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음악으로서는 로망스와 함께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곡이며,
전통적으로 기타음악이 강세를 보이는 스페인에서도 이 음악은
클래식 기타의 표본이라 불리울만큼 최고의 작품으로 인정을 받고 있다.
'근대 기타의 아버지' 혹은 '기타의 쇼팽'이라 불리우는 타레가는
근대적 연주법과 새로운 기타 작곡법을 확립한 인물이다.
흔히 타레가는 기타를 부활시켰고
세고비아는 기타의 꽃을 피웠다고 한다.
스페인 바로셀로나의 가난한 집안에서 장남으로 태어난 타레가는
개울에 빠져 오른쪽 눈을 다치지만 치료 할 돈이 없었다.
한쪽 눈이 보이지 않게되자
열등감에 쌓인 아들을 염려한 아버지는
맹인 기타리스트인 미누엘 곤잘레스에게
기타를 배우게 했다니
동서고금 부모의 역활은 너무 중요해!
이때가 여덟 살땐데 새벽이면 어김없이 일어나
연습을 하며 독창적인 연주법을 터득하기 시작했다고한다.
타레가의 친구들은 가난하지만 재능 많은 그를 위해
당시 최고의 명기인 토레스 기타를 \
사 주었다고 하니 인간성도 좋은 거지.
한 후원인의 도움으로 바렌시아에서 공부하기도 하고
또 다른 후원인의 도움으로 마드리드 국립음악원에 입학도 하고
드디어 1875년 콩쿨에서 1등한 뒤 데뷔하게 된다.
그런데 데뷔 후 첫 연주한 곳이 알함브라극장... 헐....
유명 연주가가 된 타레가는 손톱에 결함이 생기자
손끝의 살로 연주하는 방법을 터득했다고 한다.
오히려 손톱보다 손끝의 살이 연주자의
감정을 더 잘 실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
400여곡을 작곡한 타레가는 작곡에만 그치지 않고
다른 악기를 위한 곡들을 기타곡으로도 많이 편곡했는데
바흐나 베토벤 고전과 알베니스의 곡들을
편곡한 공적을 그의 최대 업적으로 평가한다고 한다.
그에 의하여 기타는 멜로디와 화음을
보다 입체적으로 구사하게 되었고
기타를 바이올린과 같은 고급 악기로 승격 시켰다
그는 1906년 혈전병을 얻어 손발이 마비되어
연주 활동을 못하게 되고
불굴의 투지로 극복해보려 했으나
1909년 또다시 중풍이 찾아온뒤
끝내 12월 5일 바로셀로나에서 숨을 거둔다
그의 대표곡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은
제자인 미망인 콘차 부인과 함께
그라나다에 있는 알함브라 궁전을 구경한 뒤
깊은 감명을 받아 만든 트레몰로 연주곡이다.
고백을 받아주지 않던 콘차 부인에 대한 애틋함이 뭍어난다.
알함브라라는 아랍어로 붉은 색을 뜻한다고한다.
알함브라 궁전이 있는 그라나다는
원래 스페인의 지배하에 있다가
711년 아랍이 정복하여 이슬람 문화 아래 들어갔다.
그리고 1338-1390년 이슬람왕조였던
나스르왕조에 의해 이 궁전은 건설되었다.
'중세 이슬람 문화의 결정체',
'이슬람 건축의 최고 걸작' 등으로 찬사를 받고 있는
알함브라궁전은 물이 귀한 땅에서 살아온
이슬람교도들의 오아시스에 대한 열망으로
곳곳에 연못과 분수를 만들어 놓았고
기하학적 무늬를 이용하여
소박하지만 환상적인 모습을 연출한다.
그라나다는 유럽안에서 유일한 아랍영토였으나
1492년 결국 기독교에 의해 함락되고
내부장식이나 가구들이 많이 파괴되었다고 한다.
이 궁전의 마지막 주인이였던 보압딜왕은 아프리카로 쫓겨가면서
'그라나다를 잃는 것은 아깝지 않지만 알함브라를
못보게 되는 것이 안타깝구나'라고 했다고.
현재 알함브라궁전은 1일 입장객을 300명으로 제한하고 있다는데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수 많은 블로거들이 다녀오셨던데...
가보신 분들마다 찬사를 자아고... 난 언제가보나...
연주영상은 Jim Greeninger
세고비아를 사사했고 카네기홀 데뷔 후
많은 순회공연을했고 Youtube스타가 됬다.
현재 줄리어드에서 클래식기타를 가르치고있다.
연주 Pepe Romero
연주 Andres Segovia
연주 Julian Bream
연주 Narciso Yepes
Francisco Tarrega Eixea
Recuerdos De La Alhambra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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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함브라 궁전의 추억/Francisco Tarrega Eixea
물초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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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1.16 2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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