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구병산 연봉
이념과 이론들은 호머의 서사시에 나오는 저승신 하데스의 그림자처럼 항상
제멋대로 움직이는 도식자들이자 형상 없는 반복광에 불과하다. 이념과 이론
이란 인간의 피를 마시고나서야 비로소 목소리와 형상을 얻는 것이며, 그제서
야 인간을 위해 얘기할 능력을 갖추게 마련이다.
--- 발자크, (슈테판 츠바이크,「천재 광기 열정 2」의 ‘스탕달’ 편에서)
▶ 산행일시 : 2010년 7월 10일(토), 구름 많음, 연무 낌, 염천
▶ 산행인원 : 16명(영희언니, 숙이, 버들, 설앵초, 메모리, 드류, 동산, 대간거사, 감악산, 화은,
하나늘, 조프로, 신가이버, 인샬라, 하늘재, 가은)
▶ 산행시간 : 6시간 57분(휴식과 점심시간 포함, 선두기준), 후미기준 8시간 43분
▶ 산행거리 : 도상 11.3㎞
▶ 교 통 편 : 25승 버스 대절
▶ 시간별 구간
06 : 38 - 동서울종합터미널 출발
08 : 37 ~ 08 : 42 - 보은군 장안면 서원리(書院里) 서원교, 산행시작
09 : 15 - △527m봉
10 : 07 - 665m봉, 이정표(구병산 5.1㎞)
11 : 08 - 753m봉, 백자미재, 이정표(구병산 2.6㎞)
11 : 55 - 구병산 전위봉, 이정표(구병산 0.8㎞)
12 : 02 - 풍혈(風穴)
12 : 08 ~ 12 : 22 - 구병산(九屛山, △876.5m)
13 : 05 - 853m봉
13 : 57 - 신선대
14 : 37 - 헬기장, ┤자 갈림길, 왼쪽은 충북알프스
15 : 01 - △582.1m봉
15 : 39 - 상주시 화남면 평온리(坪溫里) 평온동관로, 산행종료(선두기준)
후미는 17 : 25에 하산완료
21 : 45 - 동서울 강변역 도착
2. 구글어스로 내려다본 산행로와 그 주변
▶ 753m봉, 백자미재
속리산 주변 가기가 한층 수월해졌다. 동서울종합터미널에서 출발하여 중부고속도로를 달리다
경부고속도로와 만나자마자 상주 가는 고속도로로 갈아타고 속리산 IC에서 빠져나와 25번 국
도로 든다. 다시 장안면에서 505번 지방도로 타고 서원리 서원교 건너면 구병산 들머리다. 중부
고속도로에서 오창휴게소에 들리고도 2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
들머리에 충북알프스를 입체전도 그려 소개하고 있다. 보은군은 이곳에서 구병산, 형제봉, 속리
산, 묘봉, 상학봉, 신정리에 이르는 산군 43.9㎞를 충북알프스라 명명하였다. 밭두렁 살구나무
에서 농익은 살구를 어릴 적 추억으로 새콤달콤하게 맛보고 이정표 ‘구병산 8.0㎞’ 등로에 들어
선다. 잘 다듬은 통나무계단 오르막길이다. 통나무는 굵직한 철근으로 양쪽을 지지하였다.
바람 한 점 없다. 후덥지근하여 금세 땀으로 등줄기가 흠뻑 젖는다. 매미 울어대 더욱 염천을 예
감한다. 가파름이 잠깐 숙지자 쌍무덤이 자리 잡았다. 소나무 숲길이다. 바윗길은 약간이라도
가파를만하면 밧줄이 달려있다. 발길에 채여 평장(平葬)이 되어버린 흙무덤 지나면 사방 훤히
트이는 527m봉이다. 넘어야 할 첩첩산이 연무의 농담(濃淡)으로 한 폭 그림처럼 보인다.
등로변에는 쇠물푸레나무가 아주 흔하다. 봄날 그 하얀 꽃길을 짐작한다. 심심찮게 바윗길 오르
내리고 땀 식힐까 벼랑에 바짝 다가가 그 수직표고 가늠해본다. 멀리서 첨봉으로 보이던 665m
봉이다. 구병산 5.1㎞. 리지가 나온다. 개념도에서 칼바위능선이라고 한다. 오른쪽 사면으로 우
회로가 있지만 일로 직등한다.
├자 능선 분기하는 650m봉. 납작한 무덤이 넓게 자리 잡았다. 이정표에 ‘구병산 4.0㎞’인 지점
이다. 내가 선두로 나서는 일이 벌어진다. 아무래도 다 구병산에서 산행을 끝낼 심산인지 좀처
럼 속도내지 않는다. 나라도 당초 계획대로 봉황산까지 가리다 하고 일어선다. 혼자다. 여러 생
각 펴고 접기 시작한다.
하늘 가린 숲속 길, 사면 돌아내리면 산수국이 무리지어 피어있는 안부다. 봉봉 오르내림이 심
하다. 753m봉. 구미의 천생산처럼 정상이 평평하다. 백자미재가 대체 어디인가? 나는 이 753m
봉이라고 본다. 이 고개 정상에 안개가 서리어 아침 태양이 비추면 그 색채가 아름다워 백자미
재라 한다(국토지리정보원).
