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상인 되기
프롤로그. 정상인이란
정상인이란 무엇일까?
사전적인 의미로 정상인이란 상태가 특별한 변동이 없이 제대로인 사람인데 과연 우리가 그 기준에 부합할까?
텔레비전 화면에 나오는 연예인들의 모습.
그들은 많은 사람들의 우상과도 가깝다.
아름답고 완벽에 가까워 보이는 그들이지만 종종 충격적이게도 우울증 공황장애에 시달린다고 하며 안 좋게는 자살까지 하는 경우를 보면 그들도 완벽해 보였을 지 몰라도 자신 안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완벽하지 못했던 것이다.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이던 사람, 부족한 것이 없을 것 같던, 도덕적으로 행동할 것 같던 그런 자도 모두 범죄를 일으키는 현상들을 보고 있으면 정상이란 무엇일까?
나사 빠진 로봇이 탈 없이 작동하는데 그것을 정상이라 볼 수 있는 것인가 표면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해서 과연 괜찮은 것인가?
나는 우리 모두가 흠집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흠집을 메우려고 노력하고, 다시 흠집이 나지 않게 조심하며, 흠집으로 인한 약점을 보이지 않기 위해 힘쓴다. 얼마 전에 읽은 ‘오즈의마법사’ 책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었는데 도르시가 집을 원동력으로 삼았지만 태풍으로 날아가버려 결핍이 생긴 걸 메우기 위해 떠나는 것, 허수아비, 양철 나무꾼, 사자 역시 자신들의 결핍을 채우기 위해 각각 두뇌 마음, 용기를 찾아 여행을 떠나는 책의 주인공들처럼 결국 우리의 삶은 그 무한한 삶을 매 순간 의미를 찾으며 ‘나’라는 캐릭터의 완성을 위해 사는 것 같다. 그렇기에 우린 모두 완벽하지 않은 비정상이다.
‘나는 비정상이였다’
나는 일정하지 못한 규칙적인 일과가 거의 없던 삶을 살았다.
예전에 학교를 자주 빠지곤 했었는데 굳이 안가도 왜 문제가 되는지 몰랐고 꼭 가야 하는 건가 싶었다.
그렇게 자주 학교를 빠지거나 조퇴를 했다.
공부에 정말 흥미가 없어 수업을 거의 듣지 않았는데, 생각해보면 갈 원동력이 없었던 것 같다.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게임 하는데 할애했다.
게임에서는 뭔가를 달성하는 그 성취감과 현실에서 하지 못했던 것들을 쉽게 할 수 있어서 초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해 왔다.
내가 하지 못하는 것을 하게 해주던 게임이 어느 샌가 하는 유일한 일이 되어버린 것이다.
학교에 굳이 가야 할 이유를 못 찾은 것도 당시 나의 생각이 그저 순간을 즐기며 살아가는 것이 최고라 생각했기 때문인데, 욜로(YOU ONLY LIVE ONCE)같은 생각을 가지고 생활하던 나는, 지금에 내가 보기에 별로 옳지 못한 것 같다.
나의 행복이 최우선 된다는 생각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느꼈기 때문이다.
대중적으로 유행하는 생각을 보고 공감했고 그게 나에게 맞는 말이라 생각했다.
날이 갈수록 내가 믿는 데로 행복을 위해 계속 게임을 하게 되었고 그걸 즐기며 당장의 시간 동안은 행복했었다.
처음 써니쌤께서 나에게 어떤 게임을 주로 하니 라고 물으셨을 때 어떤 대답을 드려야 할지 몰라 당황스러웠다.
내가 주로 하는 게임이 무엇이냐 라고 물어본다면 답하기가 매우 어렵다.
남들과 다르게 여러 가지에 관심이 많아 외국 게임이든 작은 회사든 큰 회사에서 만들었던 간에 내 흥미에 끌리면 수백 시간을 그것에 쏟았고, 몇 천시간을 넘게 한 게임도 있었기 때문이다. 최근에 많이 했던 게임들을 줄줄이 말했고 그 말을 듣고 써니 쌤은 다시 무언가에 몰두하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셨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나조차도 나를 잘 모르는데.
