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남도 문화유산 답사 산행기
12월 1일
이날은 나의 직장이자 보금자리인 스포츠센타가 내부수리를 위해 15일간 휴무를 한다. 그런데 용케도 그것을 알고 남도 문화 유산 답사 산행을 하자는 친구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벽파 김형래다 오래전부터 계회했다는 그친구는 나의휴가가 절호의 기회라고 판단한 듯 아주 작정을 하고 나를 설득한다. 방랑기가 가득한 나로써는 마다할 수 없는 유혹 이었고 다소간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선에서 동의하고 출발하기로 했다. 첫째 목적지인 대둔산, 시간관계상 케이블카를 타고 중간까지 오르기로했다 시간은 30여분 밖에 없어서 였다. 몇 년전 등반을 한적이있어서 별 흥미는 없었지만 형래는 그게 아닌 듯 흥미있게 두리번 거린다. 계곡을 가로지르고 있는 철 흔들 다리 그리고 철사다리 그사이로 조망되는 풍경은 또하나의 예술작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아직도 남은 낙엽같은 단풍잎이 이곳이 가을 단풍이 흐드러지듯 했다는 것이 추측이 가능하다 조각같은 바위돌사이로 붉게 피어난 단풍잎은 아마도 수줍음 많이 타는 여인의 볼이 아닐까 생각한다. 흔들 다리 옆에서 연인인듯한 두사람 분위기 있게 놀지 못하고 방정을 떨고 있다. 산에서, 신성한 산에서, 내려오는 길에 케이블카에서 연세 지긋한 노부부는 연신 밖을 조망하며 감탄사를 연발한다. 그래. 인생의 황혼에서. 꿈같은 여행. 그것은 아마도 각지고 골지고 패여서 남에게 아름다움을 주는 대둔산의 조형미처럼 아름다워 보인다. 그렇다! 인생사 세상사 모두가 나의 희생이 없인 나의 인생이 환성 될 수 없듯이 대둔산의 꼭대기에 있는 개척탑처럼 끊임없이 개척하여 미지의 세계를 현실로 산이 주는 교훈을 또 깨우치며 하산한다. 다음 목적지인 내장산 ! 그곳을 위해 정읍으로 향했다. 정읍사의 고향 정읍. 모텔이라 불리우는 곳에 숙소를 정하고 주인아주머니가 추천해주는 한정식집으로 갔다. 비원. 멋스런 음악이 우리를 반긴다 일인분에 15000 하는 한정식 산해진미로 쐬주 몇병은 자빠트리고 숙소를 와서 잠을 청한다. 그런데 아뿔사! 내가 먼저 잠이 들었어야 할텐데 그만 그렇지 못했다. 이게 왠 일인가 뇌성벽력에 천지가 진동을 하는데, 그것은 바로 나의친구 코골이 소리 아닌가? 드드렁 드르렁 휴. 내 뱉을 듯 드러마시는 이친구 숨소리. 끊어질 듯 끊어질 듯 이어지는 이친구 코고는 소리에 나는 밤새 불침번만 섰다.
요란벅적 지근한 코골이도 어김없이 오는 새벽에 멈쳐섰다. 나의 휴대전화에 입력되어 있는 모닝콜이 울린 것이다 간단히 세수만 한 채 다음 목적지인 내장산을 찾아 나섰다. 붉게 떠어르는 아침햇살, 아마도 오늘 하루는 날씨가 좋을 것 같다.
내장산 입구에서 노부부가 하는 황토 식당에서 된장찌개에 아침을 먹는다. 남도는 어디를 가든 반찬은 10가지가 넘는다. 오늘 산행을 대비해 과하게 아침을 먹고 밥 한 공기에 갓김치를 사가지고 오늘의 채비를 한다. 정읍에서. 내장산까진 20여분 걸리는데 양쪽가로수는 온통 단풍나무 또 단풍나무다 정읍에서 내장사 까지 온통 단풍나무는 내장산의 단풍 위세를 안 보아도 짐작이 간다.
내장사까지 산책로도 타지역과 대비되는 대목이기도 하고 그 이유가 단풍 관광객을 끌여모으는 이유중에 이유라는 것은 분명하다 입구에서부터 범상치 않는 단풍나무들, 정비석선생은 금강기행에서 울울창창 이란 표현을 썼는데 정말 울울창창이다.
