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 에이브러햄 링컨의 게티스버그 연설(1863년 11월19일)
지금으로부터 87년 전 우리의 선조들은 이 대륙에서 자유 속에 잉태되고 萬人은 모두 평등하게 창조되었다는 명제에
봉헌된 한 새로운 나라를 탄생시켰습니다.
우리는 지금 거대한 內戰(내전)에 휩싸여 있고 우리 선조들 이 세운 나라가, 아니 그렇게 잉태되고 그 렇게 봉헌된 어떤
나라가, 과연 이 지상에 오랫동안 존재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시험 받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모인 이 자리 는 남군과 북군 사이에 큰 싸움이 벌어졌던 곳입니다. 우리는 이 나라를 살리기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들에게 마지막 안식처가 될 수 있도록 그 싸움터의 땅 한 뙈기를 헌납하고자 여기 왔습니다.
우리의 이 행위 는 너무도 마땅하고 적절한 것입니다. 그러나 더 큰 의미에서, 이 땅을 봉헌하고 祝聖(축성)하며 신성하게
하는 자는 우리 가 아닙니다. 여기 목숨 바쳐 싸웠던 그 용감한 사람들, 戰死者(전사자) 혹은 생존자 들이, 이미 이곳을 신
성한 땅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우리로서는 거기 더 보태고 뺄 것 이 없습니다.
세계는 오늘 우리가 여기 모여 무슨 말을 했는가를 별로 주목하지도, 오래 기억하지도 않겠지만 그 용감한 사람 들이 여
기서 수행한 일이 어떤 것이었던가 는 결코 잊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이 싸워 서 그토록 고결하게 전진시킨, 그러나 未完(미완) 으로 남긴 일을 수행하는데 헌납되어야 하는 것은 오히려
우리들 살아 있는 자들입니 다.
우리 앞에 남겨진 그 未完의 큰 과업을 다 하기 위해 지금 여기 이곳에 바쳐져야 하는 것은 우리들 자신입니다.
우리는 그 명예롭게 죽어간 이들로부터 더 큰 헌신의 힘을 얻어 그들이 마지막 신명을 다 바쳐 지키고자 한 大義(대의)에
우리 자신을 봉헌하고, 그들이 헛되이 죽어가지 않았다는 것을 굳게 굳게 다짐합니다.
신의 가호 아래 이 나라는 새로운 자유의 탄생을 보게 될 것이며, 인민의, 인민에 의한, 인민을 위한 정부는 이 지상에서
결코 사라지지 않 을 것입니다.
<에이브러햄 링컨의 게티스버그 연설(1863년 11월19일)>
★지금으로부터 87년 전 우리의 선조들은 이 대륙에서 자유 속에 잉태되고, 만인은 모두 평등하게 창조되었다는 명제에
봉헌된 한 새로운 나라를 탄생시켰습니다. 우리는 지금 거대한 내전에 휩싸여 있고 우리 선조들 이 세운 나라가, 아니
그렇게 잉태되고 그렇게 봉헌된 어떤 나라가, 과연 이 지상에 오랫동안 존재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시험 받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모인 이 자리는 남군과 북군 사이에 큰 싸움이 벌어졌던 곳입니다. 우리는 이 나라를 살리기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들에게 마지막 안식처가 될 수 있도록 그 싸움터의 땅 한 뙈기를 헌납하고자 여기 왔습니다. 우리의 이 행위
는 너무도 마땅하고 적절한 것입니다. 그러나 더 큰 의미에서, 이 땅을 봉헌하고 축성하며 신성하게 하는 자는 우리가
아닙니다. 여기 목숨 바쳐 싸웠던 그 용감한 사람들, 전사자 혹은 생존자 들이, 이미 이곳을 신성한 땅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우리로서는 거기 더 보태고 뺄 것 이 없습니다. 세계는 오늘 우리가 여기 모여 무슨 말을 했는가를 별로 주목하지도, 오래