보통 사람들이 내가 게임을 했다고 하면 그들이 알고 있는 게임 혹은 게임의 악영향에 대해 말한다.
하지만 나는 그런 말들을 듣고 있으면 그들이 해보지도 않은 것을 마치 그것이 전부인 것처럼 말하는 사람이 얼마나 웃음이 나오고 정보가 없는지 깨닫게 된다.
여담으로 대장님, 써니 쌤과 상담을 할 때 대장님이 하신 한마디 “게네들이 경험해봤대? 근데 그걸 어떻게 알아 결국에 해봐야 아는 것이다” 이 말에 나는 깊이 공감되어 그 날 상담을 한 후 하반하에 오겠다는 생각을 굳히게 되었다.
게임은 나를 비정상에 도달하게 하는데 큰 영향을 주었다.
그 게임을 함으로써 생긴 나의 가치관, 원동력, 호기심 등은 무시하지 못 할 만큼의 큰 영향을 준 것 같고 행복과 악영향 좋은 영향을 동시에 주는 그런 존재였다.
중학교 3학년이 된 나는 학교에서의 활동에도 별로 관심이 없고 내가 좋아하고 즐기는 게임을 할 시간이 줄어드는 것 같아 자주 결석과 조퇴를 했다. 나중에 학기 말에 보게 된 나의 출석일수 중 1달 이상이 조퇴 그리고 결석으로 가득 찬 것을 보고 부끄러워 다시 열심히 살아야계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그런 결심은 1주만에 무너져 내렸다 왜냐하면 하루하루가 지나면서 열심히 사는 것보다 즐기며 살아가야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 그랬다.
‘탈주닌자” 그것이 바로 내 친구들이 붙여준 나의 별명이었다.
거의 매 주에 한번 학교에서 안 보였기 때문이다.
아슬아슬하게 중학교를 졸업했지만 학교를 빠져가며 노는 결과가 그대로 나에게 돌아왔는데 출석만 잘해도 기본은 나오는 내신점수는 바닥을 쳤고 그렇게 가려던 학교가 아닌 아주 먼 40분 거리의 학교에 가게 되었다.
원래도 가기 싫었지만 시간이 아까웠던 학교에 가는 것은 더 싫어지게 됐다.
내가 그래도 진학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고등학교에서 노력하여 b또는c등급 안에만 들어도 좋은 대학에 진입이 가능하고 다시 시작해보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들 나와 달리 준비되어 있고 공부하는 수업시간에 나만 뒤쳐져 있는 것을 경험하게 되며 의욕에 가득 차있던 나의 마은은 점점 거품이 꺼져갔다.
이제부터 열심히 노력하여 비정상인을 향해가던 나의 삶을 바꾸어 내 꿈을 향해 나아가자’ 는 내 결심이 사라졌다 자퇴를 결정했을 때 선생님들도 나에게 차라리 3년을 다닌 후 졸업을 하는 게 낫지 않겠냐고 하셨지만 난 여태 그런 식으로 졸업한 중학교를 생각하며 자퇴를 결정했다.
그 길로 학교를 자퇴하고 비교적 규칙적인 생활이 사라지면서 점점 비정상과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내 자신을 제어하는 것은 오직 나뿐인데 내가 하고 싶은 걸 계속 하며 생활리듬이 망가져갔다.
점점 더 비정상이 되어갔고 그렇게 1달이 지난 후 나는 비정상인이 되어 있었다.
하반하에 오기까지 전 나는 하반하 라는 곳이 어떤 곳인지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살았다.
‘하반하’ 하면 떠오르는 게 외국의 지역밖에 없었고 그 정도로 난 하반하와 연관돼있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하반하를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어머니의 제안이었는데 비정상의 삶, 늘 밤시간에 안자고 게임 하거나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니던 나에게 “한번, 해외해외여행학교를 다녀보는 것이 어떻겠니?” 라고 질문하셨다.
내가 여태껏 알던 여행은 늘 기쁨과 행복 같은 것만 가득했고 여행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가볍게 승낙했다.