암자를 돌아서 구불구불 끊어질 듯 이어진 등산로는 업겹의 세월을 견디고 모진풍파를 견뎌 냈을 몇 아름은 될 단풍나무, 세월을 견디다 못해 누워 버린 나무는 미물인 나를 압도하고도 남는다. 암자를 휘감고 있는 대나무, 대나무숲 뒤로 펼쳐진 차밭, 산사의 화사한 아침 햇살과 너무 환상적이게 어울린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또 산사의 배려가 있다면 나는 암자의 추녀마루에 앉아 한잔의 차를 마시고 싶다, 그차 속에 어울어져 입 안 가득히 번져 나가는 한잔의 차를 마시고 싶다. 그리고 지나간 세월속에 옛여인을 생각하고 이루지 못한 것들을 상상하듯 정리하고 싶다. 풍경소리와 함께 먼 미지의 세계로 말이다. 서래봉으로 오르는길은 숨이 꽉 막혀온다. 또 코가 땅에 다을 듯 괴롭다. 그러나 뒤돌아 보면 온통 황홀경, 써레질할 때 써레발이 만들어 놓은듯한 고을, 고을, 고을, 그 고을은 이름의 탄생 배경배경과 함께 신비함을 더한다. 서래봉은 이름보다 더 아름다운 바위. 암벽은 귀암 괴석 그자체이다. 서래봉 약수에서 목을 축이고 물을 보충한뒤 또 발돋음을 계속 한다. 장쾌하게 조망되는 내장산 줄기 단풍이 들었을때를 상상하면 여기가 수채화의 스케치 상태가 아닌가 생각된다. 라면 두개 밥 한공기 이것이 우리가 가진 것이 다이지만 나는 마냥 행복하였노라. 내장의 품에 안겨져있는 나는 한없이 행복하였노라. 불출봉에서 쌕쌕이 들의 퍼레이드는 더욱더 즐겁게 했고 서래봉 불출봉 망해봉으로 이어지는 산줄기에서 조망되는 내장저수지 그리고 정읍시내, 점점히 밖혀있는 정겹기만 하다. 연주봉을 건너 까치봉밑에 있는 헬기장에서 점심을 한다. 라면 두봉지를 끌이고 식당에서 산 밥 한공기에 갓김치 약간, 술한병 그맛 형언이 않됨 이맛을 이백인들 평할수있는가? 두보인 논할수있을 것 인가? 아마도 먹어본자 만이 알수있을 밥맛, 그 밥맛을 위해 혹자는 산에 오른다는 사람도 있다.
어제 한정식에서 넘쳐나는 반찬과 산해진미도 오늘의 소박한 찬과 밥엔 견주질 못하니 이것은 무슨 이유 일까? 명확한 답을 뒤로 한 채 키친타올로 설거지를 확실하게 하고 산꾼의 생명인 먹은티를 남기지 않는다는 철칙을 뒤로한채 신성봉으로 향한다. 아마도 여기서 붉게 물든 단풍을, 서래봉 단풍을 감상한다면 감탄사 그자체 일 것이다. 동요에 나오는 것처럼 두손을 담그면 붉게 물들거 같고 손수건을 잠갔다 짜면 연분홍 물이 쏟아질 것 같다. 그 물에 사랑하는 그녀의 치마 폭을 물들였으면 하는 감상을 잠시해본다. 그 치마폭 향기또한 얼마나 진할까 하는 상상을 하며 쏟아져내리는 땀을 현실로 한 채 앞으로 또 앞으로 연자봉에 다 달았다. 산불관리를 하시는 한분을 만났다. 다섯시간 산행에 딱 두사람 서래봉에서 한사람 연자봉에서 한사람 평일이지만 너무 한산해 을씨년스럽기 까지한 산은 자연이 있기에 힘들어도 힘들줄 모르고 오르는가 보다. 연자봉에서 내장사로 내려오는 길을 택했다. 여기까지 와서 절집 구경을 않할수 없기에 말이다. 내려가는 온통 조각돌이다. 지장봉 소요산과 같이 날이 있는 돌로 가득한 내장산. 한시간 여를 내려와 내장사에 다 달았다. 고즈넉한 절집의 풍경은 어느 사찰과 다름이 없는 듯 하다. 특별히 국보가 있는것도 아니요 내세울만한 요사체도 없는데 내장산에 품격에 어울릴만큼 더도 덜도 아닌 그냥 그대로의 산사의 모습은 가볍게 내려 앉은 초겨울 풍경과 크게 다르지않게 내게 다가왔다. 특히 절집을 들어설때 자그마한 못은 다른 가람에선 볼수 없는 것이였다. 물고기가 없는 것이 을씨년스럽기 까지 하지만 마음을 정리하고 단정히 못을 본후 마음을 추수리고 절집을 들라는 배려인듯한 못, 웅장하게 크지도않고 작지도 않은 분위기에 딱맞은 못, 인공적으로 꾸미지도 않았는데 멋스럽게 자리잡고있는 못은 요즘 꾸미고 가꾸는 그런것과는 정말 차원틀리게 다가왔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를 더욱더 마음이끌리게 한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노랗다 못해 붉게 익어있는 소담스러운 감나무의 감이였다. 워낙 성스러운 산사에 있는 감이라 그런지 전혀사람의 손이 타지않은감나무, 단지 새들이떨구고 간 듯 , 몇 개 나뒹구는 떨어진 감만이 있을뿐, 자연 그데로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감나무 모습은 내가 미술에 문외안이기에 망정이지 스케치북에 스케치 하고싶은 마음이 절로든다, 같이간 친구는 연신 디지털폰으로 촬영을한다, 내가 쓸데없이 한마디 거둔다, 이사람아 마음에 담아, 그래야 진짜 작품이야 영원 불멸의 마음에, 알았어, 머슥한 친구를 보니 괜한말을 했나보다, 온통 디지털 세상인데 역행하는 말을 했으니말이다, 드문드문 일정한 배치를 한것같이 절집 사이사이에 있는 감나무가 시들어 떨어진 단풍과함께 뒤늦게온 래방객에게 아쉬움을 달래라고있는 듯 하다, 내장산 중봉들을 계곡으로 선을 그었을때 그 중심점에 내장사가있다 삥 둘러쳐진 병풍의 가운데있는 내장사는 분명 풍수적으로 무언가 있을 것같은 기분이다 탁 트여진 대웅보전 앞마당 하늘을향해 우뚝 서있는 돌탑. 업겁의 세월을 그리하고 있었을 산사, 모든이의 고민을 담고 그 고민을 해결하고자 했던 이들의 마음을 보는듯하게 래방객을 맞는다.