기억하지도 않겠지만 그 용감한 사람 들이 여기서 수행한 일이 어떤 것이었던가는 결코 잊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이 싸워서
그토록 고결하게 전진시킨, 그러나 미완으로 남긴 일을 수행하는 데 헌납되어야 하는 것은 오히려 우리들 살아 있는 자들입
니다. 우리 앞에 남겨진 그 미완의 큰 과업을 다하기 위해 지금 여기 이곳에 바쳐져야 하는 것은 우리들 자신입니다. 우리는
그 명예롭게 죽어간 이들로부터 더 큰 헌신의 힘을 얻어 그들이 마지막 신명을 다 바쳐 지키고자 한 대의에 우리 자신을 봉
헌하고, 그들이 헛되이 죽어가지 않았다는 것을 굳게 굳게 다짐합니다. 신의 가호 아래 이 나라는 새로운 자유의 탄생을 보
게 될 것이며, 인민의, 인민에 의한, 인민을 위한 정부는 이 지상에서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해설: 불과 266 단어로 된 이 짧은 연설문이 유명한 것은 그 짧은 길이 때문이 아니라 미국이라는 나라의 명분을 몇 마디
말 속에 간결하게 압축하고 미국사의 대사건인 남북전쟁의 의미, 자유의 가치, 민주정부의 원칙을 그 핵심에서 포착 제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 지도자의 연설치고 이처럼 간결하면서도 강력하고 쉬운 말을 쓰면서 도 감동적일 수 있었던 예는
거의 없다. 나 자렛 예수의 「산상수훈」에 곧잘 비교되는 그 간결성과 간명성, 그리고 감동적 효과 때문에 이 연설은 미국
역사를 지탱한 원 칙과 비전의 원천이자 항구한 준거의 틀이 되었고 정치만이 아니라 문학사적으로도 긴 생명의 고전적
텍스트가 되어 있다. 연설 전편을 통해 가장 빈번히 사용된 핵심 어는 「봉헌」(dedication)이라는 어휘이다 . 원문에서는 이
「봉헌」이라는 핵심어가 명사, 동사, 형용사의 형태로 모두 여섯 번 사용되고, 연관어 「헌신」(devotion)도 두 번 쓰이고 있다.
미국이라는 나라를 『 자유 속에 잉태되고, 만인은 모두 평등하게 창조되었다는 명제에 봉헌된 나라』라고 규정한 첫 문장은
미국 「독립선언서」에 천명된 건국의 의미와 이상을 다시 한 줄로 요약하고 「봉헌」의 첫 번째 의미를 제시 한다. 링컨의 이
언명은 이후 미국인들에게 『나는 민주주의의 명제에 봉헌되어 있는가?』라는 질문이 되어 부단히, 조석으로, 되돌아온다.
그런데 그날 사람들이 게티스버그에 모인 것은 그 싸움터의 한 조각을 전몰자들에게 「봉헌-헌납」 하기 위해서이다. 이것이 「봉헌」의 두 번째 의미이다. 그러나 이 대목에서부터 연설은 절묘한 역전의 논리를 발휘하여 「봉헌」의 세 번째 의미로 넘어간다. 그 땅은 이미 사자들이 목숨을 바쳐 자유와 민주주의 의 제단에 신성하게 봉헌한 곳이므로, 묘지 헌납을 위해 모인 자들이 해야 할 것은 그 들 자신을 미국 건국의 이상에 「봉헌」하 여 사자들이 미완으로 남긴 과제를 완수하는 일이다--이것이 그 역전 논리가 제시하는 「봉헌」의 세 번째 의미이다. 이 연설은 마치 한 편의 시처럼 탄생(birth), 죽음(death), 재생(rebirth)이라는 상징적 은유 구조를 갖고 있다. 「탄생」의 은유적 이미지는 미국 건국을 「잉태」(co nceived)와 「출산」(bring forth)이라는 말로 표현한 첫 줄에 나타난다. 「죽음」의 이미지는 게티스버그에서 「목숨을 바친」 사람들, 「명예로이 죽어간 사람들」과 그들을 위한 「마지막 안식처」 같은 말들로 표현되고, 여기에는 그들을 죽게 한 것이 미국의 건국 이상에 가해진 시련과 죽음의 유혹이라는 암시도 들어 있다. 「재생」의 이미지는 사자를 위한 땅의 축성과 헌납( 이는 정화/부활의 기원의식과도 같다), 신의 가호 아래 미국이 「새로운 자유의 탄생 」을 다시 보게 될 것이라는 구절, 그리고 마지막 절--인민의, 인민에 의한, 인민을 위한 정부는
이 지상에서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불멸성의 다짐 속에 나타나 있다..