내가 알던 해외여행은 공부와는 거리가 먼 좋은 숙소에서 그곳의 관광명소를 방문하는 그런 여행이었기 때문이다.
하반하에 대해 조사를 가볍게 해본 나는 모두가 웃고 있는 사진들 공부와는 아예 관계가 없어 보이는 영상들이 많은 유튜브와 유익했던 경험들이 써져 있는 카페를 보고 아예 착각했다.
여행 준비물도 노트10개가 끝이라 정말 심각하게 공부와는 거리가 먼 곳이라고 생각했다.
오겠다고 했지만 그 후로 생활에 큰 변화가 없었다.
여전히 밤에 생활했고 그나마 나아진 것이라면 새벽에 자전거를 타고 나갔던 것이다.
당시 나는 내가 정말로 세계 여행을 간다는 건지 실감나지 않았다.
오히려 내년에 갈 곳이 있다고 생각하니 더 마음 편하게 놀았다.
시간이 흘러 양주 집에 가 써니 쌤 대장님과 상담을 하게 되었다.
내가 쓴 자기소개서는 정말 빈약했고 짧았으며 정성이 없었기 때문에 써니 쌤은 나를 받지 않으려 했다고 와도 괜찮을지 의문이라고 얘기하셨다.
얘기를 계속하며 여행이 아주 힘들 것이라고 미리 경고하셨지만 나는 그 때” 세계여행이 힘들어도 얼마나 힘들겠어” 라는 생각이 들어 그래도 가고 싶다 했다.
만약 내가 가기 싫어 안 가겠다고 했으면 나는 지금 이 문집이 아니라 게임 속의 참호 속에서 전쟁을 하고 있었을 것 같고 당시의 내가 그렇게 결정해서 정말 감사하다.
여전히 나는 하반하가 어떤 곳인지에 대해 크게 착각하고 있었다.
흐르고 흘러 미뤄지던 정읍합숙이 마침내 열렸을 때 나는 두려움이 가득했다.
원래 갈 여행이 1달 이상 코로나로 인해 미뤄지고 코로나가 국제적으로 심해지면서 안 갈 거라 예상했던 하반하를 막상 가려고 생각하니 지금의 나태한 삶을 두고 아예 모르는 사람들, 모르는 곳으로 가기 싫었다.
그러나 정읍 합숙에서 한번 생활해본 후에 결정해 봐야겠다는 생각을 무작정 했다.
“내가 정말로 가는 건가”, 하반하 합숙날짜가 가까워져 1주일 밖에 남지 않았을 때의 생각이다. 여태까지 상상과 말로만 하던 원래 생활을 두고 가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내 변화를 위해 택했던 여행이었지만 코앞에 다가오니 두려워졌다.
1주간 나는 “안가고 싶다” 라는 생각과 “그래도 가서 달라지자” 이 두 가지 생각이 번갈아 가며 스쳐갔다.
또한 날짜가 다가올수록 가면 못하는 게임, 음식 등을 더 심하게 했고 잠을 줄여가며 놀았다.
그래도 다행이 출발 날짜가 되었을 때는 나는 일단 가서 경험해보자는 생각으로 정읍합숙에 참가했다.
어떤 고비와 시련들이 기다릴지 모른 채인 상태로 말이다.
시작되는 나의 검진
자퇴 당시보다 나아진 건 없는 상태로 정읍합숙에 참가하게 됐는데 정읍에 도착해 내가 상상했던 곳과는 많이 다른 분위기라 긴장돼있었다.
또래나 동생과 얼굴을 마주하고 대화하는 게 학교 자퇴 후 처음 이였다.
대화 내용도 자기소개라서 매우 어색했다.
먼저 말을 걸지 않으면 정말 아무 말도 못 하는 자신이 스스로 답답해서 처음으로 말을 건네보았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첫날 저녁 다같이 모여 자기소개를 하는데 그 때”나만 뒤떨어진 곳이 아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만 불량 고장 나있지 않고 다들 검진을 받고 다시 출발하기 위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본격적으로 생활이 시작되고 나는 늘 대부분의 일에서 3위였다, 뒤에서 3위 차임 달릴 때도 정산 팀 내에서도 산을 오를 때나 20km마라톤을 걷기를 할 때도 나는 늘 마지막에 위치해 있었다.
