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 계속....
아침에 출근을 하니 투표에 대한 것보다 어제 늦게 그룹웨어 올려 논 교원평가 안에 대해서 설왕설래했다.
서춘동교수가 이 평가안을 어떻게 찾았는지 출력해서 윤천삼교수 연구실로 가져왔다. 이미 자세히 읽어보았는지 중요부분은 형광펜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나 원 참! 이거 보세요! 이거 꼭꼭 숨겨 놓아서 어렵게 찾았는데, 내용이 기가 막힙니다.”
서남교수는 서류를 받아 안경을 가다듬고 평가 안을 들여 다 보았다.
“여기 정성평가에서 학과장의 의견을 존중한다고 되어 있네, 오만한에게 찍힌 사람은 학과장에게 평가를 나쁘게 주라고 오더를 내리면 무조건 D등급이 되도록 되어 있네요.”
서남교수의 말에 서춘동교수는 대답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등급표 밑을 보세요. 아주 조그만 글씨로 D등급을 2회 맞으면 자동 퇴출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또 폐과교수와 산학협력중점교수 등은 현 급여의 70%가 기본급입니다. 그러면 현재 연봉제 교수들은 자신이 받고 있는 연봉의 70%가 기본급이 되고 나머지 30%가 성과금이 됩니다.”
“ 각 교수마다 급여가 다른데도 각 등급을 몇%로 한다는 것도 없네! 그러면 급여를 엄청 깎는 결과가 되는데....”
“씨발! 이런 나쁜 놈들이 어딨어? 자세한 내용도 안 알려주고 투표를 해!”
이참한 교수의 입에서 육두문자가 계속 튀었다.
“그 하야시 새끼! 교수들은 죽든 말든 저만 살려고 이따위 것을 만들어 가지고 교수들이 볼 수 없도록 어제 저녁 늦게 올려놓고는 오늘 곧바로 투표를 해? MB가 비즈니스플렌들리 한다면서 비정규직을 몽땅 만들어 놔서 전 국민의 40%가 비정규직이라던데……. 멀쩡한 정규직교수를 비정규직으로 만들고 그것도 아무 때나 자를 수 있도록 만들어 놨잖아? 이 개새끼!”
사실 이렇게 중요한 문서를 저녁에 올려놓고 교수들이 인지하는 시간도 주지 않은 채 바로 다음 날 투표를 하는 것은 분명히 야바위 짓이었다.
이 문서의 내용은 순식간에 퍼졌다.
하야시교수의 번뜩이는 잔머리의 결과로 교수들 대부분은 이런 내용을 모르고 있다가 모두 화들짝 놀라 자빠졌다.
담장너머 닭 보던 모습으로 있던 연봉제 교수들도 발등에 불똥이 떨어졌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투표를 하러 가던 연봉제 교수들의 마음이 요동쳤다. 새로운 과의 학위를 가지면 살려주리라 생각하고 대학원에 등록한 후 한 가닥 희망을 가졌던 폐과교수들도 이제야 발등에 불이 확실하게 붙은 것을 실감했다.
평소 재단에 밉게 보였다고 생각하는 교수들은 가슴이 더욱 철렁 내려앉았다.
투표결과를 기다리던 교수들이 기다리다 못해 점심을 먹으러 밖으로 나갔다.
대학구내식당은 음식의 질이 좋지 않아 서남교수와 천삼교수는 밖에 나가 사먹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교수들이 밖에서 음식을 사먹게 된 제일 큰 이유는 식당 업체에게 학교발전기금이라며 5천만 원을 받아 챙겼기 때문에 밥과 반찬이 온전할 리가 없었다.
식당에 가는 길에 천삼교수의 휴대전화기에 ‘직원 연봉제안 통과’라고 떴다. 교수들의 얼굴이 굳어졌다. 천삼교수는 직원은 그렇다 치더라도 교원은 어떻게 될지 매우 궁금해 하면서 이참한교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개표를 잘해야 하는데 가서 확인 좀 하시면 어떨지요?”
“그렇지 않아도 개표하는 곳에 왔는데 평의회의장이 문을 꽉 잠근채로 개표하고 있습니다. 밖에는 법인국장, 짤방교수 들도 있는데 못 들어가고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야당성향의 평의회의장이 개표를 주도하고 있다는 말에 윤천삼교수는 다소 안심이 되었다.
투표결과에 대한 궁금한 마음은 통과되기를 바라는 오만한과 총장은 물론 그 딸랑이들이나, 통과되지 않기를 바라는 교수들이나 모두 마찬가지였다.
학교에서 상당히 떨어진 곳에 위치한 명산이라는 음식점에 도착했다. 출발하면서 주문을 해놓아서 자리에 앉자마자 나온 군만두를 집어 먹고 있을 때 윤천삼교수의 휴대전화에 ‘45대 56으로 부결’이라는 문자가 떴다.
순간 와! 하면서 박수가 쏟아졌다. 얼굴들이 확 밝아졌다.
같이 점심을 먹으러 왔던 폐과교수인 김풍금교수의 얼굴도 웃음꽃이 피었다. 김풍금교수가 속해있던 실용음악과는 입학충원율, 취업률 등 전국 어떤 대학보다도 지수가 높았지만 2018년 학령인구 감소에 대비해서 폐과해야 한다는 오만한의 한마디에 폐과된 경우였다. 이런 경우는 전국 어디에나 없는 일이었다. 전국 어느 대학에서든 폐과를 하는 경우는 학생모집이 안되거나 취업률이 낮은 경우인데 이때도 절차를 거쳐서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오만한 만큼은 달랐다. 이런 오만한 식의 학교경영은 몇 몇 딸랑이들을 빼고는 등을 돌리게 만들었는데 정작 오만한 자신만은 모르고 있었다. 아니 알 필요가 없었다.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은 기존의 교수를 모두 연봉제로 몰아 자르고, 젊고 적은 비용으로 쓸 수 있는 교수들을 뽑을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번 투표에서 일거에 물거품이 되었다. 총장과 오만한이사장은 커다란 바위가 굴러와 자신을 덮친 것 같은 패배를 느꼈다.