세월! 그 아스라함속에 온갖 번뇌를 갖고 그것을 해결코져 했던 이들의 흔적은 대웅보전 문지방에 그대로 나타난다 달코 또 달은문지방,천배 만배, 그보다 더했을 세월의 날들을 아는지 모르는지 서산의 해는 저물어만가고 나의발길도 이제는 속세를 떠나 현세로 가야할것같다. 내장사에서 내려오는 길가에도 드문드문 감나무가 있고 가끔씩 지나가는 관광객은 배낭을 메고 산행을한 우리가 이상한 듯 힐끔 쳐다본다. 내장사에서 주차장까진 잘 정돈된흙 길이다 조경을 한 듯 일정하게 심어진 나무가 거슬린다. 그곳에서 정읍 역까지 가기로했다 내장산에서 발원한 듯한 물줄기가 내장 저수지를 지나 정읍 시내로 내려오는 내를 만들었다. 인간들은 뚝을 만들고 뚝 위에 길을 만들었다 십수년은 된듯한 그길 양옆에 벚나무가 즐비하다 못해 너절하다 아마도 일제의 잔재 인듯한 벚나무는 양쪽 제방을 따라 내장산에서 어디까지인지 모를만큼 엄정스레 심어 놓았다 ,분명 벚꽃이 피면 축제다 뭐다 시작될것이고 또 술병깨나 나가 자빠질건 뻔하니 우리 민족만큼 먹고 마시는데 투자하는 것은 안 아까워 하는 민족도 없을듯하다. 양 제방에 피게될 벚꽃을 상상하며 다시금 와봤으면 하는맘에 다짐을하고역전앞 목욕탕에 몸을 담근다. 노곤하게 퍼져가는 따듯한 물살.피로가 풀려가는 것이 발가락부터 머리카락까지 잉크 번지듯 퍼진다. 적지않은 6시간 산행. 보고,느낀 것을 형언할길없어 부족 하지만 적어는 보지만 남에게 보일수 있을까 쑥스러움도 함께한다. 마사여구를 미려하게 펼쳐가는 작가를 볼때마다 그능력이 어디서 나올까 하는 궁금증이 오늘 또 한번든다. 어째든 산은 그곳에 있고 나는 그곳에가니 풍진에 찌든때를 털고 고답과 은일을 즐긴다는 나의 본래의 목표는 달성하듯 하다. 목욕후 내친구 군대 동기를 만나서 회포를 풀다. 왕년에 군대 안가본놈 있나,유난스레군시절 너스레를 떤다. 누가 해병대 아니랄까봐? 한번 해병응 영원한 해병이라나 .한번 산꾼은 영원한 산꾼이 오늘만큼은 더 어울린다 .소주 너댓병을 해치우고 그친구와 헤어진다. 숙소에와서 잠을자고 내일(3일) 해남 두륜산으로 가기로 다짐을 한번더 하고 잠자리에 든다. 모닝콜 소리에 놀라 기상. 눈꼽만 띠고 차에 시동을 건다. 목포를 지나 기사 식당에서 아침을 먹는다 .백반을 차려노았다 주는 듯 주문과 동시에 밥,국,찬15가지가 일사 불난하게 도착한다. 남도는 어딜가나 맛은죽여, 시장이 반찬 이라고 밥을 한공기 더 시켜먹고 두륜산으로 재촉에 재촉의 발길을 닫는다,두륜산 가느길 해남은 온통 초록의 배추밭이다.길 좌우로 펼쳐진 구릉의 반은 배추들이 일만 아니면 그 이상의배추들이 도열에 도열을 하고 있다 . 내친구 형래 왈. 야! 이젠 배추가 대관령이 아니라 해남이다. 난 누가 뭐래도 배추하면 무조건 해남이다. 그래, 나도 무조건 동의한다. 이 진풍경을 보지않은 사람은 의구심이 있을지 모르지만 눈으로 목도한이상 배추는,겨울 배추는 무조건 해남이야. 눈앞에 진풍경을 뒤로하고 그래도차는 두륜산으로 향한다. 어렴풋이 10시경 두륜산 입구에 도착했다,식당에서 밥을 어제와같이 사고 산행준비에 들어갔다. 어느산과 같이 입구는 그랬지만 드문드문 지다만 단풍잎이 몇 개씩 뭍어있어 남도의 날씨를 짐작케한다 조금 걷다보니 식당가를 지나 부도밭을 지나게된다,유명한 서산대사와 초의선사 부도와 부도비가 고색창연하다. 그 유명한 선승도 이끼낀 부도하나 남기고 떠났는데 왜? 세상을 아웅 다웅 무디끼다,서로를 헐뚯고있는지를......