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관료화를 경계할지어다
정상덕
아메리카 인디언들에게는 고정된 이름이 없습니다. 매일 아침에 그날 그 새 기운에 따라 또 다르게 불려지고, 부르고 있답니다. 그런데 45년을 살아온 저는 ‘정상덕’이라는 이름 하나로 살아갑니다. 이름이 고정되어 있다는 것은 우리의 기억과 관계에서 편리함을 가져다 주기도 하지만, 하나의 이름으로만 살아가는 것은 어쩌면 또 다른 고정관념을 만들 수 있다는 점을 우리는 경계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여러분은 다른 사람에게 자기를 소개할 때 어떻게 소개를 하나요? 여기에는 대체로 세 가지 분류가 있습니다. 3단계는 ‘내 친구는 누구다’라는 식으로 친구 중심으로 자신을 소개하는 사람이 속합니다. 2단계는 고향, 출신학교 중심으로 소개하는 사람이 해당됩니다. 1단계는 최고의 소개방법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나는 누구누구입니다.’라는 식으로 자기를 소개하는 것입니다.
저는 다른 사람에게 저를 소개할 때 두 가지 정도로 합니다. 우선 원불교 교무로서 마음공부의 전문가라고 소개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평화운동가 정상덕이라고 소개합니다. 어릴 때부터 꿈꿔 왔고, 지금도 공부하고 있는 분야입니다. 종교 생활과 역할은 첫 번째와 관련해서는 자기와의 싸움, 즉 마음공부로 귀결됩니다. 두 번째와 관련해서는 사회의 구원, 어떻게 형제, 이웃, 사회, 국가, 세계와 공동으로 잘 살 것인가? 하는 것으로 귀결됩니다.
그럼 먼저 첫 번째와 관련해서 ‘마음의 관료화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얘기해보겠습니다. 마음의 관료화란 교리에 바탕한 객관적, 사실적인 판단이 아니라 주관적인 판단으로 모든 것을 해석하하고 판단하는 것을 말합니다. 따라서 마음의 관료화를 경계하고, 유념하여 살아가려면, 반대로 '어떻게 마음을 깨울 것인가? 전체를 안을 것인가?' 하는 것이 관건이 됩니다.
저는 가끔 목욕탕을 갑니다. 저를 비롯해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들은 몸무게에 굉장히 민감합니다. 그래서 저울 위에 올라갈 때면 몸에 있는 작은 것까지 덜어내고, 벗어놓고, 심지어는 물기 하나에까지 신경을 씁니다. 그래서 다 닦아내고 털어 냅니다. 하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것은 바로 저울의 추가 0점에 맞춰 있는지 확인하는 것입니다. 0점을 제대로 맞추지 않으면 실제보다 몸무게가 더 나와서 기분이 나빠질 수 도 있고, 반대로 실제보다 적게 나와서 살이 빠지지 않았는데 빠진 것으로 착각하고 좋아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정확한 몸무게를 측정하기 위해서 중요한 것은 0점을 제대로 맞춰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럼 저울의 0점이 아닌 우주의 0점은 어디일까요? 세계에서 제일 큰 호수는 러시아의 ‘바이칼호’입니다. 물 깊이가 3000미터 정도 된다고 합니다. 그 호수는 겨울에 수면에서 200미터 정도아래까지 언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200미터에서 바닥까지는 얼지 않고 1도를 유지한다고 합니다. 극점에서는 온도가 일정하게 유지된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러한 현상을 일원상으로 봅니다.
그렇다면 우리 사람에게는 이 0점이 어디에 해당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심지(心地), 본성(本性), 자성(自性)'의 자리에 해당합니다. 일원은 바로 이 자리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이 최고 극치의 자리를 느껴 보려고 사람들은 다양한 형태의 행동을 합니다. 거기에는 도달하려고 자살을 하는 사람, 그리고 스포츠, 예술, 좌선 등을 통해 극치의 경지를 맛보려는 사람들은 우리 주변에서 찾아보기 어렵지 않습니다.