백자미(‘백지미’가 아니다). 한자 말인 듯한데 보은군 문화관광과에서 한나절 걸려서도 그 새김
을 알아내지 못하였다. 산 이름의 유래에 충실하자면 ‘白紫美’ 정도 되지 않을까. ├자 갈림길.
이정표에 직진은 삼가저수지 3.0㎞, 오른쪽은 구병산 2.6㎞. 점심은 구병산 정상에서 먹기로 한
다.
3. 서원리 주변, 527m봉에서
4. 527m봉 전위봉
5. 안돌마을, 527m봉에서
6. 가야할 능선, 527m봉 지나서
7. 가야할 능선
8. 속리산 쪽 조망, 연무에 가렸다
9. 바윗길 등로
10. 구병산 가는 길
▶ 구병산(九屛山, △876.5m)
얕은 안부 지나고 제법 긴 바위 슬랩을 밧줄 잡고 내린다. 협곡 골바람 한참 쐬고 나서 슬랩 오
른다. 밧줄이 달려있어 손맛 도통 모르고 오르내린다. 구병산 전위봉도 널찍하여 수대로 쉬어가
기 좋다. 살짝 내리면 풍혈(風穴)이다. 2005년 1월 19일 4개를 발견했다고 한다. 진안 대두산 풍
혈, 울릉도 도동 풍혈과 더불어 우리나라 3대 풍혈로 여름에는 냉풍이 겨울에는 훈풍이 솔솔 불
어나온다고 한다. 땅바닥에 풍구를 만들어 놓았는데 거기에 손을 가만 대보지만 숨차게 올라 한
껏 달아오른 탓인지 아무 느낌이 없다.
데크 계단 오르면 구병산 정상이다. 화강암 정상 표지석 옆의 삼각점은 낡아 ┼자 방위표시만
남았다. 조망 좋다. 온 길과 갈 길을 아울러 살필 수 있다. 산림청에서는 이 구병산을 100대 명
산의 하나로 꼽았다. 주능선의 북쪽 지역이 속리산 국립공원에 속해 있고 서원계곡(書院溪谷)
등 경관이 수려한 점 등을 고려하여 선정하였다고 한다.
웅장한 아홉 개의 바위 봉이 병풍처럼 연이어 솟아 예로부터 구봉산이라고 불리어 왔으며, 정상
에서 조망이 좋고 예로부터 보은지방에서는 속리산 천황봉은 지아비 산, 구병산은 지어미 산,
금적산은 아들 산이라 하여 이들을 ‘삼산(三山)’이라 일컬어왔다고 부언하고 있다.
지나온 능선이 가장 잘 보이는 곳, 깎아지른 절벽 위 암반, 그늘 아래에서 점심밥 먹는다. 더위
로 물 마구 들이켠 탓에 입맛이 매우 쓰지만 눈앞의 가경이 성찬이라 이내 밥그릇 비운다. 더구
나 금매실주 홀짝홀짝 독작(獨酌)하여 속리(俗離)한 안복(眼福)을 맘껏 누린다.
구병산을 찾는 이들이 많다. 그네들 인사성도 밝아 수인사 응대하기 바쁘다. 구병산 정상 내리
는 길은 리지다. 가는 걸음으로 전경 구경하다가는 큰 사고 난다. 살금살금 내린다. 구병산 후위
봉 직등. 구병산을 100대 명산의 하나로 선정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주능선의 북쪽 지역이 속
리산 국립공원에 속해 있고 서원계곡(書院溪谷) 등 경관이 수려한 점 등…’은 다만 췌사에 불과
하다. 구병산이게 한 9봉 혹은 9폭 병풍을 여기서 온전히 일람할 수 있다.
11. 지나온 길, 구병산 정상에서
12. 넘어야 할 구병산 연봉, 구병산 정상에서
13. 구병산 후위봉
14. 구병산 자락
15. 구병산 정상
16. 853m봉
17. 구병산 연봉
18. 구병산 연봉
18-1. 구병산 연봉
▶ 신선대, 평온동관로
우회로 마다한 내리는 길도 초입은 좋다. 움찔움찔 내리는데 절벽 위 소나무에 매인 밧줄이 끊
겼다. 왼쪽 가파른 슬랩을 손바닥 밀착하여 트래버스 한다. 겨우 엄지와 인지 오므려 잡을만한
바위 돌출부에 온몸을 실어 내리고 노끈 같은 줄을 잡는다. 다 내리고 나서 둘러보니 위험하다
하여 노약자들은 돌아가시라는 표지판이 있다.
안부마다 쉼터다. 여러 등산객들이 식사 중이다. 직진은 853m봉. 우회하는 길도 있다. 직등한
다. 슬랩에는 오르기 쉽도록 발판을 놓았고 밧줄까지 매달았다. 아주 산을 버려 놓았다. 그 다음
긴 슬랩에는 밧줄만 있다. 완만하여 별 소용없는 밧줄이다. 마지막 슬랩은 나무 없으면 오버행
이다. 차라리 밧줄을 잡지 말고 오른쪽 암사면으로 기어오르는 편이 낫다.