또 뻑쩍찌근한 묘비명과 묘를 남기는지 다시금 궁금하다, 새로 만든듯한 일주문을 지나 바로 좌측은 대흥사 우측은 표충사였다,말도많고 사연도 많은 대흥사 그렇게 와보고 싶었던 대흥사에도착했다,친구의 권유대로 산행을하고 내려와서 차근차근 구경을 하기로했다. 그래, 유명했던 당신들을 만나러 내 몇시간후쯤 올터이니 준비좀 단단히 하시게나,마음속으로 다짐을하고 등산로를 찿는다, 등산로는 표충사 왼편으로 있었다, 잠시 흙길을 겉는다, 그리고는 이내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한다,내키 3배쯤되는 산죽밭을 지나더니 내 발걸음이 멈쳐선 것이다, 동백! 말로만 듣던 동백이 그곳에 있었다, 조금도 아니고 무진장! 산전체가 온통 초록이다. 작은 나무도 아니고 10m는 가히넘는 장다리다, 이풍경을보고 누가 멈쳐서지 않으며 또 누가 감탄사를 연발하지 않겠는가? 정말,초겨울에 나의 고향에선 좀처럼 볼 수 없는 풍경에 우리 둘응 입을 벌리고 말았고 한동안 그럴 수밖에 없음에 이의가 없었다. 자세히보니 초록만이 아니었다 몽글 몽글 뭉쳐있는 꽃 봉우리는 친구의말을 그대로 빌자면 열댓살 먹은 여인의 젖가슴 바로 그것이란다. 예끼 이사람아 ! 이건 성숙한 여인의 젖가슴 몽우릴세 하고 우겨 보지만 소용없었다 그친구가 완강히 버티고 동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성질급한 봉우리는 일부는 피었고 대다수는 입을 오무린채 그때를 기다리는 듯 바람에 흔들거린다,동백을보고 미당 서정주 선생은 여러찬가를 사설 하셨지만 선운사 동백을 최고라고 강조 하신다. 그런데 그것은 그양반 고향이 게이니점수가 후해지지 않았을까? 동백꽃보러 선운사에 갔더니 동백은 지고없고 여인네 푸념섞인 육자백이에 막걸리 타령만 했다던 미당선생. 내가 그정도 풍류가 있으랴마는 잠시 그때의 풍경을 상상해본다. 문론 미당선생이 동백이 한창일때를 모를리야? 떨어진 동백꽃에 여인의 한섞인 육자백이가 더 듣고 싶으셨던게지, 그리고,어디 육자백이에 막걸 리가 빠지면 그게 무슨 맛이랴...풍류를 알고 멋을 아시는 미당선생이 어디 동백만 꽃이였겠는가 여염집 여인의 육자백이가 아닌 황진이 같은 여인의 육자백이 였을것이란건 불보듯 훤하다,같이간 일행이 있고 사회적 체통도 있고 ,그러하니 사실을 사실데로 말못할뿐 그때 분위기는 짐작하고도 남으리.....여하튼 동백은 피려고 하는데, 송곡 당신은 무얼하고 있는게오? 내려가면 탁배기 한잔 하시지않겠나?.....동백이 푸르른 산하를 장식하나 싶더니 이건또 웬일인가 동백이 끝나는 지점부터는 산죽이 장식하질 않는가? 우리 키만한 산죽이 동백 사이에 있더니만 내내 온산 중턱을 산죽으로 장식한다,특히 북암 이라는 암자는 산죽터널을 지나서 천지가 열리는 곳에 바로 자리잡고 있어서 더욱더 흥미롭다,바위에 새겨진 부처님의 오묘한 미소는 중생들의 번뇌를 아는 듯 모르는 듯 그져 두륜산 정상만 바라볼뿐 도무지 무슨 표정이 없다,그래! 그것일거야 무념 무상 그게 정답이야, 그게 사랑이고 그게 삶일거야,작응 꽃잎에 맺힌 이슬처럼 해뜨면 사라질 삶, 그져 하늘을 지붕삼아 아무리 편치않은 삶이라도 살아야 겠다. 보물인 탑은 수리중.... 수도중인 스님의 얼굴은 비장하기까지한데 그것을 아느듯 모르는 듯 백구두마리가 배를 쭉깔고 오수를 즐기고 있다 목탁소릴 자장가 삼아. 개팔자라나 정말 너를 두고 하는 말 이군아. 약수로 물병을 채우고 목을 축인뒤 산행을 계속 한다. 