또 하나 늘 함께 있었던 것이 있었는데 바로 “힘들다” 라는 생각이었다.
하반하는 자유로운 시간이 많은 줄 알았지만 해야 할 일을 잘 처리하지 못한 나는 그 자유시간을 더 써 해야 할 일들 (정산, 숙제)을 해내야 했다. 처음에는 이런 하반하 생활이 새롭고 도전하고 싶은 의욕이 가득했지만 하루하루 시간이 지나며 피곤함이 누적되어 갔다.
게다가 성실히 하지 않았던 북 연습이 다시 나에게 되돌아와 내 발목을 붙잡았다.
북 연습 시간에 나 혼자 잘 못치고 어려워하며 연습하지 않은 것이 후회되었다.
이때 정산도 별로 잘하지 못했는데 2주간의 시간 동안 내 자신의 모습에 그리고 하고 싶은 것을 못하는 불만들이 쌓여 입학식에 오고 싶지가 않았다.
2주가 끝나갈 때” 오지 말자, 가고 싶지 않다” 는 생각이 가득했다.
내가 집에서 4일간 다시 생활하며 그럼에도 돌아온 이유는 바로 몸이 건강해지고 배우는 게 많았기 때문이다.
피곤하고 힘들어도 배우고 고될수록 더 많이 배우게 되는 것이 많아 입학식 날에도 “배울 수 있는 게 많으니 힘들어도 참자” 가 바로 내가 마음먹고 온 생각이었다.
하반하 라는 교정기를 통하여 입학식을 무사히 마치고 정읍에서의 짧은 기간이 아닌 10개월 이란 긴 시간을 시작하게 되니 새로운 다짐들 그리고 입학식까지 무사히 치룰 수 있었다는 안도감에 휩싸였다.
마음 한편으론 이런 산속 구석진 곳은 내가 생각한 세계여행과는 거리가 멀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너무 내 중심적인 생각 이였던 것 같다.
안가는 것이 아니라 가고 싶어도 못 가는 것인데 말이다.
하반하를 통하여 나는 많은 좌절 그리고 실패를 했다.
학기초에는 정산과 내 마음을 잘 다스리지 못했고 혼날 때마다 계속 화만 감정만 쌓여갔다.
난 결국 하반하 생활이 싫어 좌절해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서 가만히 있었다.
하반하에 와서 가장 힘들었던 시간이 바로 그 때였다.
주저앉은 이유는 온갖 생각들과 삶의 피곤함이 섞이고 쌓여서였다.
크게 혼나고 3일간 밖에서 잡초 모눈을 뽑고 돌아와 다시 원래 생활에 복귀하려고 하니 내가 던져버린 그 1주로 인해 생활이 아주 힘들어진 걸 느끼며 앞으로 하반하에서 내가 배워야 할 것이 바로 ‘할 일을 포기하지 않는 것 ‘ 이란 걸 느꼈다.
그 1주를 놓쳤을 뿐인데 쌓인 정산 빚 그리고 이미지로 후 1달간 고생하며 “포기했다가 다시 시작하느니 계속 이어가는 게 낫다” 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이때 한번 좌절을 함으로써 생활의 전환점이 되었다.
약 1달을 써서 빚이 다 사라지고 1학기에 마음을 달리 먹게 됐다.
내가 하반하에서 이렇게 크게 무너진 덕분에 쌓였던 고민들과 생각을 여행을 떠나기 전에 정리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던 것 같다.
미리 한번 좌절을 한 덕분에 나중에 좌절하지 않을 수 수 있었다.
이러면서 나는 나에게 아주 중요한 부품 안전장치인 다시 일어나는 법을 배운 것 같다.
하반하에서 4번의 큰 여행(제주도, 남해안, 자전거 국토종주, 영월농활)을 한 것이라고 난 생각이 든다.