853m봉은 돌무더기 한가운데 두 동강난 정상 표지석을 맞춰놓았다. 소나무 가지사이로 좌우의
천길단애 구경하기 좋다. 853m봉 내리는 길은 나이프 리지다. 짧지만 고도감으로 완전 짜릿하
다. 달달 내린다. 트래버스 하는 수도 있었는데 몰랐다. 단애 위를 간다. 전망대에는 꼬박 들려
뒤돌아보고 방금 지나온 감흥을 되새김한다.
신선대. 너른 암반에 쉬고 있던 등산객(남자 2명, 여자 2명)들이 나를 기다렸다는 듯이 구병산을
어느 쪽으로 가야하느냐고 묻는다. 등로에 이정표가 없어서 모르겠단다. 용감하다! 내 지도 펴
놓고 현재 위치와 구병산을 자세히 알려주니, 산행 중 이런 치사 받아보기는 처음이다. 이제 구
병산의 그 장려하던 아이맥스 파노라마는 끝났다.
신선대 지나고부터는 확실히 나 혼자다. 충북알프스 종주하는 이들의 산행표지기와 동무한다.
그런데 가마고 벼렸던 봉황산이 멀어지려고 한다. 물이 말해준다. 3리터가 어느덧 달랑달랑 한
다. 도로에 내려서 물을 보충할 수 없다면 만사휴의일 터. 아껴 마시자니 더 감질 난다. 675m봉
을 타는 목마름으로 넘는다.
너른 헬기장 지나고 살짝 내려 ┤자 갈림길. 충북알프스는 왼쪽으로 간다. 뚜렷한 등로는 산행
표지기 모조리 몰고 그리로 간다. 내가 넘어야할 △582.1m봉이 우뚝하다. 오른쪽 사면으로 도
는 흔적이 보이지만 혹 길을 잘못 들까봐 직등한다. 삼각점이 있다. 관기 413, 1980 재설. 재고
또 재어보아 지도의 △582.1m봉 위치표시가 잘못되었다고 판단한다.
오른쪽으로 방향 꺾어 남진한다. 왼쪽 사면을 예의 살핀다. Y자 능선 분기하는 형세. 이쯤이다.
인적 없는 왼쪽 엷은 능선이다. 바위 지날 때 똬리 튼 독사가 나 먼저 놀란다. 잡목 숲 헤치며 잡
석과 한데 쓸려 내린다. 산자락 망초 밭 주위는 한삼덩굴 우거진 덤불숲. 뚫고 나오니 23번 도로
지나는 평온리 점마마을 위다.
자, 어떻게 할까? 마을이니 물 보충하기는 어렵지 않다. 논두렁 지나 산자락 휘도는 금계천(金
溪川)으로 다가간다. 봉황산 오를 데를 고른다. 어디고간에 인적 없는 덤불숲이다. 더하여 기슭
은 절벽으로 둘렀다. 갈까 말까 몇 번이나 망설인다. 반상(盤床)에서 운석(運石)만이 아니다. 생
각이 많으면 일을 그르치기 십상이다. 돌아선다. 두고두고 억울해 할 것 같다. 나약해진 내 자신
에 서글퍼진다. 발아래 금계천 소(沼)에는 도리뱅뱅이들이 떼 지어 놀고 있다.
19. 절벽의 노송
20. 구병산 연봉
21. 능소화
22. 능소화
23. 능소화
첫댓글 거의 홀로산행 하다시피 하셨네요 ...
처음엔 열심히 선두를 따라가다가, 후미와의 차이가 점차 크게 벌어져서 뒷분들과 합류하는 게 편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무더운 날씨에 바람도 거의 없고, 오르내림과 위험한 바윗길이 많아 모두들 자주 쉬며 계속 마셔댔지만, 그래도 내내 갈증에 시달렸습니다.(얼음 막걸리와 음료가 이토록 간절할 줄이야! .... )
격렬한 산행 욕구는 무박 산행 때 푸시고, 저희와도 보조를 맞추시어 함께 맛있는 점심과 간식도 즐기시지요 ....
홀로 산행하시느라 고생 많으셨겠습니다. 짜릿 짜릿한 릿지코스를 혼자서 해내시기가 좀 거시기 하셨을텐데요...^^
올만에 손 맛좀 보셨는지요? ㅎㅎㅎ 좋은 코스 계속된 출장이라 아쉬웠습니다.
완죤히 고속도로 수준의 등로였네요 따로 또같이 산행이라고, 같이 시작해서 홀로 마친 산행이셨군요,,더운 날씨에 고생 많으셨습니다
무더위에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래도 오지산행은 언제나 줄겁고 행복하답니다.
그날 저만 더운줄 알았더니 여기도 더웠군요. 앉았다 일어나면 현기증나고 중간에 물도 보충하고 하여튼 무거운 발걸음에 짜증난 날이었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