북암에서 부터는 비스듬이 산허리를 휘돌아 간다,온통 단풍나무와 산죽의 밭을 지나는 우리는 신선 바로 그것이다, 속리산 문장대에서 천황봉에 이르는 길에서 산죽을 원없이 봤지만 이곳 산죽은 속리의 그것보다 키가 사뭇 크다 ,산죽밭을 지나고묵밭이 나타난다 ,그런데 주위표정은 싹 바뀌어 억새지대로 변해버렸다, 헬기장을 중심으로 엄청난 지역이 억새밭이다, 먼져온 일행들이 황홀경을 점령해버려 주위를 감상한다,강진에서 왔다는 일행에게서 매실주한잔을 얻어 마신뒤,강진에서 유명한 해태식당 이야기를 듣고 행동식을 얻어먹는다.또다시 산행은 계속된다,200여 미터를 올라 억새지대를 보니 앞서본 일행들이 보이지 않을만큼 큰 억새밭이다 ,내 일찍이 명성산 억새를 본적이 있지만 명성산 억새는 비교가 안될만큼 크고 훼손되지 않아 정말 잊혀지지 않을것같다, 산은 제법 험해진다 로프를 타고 잘만들어진 계단을 지나 두륜산 정상에 도착한다,남으로는 바다 그리고배추 보리밭,온통 푸르름. 북으론 영암 월출이 동으론 천관산이 ,서론 목포가 흐미하게보인다,끝없이 펼쳐졌던 배추밭도 그곳에 있었고땅끝도 어렴풋이 조망된다,다른 산에서는 볼수 없었던 남해바다,꿈엔들 잊지못하겠다던 어느시인 말씀처럼,점점이 떠있는 작은 섬들은 아름다움의 절정이다.산을 내려오면서도 그 경치에취해 계속 머릿속에 잔영으로 남는다. 내려오기를 30여분 제법큰 핼기장에서 점심을 하기로하고 점심준비를 한다 가진것이라야 밥 한공기 라면2개가 전부지만 어느 왕후의 찬과 밥이 부러울것없는 점심 ,더블어 한잔의술응 여독을 풀기에 충분했고 더 이상응 바래지도 않았지만 나는 그것을 할수있어서 행복했다.하산길에 천년수라 일컬어지는 나무를 보기로 하고 하산을 한다 ,그런데 이게왠일인가? 산만한 탓인지 그냥 지나쳐 버린 것이 아닌가? 다시 올라갈수도 없는일 아쉽지만 접을 수밖에. 산에 오르다 보면 종종 힘이들고 그래서인지 목적했던바를 못보고 그냥 지나치기 일수다,나이 탓이려니 치부를 하곤하지만 다른이들도 그런 상황이 있다는걸보면 분명 무슨 이유가 있으리라. 내려오는길은 오르는길과 멀지만 분위기가 필름을 리와인드 하는것같다,억새-산죽-동백 -바위 네싸이클로 돌아가는 경치는 언급을 생략키로한다.그러나 어느새 발걸음은 대흥사에 와 닫는다, 대흥사는 그시대의 선승인 서산대사의 표충사와 ,부처님의공간인 대흥사로 나뉜다, 서산대사의 인영을 모신 표충사와 그의 업적을 기리는 기념관이 같이있다. 대흥사는 어느 절집과 마찬가지로 개울을 건너는 돌다리를 건너면서 시작된다. 돌다리의 의미는 부처님의 공간으로 접어든다는 일종의 경계표시의 의미가 있다고한다 경계를 지나면 2층 누각을 지나 바로 대웅보전에 드는데 다른절집에 비해 모든 것을 생략한채 바로부처님의 공간으로연결되는 것이 다르다면다르다,일반적으로 대웅전이나 대웅보전에 들려면 몇차례 이름지워진 누각을 지나는 것이 통과의례인데 모든 것을 생략한채 돌다리를 건너면 바로 대웅보전인 것이 특징이라면 특징이다,대웅보전은 고려시대지어진 것이 이제것 이어진게 아니라 몇 번의 중수를 했다고 한다, 대웅보전의 현판은 당대의 명필인 이광사가 썼다고전해지고 있지만 그에대한 일화를 알고있는 바가있어 오늘 그 글씨를 접하고 마음이 설레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 모르겠다 그옛날 초의선사가 대흥사에 기거하며 도량을넓혀가고 있었다, 초의선사는 또 당대명필인 추사 김정희와 호형 호제하는 사이였다고한다,추사가 제주로 유배를 가기전 가끔 대흥사를 들러 초의와 차를 나누며 우의를 더해같으리라. 