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직 호봉제교수를 비정규직 연봉제로 만들기(1)
메리어트호텔 중식당의 붉은 조명들은 잠시 후에 있을 이사회를 더욱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만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오늘 모인 이사들은 오만한이 대학을 인수함으로써 이사라는 완장을 찰 수 있었기 때문에 오만한을 대단한 인물로 여겼다. 그렇지만 오만한이사장을 존경하는 이사는 없었다. 오늘 같은 이런 분위기는 자신들이 대단한 사람이란 착각을 주기에 충분했다.
회의가 시작되기 전부터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던 오만한은 오늘 이사회에서 교원 연봉제 문제를 꼭 언급하려고 마음먹었다. 그러면서도 이사들에게 자신의 진짜 속마음을 들키지 않으려면 어떤 말을 꺼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하고 있었다.
회의 진행은 순조로웠다. 회의주제가 교비와 법인회계로 넘어오자 오만한이 입을 열었다.
“이번에 교직원들에게 연봉제를 실시하려고 합니다. 우리대학은 호봉제를 하고 있으므로 교수들이 가만히 앉아 있어도 매년 자동으로 급여가 올라가는 구조입니다. 이런 구조는 매우 불합리하다고 생각합니다. 일 잘못하는 사람들의 급여는 깎고, 일 잘하는 사람들에게는 인센티브를 주면 경쟁도 되고....”
대학에서 가까운 한 산자락에는 나름대로 멋을 낸 음식점이 하나 있었다.
음식점의 이름은 다앤인(茶&人)이었다. 서남교수는 그 음식점에 갈 때마다 생각나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붓으로 써진 조그만 간판에서 오는 메시지였다. 그 간판을 보면서 느끼는 감정은 어쩌면 서남만이 갖는 특별한 것일지도 몰랐다.
사람들은 다앤인을 ‘차와 사람’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이지만 서남교수만큼은 죽은 사람과 산사람으로만 보였다. 그것은 차를 의미하는 다(茶)자가 풀 밑에 있으면서 칠성판이라는 나무위에 있는 사람을 뜻하므로 바로 죽은 사람을 의미하기 때문이었다. 서남교수는 ‘차(茶)’라고 명명되어져서 고귀한 대접을 받는 말라비틀어진 죽은 잎사귀와 살아있는 생명체인 사람이 동급으로 씌여진 것이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살아있다고 하는 인간이라 할지라도 도덕과 윤리와 영혼이 죽어 있다면 차와 같이 죽은 물체와 다를 것 없다는 생각에 이르자 고개를 끄떡였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한 초가을인데 교수들은 NCS니 뭐니 하면서 교육부에서 눈먼 돈을 타오려고 서류 작업에 정신이 없었다. 항상 교육부놈들은 정권이 바뀔때마다 뭔가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기존 것을 뒤집고 새로운 방향으로 몰고 갈 아젠다가 필요했다. 그것이 이번에는 국가표준직무능력이라는 NCS였다. 이런 말도 안되는 방안을 내놓은 것도 미국에서 교육공학을 공부하고 돌아온 몇몇의 제안이었지만 대통령의 낙점을 받았기 때문에 모든 방향은 그곳으로 몰고갔다. 그러나 문제는 공학쪽이 아닌 모든 학과에 적용하려는 것과 이런 NCS를 기반으로하는 교육과정 개편을 추진하는 사람들이 공학과는 전혀 관련없는 탁상공론에 능한 교육공학을 공부한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또 다른 한 문제는 이러한 것을 추진하여 인정을 받은 대학에만 국가의 재정을 주기 때문에 거기에 맞추려고 대학마다 혈안이 되었는것인데 교육부는 이것을 이용하여 대학을 줄세우고 재정을 나누어 주면서 자신들이 전관예우로 옮겨갈 대학을 물색하는 것이었다.
어쨌든 교수들은 교육부에서 돈을 따오려면 이 NCS 도입하고 교육과정 개발이니 이에 맞는 교재개발이니 뭐니 하다보니 강의도 충실할 수 없었다.
오만한이 1기 교수들과 환담의 자리를 마련한다고했다. 바로 다앤인에서였다. 오만한이 개교할 첫해에 임용된 1기 교수들을 이런 곳에 불러서 밥을 사 먹일 때에는 무언가 노림수가 있을 것임은 분명했지만 그의 노림수를 알아채는 사람은 없었다.
음식을 먹고 나자 오만한은 교수들에게 자신이 온 뒤로 학교가 어떻게 변했는지 물었다.
용비어천가에 준하는 딸랑거리는 발언이 연이어 나왔고 이내 서남교수에게도 물어왔다.
“서남교수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예, 이 음식점의 이름 다앤인에 있는 다의 한자어의 의미는 풀 밑에 있고 나무위에 있는 죽은사람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죽은 사람과 산사람이 함께 있다는 뜻인데 대학이란 도덕과 양심과 영혼이 살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할 말이 없습니다.”
“어떻게 변했느냐고 물었는데... 할 말이 없다는 것은 내가 온 뒤로 변한 것이 없다는 말입니까?”
“저는 할 말이 없습니다.”
용비어천가를 바라던 오만한에게 서남교수는 아무런 이유와 동의도 없이 자신의 급여를 깎은 이유가 뭐냐고 물으려다 끝까지 할 말이 없다고 대답해버렸다.
한방 먹은 채로 이사장실로 돌아온 오만한이 기존교수들은 안된다며 게거품을 물었다는 말을 들은지 며칠이 지났다. 귀딸랑교수와 금빛난교수가 주축이 되어 교원윤리강령을 만들었다면서 갑자기 사인을 요구하고 다녔다.
