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
한옥이 있는 막다른 골목에서 회포(懷抱)
엔돌핀을 기대하면서
드론에서 본다.
연줄처럼 가느다란 실줄 같은 전선이 전깃불을 나누어 준다면서,
대문이 살짝 열려 있을 것 같은 막다른 집을 기준점으로
온갖 집들을 나란히 세워 놓고 공중에서 사열의 기준선 노릇을 한다
상명하복(上命下服) 이다.
철길따라 기차 여행가듯이, 전기줄 따라 집들이 들어선다.
막다른 곳이 출발점이다.
건축과 그림 그리기
바닥 벽돌 960장과 돌담용 아래 지주돌 240장과 붉은 벽돌 900장과
서까래 190개. 그리고는 빗물 내릴 챙 12"×47"×700"판 30장을 가지고
미장이와 목수가 하나하나씩 올리고 맞출 때 마다 다른 작업장에서
화백은 따라서 겉 칠을 한다
집짓는 이들과 그리고 이 진도에 맞춰서, 화폭에 담는 화백에 의해 유무형으로 삶은 반복되며 축적된다
어떤 엉뚱한 관객은 셈에 대한 설명이 맞나 틀리나하고 벽돌 갯수를 세어본다.
예술은 마음으로 크기를 어림잡는 것이지 셈본 시험보듯이 또한
벽돌 장수 주판 놓듯이 안하면서도, 구름의 무게를 계산하고 본질과 대화로 숫자가 아닌 낱말로 변환해 읽고 느낀다.
막 다른 골목 앞에서
누군가 삐끔히 열린 틈으로 나올것 같기도 하고, 골목길 돌아 누군가는 집으로 바삐 들어 갈 것 같은 느낌이 온다
여자일까 남자일까 배달부일까 여학생일까, 아님 주인 아주머니 장 바구니와 함께 오시나.
나이는 얼마나 됐을까?
번듯하게 잘지어진 한옥들은 무엇이든지 포용할 수 있는 여유로움에 정적이 감도는 장엄함과 묵묵함으로
세상의 모든 기운을 간직하고 있는듯하다. 우리는 모르더라도 담벼락의 벽돌, 지붕위 기와장, 서까래
하나하나가
인간이 저지른 모든 비밀을 간직하고 있을 것 같다.
그 누구의 시선의 대상도 아닌 하찮은 전기줄들, 모든 가닥들은 지금도 여기까지와서 숨을 고른 후에
또 거기까지 가서 빛을 던져 주며 밝은 세상을 만든다.
빛의 본질은 소리는 없고 속도만 있다.
생명의 탄생
골목길, 나무, 길, 바닥, 열린 문, 채앙, 돌, 쌓음
건축을 한다.
벽돌을 쌓는다.
그림을 그린다.
붓칠을 한다.
다른 점은 무엇이고 같은 점은 무엇이냐;
생명의 유무(有無)이고 집짓기나 그림 그리기나 비슷한 시간이 필요하다.
둘다 경험이 있는 작가의 답이 이 그림에 있을 것 같다.
전봇대에 옭아맨 전기줄의 소통대상은 밤의 태양이다.
소요 시간을 아무리 많이 준다하여도
내부를 못 그린다.
차라리 외부의 공간을 비워둔다.
마음 속과 바깥 세상의 조화 연결
용머리, 갖은 장식
그들은 무엇을 말하려나.
신의 세계
조물주의 세계
Nihilism
창작의 세계.
읽는이들 가운데, 서론이 길다고 느끼는 사람이 간혹 있는데 그렇지않다.
시인은 잘 보이지도 않는 미세한 역할을 하는, 비 가리개 '챙'을 가지고 다음과 같이 길게도 느낌을 전한다.
