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외대 교수 시국선언문>
지금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시계는 거꾸로 돌아가고 있다. 국가 정보기관의 선거 개입과 정치 공작은 지난 군부독재 시절에 만연했던 구시대적이고 반민주적인 행태이다. 군부독재에 맞서 온 국민들의 피와 땀으로 일궈낸 이 땅의 숭고한 민주주의가 국정원의 선거 개입과 이를 모면하기 위한 정치 개입으로 다시금 총체적인 위기에 직면해 있다. 현 상황은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유신으로 회귀, 독재정권의 부활로 비춰질 수 있으며 이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명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대선에서 국정원의 불법적인 선거 개입에 대한 구체적인 정황과 증거들이 제기되자 국정원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공개함으로써 정치적 이슈를 만들어 정국을 전환시키는 역할을 했다. 또한 통합진보당 내란음모 사건을 적시에 터뜨려 과거에 보여 왔던 전형적인 물타기와 공안 정국의 형성을 주도하고 있다. 만일 국정원의 설명대로 통합진보당의 일부 세력이 북한과 연관되었다면 당연히 처벌해야 하겠지만 정국이 불리할 때마다 매카시즘적 공안사건을 터뜨려왔던 과거 독재정권의 행태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이 과정에서 국가의 주요 감찰 기관인 감사원장, 경찰청장, 검찰총장 등이 헌법에 보장된 임기를 마치지 못하고 중도 사퇴하는 일이 벌어졌다. 국정원의 선거 개입에 대한 검찰의 조사가 이루어지고 있는 시점에서 나타난 일련의 사태를 보면서 과연 진실을 제대로 규명할 수 있을지에 대해 많은 의구심을 갖게 된다. 박근혜 대통령이 이 사태를 해결하고 국정원을 개혁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 것인지 아니면 이를 회피하고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려고 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정의가 실종되고 진실이 왜곡되는 현 상황을 더 이상 침묵으로 방관할 수 없다. 우리는 이 시대의 소중한 가치와 믿음을 지키고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을 바로 세우기 위해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하나. 대통령은 국정원의 선거 개입에 대한 진실을 밝히고 그 책임자를 엄중 문책해야 한다. 하나. 국정원을 근본적으로 개혁해야 한다. 국정원의 정치적 중립을 확보하기 위한 법제도 개혁을 단행해야 한다. 하나. 대통령은 상생과 타협의 정치를 실천하기 위해 야당을 비롯한 다양한 정치세력과 소통해야 하고 국민 여론에 귀 기울일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2013년 10월 7일 민주주의의 위기를 우려하는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 일동 고영훈, 권석균, 김규진, 김남수, 김면회, 김상범, 김상열, 김성복, 김승욱, 김연규, 김용련, 김윤진(명예교수), 김응운, 김인천, 김정기(명예교수), 김형래(독일어과), 김형래(화학과), 노명환, 라영균, 박병일, 박석구, 박성희, 박수영(민교협 시국선언 참가), 박재우, 박희호, 반병률, 방교영, 변광수(명예교수), 성경준, 손영훈, 신정아, 신주철, 신찬수, 양윤정, 여호규, 유달승, 유재원(그리스학과), 윤기현, 윤성우, 이근명, 이영학, 이장희, 이주헌, 임경순, 임근동, 임대근, 장용규, 장재덕, 정연일, 정일용(명예교수), 정환승, 조영한, 채호석, 최영, 최용호 이상 55명(존칭생략 가나다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