서남교수 연구실에도 계열학부장이 문건을 들고 나타났다. 계열학부장이 내민 교원윤리강령이라는 문서는 제목은 물론 내용조차 매우 이상했다.
‘학과 특성화 및 경쟁력을 제고하여 명문대학을 만들자’라는 윤리와 전혀 관련이 없는 부분과 ‘도덕적, 윤리적, 법률적으로 문제가 되는 행위를 할 경우 교수회 의결에 따를 것을 다짐한다.’는 말도 안 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교수회 의결이 사법기관의 판결보다 위라는 이러한 발상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오만한 딱 한사람일 것이었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문건을 만들어 교수들에게 사인을 시키는 딸랑이 교수나, 그런 문건에 사인을 해주는 교수나 별반 다름없는 자들임에는 틀림없었다. 서남교수는 문서 아랫부분에 쓰여 있는 발기한 명단과 시기를 보았다. 노땅이라고 불리는 퇴물들뿐이었다. ‘병신 같은 새끼들! 새벽에 발기도 안 되는 새끼들이 발기인이야!’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는 이런 말도 안 되는 문건에 사인할 수 없습니다.”
사인을 거절하자 문건을 들고 나서는 학부장의 뒤를 바라보며 서남교수는 오만한이 이런 문건에 사인을 받아 둠으로 입막음을 하려는 숨겨진 무언가가 있음을 직감했다.
충효관 2층으로 내려가는데 오두알교수가 지나가고 있었다. 평소 무슨 일만 있으면 그렇게 해서 되느냐는 둥 자신이 매우 정의롭다는 것을 침을 튀기며 강조하던 그였다. 그러나 자신의 이름이 말해주듯이 언행은 어제나 두가지였다. 서남교수는 오두알교수에게 말했다.
“두알 교수님! 대학교수라면 옳지 않다고 생각되는 일이면 누구의 눈치를 보지 않고 사인하지 않을 수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
“저는 자신의 양심에 따라 행동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자신의 도덕과 윤리와 영혼이 살아 있어야만 가능하다고 믿습니다만....”
“목구멍이 포도청들이라서....”
오두알교수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하는 것을 보면 자신도 이미 사인을 한 것임에는 틀림없었다. 이런 교수들은 자신의 영혼과 양심을 파는 행위라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슬쩍 사인하고서는 다른 곳에 가서는 선비 취급을 받고 싶어 고결한 척 침을 튀기며 열변을 토했다. 그렇지만 직접적으로 물으면 뭔가 옳지 않는 일을 하다가 들킨 모습이 되는 것을 보면서 서남교수는 한숨이 나올 뿐이었다. 어떤 학과장은 같은 학과 교수에게 “이사장이 만들라고 한 문건이래”라고 하면서 사인을 강요하는 학과장도 있었다. 대학교수가 자신이 선택한 일이 정당한 일인지 윤리와 도덕과 양심에 거슬리는 일인지 생각하지 않는다면 말라비틀어진 녹차 잎사귀와 뭐가 다를까 생각이 들었지만 그 생각은 잠시였다. 서남교수의 머릿속에는 의문점만 맴돌았다.
'오만한이 무슨 생각으로 갑자기 이런 문건을 만들려고 했을까? 이 문건에 모든 교수가 사인을 하면 이것을 가지고 다음에 계획하는 오만한의 생각은 무엇일까?' 이미 녹슬어 486급이 되어버린 서남교수의 머릿속 컴퓨터에서는 연산을 하느라 두통까지 일고 있었다.
오만한은 이사회에서 연봉제 문제를 꺼낸 지도 벌써 1년이 다 지나도록 무언가 결과를 내놓지 못하는 것에 초조해했다. 게다가 지난번 지시한 것을 아직도 꾸물거리는 하야시교수가 얄미웠다. 그래도 오만한은 하야시교수를 내칠 수 없었다. 하는 말이나 생긴 것은 마치 물에 빠진 쬐끄만 생쥐 같은 전형적인 일본인처럼 생겼지만 무슨 지시를 내려도 하는 척이라도 하니 오만한에게는 꼭 필요한 사람이었다.
성질 급한 오만한은 연봉제 생각이 떠오르자마자 하야시 교수를 불렀다. “지금 연봉제 문제는 어떻게 되어가고 있나?” 오만한은 교수들에게 반말은 물론 욕설도 서슴치 않았다. 오만한은 금년 2월말에 그만둔 총장에게도 육두문자를 서슴없이 날렸었기 때문에 딸랑이 하야시교수에게 이런 반말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예! 이건... 그냥 곧바로 실행했다간 좀 문제가 있을 것 같아서 절차를 준수하고 합의된 것으로 하기 위해 먼저 교수들에게 의견을 받아 봤습니다. 그랬는데 반대의견이 좀 있었고...”
“그 반대한 새끼가 누구야?”
“여러 교수 중에 특히 윤천삼교수와 최서남교수가 조목조목 문제점을 제기했습니다.”
하야시교수는 오만한에게 천삼교수와 서남교수가 쓴 의견서를 건네주었다. 비밀주의에 입각하여 교수들의 자유로운 토론과 합의하에 이루어져야 한다는 천삼교수의 의견서를 읽어 보던 오만한은 이내 의견서를 책상위로 툭 던져버리고 서남교수의 의견서를 읽었다. 오만한의 인상이 더욱 찌푸려졌다.
“호봉제에서 연봉제로 바꾸는데 뭐가 이리 복잡해! 확 밀어붙이지 못하고 말이야! 씨발! 뭐 근로 기준법, 사립학교법, 민법에 저촉되고 오해를 살 요지가 있어? 이 되먹지 못한 새끼!”
2013.12.8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