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서....
총장은 교수들 중에서 반대표가 나올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되는 모든 교수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은 교수들이 협조하겠다는 긍정적인 답변들 뿐이어서 긴장이 다소 풀렸다. 잠시 쉬는 마음으로 교무처장을 집무실로 불렀다. 속내를 절대로 남에게 드러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별명이 크레믈린의 크래와 예쓰 맨의 긍정의 의미가 합성된 정그래교수였다.
“교무처장님! 상황이 어떻게 되어 가고 있습니까?”
“예! 저는 예술학부와 관광행정학부에 독려를 했습니다. 김짤방교수와 이생김교수도 열심을 다해 독려를 하고 있습니다. 아마 좋은 결과가 있을 것 같습니다.”
교무처장의 좋은 결과가 있을 것 같다는 말에 낮에 있었던 천삼교수와 서남교수의 일이 많이 희석되면서 안도감이 들었다. 장총장은 기분이 나아지자 비서에게 차 한 잔을 시켰다. 막 찻잔을 들었을 때였다. 휴대전화의 벨이 울렸다. 짤방교수였다.
“총장님! 이참한교수, 김호상교수들과 저녁을 같이 먹었는데 이쪽 교수들의 분위기가 좋지 않습니다.”
“분위기가 좋지 않아요? 내가 아까 전화했을 때 긍정적으로 받았는데?”
“예! 안심하고만 있을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앞에서는 찬성하겠다고 말하지만 뒤로 반대하는 면종복배의 교수가 있을 수 있으니까 더 독려를 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총장은 짤방교수가 만난 교수들에 대해 그리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것은 소수였고 자신이 전화했을 때 호의적으로 대답했었기 때문이다.
총장은 교육부의 오랜 고위관료를 지낸 사람이었다. 이번에 연봉제가 통과된다면 아직 어떤 대학도 전격적으로 하지 못한 교수들의 호봉제를 연봉제로 전환시킨 최초의 총장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자신을 널리 알릴 좋은 기회가 되고, 만약 이 대학을 떠나더라도 그 능력을 인정받아 다른 많은 대학에서 총장을 맡아달라는 러브 콜이 올 것을 예상하고 있었다. 총장은 매사 유비무환이요 만사 불여튼튼이라고 생각되어서 아직 전화하지 못한 교수들을 연결시키라고 비서에게 지시했다.
이번 일에 하야시교수는 물론 평소 무슨 생각을 갖고 있는지 전혀 알 수 없었던 그래교수까지 속내를 다 드러내놓고 연봉제 찬성을 독려하는 데에는 교원평가의 정량평가가 사실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교원평가는 정량평가를 해놓고 나서 갑자기 정량평가의 비율을 50%로 낮추고 나머지 50%는 정성평가로 한다며 총장이 주는 점수를 합산하는 바람에 평가결과가 뒤죽박죽 되어버린 것이다. 사실 이 정성평가의 50%는 부임한지 1달도 되지 않아 교수 얼굴도 다 기억하지 못하는 장총장이 평가한 것인데, 이는 자신이 근무하지 않았던 기간을 평가했기 때문에 큰문제가 있었다.
이때 A등급을 받은 하야시교수는 학생들의 강의 평가결과가 대학 내에서 최하위였다. 일반 교수들은 매주 12시간을 강의해야 했지만 하야시교수는 보직을 맡았다는 이유로 절반인 6시간만 강의하는 데에도 이런저런 핑계로 휴강하는 것이 다반사였다. 복합관을 짓는데 자신이 기획을 하기 때문에 바빠 휴강을 한다고 한다는가, 학생들은 강의실에서 기다리고 있었지만 그시간에 대학구조조정에서 폐과의 위기에 처해있는 여교수 방에서 서류검토를 해주면서 노닥거리고 있었다. 어쩌다 한두번 휴강하는 것도 아니고 매번 이런식이라서 학생들의 평가가 매우 나쁠 수밖에 없었다.
하야시교수는 S,A,B,C,D 등급중 D등급이 아니라 징계를 받아 퇴출되어야 마땅한 경우였다. 그러나 총장이 주는 정성평가 점수를 높게 받음으로써 A등급이 되었고 이렇게 하야시교수를 비롯한 딸랑이 보직교수들은 총장과 오만한이사장에게만 잘 보이면 S나 A등급을 받는 것은 문제없다고 생각했다.