챙 / 손택수 시인
챙, 하면 떠오르는 빗소리
빗소리와 빗소리가
부딪치는 양철지붕 끝
처마에 챙을 단 집이 있었다
집안을 가리고 남은 여분이 살짝
밖으로 뻗어나와 만든 품,
하굣길에 소낙비를 만나선
급한 마음에 우당탕탕 그 속을 비집고 든 적이 있는데
책가방 머리에 쓰고 뛰어든 그 속엔 마침
여고생이 된 옆집 누나가 새치름
비를 긋고 있었던가, 젖은 누나의
교복 위로 스멀스멀 피어오르던 김과
마악 잔털이 돋기 시작한 내 겨드랑에서 빠져나온 김이
우리들 허락도 없이 마구 휘감겨들던 챙
더운 살냄새와 살냄새가 뭉클뭉클 살을 비벼대던 챙
처마 끝을 따라 뭉긋이 흘러내려 깊어진 마음의 기울기
챙, 하면 아찔하게 후들거리던 빗줄기
은빛 스틱이 치던 양철북 소리.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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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고, 스멀스멀, 누나, 잔털...., 살, 뭉클...., 감겨들던.. ..
아찔, 살 냄새..., 후들거리던, 허락.., 겨드랑이, 뭉긋. ...
< 시인의 말씀은 이게 아니라,,,,, >
다시 돌아옴.
처마 끝에 달린 채앙은 지붕 끝에 매달려 있다.
홈통의 위치에 따라 항구, 터미널, 공항이라고 어떤 이에게 분류되어
하늘에서 땅의 영역을 통과하여 바다로 향한다.
빈 화폭 위에 붓과 메마른 땅 위 홈통이
붓칠과 물칠을 시작하면, 작지만 새로운 세상이
한장 한장 또 구간 구간별로 완성되어지며
생(生)과 기(氣)가 덧 붙여지면서, 소위 창작(創作)과 창조(創造)가 만들어진다.
홈통은 수맥을 그리려는 관로이며, 강으로 바다로 향하는 상하편도 터널로
이제 부터 미립자는 신의 영역을 벗어나 인간의 통제권으로 구름과 비는
빗물, 하천, 강, 저수량, 바다 등으로 형태를 바꾼다 .
어디서 태어나 어떻게 자랐는지는 몰라도 지금 우리모두는 여기까지 달려왔다.
비록 내가 가진, 꿈꾸던, 내가 사는 집은 아니더라도, 어릴 때 그 동네는 아닐지라도
현재 우리는 여기에 멈췄있다.
멈춤의 시간!
잠시 머무른다. 하나. 둘. 셋......오십칠.......백칠. 백 팔.... ....이백오십 칠... 삼백육십오....
골목 길을 마주하며 들어 선, 전통 가옥들과 길 바닥에 누운 벽돌 담을 보면서,,,
우리는 편안해 지고 풍요로와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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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도 읽기 싫다면
어려운 공부 팽개치듯이 TV 오락프로 켜고 웃고 즐기는 나에게로 ...
애벌레가 만든 엽맥(葉脈)을 따르듯이
꽃잎의 세세한 화맥을 그리려다 보면
어느 순간 내가 그리는 세상도
꽃이 아니라
아름다운 도심의 길이거나 흐르는 강이거나 산맥일 수도 있다는 느낌이 들면서
마침표를 찍는다.
<본론>
- 한옥 감상 -
옛 주택가 동네를 돌아보며 옛 동무도 생각하고 누가 사는 집인지도 궁금하게 생각도 해 보고
비 떨어지는 빗소리와 비 방울에서 그때 그 녀의 눈 방울과 속삭임을 오늘 기억했다면
이런게 그림 감상이고 작가가 관객만을 위해 마련한 사고의 공간이 아닌가.
이곳은 나의 영역이다. 옛 골목길에서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
한때 오줌쌌던 추억을 끄집어낼 수 있다면 행복한 사람이다.
다재다능. 절대권능! 정적(靜寂)은 아니라고 말한다.
사진처럼 잘 그린 그냥 골목길 한옥이다.
그러나 골목길은 지맥의 일부이다.
골목도 벽돌들도 모두 살아있다.
조합의 합이 생명을 만든다.
창조적인 창작 능력이
조물주의 힘이다.
오늘의 임작가!
부언하면
막다른 집, 이제 대문이 막 열리면서
작가에게 다이돌핀이 대량 발산됐을 것이다.
나 역시 길바닥에 누워서, 벽돌 담벽이 되어서, 지붕이 되기도 하고,
결국에는 내가 살고 싶은 골목길 막다른 집으로 수렴되면서
가지런하지는 않지만 전깃 줄도 되어,
그리고는 작품 덕택에 수 많은 생명들과 그들의 삶을 즐기고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