또종교 역사 철학 ,과학등 추사의 폭넓은 지적 갈증을 초의와 주제와 문제의식별로 밤새도록 토론 때론 격론을 벌이며 우정을 더해갖으리란건 미루어 짐작 하건데가능한일이다 추사가 제주로 유배를 갈땐 그로선 추사체의 완결판일때 대흥사를 들러갔다고한다 이때 대웅보전의 이광사 글씨를보고 그게 글씨냐고한뒤 일필휘지로 써서 그것을 현판으로 걸게했다고한다 그리고 그 옆 무량수전의 글씨도 함께써 부치게 했다한다 초의선사가 그의 글씨 수준을 알고있던터라 혼쾌이 동의하여 그후론 그의 글씨가 현판으로 걸리게되었다고 한다,그리고 추사는 제주로 유배를 가고 그 유명한 세한도를 그리는등 유배의 외로움을 예술적 승화로 한단계 업그레이드된 글씨와 그림을발전시킬수 있었던것! 궁핍한 유배지의 생활 속에서도 예술적 한을 더하고 학문적 연구를 끊임없이 진행할때초의가 제주로 위문차 찿아온다 ,보름이나 걸리는 뱃길을 어지간한 친구사이 아니면 찿지못할 일을 그들은 한 것을 보면 그들의우정이 어떠했는가를 짐작코도 남는다 유배자 초막에서 그들은 무슨말을 하였으까?. 세상돌아가는 일부터 집안의 잡다한 일까지 밤새 이야기했으리라 3일 밤낮을 세상사와 지난일들 그리고 미래를 이야기 했을것이고 초의선사가 김정희가 그토록 좋아했던 대흥사 차를 가지고 갔을리라는 것은 분명할 것이다. 유배지에서 차를 마시며 그토록 만나고 싶어 했던 친구가 왔으니 추사의 심정은 행복 그자체 였을 것이다. 때로는 초막에서 또 때로는 제주해변을 걸으면서 그들이 나누었을 이야기들을 생각해보면 흥미롭기 까지 하다. 어려운 시기에 친구가 래방을 하니 그것만 해도 기쁜일이진데 좋아하는 차에 긴긴밤 독수공방 하던 수많은 날들을 이젠 초의선사와 마주앉아서 때론 같이 누어서 또 같이 걸으면서 나누었을 두사람의 우정은 어찌 생각하면 소름 끼칠 일이다.
나도 이런 친구 하나는 있어야 겠다. 홀로 외로움에 지쳐 괴로울때 보고싶은 친구 말이다 애절한 마음이 절절이 흘러널칠때 나를 이해 할 수 있는 그런친구 말이다. 제주에서 흠뻑 우정을 나눈 두분은 훗날을 기약하며 헤어졌으리다 오고 가고 머물고 2달을 족히 됐을 시간을 생각하면 아무리 우정이 각별하다 하여도 쉬운일은 아닐 것이다. 유배에서 풀려난 추사는 육지를 향하는 길에 초의선사 래방에 답방을 하게 된다. 초췌한 행색으로 대흥사를 찾은 추사. 초의는 무량수전에서 아마도 버선발로 뛰어 나왔을것이 안바도 본듯하다. 추사는 대흥사에서 몇일간 머무르면서 항홀을 본듯하다. 그리고는 초의선사에게 이렇게 이야기한다. 이광사가 쓴 대웅보전 현판은 자기가 쓴것보다 훨씬 잘 썻다고 칭찬을 하고는 자기가 쓴 현판을 떼고 이광사의 현판을 부쳐줄 것을 초의선사에게 부탁한다 이뜻을 눈치챈 초의 선사는 그 뜻을 받아드려 오늘날 현판이 이광사의 것으로 다시 바뀌게 된다. 평생 자기일에 뜻을 굽힐줄 몰랐던 천하의 추사다 세월의 무상함의 깨닭는순간 무아의 경지에 이루는 정말 멋있는 추사다운 행동이다. 나는 추사의 멋진 행동에 감동할 따름이다. 그렇게 멋진 행동들은 아마도 살아온 인생의 멋진 결정판일 것이다. 또한 초의선사의 멋들어진 친구간의 배려또한 당대를 풍류하던 그들만의 멋이아닐까 생각한다 나는 지금 무량수전의 추녀끝 마루에 앉아 잠시 초의와 추사의 삶에 대해 대웅 보전 현판을 바라보며 명상에 잠긴다. 지금 여기에 같이온 벽파와 함께 말이다. 무량수전에는 그때 풍겼을법한 차냄새가 나는듯하다 차냄새는 여전한데 그때 그 두분은 볼수가 없으니 참 아쉽기만하다.
