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글에서 계속....
정규직 호봉제 교수를 비정규직 연봉제로 만들기(2)
교수들의 의견을 수합한 뒤 얼마되지 않아 교원성과체제와 관련한 설명회를 한다는 메시지가 왔다. 그동안 이런 설명회에 대한 말이 한번도 나오지 않았는데 갑자기 한다는 것은 누군가 밀실에서 완벽하게 작업한 후 이해득실을 따진 시뮬레이션까지 해보았을 것임은 틀림없었다. 이런류의 작업을 하는 사람은 주로 하야시교수였지만 언제나 자신은 그런 일에 관계하지 않은 것처럼 말했다.
다음날 아침 일찍 대강당에서 설명회가 시작되었다. 발표하려고 단상에 선 사람은 말쑥하게 차려입은 하야시교수였다. 밀실에서 무엇을 만들어도 항상 다른 사람이 발표하도록 하고 자신을 숨기던 하야시교수였다. 그런데 이렇게 커밍아웃하여 직접 발표한다는 것은 이번 건이 오랜 시간 완벽하게 기획했고, 준비했으며 통과될 자신있다고 판단되었기 때문이었다. 프레젠테이션 자료도 준비를 많이 한 듯 깔끔하고 완벽했다. 하야시교수는 설명하는 중간에 법무법인의 자문을 받아 자신이 만든 이 일이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도 암시하면서 빔프로젝터에 투시된 자료를 자신만만하게 설명해나갔다.
내용은 호봉제를 연봉제로 전환하는데 있어서 호봉제교수들의 급여 70%를 기본급으로 하고 나머지 30%는 성과급으로 한다는 것이었다. 또 교원들의 근무평가를 S,A,B,C,D로 구분하여 C, D등급의 교수에게서 빼앗은 성과급을 상위등급인 S와 A급 교수에게 준다는 내용이었다. 그렇다면 이 설명회에서 교원평가에 대한 내용도 있어야 하는데 정작 이날 발표내용에는 없었다.
설명회는 1시간 동안 하도록 되어 있었는데 하야시교수가 질질 끌면서 35분이나 썼기 때문에 질의응답 시간이 대폭 줄어들었다. 아니 처음부터 질문을 많이 하지 못하도록 그렇게 계획했었다. 밀실에서 나쁜 의도를 가지고 만들었는데 질문을 많이 하도록 하는 것이 자신들에게 좋을 이유가 전혀 없을 것이었다.
하야시교수의 설명이 끝나자 총장이 단상에 올라갔다. 총장은 우리나라의 대학들이 처해있는 위기상황을 말하면서 연봉제로의 전환은 꼭 필요하다는 점을 역설했다. 총장이 평소보다 짧게 말하긴 했지만 15분 정도 말을 하다보니 질의응답으로 남은 시간은 10여분 밖에 없었다.
질의시간이 주어지자 언제나 맨 먼저 마이크를 잡는 강잘난교수가 일어났다. 지난해 교원들의 정량평가의 결과가 정성평가로 확 바뀌었다는 중요한 내용이었는데 질문자체가 우왕좌왕했다.
이어서 남교수가 질의했다.
“총장님! 오늘 발표에선 교양과 교수들에 대한 내용이 없는데 교양과 교수들의 수가 대학 전체교수의10%가 넘습니다. 교양과 교수들에 대한 내용이 없다는 게....”
“교양과 교수들에 대한 것은 오늘 메신저에 탑재할 교원성과체제 안에 있습니다.”
총장은 특유의 어법과 달변으로 가볍게 넘겼다.
이어서 천삼교수가 일어났다. 천삼교수가 질의하려 일어나는 것을 모두 의아하게 생각했다. 그는 평소 발언을 잘하지 않는 교수로 정평이 있기 때문이다.
“... 총장님께서 오랫동안 성공적인 공직생활을 해 오신 것은 적법하게 살아오셨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라 봅니다.”
천삼교수의 이런 발언에 총장은 기분 좋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지만 다음에 무슨 말이 나올지 천삼교수를 바라다보았다.
“...폐과 교수들에 대한 언급이 없습니다. 아무런 이유없이 폐과되고 마음아파하는 교수들이 있습니다 ...“
폐과된 과들은 그동안 학생모집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2018년 학령인구가 급감할 때를 대비해야 한다면서 우격다짐으로 내년부터 학생을 뽑지 않도록 폐과된 경우였다. 그렇게 폐과된 교수들은 지금까지 아무도 자신들의 억울한 처지를 알아주기는 커녕 관심조차 가져주지 않아 마음고생이 심했었다. 그런데 천삼교수가 자신들의 처지를 대변해주는 질의에 폐과된 교수들은 가슴이 뭉클하고 눈시울이 붉어졌다.
“폐과 교수들에 대한 내용도 오늘 탑재될 교원성과체제 안에 있습니다.”
서남교수는 총장의 답변이 전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총장의 성의없는 구렁이 담넘어가는 식의 답변을 듣고 있던 서남교수는 자신도 모르게 치를 떨었다. 이런 중요한 설명회를 하려면 자료를 미리 주어 충분히 토론하고 숙지된 다음에 질의응답을 해야 하는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래야만 학교당국과 교수간에 합의가 이루어지는데 무언가 야바위 짓하는 것만 같이 느껴졌다.
천삼교수 질문에 대한 총장의 짤막한 답변이 끝나자 서남교수가 일어났다.
“법률유보의 원칙이란 행정은 법적 근거를 갖고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호봉제에서 연봉제로의 전환은 어떤 법적근거가 있습니까?”
“법적근거는 없지만 판례는 있습니다.”
판례란 말에 서남교수 마음속에서는 무언가 불붙는 듯했다.
“일반법보다 우선하는 특별법 즉, 사립학교법보다 우선하는 교원지위향상특별법에는 사립학교의 교원의 보수를 국공립학교 교원의 보수수준으로 유지하여야 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지금 국공립학교의 교원의 보수체계가 연봉제입니까? 또 현재 우리대학에도 비정규직이나 다름없는 연봉제 교수가 많이 있는데 그들의 보수가 과연 교원지위향상특별법에서 말하는 국공립학교 교원의 보수수준과 같다고 생각하십니까?"
순간 서남교수는 총장의 얼굴이 심하게 굳어짐을 보았다.
서남교수는 내친김에 한발 더 나아갔다.
“지난해 2012년 교직원 성과체제는 정량평가 50%, 정성평가 50%였습니다. 이런 비율이 된 것이 과연 교수들과 합의가 이루어져 된 일인지? 합의가 이루어졌다면 어떤 위원회인지? 그 체제 안을 받아들이겠다고 어떤 교수가 사인했는지? 일방적으로 발표하고 급여에 차등을 두고 깎았는데 이에 대한 법적근거는 무엇인지 말씀해주십시요”
얼굴빛이 심하게 변한 총장이 이번에도 법적인 것은 검토해보겠다고 우물거리자 서남교수가 다시 일어났다. 서남교수의 손에는 법조항이 쓰여 있는 메모지가 들려있었다.
“교원지위향상법 제3조 2항에는 사립학교법 제2조에 따른 학교법인과 사립학교 경영자는 그가 설치·경영하는 학교 교원의 보수를 국공립학교 교원의 보수 수준으로 유지하여야 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또 이에 대한 판례는 수없이 많습니다.”
더는 할 말이 없어진 총장이 그대로 회의를 끝내버림으로서 해산되었다.
2013.12.9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