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 복된 계절입니다. 성탄일은 지났지만 우리 마음에는 늘 성탄을 염원합니다. 정말 세월이 빠르게 지나갑니다. 벌써 한해가 마감되고 또 새로운 한해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세월의 덧없음이 아니라 영원을 늘 사모하며 사는 지혜를 얻기 원합니다. 지난 여름 함께 수업을 하면서 여러 가지로 열심을 내주어서 감사하고 있었습니다. 언제 또 함께 수업을 할 기회가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새해에는 더 큰 은혜와 축복이 하시는 사역 위에 넘치기를 소망합니다. 목회가 힘이 드는 일이지만, 한 영혼을 새롭게 하는 기쁨이 있는 힘듦이 되기를 바랍니다. 방성규 목사 올림"(2005년 12월 27일 21시 05분)
위의 글은 방성규 교수님으로부터 마지막 받은 이메일입니다.
오늘(3월 26일) 새벽 기도 끝나고 갑자기 방 교수님이 떠오르더군요. 그래서 제가 운영하는 한 카페에 들렸습니다. 방 교수님이 보낸 이메일 글들을 보기 위해서입니다. 아직도 글이 숨을 쉬며 손짓하고 있었습니다.
벌써 5년이 지났군요. 방 교수님이 소천하신지가. 2006년 2월 1일, 그는 태국 선교 여행 중 아무도 예상 못한 시간에 예상 못한 방법으로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그를 아까고 사랑하던 지인들의 슬픔이 얼마나 클까를 생각하니 제가 더 슬퍼졌습니다. 저는 방 교수님을 안 지는 오래지 않습니다. 그 전에는 서로 이름 정도 알고 지내는 사이였습니다. 그런데 서울신학전문대에서 공부를 하면서 방 교수님과 한 학기 공부를 했습니다. 나이는 비슷하지만 그는 가르치고 저는 배우는 사람으로 만난 것입니다.
엄격히 따지면 한 학기 공부가 아닙니다. 한 학기를 대체하는 공부였습니다. 여름 방학을 이용하여 석박사 과정의 학생들이 일 주일간 숙식을 하면서 공부하는 과정이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소정을 과정을 마치면 한 학기 공부한 것으로 인정받는 제도였습니다. 학생들이 모두 목회를 하는 사람들이라 이렇게 해서 3학점을 이수했습니다.
그 때 방 교수님도 한 과목을 맡았습니다. 정확한 과목명은 모르겠으나 아마 '중세 사막 교부 세미나'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는 아주 성실하고 열정적인 강의로 우리의 마음을 앗아갔습니다. 보통 성실하면 열정이 좀 떨어지거나 아니면 열정적이면 성실도에서 좀 쳐지게 마련인데, 방 교수님은 두 가지 다 겸비하고 있었습니다. 아니 그것만이 아닙니다. 그는 매우 친절했습니다. 배우는 사람들을 일일이 그들의 눈높이에 맞춰 대해 주었습니다.
나이가 많은 축에 속한 제게도 방 교수님은 최대한 예를 갖추어 대해 주었습니다. 이런 친절에 학생이 값하는 방법은 많지 않습니다. 공부에 열심히 임하는 것입니다. 저는 배울 내용을 미리 준비해서 토론에 적극적으로 임하는 편이었습니다. 토론에 열기가 붙지 않을 경우 말씀 보수에 양보가 없는 목사님들에게 도발적인 발언으로 토론에 불을 붙이는 역할을 하곤 했습니다. 방 교수님도 저의 사정을 잘 아시고 어떤 때는 눈을 찡긋 하시면서 토론을 위해서 애쓰는 저를 격려해 주기도 했습니다.
요즘 의인들의 죽음에 대한 몇몇 소식을 접합니다. 군의관으로 복무하다가 33세로 세상을 뜬 청년 의사 안수현도 아까운 사람입니다. 아프리카의 미개국 수단의 톤즈라는 마을에서 봉사의 삶을 살다가 48세의 일기로 선종한 이태석 신부도 우리의 마음을 슬프게 합니다. 방성규 교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50세를 갓 넘긴 나이로 그는 할 일을 많이 남겨둔 채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그의 죽음 소식을 접하고 저는 정신이 혼망해졌습니다. 아니 이럴 수가! 한 달여 전까지만 해도 이메일을 주고 받았는데 … . 어렵게 농촌목회를 하는 나를 위해 그가 얼마나 기도해 주었는데 … .
저는 함께 공부했던 서대전교회 박용규 목사에게 전화를 넣었습니다. 자초지종을 알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박 목사님은 방 교수님과 신학교 동기로 매우 가깝게 지내는 사이였습니다. 놀라기는 저보다 박 목사님이 더했습니다. 장례식에 참석하고 왔다고 했는데, 그도 제가 알고 있는 선 이상을 알고 있지 못했습니다. 아니, 알면서도 구체적인 사실을 말하고 싶지 않았는지 모릅니다.
뒤에 들은 얘기입니다. 선교 여행 중 더위를 식히기 위해 바닷물에 몸을 적셨다고 했습니다. 방 교수님은 수영도 남 못지않게 잘 했습니다. 한참을 바닷물 속에서 놀고 나와 모래사장에 누워 있었다고 합니다. 동행한 일행들도 그가 수영 후 잠깐 휴식을 취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관심을 두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방 교수님은 서서히 의식을 잃어가고 숨을 거두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의 상태를 누군가 눈치만 챘어도 그렇게 가게 만들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주님의 일을 위해 이 땅에 필요한 사람들은 하늘나라에서도 필요할 것입니다. 오히려 그곳에 더 급하게 필요할 지도 모릅니다. 그러니까 사랑과 복음을 전하며 뭇 영혼을 구하는 의인들을 하나님께서 일찍 불러 가시는 건 아닌지요. 방 교수님은 정말 할 일이 많았습니다. 특히 교회사 중 빈약하기 짝이 없는 중세 사막 교부들에 대해 그는 일가견을 갖고 있었습니다. 연구뿐만 아니라 학생들에게 그 분야를 전수하는 데도 열정적이었습니다. 한영신학대학 교회사 주임 교수로서 서울신학대학교 외 몇몇 대학에까지 강의를 맡아 그가 갖고 있는 학문적 역량을 쏟는 데 최선을 다했습니다. 참으로 아까운 분입니다.
벌써 많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리고 그의 이메일 격려 글이 떠오릅니다.
"성탄은 지났지만, 우리 마음에 늘 성탄을 염원합니다. … 목회가 힘 드는 일이지만 한 영혼을 새롭게 하는 기쁨이 있기에 능히 감당할 수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그의 진실하면서도 넉넉한 마음이 그리워집니다.
첫댓글 가슴 속에 그리움으로 남아있는 방교수님이 목사님 가슴에서
그 분의 삶을 엿 볼수가 있어서 좋습니다 목사님~~
오랫동안 기억될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기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