● 연설의 배경
미국 남북전쟁(1861∼65)이 진행되고 있던 1863년 11월19일, 링컨은 전쟁의 전환점이 된 혈전지 게티스버그(펜실베이니
아 주)를 방문하고 전몰자 국립묘지 봉헌식에 참석한다. 그 식전에서 그는 불과 2분간의 짧은 연설을 행하는데, 그것이
이 유명한 「게티스버그 연설」이다. 원문으로 총 266단어의 이 연설문은 다음날 게티스버그 신문에 실리고 미국사의 기
념비적 텍스트의 하나로 전해지게 된다.
이 연설문은 많은 일화를 갖고 있다. 링컨에 앞서 두 시간 연설했던 웅변가 에드워드 에버렛(Edward Everett)이 『나는 두
시간 연설했고 당신은 2분 간 연설했습니다. 그러나 나의 두 시간 연설이 묘지 봉헌식의 의미를 당신의 2분 연설처럼
그렇게 잘 포착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라고 탄식했다는 것도 그런 일화의 하나이다.
링컨이 게티스버그로 가는 열차 안에서 편지 봉투 겉면에 서둘러 쓴 것이 이 연설문이라는 이야기도 널리 퍼져 있다.
그러나 이것은 일화이기보다는 만들어진 전설이다. 링컨이 신임했던 기자 노아 브룩스(Noah Brooks)에 따르면 봉헌식
며칠 전 백악관 집무실에서 대통령이 『연설문을 초안했으나 아직 완성하지는 못했다』고 말했다 한다. 링컨의 성격, 연
설문이 지닌 고도의 짜임새, 어휘 선택과 수사적(修辭的) 구도 등을 보면 이 연설문은 한 순간의 영감 어린 작품이기보
다는 링컨이 상당한 시간을 바쳐 조심스레 작성한 문건이라는 판단을 갖게 한다.
이 연설은 게티즈버그 전투가 있은 후 4개월 후에 전장에 세워진, 당시 숨졌던 병사를 위한 국립 묘지 봉헌식에서 이루
어졌는데, 미국 역사상 가장 많이 인용된 연설 중 하나이자, 가장 위대한 연설로 손꼽힌다.
링컨이 신중히 초안을 짠 이 연설은 당시 두 번째 연설로 거행되었다. 그 내용은 300 단어가 채 안되며 연설은 불과 2~3분 만에 끝이 났다. 하지만 그 내용에는 미합중국 독립선언서에 나타나난 인간 평등의 원칙과, 남북전쟁이 단순한 결합이 아닌 모든 국민들에게 참 평등을 가져다 줄 "자유의 재탄생"을 위한 투쟁임을 상기시키는 내용이 들어갔다.