김풍금교수는 자신의 어려운 입장을 그동안 누구에게 말하지 못했다. 말할 만한 상대도 별로 없었지만 같은과 교수들까지도 모두 자신만 살려고 각개전투를 하는 바람에 혼자 애타는 마음으로 있었다. 기껏해야 윤천삼교수와 최서남교수에게 속내를 조금 드러내고 말하는 정도였다. 그동안 눌리고 짓이겨서 콩알만 해진 심장이 이번 교원평가안을 보고는 아예 납작해졌는데, 부결이라는 말을 듣자 다시 부풀어서 콩알로 돌아오는 것을 본인은 물론 옆의 교수들도 느꼈다.
연봉제가 부결되자 그동안 이심전심으로 말을 아꼈던 폐과교수에 대한 말도 나왔다. 윤천삼교수가 말했다.
“김풍금교수님! 이제 안심됩니까?”
“그래도 아직은...”
“이미 폐과가 확정된 교수들 10여명은 이 연봉제 안이 통과되자말자 현재 급여의 70%만 받게 되고, 또 내년에는 강의를 하지 않기 때문에 다음해 교원평가에서 최하위를 맞을 수밖에 없어서 곧바로 퇴출됩니다. 그러…….”
성질 급한 김풍금교수가 윤천삼교수의 말을 끊고 질문했다.
“어떻게 그렇게 되죠?”
“이번에 연봉제가 통과되었다면 그 평가 안으로 평가해서 D등급을 맞고 다음해인 내년에는 강의를 하지 않기 때문에 자동으로 D등급을 맞아서 퇴출되는 거죠.”
퇴출이라는 말에 순간적으로 김풍금교수 얼굴이 굳어진 것을 보았다. 윤천삼교수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그런데 이번 연봉제 안이 부결되었기 때문에 연동되는 평가를 할 수 없게 되었고 만일 평가를 한다 해도 연봉제가 안 되므로 아무런 의미가 없죠.”
투표를 한 오후에는 전체교수회의가 있었다. 전체교수회의라고 해보았자 오만한 혼자 떠들다가 끝내는 회의였다.
교무처장이 개회를 알리자 오만한이 곧바로 마이크를 잡았다. 오만한은 하야시교수가 만들어 준 PPT 자료를 보면서 말을 했다.
“2018년 학령인구가 줄어 듭니다……. 앞으로 교육부에서 지방대학만 많은 지원을 해줍니다. 이런 수도권 중에서 제일 아래에 자리잡은 우리대학은 매우 어렵게 됩니다……. 총장은 순진해서 내가 데려왔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한방 먹였습니다.”
‘뭐! 순진해! 야! 그게 순진한 것이면 대한민국에 순진한 사람 한명도 없다. 이놈아!’ 교수들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오만한은 한 술 더 떴다.
“조그만 재주를 가지고 소영웅주의가 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여러분은 나쁩니다. 쓰레기입니다. 나는 최근에도 앞선 재단 때문에 압수수색을 당했고 검찰에 불려갔다 왔습니다. 그러나 나는 아무런 도장을 찍지 않았습니다.”
그랬다. 소영웅주의란 윤천삼교수와 최서남교수를 겨냥해서 에둘러 말했지만 교수들이 못 알아들을 리 없었다. 또 오만한에게 대학만을 매각한 앞 재단은 오만한에게 대학 매각 제의를 하기 전에 벌써 성안고등학교를 북문재단에게 매각했었다. 그런데 성안고등학교를 매수한 북문재단은 저축은행 불법비리와 관련돼서 이사장 이하 중요인물들이 구속되어 있는 중이었다. 이런 어려움을 겪던 북문재단은 성안고등학교를 다시 매각해야만 했다. 그런데 이를 매수한 사람이 엊그제 검찰에서 발표했던 미명학원 사건에서 비리와 연루되어 구속된 사람이었다.
서남교수는 생각했다. '네가 검찰에 불려갔다 온건 학교를 사고 파는 것만으로도 사립학교법위반이기때문이야! 우리 교수들을 물로 보고 있네, 교수들이 그동안 육해공중전은 물론 수중전을 몇번이나 거쳐서 도사들이 되었어! 그래서 다 알고 있어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어! 니옆에 딸랑이 몇놈 빼고는...' 하는 생각이 머리에 맴돌았다.
오만한은 연봉제의 패배로 인한 여파인지 검찰에 가서 조사를 받았다는 것과, 자신은 학사행정에 관여한 흔적이 없다는 의미인 도장 찍은 일이 없다는 해서는 안 될 말까지 했다.
지금 오만한이 교수들 앞에서 겁주는 말들은 연봉제가 통과 되면 교수들의 반발을 잠재우기 위해 준비해둔 말이었다. 그러나 총장과 하야시교수를 비롯한 보직교수들이 뛰고 또 뛰면서 많은 준비와 노력을 했지만 한방에 물거품이 되고 만 것이다. 원래 정의로운 일은 그렇게 숨겨서 야바위짓으로 할 필요가 없었지만 아직 수가 얕아서 들켜버린 오만한은 마음이 가라앉지 않았다.
오만한은 전체교수회의를 마치고 돌아오자 마자 보직과장회의를 열었다. 그리고 보직과장들에게 몹시 화풀이를 했다.
“이 구데기 같은 새끼들아…….”
2013.12.20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