도대전이 발발 했을때 조조의 후방을 공략한다. 혹은 조조가 원소의 남은 세력과 오환을 정벌하러 갔을 때 공격한다. 이정도가 되겠네요.
따로 설명해볼 수도 있는데 그냥 같이 설명하겠습니다. 조조와 원소가 관도대전에서 맞붙었을때 후방을 노리는 것, 먼저 손책이 시도하려했었지만 손책의 급사로 실패로 돌아갑니다. 시행하기도 전에 죽은거죠. 당시 손책 세력의 전력은 유표보다 조금 뒤떨어 졌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유표가 공격을 했었으면 손책보다야 가능성이 보였겠지요. 또 조조가 오환을 처리할때 공격하자는 것은 유비가 제안했던 것입니다. 유표는 거절하죠... 그의 성격이 드러나는 대목입니다.... 이때 공격을 감행했어도 충분히 이길수 있었을 텐데 말입니다.
저는 유표의 세력이 강대함에 미치지 못했던 유표 그 자체의 상황 판단능력과 시대에 뒤떨어진 사고 방식이 무척 아쉽습니다.
제가 삼국지 관련 책을 읽을 때마다 왠지 모르게 정감가는(?) 인물이기도 하고요 ㅋㅋ 저는 유표가 조금 야심찬 자라면 어땠을까 생각해보고 이 토론글을 적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들의 생각이 궁금하네요!!
아니 글이 별로 긴것 같지도 않은데 뭐이리 시간이 많이 걸렸지...................... 흨흨
첫댓글 유장은 관망자로 보기에는 살짝 애매하죠. 익주 유씨들같은 경우는 선대인 유언이 기존 익주 호족들에 대한 강경, 숙청 정책을 펼침으로서 내부적으로 문제를 야기시켰고, 실제로 방희 등을 이용한 장로 토벌을 시도 했으나 변변히 막혔으며 익주 내부에서 외부와 연결하는 이들이 나올 정도로 상황이 좋지 못했지요. 더군다나 이러한 상황이 지속되는 가운대 방희와 유장의 사이가 나빠집니다. 참고로 당시 방희는 유장의 명에 따라 장로를 견제하던 인물. 대충 생각해도 엄청난 군권,실권을 지닌 인물이였다 라는 추리가 나옵니다. 즉 자기 앞가림 하기 바빴으니 천하는 개풀이란거죠.
중간에 언급하신 유표 거대 세력은 레알 인정. 사실상 원소가 평정 되기 이전에는 원소 - 조조 - 유표 3강 체제였고, 좀 더 깊이 들어가면 원소 - 유표 2강 체제였다 라고 봐야죠. 그리고 그가 여러번의 기회를 놓친 것도 인정하긴 하는데, 이 잣대가 약간 멀리 가신 느낌입니다. 손견 사후의 형,양주 평정같은 부분을 놓친 것은 유표의 능력 부재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 할 수 있으나, 그외에 언급하신 조-여 의 연주전 당시의 후방 급습이나, 관도전 후방 급습은 취지와 성공률 자체는 좋지만 후에 문제를 보일 수 있다 라는 부분이 중요하겠지요.
유장이야 원래 제 문제 해결하기 바쁜 놈이다 보니까 크게 신경쓸 필요는 없다 쳐도 조-여의 후방을 급습하여 연주를 평정할 경우 당시 기존의 유표가 가지고 있었던 전선은 비정상적으로 거대화 됩니다. 형주라는 축복 받은 땅이 있다 해도 전선이 갑작스럽게 커지는 것은 상당히 난감하지요. 또한 자칫 이것에 대해 또 다른 세력인 원소의 반발역시 무시하긴 힘들구요. [ 사실, 조조가 거대 세력을 형성(개인적으로 헌제영입전)까진 원소의 라인을 타고 있었다 라고 봅니다.]
이후에 조-원의 관도전 당시에 후방급습역시 성공률 따위는 매우 준수하나 그 후의 문제점이 있습니다. 중원의 평정할 경우 당장 유표가 처리해야할 문제는 라이벌 공손찬을 무너뜨리고 이미 중원 진출을 노리고 있던 원소와의 자웅, 또한 손책 혹은 손권이 지휘하고 있는 손오지요. 손책 사후로 혼란하다 하나 그 문제는 알다싶이 주유 - 장소를 축으로 빠르게 해결되는 편이고 많은 군세가 중원으로 빠질 경우 강동의 압박을 형주 내에서 버틔기에는 무리가 올 수 있지요. 또한 조조를 정벌하고 나서 곧바로 이어질 수 있는 원소와의 싸움도 거대세력인 유표라 해도 버거운것이 사실입니다.
이미 마전님께서 다 말씀해주셨습니다. 덧붙이자면 외사는 내사가 해결되지 않으면 성사시킬수 없습니다. 비록 형주나 양주를 통틀어 유표만한 세력이 없었다곤 하지만 형남을 완벽히 통치권으로 둔 것도 아니고 자잘하긴 했으나 반란도 생각보다 많았습니다. 게다가 유표 스스로도 세력 확장의 미련이 적었던 점, 그리고 유장공격은 종친끼리의 싸움이니 유표 스타일이 아니지요.
음 공천이 이렇게 글을 길게 썻다는게 믿기질 않는군 -_- // 어찌됬든 유표는 멍청한 군주라 할수있다. 유장처럼 애초에 띨빵해서 기대가 안가면 아무말도 안하지. 애가 똑똑한척하다가 중요할때는 꼭 개뻘짓을 해대니. 그야 말로 난세에 제일 어울리지않는 군주상이다. 만약 유표가 조조가 노래부르면서 산넘어 공손씨 치러갈때 뒤치기를 했다면 , 삼국지의 내용자체가 달라젔을수도있을거같다.
애초에 유표가 뒤치기를 할 그런 마음을 먹을 정도로 사람이 틀렸었더라면.. 진즉에 이빨을 들어내고 땅따먹기에 맛을 들였겠죠. 손견 등과의 충돌도 상당히 많았을 거구요. 대신에 형주가 땅도 좋은 만큼 적도 많았으니까.. 아무튼 좀 눙물나네요 유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