이젠 상징이 되어버린 "87년 전"(Fourscore and seven years ago)으로 시작되는 연설에서 링컨은, 이 봉헌식을 단순히 게티즈버그 전투에서 숨진 병사들을 위한 것뿐만 아니라, "인민의, 인민에 의한, 인민을 위한, 정부가 이 땅에서 사라지지 않도록"(government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 shall not perish from the earth) 싸우고 있는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헌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연설의 이러한 역사적 위치와 관심에도 불구하고, 정확한 연설 내용에 대해선 논란이 많다. 게티즈버그 연설의 필사본은 5개가 알려져 있는데, 각각은 여러 가지 세부 사항에서 차이가 있기 때문에 연설의 전문은 추측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게티즈버그 연설은 웹스터의 말을 링컨이 인용한 것이다
링컨에 대한 왜곡 2편
- 국민을 위해 만들고, 국민에 의해 만들어진, 국민을 위해 책임을 지는 정부가 되어야 한다. - 웹스터 Daniel Webster, 미국 정치"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는 이 지구에서 결코 멸망하지 않을 것이다."
미국 게티즈버그에서 링컨 대통령이 한 2분 연설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연설 중의 하나로 꼽히고 있다. 민주 정치의 이상을 간결하고 명확하게 표현한 것으로서 흔히 인용되는 것이 바로 링컨의 게티즈버그 연설이다. 그러나 이 말은 링컨이 순수하게 지어낸 말이 아니다.
1863년 11월 18일, 백악관을 떠나기 전 링컨의 머리 속에는 게티즈버그에서 할 연설문이 다 정리되어 있었고, 마지막 손질만이 남아 있었다. 링컨은 그 어느 때보다도 연설문의 단어를 신중하게 선택했다. 긴 말보다는 짧은 말을, 라틴어에서 유래한 말보다는 앵글로 색슨 언어에서 유래한 말을 찾았다. 링컨은 남북전쟁 당시 최대 격전지였던 게티즈버그 봉헌식의 의미를 잘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혹자는 이 날의 연설이 즉흥적으로 이루어졌다고 하지만, 링컨은 봉헌위원회 회장에게 초청을 받았을 때부터 이 날의 연설을 치밀하게 준비해왔다.
(링컨은 이 연설을 매우 중요하게 여겨 게티즈버그 묘지의 조경을 맡은 윌리엄 썬더스를 백악관으로 불러 전투 당시의 상황을 상세히 전해들었다. 또한 실제로 한번도 가보지 못한 게티즈버그의 지형을 자세히 묻고 의논했다.)
링컨은 연설 전날 밤 11시쯤 연설문 초안을 완성하자 다른 집에서 묵고 있던 시워드 국무장관을 찾아가 초안을 보여주고는 한시간 동안 조언을 들었을 정도였다.
(시워드(William Seward)는 훗날 러시아로부터 알래스카를 사들인 사람으로, 한때 링컨과 라이벌이었던 정치가였으나 인격적으로 그에게 감복했던 인물이다.)
링컨의 연설문을 들여다보면, 링컨 역시 이 연설 속에서 '그'라는 표현이 말해주듯이 스스로 이 말을 인용하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그렇다면 이 유명한 말은 어디에서 인용한 것일까?
1861년 링컨의 메시지 - '국민의 정부, 국민을 위한 민주주의'
이 말은 1380년 출판된 영국의 종교개혁가 존 윈크리프의 구약성서 서문에 최초로 등장한 뒤 미국의 정치가 다니엘 웹스터(Daniel Webster)에 의해 소개되었다. 링컨은 이 말을 웹스터의 말에서 인용한 것이다.
링컨은 정치에 입문했을 때부터 웹스터를 무척 존경하고 있었다. 웹스터는 보호관세 제정, 운송시설 개발 등을 통해 기업을 장려하고 국가 자원을 개발해야 한다고 주장한 인물이다.
링컨은 일리노이 주와 서부 전체가 경제 개발에 연방정부의 원조를 절실히 필요로 하고 있었기 때문에 웹스터가 속한 휘그당에 입당하기도 했다. 또 다른 링컨 연구가는 이 말이 시어도어 파카의 설교문에서 민주주의를 '모든 사람의 정부, 모든 사람에 의한 정부, 모든 사람을 위한 정부'라고 지적한 것을 링컨이 인용한 것으로 지적하기도 한다. 링컨도 게티즈버그 연설이 있기 2년 전인 1861년, 국회에 보낸 메시지에서 미합중국을 '국민의 정부, 국민을 위한 민주주의'라는 구절로 표시한적이 있다.