이것이 4단계로 나뉘어 나에게 발전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제주도에서 더워도 비가 와도 계속 걸으며 강한 몸과 포기하지 않는 굳은 정신을 큰 배낭을 메고 걸으며 얻게 되었다.
원래 이렇게 오랫동안 20KM 이상 걸어본 적이 없던 사람이라 당시 20KM를 걸으며 발도 매우 아프고 피곤했지만 내 몸이 점점 좋아지는 게 느껴져서 포기하지 않았다.
이 때 나는 2가지 큰 경축할만한 업적을 달성했는데 하반하에서 처음으로 단어시험을 완벽하게 통과한 것 그리고 워커장이 된 것이었다.
전자의 단어를 모두 패스 후 처음으로 돈을 벌어보게 되는 계기까지 이어졌다.
워커장이 될 줄은 난 정말 상상도 하지 못했었고 된 것이 너무 신기했다.
살면서 한번도 리더나 장의 자리에 올라본 적이 없어서 긴장되고 내가 얼마나 오래갈까 싶었다.
워커장이 되며 지시를 내린다는 것이 내게는 가장 어려운 일들 중 하나였다.
지시를 하고 책임을 져야 한다니 늘 지시를 받으며 살아왔던 나에게는 아주 어렵게 느껴졌고 그래서 나는 그래서 난 워커장을 하는 내내 잘 이끌어가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반하에서 워커일을 하는데 리더의 명령이 잘 안되면 일처리가 늦어지는데 옳은 지시를 하지 못해 일을 잘 끝내지 못한 적이 많았다.
제주도를 걸은 후 난 더 많이 큰 내 자신을 보게 되었고 그 전까지 가진 부정적인 생각들이 적어지며 신뢰를 하게 된 게기가 되었다.
노력을 하고 제주도를 끝까지 걸은 것처럼 무언가를 계속 목표를 잡고 실천하면 이루어진다는 것 등 1단계 제주도 걷기를 통해 정말 생각의 전환이 이루어졌다.
남해안 여행을 하며 어느 정도 익숙해진 생활 속에서 이제는 여행을 하며 정보들을 얻게 되었고 내 생각을 정리해보는 좋은 시간이 되었다.
하루하루 가는 곳의 주변을 둘러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기니 제주도 때는 땅만 보고 피곤해 저녁에는 쓰러지던 내가 절들의 글들과 우리나라의 역사가 담긴 사찰들 그리고 경치를 보며 “부지런히 시간을 만들면 주변을 둘러볼 수 있구나” 을 느꼈다.
하반하의 중간에 접어들어 있었는데 남해안을 여행하기 전 나는 부회장에 나가 선출되었다. 1학기와는 확실히 달리지고 싶어서 원래 부회장 자리에 도전해볼 생각이 없었지만 도전해보았고 당선된 후 남해안여행을 가면서 이제 막 부회장 자리에 오른 나에게 시험을 하는 연습의 여행이었던 것 같다.
영월에서 농활을 시작하게 되고 난 또 한번 주저앉을 것 같았다.
매일 새벽 아침 일찍 밭으로 일하러 나가 하루 종일 일하고 돌아오면 6시 저녁이 되어있는 삶을 살며 힘들고 이유를 까먹어 “내가 왜 이렇게 일해야 하나?” 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생각해보면 미리 전에 목표를 가졌고 그걸 이루기 위해 다같이 동의한 것인데 일이 너무 싫어 그랬던 것 같다. 다들 농활을 하겠다고 하니 나도 손을 들어 동참했지만 3주가 지나며 각오했던 것보다 힘들어 마음이 약해졌던 것 같다.
그때는 좌절했지만 전처럼 일을 그만두는 짓은 하지 않았다.
오히려 방법을 써니 쌤, 윤 쌤과 상의해 그냥 주저앉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다른 일을 찾았다.
그렇게 난 남아 요리 설거지를 학교 일들을 맡아서 하게 되었다.
놀랍게도 집안일을 하는 게 적성에 맞았는지 혼자 상규 쌤을 도와 일하는 게 편하게 느껴졌다.