내 다시금 이 자리에 올때에는 더욱더 우정을 나눌수 있는 친구와 함께 옛날 초의와 추사의 우정을 배가 할수 있도록 그런 친구와 함께 올 것을 추억 하면서 대웅전 뜰을 거닐며 허공을 바라보고 누각문을 나선다. 시대의 선승인 초의와 시대의 사상가인 추사의 만남 그들의 추억을 뒤로 한 채 절집을 나서는 나의 마음은 겨울 바람의 차가움마져 잊은채 아쉬움만 가득 남기고 돌다리를 건넌다. 흐르는 물을 여전한데 인걸은 간데 없으니 세월의 무상함을 어찌 달래랴! 주차장으로 가는길은 만감이 교차하여 이루 형언할수 없다. 어디선가 풍겨나오는 커피향이 아하 이곳이 또다시 현실이구나 하는 생각뿐...
외상을 한 밥값을 지불하고 강진으로 향한다. 강진! 도예와 정다산의 고장! 두륜산 억새 숲에서 만난 사람들이 강진사람이었다. 강진하면 무엇이 유명하냐 물으니 왈 주저 않고 도예 정다산 해태식당을 꼽는다. 나는 이번 여행에서 산을 주제를 했기에 여타 다른 것을 볼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시간이 허락하면 꼭 문화적 예술적 주제를 갖고 꼭 한번 다시 호남땅을 밟아 보고 싶다. 그러나 밥을 굶을수는 없는일. 그래서 그 유명하다는 해태 식당으로 가기로 했다. 강진시내에서 목욕을 하여 여독을 푼후 해태식당을 찾았다 강진 사람들은 대부분 기 식당을 알고 있었고 기본이 얼마라는 것 가지 알려주는 친절함을 봐서는 아주 몹시 유명한가보다. 4인분만 판다 기본이 8만원이다. 2인분은 않판다 갖가지 속설을 듣고 해태식당에 당도 하여 일단 2인분은 먹을수 있는지를 물어보았다. 그럼요 주인 아주머니인듯한 여인이 OK 하여 모텔을 예약한후 그 집에 들었다 듣던데로 허름한 가정집인데 방마다 손님이 가득하다 기대반 흥분반으로 기다리고 있을쯤 교자상으로 가득차려진 음식을 둘이서 들고 들어온다 찬찬히 음식을 살피니 아하! 산해진미! 산해진미가 이를 두고 하나보다 각종 젓갈 전복죽 회 大조개눈회 육회 반찬접시를 놓을 공각이 없어서 일부는 포개서 나왔는데 어느곳에 젓가락을 들이 댈줄 몰라 한동안 헷갈린다 어느책에선가 음식 먹는순서를 정하기를 죽같은 부드러운것에서 점차 딱딱한 것으로 가야 소화도 잘되고 음식의 진미를 맛볼수있다고 했다. 소주 1병이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없어지고 같이간 벽파는 산해진미에 즐거운 듯 연신 젓가락이 오고간다 나또한 말할 사이 없이 연신 먹어주는데 먹다보니 벽파왈 산해진미를 보니 도망간 옛애인이 생각난다나.. 아마도 맛있는 음식을 놓고보니 같이 먹었으면하는 사람이 생각나다 보다. 그럼 나는 누가 생각나다. 도망간 애인도 없고 그래 우리 막내가 생각난다 아빠 맛있는게 엄청 많네 어떤 것을 먹어야 좋을지 몰라할 그녀석이 보고 싶다 정말 남도를 여행할 기회가 주워지면 가족과 함께 해야겠다. 이산가족이 되어버린 우리집 언제 다시 한번 계획좀 잘 세워서 여행을 그것도 남도여행을 꼭한번 내년에 해봐야겠다. 상황은 다시 해태 식당으로. 토하젖갈에 소라를 찍어서 1배, 목을 휘감아 돌아들어가는 소주가 이렇게 맛있을수가 다시. 갈치젖갈에 따듯한 밥한숫갈 또 삼합에 1배, 송강 정철은 장진주사에서 먹세그려. 또한잔 먹세 그려 곷꺽어 셈하면서 무진무진 먹세그려. 이몸 죽어 거적에 싸여 지게에 지고 가나 만인이 울며 따라오는 꽃상여에 실려가나 죽고나면 그뿐 후회한들 무었하랴 고한 송강의 기분이라 할까 벽파와 송곡을 무진무진 먹기 시작했다. 꽃꺽어 셈하는대신 술병으로 셈하면서 무진무진 먹고 또 먹었다. 주인아주머니는 파주에서 왔다니까 특별히 삼합을 한접시 내주시는 특별한 서비스 까지 받는 영광까지 누린다. 그래. 우리가 언제다시 이곳에 올꼬. 기약없는 이밤 그저 무한이 차려진 음식과 더불어 우리의 우정을 더욱더 깊게 다져나 보세나 그래도 모자라면 이분위기 잠자리까지 가져가서라도 즐기고 또 즐기고 싶네! 얼큰하게 취한 벽파 노래 한자락 부르고 싶은 모양 아쉽다면 그게 아쉬운 모양이라. 젓가락 장단에 흥이라도 한번 부리고 싶은 심정을 왜 내가 어찌 모르겠냐만 이곳은 그저 음식집일뿐 이런집에 시중드는 여인네라도 있다면 오늘같은밤 큰일낼건 시간문제이지 여보게 시한수 하시겠나 그래 시한수 해야겠지? 미당의 더도말고 그만큼만을 읊퍼대는데 분위기는 점점 깊어만가는데 어쩌란 말이랴 시간은 흐르고 또 흘러가는데 야속하기만 한 시간을. 그날밤 벽파와 나는 흥에 취해 술에 취해. 분위기에 취해. 더도말고 그만큼만 하자던 그 한계를 넘어버리고 말았다. 넘어도 아주 많이.