-그 외의 연설문
● 분열된 집 의 연설
해설: 1858년 당시까지도 무명이었던 에이브러햄 링컨(Abraham Lincoln, 1809~1865)은 당대의 유명한 정치가인 민주당의 스티븐 더글러스에 맞서 일리노이 주 공화당에서 연방 상원 의원후보로 지명되었다. 더글러스는 드레드 스콧 사건 판결을 지지하며 노예제 옹호론자의 지원을 호소하여쏙, 또한 새로운 영토에서 노예제의 실시 여부는 주민 스스로의 의사에 따라 결정할 수 있다는 개척지 정착민의 주권 을 내세워 노예제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지지를 얻고자 했다. 1858년 공화당 당 대회에서 링컨은 드레드 스콧 사건판결에 대한 강력한 반대를 표명하고 노예제 문제가 자칫 연방의 분열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요지의 연설을 하였다.
노예제에 대한 논의를 종식시킨다는 명백한 목적과 확고한 약속으로 하나의 정책이 시작된 지 어느덧 5년이 지났습니다.
그러나 그 논의는 끝나지도 않았고 오히려 계속 증대되고 있습니다. 나의 생각으로는 위기가 도래할 때까지도 그 논의는
끝나지 않으리라고 봅니다. 둘로 나뉘어 서로 적대하는 집안은 결코 유지될 수 없습니다. 나는 이 정부가 절반은 노예제를
유지하고, 절반은 자유로운 채 영속적으로 유지될 수는 없다고 믿습니다. 나는 연방이 해체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나는
집이 무너지는 것도 기대하지 않습니다. 나는 다만 이 분열이 끝나기만을 바랍니다. 그것만이 모두가 하나되는 길입니다.
네브래스카 법안이 의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동안, 어느 흑인의 자유 문제와 관련된 한 법률사건이 미주리 주 연방 순회
재판소에서 심의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건은 흑인의 소유주가 그를 자발적으로 먼저 자유주에 데리고 갔다가 다음
에는 의회의 노예제 금지 조치가 적용되는 어느 준주로 데리고 가서 가는곳마다 그를 오랫동안 노예로 부리고 있었다는
이유로 인해 일어난 사건이었습니다. 그리고 네브래스카 법안과 그 소송은 모두 동일한 시기인 1854년 5월에 결정되었습
니다. 그 흑인의 이름은 드레드 스콧 이었고, 그 이름은 이제그 소송에서 최종적으로 결정된 판례의 이름이 되었습니다.
그 법률 사건은 당시 차기 대통령 선거 이전에 미국 대법원에 상고되어 논란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그러나 그 사건의 판
결은 대통령 선거 이후로 연기되었습니다. 그리고 선거 이전에 트럼벌 상원의원은 상원에서 네브래스카 법안의 주제안자
에게 준주의 주민들이 준주에서 노예제를 합헌적으로 배제할 수 있는지에 대해 대답해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그것은 대법원에서 결정할 문제이다. 라고.
선거가 다가왔습니다. 부캐넌씨가 당선되었고, 늘 그렇듯이 공약은 지켜졌습니다. 이것이 두번째 승리입니다. 대통령 취임
식은 다가왔지만 법원의 판결은 여전히 없었습니다. 그러나 후임 대통령은 그의 취임 연설에서 국민들에게 판결이 어떻게
나든지간에 곧 있게 될 판결에 따를 것을 열심히 권했습니다. 그리고 며칠 내로 판결이 내려졌습니다.