언젠가 안철수연구소에서 일하는 사람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 분은 평소 종교에도 관심이 많고, 본성과 자성 자리에 대해서도 공부를 많이 한 분이었습니다. 그 분이 제게 한 가지 질문을 하였습니다. 그것은 "그 끝 이상의 하나가 더 있습니까?" 라는 물음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한참 생각한 끝에 원불교는 '삼학병진'을 한다고 대답을 했습니다. 원불교에서는 수행처와 수행법이 일상입니다. 일상에서 찾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일상, 그 밖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의 삶의 목표가 저 먼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눈앞이고, 내 발밑입니다. 돌고 돌아 직선이 아닌 그곳이 도달하고 보면 그것이 다시 원점인 것입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다시 0점으로 돌아갈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저의 일화 하나를 얘기해드리겠습니다. 얼마 전에 영어공부를 하러 남태평양의 한 나라에 간 적이 있습니다. 거기에 가기 위해서는 14시간을 비행기를 타야 했습니다. 도착하고 공부를 위해서 처음 수업을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은 어느 날, 숙제를 해가지 않았습니다. 사실은 숙제가 있는 줄도 몰랐습니다. 그랬더니 교수님께서 “미스터정, 다음에 교수실로 오세요.”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금요일 아침에 교수를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교수는 아침부터 바쁜데 웬일이냐고 했습니다. 오라고 해서 왔다고 하니까. 교수는 월요일에 오라고 했다고 말했다는 겁니다. 제가 교수의 말 가운데에서 Monday를 알아듣지 못하고, 금요일에 교수를 찾아간 것입니다.
그 이외에도 수많은 감각감상, 심신의 체험이 있었습니다. 하루는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나오려는데 문이 잠겨 있는 것이 아닙니까? 저녁 무렵이어서 건물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전부 퇴근을 한 상태였고, 제게는 핸드폰도 없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한 15~20분 동안 소리를 쳤던 것 같습니다. “누구 없어요? 사람이 갇혔어요. 살려주세요.” 소리치면서....
그러고 나서 어느 순간 깜짝 놀랐습니다. ‘상덕아 무섭냐? 두렵냐?’ “심지(心地)는 원래 요란함이 없건마는 경계를 따라 있어지나니, 그 요란함을 없게 하는 것으로써 자성(自性)의 정(定)을 세우자.” 하는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그 뒤 마음이 차분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방금 전까지는 말씀이 따른 것이 아니라, 오직 이전(前)의 객기, 습관, 주관적 방법과 판단에 의해 역사적, 영웅적 심리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마음의 관료화입니다.
그 순간 방금 전의 자신이 두렵고 답답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요란함을 가라 앉히고, 자성(自性)자리를 찾자 그 순간 문이 열렸습니다. 화장실 문이 손잡이를 돌려야 열리는 것이었습니다. 손잡이 밑에 설명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와서 보니 주머니에 전화기도 있었습니다. 외국에서 갑자기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되자 마음자리를 보지 못하고, 당황스러움과 두려움에 모든 것이 백지 상태가 되어 버렸던 것입니다.
교당에서 공부를 많이 하면서도 실제로 현실 상황에서는 마음공부를 제대로 가져다 쓰지 못한 것입니다. 일상수행의 요법의 핵심인데, 제대로 실천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무엇이 부끄러움 입니까? Learning is happy. 영어를 잘 못하면, 모르는 대로, 모르는 것은 물어 보면 됩니다. “pardon” 하면서 손짓발짓, 몸짓까지 하면 됩니다. 다 통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다른 일에서도 교전에 나와 있는 대로 하면 다 해결됩니다. 자기 주관에 따라모든 일을 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그러기 위해서는 일상에서 관료화되어 있지 말고 스스로가 항상 열려 있어야 합니다.
그럼 두 번째와 관련해서 사회 구원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요즘 사회적으로 가장 이슈로 떠오른 것이 FTA입니다. 이와 관련해서 우리 원불교 청년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는 세 번에 걸쳐서 글을 쓰고 있습니다. 세계화, 신자유주의 등에 관해서...
우리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종교가 그 방향을 제시하고 해답을 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정전 제13장의 ‘최초법어(最初法語)’가 그에 해당한다고 봅니다.
한 일화가 있습니다. 어느 병원에 같은 환자가 세 번이나 왔습니다. 치료를 하고 약을 먹어도 좀 괜찮다가 다시 같은 증상이 나타나 병원을 찾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의사선생님은 그 환자가 일하는 노동현장에 가 보기로 했습니다. 현장에 가 본 결과, 그 의사는 그 환자에게는 항생제보다는 일하는 환경을 바꿔주는 것이 진정으로 그 사람을 완치시킬 수 있는 방법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자신의 도리이며 해야 할 일이라는 깨달음을 얻어 그 의사는 그 때부터 노동운동에 참가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번 FTA를 반대하면서 분신자살을 시도한 허세옥 씨가 중환자실에 있을 때의 일입니다. 형제들이 그 분이 수술을 받는 데 필요한 서류에 도장을 찍지 않았습니다. 치료비가 부담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수술을 한다고 해도 그 분이 살아날 확률이 아주 낮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의사들은 스스로 책임을 지겠다고 하면서 수술을 추진했습니다. 사회적 책임을 느낀 것입니다.