아침 저녁을 차리고 학교 설비를 닦고 학교 안의 일을 하며 난 혼자 일하는 게 잘 맞았던 것 같다.
자전거 여행을 하면서 제주도에서의 교훈을 또 한번 느끼면서 이번 여행은 대신 즐거움이 더 가득했던 것 같다.
하반하의 생활은 이제 익숙하고 주변을 둘러볼 수도 있고 또한 내가 좋아했던 자전거를 탄다는 것에 기뻤다.
자전거 국토종주를 하면서 나는 원래 여행은 힘들고 도움이 퇼 테니 했었다면 자전거여행은 계속 다음 장소가 기대되게 다음 길이 기대되는 나에게 있어 계속 앞이 궁금하고 기대하게 되는 그런 여행이었다.
그걸 통해 결국 내 마음이 가야 정말로 그것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내가 가치관으로 삼게 되었다.
일단 해보는 것이야 가능하지만 정말로 마음이 가야 하게 된다는 것 즐기게 된다는 것 그것이 바로 내가 얻은 결론이었다.
10개월간 하반하에서 배우고 바뀌게 된 것 이 정말 많다.
아마도 오지 않고 계속 비정상의 삶을 유지해나갔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궁금하기도 하지만 이렇게 와서 바뀌게 된 것이 나는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얼마 전 약 2달 전까지만 하더라도 하바나 ‘세계’ 여행학교를 온 것인데 세게는 가지도 못하고 영월의 작은 마을에서 매일 수업과 공부를 하는 것에 불만하고 싶은걸 못해서 불만 불만과 매우 가까운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건 너무 고정된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다른 관점에서는 바라보지 않고 너무 내 생각만 계속 하다가 결국 터져 좌절하거나 일을 집중하지 못하는 결과를 만들었던 것 같다.
많은 것들을 새로 얻었지만 그 중 하나가 바로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 인 거이다.
안 좋은 일들도 많이 있었다.
나의 실수, 그리고 잘못으로 인해 몇 명이 또는 하반하 전체가 피해를 보게 되는 그런 상황들도 있었는데 한번은 자전거여행을 내가 수저 젓가락들을 챙기지 못해 모든 사람들 대장님 써니 쌤까지 아침을 먹는데 수저 젓가락이 없어 내가 매우 죄스럽던 일이 있었다. 난 그 일을 통해 꼼꼼하게 확인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그리고 한번의 작은 실수라도 그게 얼마나 큰일을 불러올 수 있는지 알게 되었다, 아마 이 일은 평생 기억하게 될 것 같다.
그 후 새 젓가락 수저 세트를 사오셨는데 다른 이유로 여행도중 잃어버리면서 그 여행을 겪으며 수저 젓가락이 얼마나 중요한 존재였는지도 알 수 있었다.
부회장을 하면서도 정말 많은 실수나 잘못을 저질러 학생들에게 피해를 주게 된 적이 많았는데 한번은 정산 사인을 을 받아야 할지 받지 않는지 회장단이 멋대로 생각하고 물어보지 않았다가 학생들이 전부 낙제를 받게 될 뻔 한 적이 있었다.
심지어 부회장이 된 지 시간이 조금 흘렀던 때라서 더더욱 큰 문제였다.
내가 잘 챙기지 못해 모든 학생들이 피해를 보게 된 것이 너무 미안하게 느껴졌다.
전원 단어 올 패스를 한다는 딜을 맺어 또 애들을 귀찮고 힘든 일을 시키게 되어 죄처럼 느껴졌다.
이런 나로 인해 피해를 보는 사람들을 보면서 책임을 지는 자리에 대해서 확실하게 알고 또 리더의 책임감에 대해서도 더 잘 알게 되었다.