네브래스카 법안의 그 유명한 제안자는 때를 놓치지 않고 이 수도에서 드레드 스콧 판결을 찬성하는 연설의 기회를 잡아,
그 판결에 반대하는 모든 사람들을 격렬히 비난했습니다. 신임 대통령 역시 때를 놓치지 않고 실리맨 교수에서 보내는 서
신을 발표하는 기회를 잡아 드레드 스콧 판결을 격찬하고 단호한 판단을 내려 그 이전에 이와는 다른 견해가 있었다는 데
놀라움을 표시했습니다.
드레드 스콧 판결은 현재의 진행 사태를 보면, 더글러스 상원 의원의 무관심 정책과 결합해 몇가지 점에서 하나의 장치를
구성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장치가 작동하고 있는 점을 몇 개 들어 봅니다.
첫째, 아프리카와 같은 곳에서 수입된 흑인 노예와 그러한 노예의 후손들은 미국 헌법에 사용된 문구로 보면 어느 누구도
어느 주의 시민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각 주의 시민들은 여러 주의 시민들이 누리는 모든 특권과 면책권을 향
유할 권리가 있다 라는 미국 헌법의 조항이 지니는 이점을 어떠한 경우든 흑인들로부터 박탁하기 위한 것입니다.
둘째, 미국 헌법에 의거하여 연방 의회나 준주의 입법부는 미국 영토로부터 노예제를 배제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각 개인들이 재산으로서의 노예를 상실당할 위험 없이 영토를 노예들로 채우고, 따라서 한없는 미래까지 그 제도를 영속시
킬 기회를 드높이기 위해 만들어진 것입니다.
셋째, 노예 소유주의 의사에 반하여, 자유주에서 실제 노예 상태에 있는 한 흑인을 보유하고 있을 경우, 그의 자유 여부는
미국의 법원이 판정할 수 없으며, 그 흑인의 주인에 의해 강제로 노예 상태로 되돌려진 노예주의 법원에 그 판정이 맡겨
지게 될 것입니다.
2년 전에 공화당은 130만 이상의 당원을 모이게 했습니다. 외부의 상황이 전적으로 우리에게 불리했지만, 오로지 공동의
위협에 대항해야 한다는 충동심 때문에 그 많은 당원이 모인 것입니다. 서로 생소하고 의견도 맞지 않고, 심지어는 적대적
이기까지 한 여러 성분의 사람들을 사방으로부터 모아서, 규율이 있고 거만하고 방종하기까지 한 적의 지속적인 포화 밑
에서 대열을 정비하고 철저하게 싸웠던 것입니다. 그 동안 우리는 용감히 싸워왔는데 이제 그 동일한 적이 동요하고 사이
가 갈라지고 호전적으로 나오고 있는 이때 망설여야 합니까? 결과는 너무도 명백합니다. 우리는 싸움에 결코 지지 않을 것
입니다. 현명한 판단이 우리의 승리를 촉진시킬 것입니다. 설사 실수가 승리를 늦추게 할지는 몰라도 그러나 조만간 승리
를 반드시 올 것입니다.
● 노예해방 선언
해설: 남북 전쟁이 일어난 뒤 1년 3개월이 지난 1862년 7월 22일에 링컨 대통령은 그의 각료에게 역사적인 노예 해방
선언의 초안을 낭독하였다. 이때 시워드 국무장관은 군사적 승리가 확정될 때까지 이를 선포하지 말자고 제의하였다.
그해 9월 앤티탬에서 북군이 승리하자 링컨은 이 때를 노예 해방 선언의 기회로 잡았다. 그리하여 9월 22일에 제 2초안
을 각료에게 낭독하였고, 이의 수정안을 예비 선언으로 발표하였다. 1863년 1월 1일 정식 노예 해방 선언문이 온 세계에
대하여 발표되었다. 그러나 1862년 9월22일 링컨이 선포한 노예 해방령은 미국의 모든 노예를 해방한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1863년 1월 1일을 기하여 북부에 계속 저항하는 남부 지역의 모든 노예를 해방시킨다는 것이었으므로 선포
당시에는 사실상 이 선포에 의해 단 한명의 노예도 해방되지 않았다. 그저 이 해방령으로 남부에서의 북군의 점령 지
역이 확대되어 나가는 데 따라 북군의 사령관이 그 지역 내의 노예를 해방시킬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은 것뿐이었다.