종교가 사회 문제에 대해서 제대로 방향을 제시하지 못하고, 사회적으로 역할을 해주지 않으면 종교는 단지 소원 성취 주식회사, 정치입문 기관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한 사찰 관계자가 자신들은 '수능을 전후해서 최고의 수입을 올린다.’라는 말을 한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종교가 제대로 된 역할을 등한시한 채 자본과 권력의 그늘에 끄달려 다닌다면, 사회의 등불 역할을 해내지 못한다면 일체 중생의 구제를 위해 밝힌 진리의 등불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단 말입니까?
제가 저는 사학법 개정과 통과를 위해서 끝까지 싸울 것입니다. 그들은 저를 악마 취급합니다. 기독교는 다 들고 일어납니다. 하지만 저는 끝까지 밀고 나갈 것입니다.
에스키모들은 썰매의 맨 앞에 가장 약한 놈을 놓습니다. 그리고 주인은 그 약한 놈을 때립니다. 몸이 약한 개는 그 짖는 소리부터 다릅니다. 죽음이냐 삶이냐가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거의 비명에 가까운 소리로 짖습니다. 그 비명 소리에 놀라서 나머지 다른 개들은 열심히 달리게 됩니다. 그러다가 맨 앞의 그 약한 놈이 지쳐 쓰러져 죽게 되면 에스키모는 그 개를 식용으로 씁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남은 개들 가운데 가장 약한 놈을 또 맨 앞에 세웁니다. 이게 바로 약육강식의 법칙입니다. 약자의 희생을 강요하고 강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비정한 법칙입니다.
한미 FTA 체결로 자동차, 섬유 몇몇 분야는 앞으로 살았남을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사회적으로 가장 약하다고 할 수 있는 농사 분야는 암담한 미래를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지,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 채 감귤 등 농사 짓는 분들은 이번 한미 FTA로 가장 큰 피해를 입게 되었다는 것을 압니다. 그들이 사회적 약자로 가장 맨 앞에 내몰린 썰매개 신세가 된 것입니다. 슬픈 일입니다. 가슴 아픈 일입니다. 우리는 이론이나 원칙으로는 사회적 약자를 어떻게 대해야 되는 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에서 이해관계가 걸리게 되면 그 상황은 달라집니다.
몇 해 전 우리는 영광의 핵폐기장 설치 반대 투쟁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 투쟁에서 저는 끝까지 반대의 입장으로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핵폐기장 설치와 관련해 최종 책임을 지고 있는 사람과 담판을 짓기 위해서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최종 책임자가 국가통치권자인 노무현 대통령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다름아닌 바로 자본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알았습니다. 이처럼 정치적 결단과 권력의 힘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사안에도 자본의 위력이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치고 최종적으로 좌지우지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우리가 앞으로 진리답게 살고자 한다면 이러한 사회적 현상과 그 이면까지도 꿰뚫어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만 이런 현실 속에서 약자와 강자가 약육강식이 아닌 방법으로 어떻게 함께 살아나가야 할지에 대한 해답이 놀랍게도 정전 최초법어에 나와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저의 고백을 하고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개인 보은은 마음공부를 통해서 하면 됩니다. 일도 영육쌍전(靈肉雙全)의 가르침을 쫓아 하면 됩니다. 마음공부 도사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최고의 트레이드 마크인 것 같습니다. 사회보은은 평화운동가 일을 하면서 할 수 있다고 봅니다. 악쓰고, 혼나고, 창피도 당해 보지만 그것을 통해서 제가 해야 하고, 하고 싶은 종교의 사회적 역할을 이뤄나갈 수 있다면 저는 이 신념과 실천을 계속 해나갈 것입니다.
하루는 대종사님께 눈물을 흘리면서 심고를 드린 적이 있습니다. ‘저를 대종사님의 제자로 받아주시고, 저 같은 놈을 평화운동가라고 불리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라고... 지금까지는 관념, 거품 속에서 살아온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일보 전진을 위해서 지금 이 자리에서 다시 시작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는 다시 시작할 것입니다.
마음의 관료화를 경계하면서 늘 깨어 있는 그 모습으로, 진리의 가르침 그 원래 자리에서..... 감사합니다.
서울 원남교당 청년법회에서(원기 92년 4월 5일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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