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브르 박물관의 그림들
레오나르도 다빈치 최고의 걸작 - 모나리자(이탈리아, 1503~1506년 경)
모나리자의 은은한 미소로 인해 널리 알려진 유명한 작품으로
여성을 그린 전 세계의 초상화 중 가장 유명한 그림이다.
이 작품은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1503년 경에 그린 것으로 추정되며
그림속의 여인은 피렌체 출신의 부호 프란체스코 델 조콘다의 아내인 엘리자베타로 알려져 있다.
가나의 결혼잔치(파올로 카리에리, 일명 베로네세, 이탈리아, 1562-63)
이탈리아 베네치아에 있는 수도원 식당에 걸려 있던 높이 6.66m, 길이 9.90m의 대형 걸작인데,
갈릴레이 가나에서 열린 성대한 결혼잔치를 묘사한 그림으로, 나폴레옹이 1789년 프랑스로 가져온 것이다.
르네상스풍의 화려한 의상을 한 결혼 부부는 왼쪽 테이블의 끝에 앉아 있고,
수수한 의상을 한 그리스도와 성모 마리아, 제자들은 화면 중심에 자리하고 있다.
또한 이 그림에는 와인 감별사와 악사, 광대, 시종 및 세계각지에서 온 여러 민족의 사람들과 동물까지 등장한다.
원근화법의 이 그림에서는 적은 수의 색상을 이용해서 화려한 잔치를 묘사하고 있다.
치마부에(이탈리아, 시디 니 페포, 1280년 경)
6명의 천사로 둘러싸인 성모마리아와 아기예수를 그린 이 작품은
이탈리아 피사의 성 프란체스코 성당의 제단에 있던 것을
1811년 나폴레옹이 프랑스로 가져온 것으로 루브르가 소장하고 있는 13세기의 대표적인 서양화이다.
이아생트 리고의 ‘루이 14세의 초상화(프랑스, 1701)’
절대권력의 상징이던 태양왕 루이 14세는 63세가 되던 해, 자신의 손자이며 스페인 왕이기도 한
필립 5세에게 보내기 위해 이 초상화를 그리게 했으나, 생각을 바꿔 베르사이유 궁에 보관하였다.
쿠션 위의 왕관과 판결권을 상징하는 손, 담비모피를 안감으로 한 백합문양의 망토,
사를르마뉴 대제의 검과 앙리 4세의 지팡이 등은 모두 왕권을 상징한다.
왕실과 귀족들의 초상화가로 유명했던 이아생트는 이 그림으로 인하여 유럽에서 명성을 떨치게 되었으며
많은 귀족들이 그의 모델이 되고 싶어 했다.
외젠 들라크루아의 ‘알제리의 여인들’
들라크루아가 알제리아에 체류하던 시기에 받은 영감을 토대로하여 그린 그림이다.
그 후 그의 그림에는 동방의 삶과 관련된 내용이 많이 등장하는데,
말이나 사자, 악사들, 아랍의 희극배우 등이 등장한다.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의 ‘터키 욕탕’
이 작품은 만년에 이른 앵그르가 50여년간 그려온 목욕하는 여인들을 기초로 하여
그 아름다움을 집대성한 작품이다.
그는 같은 모델을 여러 방향에서 관찰함으로서 신체의 곡선을 완벽하게 묘사했고 한다.
나폴레옹 대관식
1804년 12월 2일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있었던 나폴레옹이 프랑스 황제로 등극하는 장면을 그린
다비드의 대작이다.
가톨릭 교황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나폴레옹은 교황청과 화해하면서 대관식을 갖기로 했을 때, 교황 비오 7세는 나폴레옹을
자신의 앞에 무릎꿀리고 제관을 수여하면 교황의 권위가 높아질 것으로 생각 하였다.
그런데 대관식에서 교황이 관을 씌우려하자 나폴레옹은 관을 두손으로 받아들고 군중 앞에서 자신이 직접
황제관을 썼다.
그리고는 조세핀의 머리에 자신이 황후의 관을 씌워 주었다.
나폴레옹이 막강한 힘을 과시하고, 교황은 한사람의 축하객으로 체면이 손상되는 순간이다.
나폴레옹 대관식은 가로 931cm, 세로 610cm 크기의 대작으로 유명한데,
이 그림을 그린 다비드는 19세기 초 프랑스의 대표적인 화가이다.
1806년 경에 그린 이 그림에서 다비드는 200여명의 인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나폴레옹이 왕비인 조세핀에게 왕관을 씌워주는 장면을 선택하였다.
그림의 크기 뿐만 아니라 대관식의 즐거움과 엄숙함이 배어있는 걸작으로 꼽고 있다.
나폴레옹 보다 6세나 많고 아이까지 있던 조세핀, 그림에서는 나폴레옹의 부탁으로 젊고 아름답게 그려져 있다.
그리고 나폴레옹이 머리에 쓰고 있는 것은, 바로 로마의 황제가 쓰던 월계관으로 그렸다.
다비드는 처음 베르사이유 궁전에 나폴레옹 대관식을 그렸는데,
나폴레옹으로부터 정말 잘 그린 그림라는 칭찬을 받자 루부르 박물관에 똑같은 그림을 또 하나 그렸다.
나폴레옹의 뒤에 앉아 있는 교황, 그림에서는 오른 손을 들어 승인해 주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200여 명이 등장하는 이 그림에서 오른쪽 앞에는 나폴레옹의 근위병들이 서 있고,
중앙 정면에는 주교들이 앉아 있다. 조세핀의 뒤에는 두명의 여동생들이 있고,
나폴레옹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조세핀의 어머니도 뒤에 조그맣게 그려 넣었다.
레카미에 부인의 초상
레카미에 부인은 당시 파리의 사교계에서 아주 인기가 높은 여인이었다.