한편 북부에 잔류한 노예주의 노예는 이 해방령의 대상이 안되었다. 그러므로 전쟁이 끝나기 전 1865년 1월에 북부의
연방 의회는 노예 제도를 전면적으로 금지하는 수정 헌법 13조를 통과시켜 전후인 1865년 12월 6일 각 주의 비준을 받
았다. 비록 선포 당시 단 한 명의 노예도 해방되지 않았지만, 이 해방령은 당시 남부쪽으로 기울어져 가던 유럽의 여론,
특히 영국의 여론에 지대한 영향을 미쳐, 노예 제도를 옹호하고 있는 남부를 승인한다는 일을 불가능하게 하였다. 결국
이 선포는 전후의 전면적노예 해방을 약속하였다는 점에 큰 의의가 있다.
1862년 9월 22일을 기하여 미국 대통령은 다음과 같은 내용의 선언문을 발표하였다.
현재 미국에 대하여 반란 상태에 있는 주 또는 주의 일부의 노예들은 1863년 1월 1일 이후부터 영원히 자유의 몸이 될
것이다. 육해군 당국을 포함하여 미국의 행정부는 그들의 자유를 인정하고 지켜줄 것이며, 그들이 진정한 자유를 얻고자
노력하는 데 어떠한 제약도 가하지 않을 것이다. 미국 행정부는 상술한 1월 1일에 여전히 미국에 대하여 반란 상태에 있
는 주들과 주의 일부 지역이 있다면 이들 지역을 선포에 의해 지정할 것이다. 그리고 그날까지 주 또는 주민 유권자의
과반수 이상이 투표하여 선출한 대의원들을 성의를 가지고 미국 의회에 파견하고 있다면 이를 뒤엎을 만한 다른 증언이
없는 한, 그 주와 주민은 미국에 대하여 반란상태에 있지 않은 것으로 간주할 것이다.
그러므로 미국의 대통령인 나, 에이브러햄 링컨은 미국 정부의 권위에 대한 실제 무장 반란시에 미국 육해군 총사령관으
로서 부여된 권한에 의거하여, 그리고 이 반란을 진압하기 위한 적합하고 필요한 조치로서, 1863년 1월 1일부터 그 이후
100일 동안, 미국에 대항해 반란 상태에 있는 다음과 같은 주와 주의 일부 지역을 반란주로 지명하는 바이다.
(반란주 및 지역의 명칭 생략)
상기 권한과 언급한 목적을 위하여, 나는 이상의 반란주로 지정된 주와 주의 일부 지역에서 노예로 있는 모든 사람은 이제
부터 자유의 몸이 될 것임을 선포한다. 그리고 육군과 해군 당국을 포함하여 미국의 행정부는 상기자들의 자유를 인정하고
유지할 것이다. 나는 자유가 선언된 상기의 노예들에게 자기 방어를 위해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모든 폭력 행위를 삼갈 것을 명한다. 그리고 그들에게 허용된 모든 경우에 적합한 임금을 벌기 위하여 출실히 노동할 것을 권유하는 바이다. 그리고 본인은 적합한 조건을 갖춘자는 미국 군대에 입대하여 요새, 진지 및 기타부서에 배치되고, 모든 종류의 선박에도 배치될 것임을
알리는 바이다. 그리고 진실로 정의를 위한 행위이며 군사상의 필요에 의하여 헌법에 의해 보증된 이 선언에 대하여 전능
하신 하나님의 은총과 인류의 신중한 판단이 함께 하기를 기원합니다.
링컨 기념관 /1915시작 1922 완공/연못 건너 국회의사당을 바라보고 있는 링컨동상 /워싱턴 D.C의 서쪽에 고대 그리스의
신전을 연상하다/그 옆에 한국전쟁기념관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