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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런일이 스크랩 우범곤 순경 총기 난사 사건
.춘향골 추천 0 조회 182 17.10.03 12:49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1982년 4월 26일.

우순경 총기난사사건은
한 경찰관이 개인적인 화풀이로
술을 마시고

경찰서와 예비군 무기고에서
소총과 수류탄을 탈취,

관내 지역 주민 56명(남자 20, 여자 36)을 살해하고
34명에게 총상을 입힌

경남 의령에서 발생한 건국 이래 최대의 총기 참사이다.



1982년 4월 26일 저녁 7시 반 경,

경남 의령군 궁류면 의령경찰서 궁류지서 소속 우범곤(禹範坤, 당시 27세) 순경이 궁류지서 무기고에서

카빈총 두 자루와 실탄 180발을,

또 부근 예비군 무기고에서
수류탄 7발을 각각 탈취하였다.

그는 탈취한 무기를 들고

궁류면 토곡리 시장통과
궁류우체국 및 인근 4개 마을의 민가로 뛰어다니며 무차별 난사,

주민과 우체국 교환수, 집배원 등을 살해하였다.


이 날의 사건은
너무나도 하잘것없는 일에서 비롯되었다.

사건 당일 오후 우범곤 순경은 방에 누워 낮잠을 자고 있었다.

그런데 마침 우범곤 순경의 가슴에 파리가 한 마리 날아들었다.

그러자 동거녀 전말순씨(당시 25세)가 파리를 잡는다며
우범곤 순경의 가슴을 찰싹 때렸다.

그런데 바로 이것이 화근이었다.

우범곤 순경은
전말순 씨와 이미 2개월째 동거를 해 오던 중이었는데,

그때까지도 결혼 비용을 마련하지 못해 자신을 무능한 사람이라고 자책하며 열등감을 가져오던 차였다.

이 날 전말순 씨의 행위(파리를 잡는다고 가슴을 찰싹 때린 것)가 자신을 무시한 데서 비롯한 것이라고 오해한 그는
술을 마시며 말다툼을 벌이기 시작하였다.

이 사소한 말다툼이
급기야 인근 4개 시골 마을을 공포의 분위기로 몰아넣은 광란의 대참사로 발전하였던 것이다.


집을 나간 우범곤 순경은
앞서 말한 대로 궁류지서와 인근 예비군 무기고로 달려가 무기를 탈취한 후
지서 앞 시장에서 수류탄 1발을 던졌다.

그러고는 근처 궁류우체국에 들어가 근무중인 교환수 등을 향해 카빈총을 난사하여
세 사람을 숨지게 하였다.


밖으로 나온 우범곤 순경은 수류탄 폭음소리에 놀라 집 밖으로 달려나온 주민들을 향해
다시 카빈총을 난사하였다.

그 자리에서 34명이나 되는 주민이 숨을 거두었다.

그 뒤 그는 마을 뒷산으로 달아났다가
저녁 9시 30분 경
그가 살던 압곡리 마을에 나타났다.

우범곤 순경은 이 마을의 전용출 씨(당시 56세) 집에 들이닥쳤다.

전용출 씨는 벌써 잠자리에 들어 있었고,
옆방에는 우범곤의 동거녀인 전말순 씨와 그녀의 어머니 최분이 씨 등 마을주민 5명이 놀러와 이야기를 나누던 참이었다.

이 때 우범곤 순경은 입에 담배를 물고 양손에 각각 카빈총을 1정씩 든 채 안쪽을 향하여 "여기 전 양 있나?" 하고 물었다.

그 소리에 방 안에 있던 전말순 씨의 어머니 최분이 씨가 문을 열었다.

그 순간 우범곤 순경은 "다 죽여 버린다"며 카빈총을 그대로 난사,

현장에서 4명이 즉사하고
전말순 씨는 복부에 관통상을 입었다.

인기척 소리가 그치자

우범곤 순경은
뒤이어 마당에 수류탄 1발을 까서 던져 놓고는 인근 평촌리 마을로 내달렸다.

자정 무렵 이 마을 서진규 씨는 이웃 초상집에 문상 갔다가 오는 길에
우범곤 순경과 마주쳤다.

우범곤 순경의 범행을 전혀 모르고 있던 서진규 씨는 수류탄과 카빈총으로 무장한 그를 보고 "밤중에 웬일이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간첩이 나타나 비상이 걸려 나왔다. 밖에 박 순경이 있다"며 천연덕스럽게 대답했다.

이 때 함께 있던 주민 박종덕 씨(당시 45세, 피살)가 "수고 많다. 술상을 가져 오겠다"며 술상을 차렸다.

우범곤 순경은 "쥐꼬리만한 봉급에 총각 신세라 순사짓 못해 먹겠다"며 신세 타령을 하였다.

마침 옆에 있던 한명규 씨(당시 53세, 피살)가 "실탄도 없는 것 같은데 무슨 비상이냐?"며 핀잔을 주었다.

그러자 우범곤 순경은 곧바로 한명규 씨와 박종덕 씨에게 총을 쏘아 숨지게 했다.

우범곤 순경은 다시 이웃 평촌리로 건너가 서인수 씨 집에 들이닥쳤다.

그는 다짜고짜
서인수 씨 일가족에 총기를 난사,
그의 부인과 아들을 죽였다.

자신은 27일 새벽 5시 30분 수류탄으로 자폭했다.


사건 후 정부합동조사반은,

이 사건이 상부에 보고도 늦고
출동도 늦은데다
진압마저 미온적이어서
더 많은 희생자를 냈다며
의령경찰서장 최재윤 경정을 구속하는 한편,
관계자 수 명을 직위 해제시켰다.

아울러 치안총수인 서정화 내무장관이 인책 사임하였다.

국회 내무위에서 야당 의원들은 이 사건이 단순한 치안문제가 아니라,
보고 체계와 무기 관리 등 당국의 치안 정책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며 내각 총사퇴까지 요구하고 나섰다.



당시 신문기사

◎현장 목격 金東基 궁유 면장/“눈앞에 총알 난무 죽기살기로 탈출”

『평화롭던 마을에 갑자기 총알과 수류탄이 난무하고 주민들이 비명 속에 죽어가는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82년 4월26일 밤 발생한 경남 의령군 궁유면 禹範坤(우범곤) 순경의 총기난사 사건을 목격했던 金東基(김동기·60·5급) 궁유면장은 그때 일은 두번 다시 생각하기 싫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당시 궁유면 총무계장이던 金면장은 반상회를 마친 뒤 직원들과 궁유파출소 앞 구멍가게에서 소주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느닷없이 禹순경이 총을 들고 다가와 「형님을 쏴죽이겠다」고 말해 장난으로 받아들였지요』

禹순경이 갑자기 수류탄을 가게지붕에 던지면서 행인에게 총을 난사하는 등 난동을 부리자
그제서야 장난이 아닌줄 알아채고 죽기살기로 탈출했다고 회고했다.

이어 禹순경은 면청사 주변 토곡­석정­매곡­당동부락을 돌며
총을 난사하고 수류탄을 터뜨려 이들 마을은 일거에 온통 초상집으로 변해
매년 4월 26∼27일이면 집집마다 제사를 지내느라 향냄새가 진동한다는 게 金면장의 설명이다.

金면장은 『주민들이 말조차 꺼내기 싫어하지만 사건 이후 고개를 들지 못하는 경찰관의 어깨를 감싸안고 제사 음식을 파출소에 나눠주는 순박한 농촌 인심은 여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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