그날 숙소에 도착하여 여한없이 먹고 마셔 세상모르고 잠들다.....
6시 알람소리에놀라 일어났다 예정에 의하면 7시엔 월출산에 도착되기로 하였기 때문이다 어둠속으로 승용차는 달리고 달려영암 월출산에 도착했다 ,어둠이 채 가시지도 않은 영암땅. 보슬비에젖은 영암 월출을 원거리에서 바라보니 그져 신비 그 자체이다 이름하여 월출 ,글자 그대로 달이뜨는 산이다 ,온통 바위인 산에 휘엉청 달이뜨면 어떠했을까 식전이라 상상되지 않지만 어렵진 안을 듯 싶다.월출 문화음식점에서 호남식 된장찌개에 아침을먹고 점심전에 내려올 요량으로 약간의 행동식만 준비한채 넉넉히 아침을 먹는다.
출발 ! 보슬비는 아직도 진행중, 운무에 가려있는 월출산은 더욱더 신비감을 더한채 나의산행을 재촉한다,땀,비, 두가지가 범벅이된 몰골은 물에빠진 생쥐 꼴이다. 비가와서 그런지 산행을 하는이도전혀없다 경사가 코가 땅을 향하고 숨은 턱을 바친다 숨을돌려 주위 경치를 보니 운무에 가려진 월출이 일부 조금 자태를 보여준다. 온통 바위 또 바위 오르는 동안 흙은 밟아볼 새도없이 온통 바위산이다. 출렁다리까진 논스톱으로 올라갔다. 아하! 그런데 이게 왠 말인가? 운무에가려 불과 20~30미터밖에 조망이 않되니. 여태까지 좋았던 날들이 오늘은 정말 아니다.아개속을 비속을 오르고 올라 통천문을 지나 천왕봉에 오른다 .아좋은 날씨덕에 오르자 마자 하산길에 접어들었다.그져 그렇게 하산을 한다 월출산 온천에서 가볍게 온천욕을 하고 목포로 향한다. 월출산에서 목포로 가는길에 멋있는 길을 만난다. 길이는 20KM가량 양옆에 벚나무가 20년은 족히 되었을 그런나무가 양옆을 장식한다. 벚ㄱ꽃이 만개 했을때를 상상하면서 즐겁게 지나갔다 벽파는 꽃이 만개하면 애인과 함께 걷고싶단다 그꿈이 실현되기를 바래면서 지나가다 그벚꽃나무길이 끝날쯤 점심식사를 하기로 했다 낙지 연포항으로 가볍게 점심을 하고 상경. 또상경. 막히고 또 막힌길을 뚫고 상경 집으로 돌아왔다. 지금 남도 답사기를 쓰고있는 나는 지나간 몇일간이 한없이 행복했고 그 행복이 지금까지와 나의 가슴과 머리 속에서 각인되어 지워질줄 모른다 벽파와의 그간 소원했던 감정도 삭고 즐겁던 여행을 나의 아내와 함께 하지 못한 아쉼움이 없진않았지만. 행복하였노라고 묻는자가 없어도 나혼자 또한번 적어본다. 남도! 멋과 맛이 풍류와 함께하는곳 그곳에서 또 한번 진정한 나를 발견한다. 나이 50에 어리석기 이를데 없는 나를.........
첫댓글 강한구님의 글을 읽다가 그만.......눈이....좋은 글인데 띄어쓰기나 문단 나누기 부탁해요.........다시 읽도록 할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