오만한이사장이 등급을 올려주라는 교수들과 총장이 마음대로 올려주다 보니 A와 B등급을 맞아야 할 교수들이 밀려서 C와 D등급이 되었다. 그런데 낮은 평가를 맞은 교수들은 평가로서만 끝나지 않았다. 이 평가의 결과로 오만한은 C나 D를 맞은 교수들의 급여에서 일방적으로 20~50만원을 빼앗아 S나 A등급을 맞은 교수들에게 성과급이라며 주어버린 것이다. 하야시교수도 보직수당 외에 성과급으로 두둑이 더 받았다. 매년 호봉승급분으로 월급이 오르기는커녕 오히려 봉급이 많이 줄어든 교수들의 불만이 머리끝까지 차올랐다. 그렇지만 이사장의 불호령에다가 학생이 줄어서 폐과될 위기의 과가 아닌데도 앞으로 학령인구가 줄어들때를 대비한다며 과감히 폐과시킨 이사장의 전횡을 바라보던 교수들은 혹시 자신들에게도 불똥이 튈까봐 아무 말도 못하고 있었다. 이런 때 무언가 자신들의 의견을 표출할 수 있는 호봉제에서 연봉제로의 전환하는 설명회가 있었던 것이다.
오만한이사장도 나름대로 표계산을 해보았다.
연봉제교수 30명과 보직교수 30명만 되어도 선거결과는 6:4가 되어 통과 될 것으로 확신되었다. 전체교수 100명중에서 30%가 연봉제 계약직 교수였기 때문에 이 연봉제교수들을 이번 투표에 넣어야만 승산이 있었다. 그래서 이번 연봉제안이 통과되면 연봉제교수 모두에게 500만원씩 올려주겠다는 말이 하야시교수 측근을 통해 나와서 퍼졌던 것이었다.
그러나 직접적으로 공문이나 공석에서 한 말이 아니기 때문에 연봉제 안이 통과된 후에 오만한이 언제 그런말을 했느냐며 안면을 싹 바꾸어도 할 말이 없게 되지만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연봉제 교수들은 이 말을 듣고 마음이 들떠 있었다.
연봉제 교수들이 받는 3천만 원의 연봉에서 4대 보험, 세금, 교통비, 점심값 등을 빼면 한 달에 100만 원도 집에 가져다주지 못했다. 이것은 커가는 애들을 키우는 부모로서 박사학위까지 가진 지성인으로서의 받는 봉급이라기에는 너무 초라했다. 이런 급여는 서남교수가 지도교수로 있는 어떤 학생이 자동차 스프링을 생산하는 회사에 조기 취업을 하여 받는 급여보다도 못했다. 또 연봉제교수들은 매년 재계약을 해야 하는데 오만한의 눈 밖에 나서 재계약이 되지 않으면 그냥 해고가 되는 것이었다. 그러기에 연봉제교수들은 호봉제교수들이 연봉제가 되든 말든 자신들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어 이번 선거에서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그저 바라만 보고 있었고 오히려 호봉제교수를 연봉제로 바꾸는데 자신들이 투표에 참여한다는 것을 의아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성질 급한 오만한은 법인국장, 각 보직과장의 보고를 기다리지 못하고 미래전략위원장인 하야시교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떻게 되어가고 있나?”
“예 총장님께서 교수들에게 직접 전화를 걸고 계시고, 각 보직과장님들이 관련학과에 표 단속을 하고 계세요.”
“천삼교수와 서남교수 말고도 반대하는 놈 있나?”
“예! 이참한교수와 김호상교수.... 등이 있는데”
“뭐! 이참한 그 새끼 지난번에 폐과한다고 했을 때 나한테 기회를 달라고 그렇게 비비더니 이제 와서 반대를 해! 그 새끼! 야! 하야시! 다시 한 번 표계산을 잘해봐!”
오만한이 전화를 콱 끊자 하야시는 마음이 쫄아서 다시 표 계산을 해보았다.
하야시교수는 이번에 연봉제안이 통과되면 500만원씩을 올려주겠다고 흘려놓은 끄나풀교수에게 전화를 걸어 물어보기도 하고, 보직과장들에게 물어보아도 압도적이지는 않더라도 통과될 것임에는 틀림없다고 확신되었다. 그래도 오늘 낮에 있었던 천삼교수와 서남교수의 질의가 마음에 걸렸다.
2013.12.12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