하반하를 생활하며 나는 매 주말마다 나는 보드게임을 했는데 처음 한 이유는 그저 게임이 하고 싶은데 할 수 없다는 것이 아쉬워 찾아본 결과 학교 내에서 그나마 가장 비슷했던 게 이것이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원래 하던 게임이 그리워서였지만 나중에는 내가 열심히 생활하게 되는 계기 내가 정산을 노력하게 되는 목표가 되었고 몇 명 안 되는 3명이였지만 나중에는 매주마다 보드게임을 붙잡고 있게 되었다 그러면서 해인 쌤과 반액씩 지불해 새 보드게임을 산다 같은 목표가 생겼고 주말을 생각하고 더 주중을 열심히 살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앞으로도 게임을 이런 목표로 삼고 한다면 훨씬 좋은 결과가 나올 것 같다.
원래 나는 비정상의 삶을 살며 내 행복이 제일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하반하를 오고 다양한 일들을 하고 좌절 성공 실수 등 다양한 일들을 겪으며 자신이 변하는 걸 바라보며 너무 막 살고 있었다는 게 느껴졌다.
내가 행복하면서도 할 일을 하며 남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것 그리고 도움을 주는 것 그것이 바로 내가 얻은 것들 같다. 힘들게 고생해야지 나중이 더 편하듯 나도 너무 편하게 살다가 힘들게 느껴진 것 같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계속 발전하고 나아가려 하는 정상인이 되고 싶어졌다.
나의 꿈 그리고 목표들 나에게 있어 필수적인 것 나의 부품 나의 연료
나는 혼자 자전거 여행을 떠나보고 싶다-하반하에서 내가 아쉬웠던 점이라면 단체여행이라는 것이었다. 단체에 묶여 좋은 점들도 아주 많았지만 한번 혼자 떠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둘러보고 싶었지만 보지 못했던 것들을 더욱 여유롭게 둘러보고 싶다.
나는 내가 얻은 습관들을 꾸준히 유지하여 지켜나가고 싶다 --1년전의 나는 밤낮을 바꿔 살고 음식도 챙겨먹지 않고 발전 같은 것은 별로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이었다. 하반하에서 얻게 된 교훈들 습관들을 계속 유지시키고 잊지 않고 사용하며 생활해나가는 내가 되고 싶다.
다시 일어나는 법 : 나에게 있어 이건 마치 안전장치와 같다. 보험이라고 생각해도 좋을 것 같다. 내가 좌절하고 모든 게 싫더라도 다시 시작하게 되는 그런 장치인데 이것이 나에게 아주 중요한 부품이란 것을 느꼈다.
운동 몸 관리를 하는 것: 결국 정신력도 몸에서 온다는 것을 하반하 생활을 통해 확실히 알 수 있었다 피곤이라는 것 그것은 지치고 힘들 때 누구에게나 오는 것이지만 체력이 있다면 그걸 더 오래 버텨낼 수 있다. 또한 버텨낸다면 좋은 마음까지 이끌어내 좋은 결과를 이끌어내게 해주는 정말 중요한 장치이다.
취미생활 독서 게임: 남에게 화를 드러내는 것은 더 많은 화를 만들어낸다고 생각하는 나에게 있어 이런 취미생활은 내 안에 쌓인 열을 배출해내는 배기구와도 같다. 기계가 과열되면 문제가 생기듯 나도 이것들이 있어야 내가 안정적으로 살 수 있을 것 같다,
여러 시점으로 바라보는 눈: 나는 너무 한 가지 시점으로만 바라보게 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힘들고 화가 날 때 이 경향이 더더욱 심해지니 나에게 있어 여러 가지 시점으로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
첫댓글 준빈아
차분하고 조용하게
써 준 글 잘 읽었어ㆍ
노력하고 변화했던 시간을
통해 정상인이 되어가는
기쁨을 스스로 느끼는것
같아서 기쁘다
늘 잘 지내길 바라면서
고마워^^
준빈이는 어떤 사람일까 매우 궁금했단다.
학교는 가야 할 뚜렷한 이유를 알 수 없었고, 너에게는 게임이라는 명확한 목표가 있어서 그것을 위해 최선을 다한 것이었구나.
