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부터 있어왔는데 이번에 삼국시대 (서기 6세기) 때의 면직물이 발견되었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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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익점 800년 앞선 유물, 면직물역사 다시써야 |
[뉴시스 2010-07-15 ] |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고려말인 14세기 후반 문익점(1329~1398)에게서 비롯됐다는 한국 면직의 역사가
무려 800년이나 올라갈 것으로 보인다.
국립 부여박물관(관장 강대규)은 부여 능산리 절터 출토 유물을 정리, 분석하는
과정에서 1999년 능산리 절터 제6차 조사에서 수습한 직물(폭 2㎝, 길이 약 12㎝)이
면직물임을 확인했다고 15일 밝혔다.
박물관은 한국전통문화학교(심연옥·정용재 교수) 팀과 함께 주사 전자현미경(SEM)
을 통한 종단면 관찰 결과, 면섬유의 특징이 뚜렷이 관찰돼 이 직물이 식물성 셀룰로스
섬유로 짠 면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이 유물이 목화에서 실을 뽑아 독특한 방법으로 직조됐음을 가리키는 대목이라는
것이다.
면직물의 재료가 되는 목화는 역사적으로 14세기 후반에 문익점을 통해 우리나라에
전래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국내에서 확인된 가장 오래된 면직물은 안동 태사자 묘에서 출토된 흑피화(검정
소가죽으로 만든 장화)의 안쪽에 붙어 있는 것이다.
제작 시기는 고려 말 공민왕(1330~1374) 때로 추정됐다.
그러나 능산리 절터 서쪽 돌다리의 백제 유적 층에서 출토된 이번 면직물이 확인됨에
따라 한국의 면직물 역사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게 됐다.
이 면직물과 함께 출토된 ‘창왕명 사리감’의 제작년도가 567년임을 감안할 때
문익점보다 무려 800년이나 앞서는 국내 최고(最古)의 면직물로 볼 수 있다고
박물관은 강조했다.
박물관은 “이번 면직물은 고대의 일반적인 직조법과는 달리 강한 꼬임의 위사(緯絲)를
사용한 독특한 직조방식의 직물”이라며
“중국에서도 아직 그 예가 보고된 바 없어 이 직물을 통해 백제인의 독창적인 직조 기술을
확인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이번 조사성과는 10월 국립부여박물관이 개최하는 국제학술심포지엄에서
정식 발표될 예정이다.
realpaper7@newsis.com
기사출처 -
http://www.newsis.com/ar_detail/view.html?ar_id=NISX20100715_0005666256&cID=10201&pID=1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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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익점 이전에도 한국에 목화 있었다.
[동아일보 2003-01-06]
한국의 옛 옷 연구 책 펴낸 박선희 상명대 교수
“한반도에서 면직물이 생산된 것은 고려 공민왕 때 문익점이 원나라에서 목화씨를
들여온 이후가 아닙니다.
한반도에서는 적어도 삼국시대 이전부터 면직물을 생산했습니다.
문익점이 들여온 것과 품종이 달랐을 뿐 입니다.”
상명대 사학과 박선희(朴仙姬·50) 교수는 고대 한국에서도 면직물을
생산했다 고 주장한다.
그는 “삼국사기(三國史記), 양서(梁書) 등 고문서를 보면 ‘백첩포(白疊布)’라는 면이
있었다는 기록이 나온다”고 근거를 들었다.
박 교수는 최근 펴낸 ‘한국 고대복식, 그 원형과 정체’(지식산업사)에서
한국 고대복식의 기본 재료를 분석하고
바지 치마 관모 갑옷 등 고대복식의 기원을 밝혔다.
이 책은 학계에서 상대적으로 소홀히 다뤄왔던 고대복식을 체계적으로 정리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지난 5년간 복식사 연구에만 매달렸다는 박 교수는 이 책을 통해
한국이 모, 마, 면직물 등을 가공하고 직조하기 시작한 연대가 중국과 비슷하거나
앞선다고 주장한다.
고조선이 뼈와 가죽, 청동 등을 재료로 동아시아에서 가장 빨리 갑옷을
만들었다는 주장도 덧붙인다.
“한민족의 고대복식 문화가 중국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은 ‘잘못된 통설’입니다.
복식뿐 아니라 생활 문화 전반에서 고대 한국은 나름대로 문화를
형성하고 있었습니다. ”
박 교수는 “그 동안 한국 고대복식사 연구는 1947년 출간된 이여성(李如星)의
‘조선복식고’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 전개해 왔다”고 지적했다.
복식사 연구 초기 단계에 쓰여졌던 ‘조선복식고’는 한국의 복식 문화가 중국이나
북방 민족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는 ‘선입견’을 바탕에 깔고 있었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중국과 한국의 고문헌 유물을 조사,
정리한 내용을 제시 했다.
그는 “ 복식을 매개로 삼아 고대 한국이 중국보다 앞선 문화를 영위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증명 할 수 있을 것 ”이라고 강조했다.
주성원기자 swon@donga.com
[출처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0&aid=0000171987]
위에서 박선희 교수는 한국이 모, 마, 면직물 등을 가공하고 직조하기 시작한
연대가 중국과 비슷하거나 앞선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삼국사기(三國史記), 양서(梁書) 등에 나오는 ‘백첩포(白疊布)’
이야기를 한다.
백첩포(白疊布)
고대중국에서는 고대한국을 백국(白國) 또는 백민국(白民國)이라고도 불렀다.
한국이 [백의민족]이라 칭해졌던 것도 단지 하얀 옷을 즐겨 입었다는
의미만은 아니다.
[산해경(山海經)의 대황동경(大荒東經)]편에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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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荒中有山 名曰明星 日月所出 有白民之國
帝俊生帝鴻 帝鴻生白民 白民銷姓 ]
(산해경 - http://khaan.net/history/chinadata/sanhaekyeong/ )
[해석]
대황(大荒)의 중심(中)에 산(山)이 있는데
이름이 명성(明星)이다. 해와 달이 뜨는 곳이다.
거기에 백민(白民)의 나라가 있는데
준(俊)임금이 홍(鴻)임금을 낳았고 홍(鴻)임금이 백민(白民)을 낳았다.
백민(白民)은 무쇠(금속)을 만드는 사람들(겨레 : 姓)이다. (白民銷姓)
<<<<원문편집.
원본: http://cafe.daum.net/121315/CK3e/230
첫댓글국사기에 실린 목화 와 문익점이 가지고 온 목화씨가 품이 랐다는 이유로
문익점으로 부터 목화의 역사가 시작 되었다는 것은 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