그녀가 입고있는 하얀 드레스와 머리띠는 그 당시 유행하고 있었다.
그랑드 오달리스크(엥그르, 1814년)
채색주의에 대항하는 화가의 수장이었던 엥그르는 오리엔탈풍의 규방을 여상시키는 이 그림을 통해
기묘한 육감미를 추상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여인의 나체를 실제의 모습보다는 곡선을 강조하여
매끄럽게 표현하여 이 인물에 대한 신비감을 느끼게 한다.
사르다나팔르의 죽음(외젠느 들라크르와)
테오도르 제리코의 메두사의 뗏목(1819년작)
이 그림은 끔찍한 장면을 묘사하여 논란이 되었던 제리코의 걸작으로,
491*716cm의 거대한 화폭에 묘사한 사실주의 작품이다.
1816년 세네갈 해상에서 선장의 무능력으로 메두사호가 군함 메두사호가 항해도중 난파되어
선원과 승객 149명 중 15명만이 살아남은 실화를 그린 것이다.
왼쪽 하단에는 상체만 남은 시체가 보이고, 그 옆에 있는 사람은 죽은 아들을(먹히지 않도록) 지키고 있다.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들라크루와, 1831)
1830년 7월 시민들의 혁명으로 3일간의 시가전을 치른 끝에 샤를르 10세 왕가가 무너진다.
이 시민봉기를 기념하기 위해 그린 그림에서 들라크루와는 시민군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을
여성으로 표현하였다. 자유의 여신은 삼색기를 흔들며 파리의 시민들과 함께 바리케이트 전을 펼쳤다.
프랑스 7월혁명 당시 왕정복고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3일간의 시가전을 치른 끝에
부르봉 왕조를 무너뜨리고 루이 필리프를 국왕으로 맞이했던 것을 주제로 한 그림이다.
자파의 페스트 환자를 위문하는 나폴레옹(앙투완 장 그로, 1804)
페스트로 고통을 겪는 병사들에 대한 나폴레옹의 영웅정신을 보여주기 위하여 선전용으로 그린 작품이다.
1799년 시리아 작전을 내용으로 한 이 작품에서는 중동의 건축물을 잘 묘사하고 있다.
첫댓글 회화쪽에선 모나리자 하나만 봐도 배가 부르지만.. 나머지 작품들도 문외한인 내가 봐도 감탄이 절로 나오는 걸작들 이구나. 오르세 미술관도 소개할 예정인가? 개인적으론 거기서 보는 인상파쪽 작품들이 훨씬 흥미롭더만..
오르세 미술관에 갔던 얘기도 물론 해야지. 오르세 미술관, 생각보다 대단하더라. 인상파 작품들이 많았는데, 재미있게 보고 왔지.
사진을 못 찍게하는데 잘도 찍었다. 난 순진해서 엄두도 못 냈는데../빠리에서 진짜 예술품을 보려면 개인이 소장한 미술품을 봐야되, 정부에서 일년에 몇주씩 의무적으로
권장함. Open House Schedule 이 신문에 나오거든.....
몰래 찍으려면, 우선 플래쉬를 OFF로 하고, 셧터 소리가 안나게 만들고, 눈치껏 신속한 동작으로, 내가 사진을 빨리 찍는 것은 그것이 몸에 배어서 그런가.
그런데, 엄격히 통제하는 곳이 몇군데 있는데, 특히 스위스 비엔나의 쉔부른 궁전(두번이나 가서 모두 뜻을 이루지 못함), 스페인 프라도 미술관이 심하다.
용환이 사진찍는 솜씨는, 주머니 깊숙히 있는 카메라를 왼 손으로 꺼내면서 스윗치를 On으로 눌러놓고 두 발을 '찔러총' 자세의 스탠스로 상체를 약간 앞으로 하여 고정하면서 두 손으로 카메라를 눈에서 약 40cm 앞에 순간적으로 조준선 정렬로 균형을 잡아 멈춤과 동시에 정조준을 확인하여 셔터를 흔들리지 않도록 가볍게 누르고 즉시 왼 손으로 카메라를 다시 주머니에 넣는데 이 모든 동작이 1초 이내에 이루어 진다. 주변 사람들은 그가 뭘 했는지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한다. 아란랏드나 오디머피 보다 빠르지.
용환아, 넌 터키쪽은 안 가냐? 내가 가고 싶은 곳인데 난 이민생활속에 얽매여 뜻을 이루기 힘들 것 같다. 터키 서해안에 옛 그리스의 고대도시 MILETUS 의 유적이 있는데 그 곳을 네가 기회 있으면 한 번 가 봐라. 터키가 옛날엔 그리스 영토였으며 그리스의 유명한 철학자 탈레스(Thales of Miletus)가 밀레투스 사람이기도 하다. 그리스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는 가 보진 못했어도 사진도 많이 봤고 그 유적의 배치도도 여러 번 그려 봐서 다 외우고 있으므로 이젠 가 보고 싶은 맘이 없어졌으나, 밀레투스는 내겐 신비의 도시이다. / 모나리자 상은 몇 년 전 1834년에 찍은 흑백사진을 액자에 넣어 임 익재가 내게 줘서 식당벽에 걸려 있다.
터키는 작년부터 가려고 했는데, 다른지역에 밀려서, 내년에는 꼭 가려고 한다. 그리스도 함께 갈지는 생각중이고(그리스는 대부분의 유적들이 허물어지고 흔적만 남아서).
모나리자 그림은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몰려 보호차원에서 지금은 유리박스 안에 넣어두고 가까이 못오도록 멀리 밧줄로 경계선을 만들어 놓았다. 그래서 이것은 몇년전에 갔던 사진으로 대체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