게임도 안해본 내가 준빈이의 글을 읽으면서 절대로 게임에 내한 내 편협한 생각으로 아는 척을 하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단다. ㅎㅎ
하반하 10개월이라는 시간을 통해 부품을 갈고, 연료를 충분히 채웠으니 정상인 준빈이가 이젠 드라이브를 잘 즐기길 바래. 그동안 애썼다. 졸업 축하해... ^^
혜윤맘.
준빈아!!
10개월 동안의 하반하 생활을 통해 너 자신을 깊이 들여다 보고 개선점을 찾아내고 구체적인 목표를 만들어가는 모습이 멋지다!
하반하 생활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서도 하반하에서의 습관을 이어가겠다는 다짐을 꼭 실천해 옮겨 너 스스로에게 당당한 준빈이가 될거라 믿어. 항상 응원할게!!
난 준빈이가 참 좋았었어~도윤이랑 통화할 때 마다 준빈이형 어떻하기로했어?물어보곤했지~싱겁게 웃는 준빈이가 정이가고좋았는데 못 본다니 이쉽다ᆢ너의 글도 참 정감가고 편하게 잘 읽었어^^너가 원하는바 다 이루길 기도로 늘 항상 보태마~^^
준빈아~
10개월의 성장소설을 본것같다.
스스로를 잘 읽어내고 고쳐나가고
좋아하는것들을 찾아내고.
그냥 정상인이 아니고 짱멋진 정상인이
되었는걸~
앞으로 준빈이의 청춘을 응원할께!!!
처음 하반하에서
10기 18살 또래 아이들중에
준빈이가 유독 눈에 들어왔단다.
그 이윤, 10기 또래아이들에 비해
생각이 성숙한 아이일거란 생각이
너의 눈을 보고 내가 느낀거란다.
그래서 인지 10기 다른 18살 아이들에 비해
너를 좀더 유심히 보게 되었단다.
선생님들께서
10개월이라는 하반하 생활이 담긴
동영상들을 올려주실때마다
가족과 떨어져
오롯이 혼자 처음 겪는 낮선 환경에서도
꿋꿋이 자기 의견을 침착하게 전달하고,
자신 안에 쏠려있던 에너지를
타인을 위한 배려의 에너지로
쓰고 있는 준빈이의 모습에서
'역시, 멋지게 자라겠구나~!'
생각했단다~
이번 문집을 통해서
네가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쓰게된것 같아
더 그런생각이 들더구나~!
살아가다보면,
남의 말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생각대로 살아간다는게
참 힘들때도 있단다.
하지만 자신의 생각이
나뿐만이 아닌
특히, 남을 위한 일을 하면서
흔들리지 않는다면
힘들어도 견딜수 있는 뿌듯함이 생길꺼야.
난 네가
내가 생각하는 멋진 어른이 될꺼라 믿는단다.
그렇게 되면,
하반하 카페에 다시한번 글을 남겨주는건 어떨까~?
항상 질문에 느리지만 솔직한 모습이었지. 한 템포 쉬었다 나오는 너의 대답은 짧지만 명쾌했어.
너의 글을 읽고 해보지 않은 것을 쉽게 판단해왔던 나를 반성하게 된다.
준빈이 덕분에 지헌이도 보드게임에 더 큰 즐거움을 느꼈어. 자신의 속도로 성장해 온 준빈이를 응원한다.
다시 일어나는 법, 여러 시점에서 바라보는 것...그 어떤 것보다 큰 힘이 되리라 믿어
준빈이의 글을 보며
준빈이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되었어
정상인
우리는 실제로 정상인이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삶을 살아가며 정상인이 되기위해
몸무림 치는 것 같애
사람은 동물과 달라 삶의 의미를 늘 생각하지
하반하를 통해 정상인을 향해 달려 갈 수 있게 되어 너무 다행이고 축하한다
어렵고 힘들었던 과정이
너를 달련하였구나
꼭 혼자만의 여행의 시간을 갖길 바래
준빈이는 이제 그 여행을 할 줄 아는 사람이 된 것 같다
자신 안을 잘 보는 힘이 생겼으니 좋은 결과가 있으리라 믿는다
글을 읽으며 준빈이와 가까워진 느낌이 드네
정말 너의 변화가 감사하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