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3학년 때 한 계집애로부터 받은 편지
중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던 어느 겨울날, 어릴 적 소꿉동무였던 한 계집애로부터 편지 한 통을 받았다.
그 계집애는 한 동리에 살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집안끼리 가까웠던 탓에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까지 늘 어울려 소꿉놀이를 하곤 했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우리 집이 강원도 인제에서 경기도 장호원으로 이사한 뒤 나는 그 계집애를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런데 몇 해가 지난 뒤 느닷없이 편지를 보내왔던 것이다.
‘그리운 벗 성에게’로 시작되는 이 편지는 연두색 편지지 2장을 빼곡하게 채웠다. 사실 그 당시만 해도 다 큰 아이들이 편지를 주고받는 일을 불경스럽게 여길 때였다. 게다가 나는 그 계집애가 그다지 그립지 않았으니 어찌 답장을 보냈겠는가. 첫 번째 편지 이후로 그 계집애는 분홍색지와 노란색지에 쓴 편지를 두어 번 더 보냈으나 수줍음이 유난히 심했던 나는 끝내 답장 한 통 보낼 수 없었다.
내가 살아오면서 이성에게서 받은 첫 번째 편지, 그 편지는 지금도 나의 일기장 속에 곱게 접혀 있다. 나는 요즈음에도 이따금씩 그 계집애가 보낸 편지를 꺼내어 읽어보곤 한다. 그리고 가끔은 그 계집애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살아가는지 몹시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