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설명회를 마치고 총장집무실로 돌아온 장총장은 머릿속이 복잡했다. 법적으로 문제없도록 하기 위해 대학의 모든 소송을 맡겨온 법무법인에서 자문까지 받았지만 서남교수의 발언 한방에 무너져 버린 것이기 때문이었다. 내일 있을 투표가 매우 걱정스러웠다.
장총장은 하야시교수를 불렀다.
“변호사가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했다더니…….”
“서남교수가 지적한 근로기준법, 사립학교법, 민법 등은 자문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번 건이 금전과 관련된 것이어서 절차를 잘 밟아야 하고 투표에서 과반수를 얻어야 한다는 자문을 받았었습니다만.....”
“서남교수가 말한 교원지위향상을 위한 특별법에 대한 말은 없었습니까?”
총장의 연이은 질문은 하야시교수에게 잘못했다는 시인을 듣고 싶어서였다. 그러나 하야시교수도 그렇게 호락호락한 상대는 아니었다.
“서남교수가 낸 의견서에 교원지위향상을 위한 특별법을 거론했다면 자문을 받았을 텐데 거기에는 없었기 때문에 물어보지 않았습니다.”
“보수에 관련된 것을 자문의뢰했기 때문에 변호사가 그 정도는 미리 알고 있어야 할 것 아닙니까?....”
추궁하는 듯한 총장의 말끝이 흐려졌다가 다시 이어졌다.
“어떻든 이렇게 된 것이니까 온 힘을 다해 내일 투표에서 찬성이 과반수가 넘도록 하십시오. 그리고 인사위원회를 열어 교원평가안을 통과시키도록 하십시오. 나는 지금 보직과장회의도 하고...”
연구실로 돌아온 서남교수는 많은 생각에 잠겨있었다. 여기저기서 전화가 왔다. 자신들이 하지 못하는 말을 대신해주어서 고맙다는 내용이었다. 서남교수는 당연히 해야 할 말을 했을 뿐이라고 겸손하게 전화를 끊었지만 이럴수록 우쭐해지지 않고 앞으로 더욱더 겸손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서남교수는 천삼교수의 방을 찾았다.
“천삼 교수님 수고했습니다.”
서남교수의 말에 천삼교수도 화답했다.
“교수님도 수고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교원평가에 대한 내용을 언제 올릴까요?”
“그게 이상합니다. 준비가 되어 있다면 미리 메신저에 올렸을 텐데 말이죠.”
1년 전에 퇴직한 여교수님과의 모임은 판교에 위치한 한 경양식집에서 갖기로 되어 있었다. 경양식집은 개울가를 잘 정돈한 가장자리에 있어선지 나름대로 분위기가 있었는데 주변의 다른 상가들의 디자인과 어울려 새로운 분위기를 나타냈다.
서남교수의 차를 타고 온 남교수가 아직 내리기전이었다. 전화 벨이 울리더니 낮 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장총장이었다. 조수석에 탄 남교수가 몸을 서남교수쪽으로 기울여 전화를 받자 장총장의 목소리는 아주 또렷하게 들렸다.
“제가 부임해서 그동안 좋은 학교를 만들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이번일도 아무런 사심이 없이 하는 일이니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사심이 없다고 이놈아, 네놈들의 속내를 다 알고 있어...’ 라고 서남교수는 말하고 싶었지만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아직은 말할 단계도 아니고 투표가 진행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남교수가 말했다.
“이거 사전선거운동 아닙니까?”
“그러게요”
서남교수는 대답을 하면서도 그저 씁쓸할 뿐이었다.
이렇게 오늘 발언한 남교수에게까지 총장이 직접 전화할 정도라면 천삼교수와 서남교수만 빼고 전화를 걸지 않은 교수가 없을 것이었다.
총장은 물론 모든 보직교수들은 뻔뻔함의 극치를 보여주며 찬성해달라고 총공세를 펴고 있을 때 서남교수는 천삼교수가 주축이 되어 마련한 자리에는 퇴직한지 1년이 되어가는 여 교수님과 저녁을 곁들인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퇴직한 여교수님이 손자 보는 재미의 쏠쏠함을 한참 말하고 있는데 천삼교수의 전화에 문자가 떴다.
그 문자를 본 천삼교수가 말했다.
“교원 평가와 관련하여 인사위원회를 열고 있다고 합니다.”
서남교수가 말했다.
“오늘 설명회에서 인사위원회에 통과되지도 않은 것을 발표한 참 뻔뻔한 작자들이구만, 그런데 이제야 인사위원회에서 교원평가안을 통과시켰다면 오늘 설명회 후에 무언가 고칠 내용이 있었거나, 아니면 교수들이 내용을 미리 알아서는 안되는 내용이 있는 것 같은데요?”
가만히 듣고 있던 천삼교수가 말을 이었다.
“우리 모르게 집어넣어야 할 내용이 아니더라도 단지 연봉제건만 통과된다 해도 전국에서 맨 먼저 연봉제를 하는 뷩신 대학이 될 것이고 그 비난과 조롱이 온통 우리에게 쏟아질 것입니다.”
“교육 사기꾼들! 교비를 마음대로 빼먹고 교수를 자신의 손바닥위에 올려놓고 급여를 적게 주거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손쉽게 자르려고 이런 짓 하는데 교수들은 그런 속내도 모르고 보직들은 저 지랄을 떠니....”
지난번 윤리강령을 만들어 모두 사인을 하면 오만한이사장은 그것을 들고 교수들을 마음대로 쥐어잡는 작업을 하려고 했었다. 도덕적, 윤리적, 법률적으로 문제가 있을 때 교수협의회의 의결에 따른다는 문구로 말이다. 그런데 사인을 하지 않은 교수가 무려 8명이나 있었기 때문에 방향을 틀었다는 것을 대부분 모르고 있었다.
2013.12.10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