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든 챔피언(대중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분야별 세계 시장 점유율 1~3위를 차지하는 매출액 40억달러
이하 강소기업)에 대해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왜 유독 독일에만 히든 챔피언이 많은가`와 `어떻게 하면 한국도 히든 챔피언을 많이 보유할 수
있나`다.
책 `히든 챔피언`의 저자인 독일의 경영학자 헤르만 지몬(Hermann Simon)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전 세계
2734개 히든 챔피언 중 절반에 가까운 1307개가 독일에 있다. 독일 인구 100만명당 히든 챔피언 수는 독일이 16개로 미국(1.2개)
일본(1.7개) 중국(0.1개) 한국(0.5개) 등을 압도한다.
독일에 히든 챔피언이 유독 많은 이유 중 하나는 근대 독일이 매우
늦게 통일됐다는 점이다. `철혈재상` 비스마르크가 독일을 통일한 것은 1871년 1월이다. 이전 독일은 여러 작은 나라들의 집합에 불과했다.
통일 전 독일 기업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국제화가 필수였다. 남부 바바리아 지역의 작은 회사가 북부 베를린이나 함부르크 고객들과 거래를 하는
식이었다. 독일 기업들은 일찍부터 국제화와 그 역량이 생겨났다.
둘째로 지역마다 축적된 전통적인 역량이 있었고 그것이 오늘날까지
이어져오고 있다는 점이다.
남서부 흑림(黑林) 지역은 수백 년 전부터 시계공업이 발달했다. 이는 정밀기계공학 활성화로 이어졌다.
현재는 정밀기계공학을 필요로 하는 의료기술 관련 업체 400여 곳이 이 지역 인근에 모여 있으며 상당수가 히든 챔피언이다. 북부 괴팅겐 지역에는
수십 개의 계측기 회사들이 있다. 이는 오랫동안 세계 수학 분야를 선도해온 괴팅겐대학 수학과의 영향이 크다.
셋째로 치열한 경쟁이다. 마이클 포터 하버드대 교수는 국내 경쟁이 치열할수록 해당 산업의 국제경쟁력이
올라간다고 주장했다. 독일은 많은 분야에서 국내 기업 간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경쟁사들이 같은 지역에 집중된 일종의 산업 클러스터를 형성한다.
상당수 기업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게 됐다.
넷째로 지역 분산이다. 정치ㆍ경제ㆍ행정ㆍ문화가 한 지역에 집중되어 있는 나라가
많다. 우리나라도 서울이 거의 모든 분야의 중심지이며 일본은 도쿄, 영국은 런던, 프랑스는 파리가 그러하다. 반면 독일은 분권적인 독특한 구조를
갖고 있다. 인재와 기업, 문화시설 등이 전국에 고루 분포되어 있고 히든 챔피언도 마찬가지다. 지방에서 인재를 채용하는 데 어려움이 없고 큰
도시에 회사와 공장을 다 세울 필요가 없다.
다섯째로 독일이 탄탄한 제조업 기반 국가란 점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독일은 국내외에서 많은 비판을 받았다. 실제로 독일은 국내총생산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다른 선진국들보다 월등히 높다. 그러나 금융위기
이후 비판의 목소리가 줄어들고 있다. 미국 영국 프랑스는 오히려 서비스업에 지나치게 기댄 것을 후회하고 있다.
독일경제연구소에
따르면 독일의 제조업 비중과 무역수지의 상관관계는 0.79로 튼튼한 제조업 기반이 수출경쟁력 확보의 중요한 원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여섯째로 뛰어난 혁신 능력이다. 나라의 혁신 능력을 나타내는 지표로 특허출원건수가 있다. 2010년 유럽특허청이 발급한 특허건수를
살펴보면 독일은 1만2553건으로 2위인 프랑스(4536건)를 압도한다.
일곱째로 훌륭한 직업훈련 시스템을 들 수 있다. 독일
기업들의 높은 생산성과 빼어난 제품 품질은 전문기술자들을 배출하는 독특한 직업훈련 시스템에 바탕을 두고 있다. 다른 나라들도 독일의 우수한
직업훈련 시스템을 배우고 싶어해 훈련 자체만으로도 독일의 매우 유망한 수출상품이 되고 있다.
이 밖에도 `메이드 인
저머니(Made in Germany)`로 상징되는 `원산국 효과(country-of-origin effect)`와 안정된 노임을 꼽을 수 있다.
독일의 국가 이미지가 히든 챔피언들의 기업 활동에도 큰 도움을 주고 있는 것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2002~2010년 유로화 지역의 노임이
평균 21.7%, 프랑스는 26% 상승한 데 비해 같은 기간 독일의 평균 노임은 6.3% 오르는 데 그쳤다. 독일의 히든 챔피언은 임금 면에서도
국제적인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독일 국민의 `국제화 마인드`도 빼놓을 수 없다. 독일인의 56%가 영어를
구사하며 독일은 세계에서 해외여행을 가장 많이 떠나는 국가 중 하나다. 독일 대학생의 6.2%가 해외 유학을 경험했으며 독일 대학생의
11.4%가 외국인이다.
이처럼
독일에 히든 챔피언이 많은 이유는 여러 역사ㆍ경제ㆍ문화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한국도 독일처럼 많은 히든 챔피언을 육성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국내의 정치ㆍ행정ㆍ경제계 지도자들이 독일의 이런 다양한 요인을 깊게 이해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