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발로 쓴 진도 이야기 15회 올립니다. 즐감하시기 바랍니다.
두 발로 쓴 진도 이야기는 16회로 끝납니다.
관매도는 대부분이 구릉지이며 북서쪽으로는 모래사장이 3㎞ 정도 펼쳐져 있다. 조도군도의 중심 섬인 하조도의 남쪽 약 7㎞ 거리에 위치해 있고, 근접한 섬으로 동쪽은 관매항도·신의도, 북동쪽은 청등도, 북쪽은 각흘도가 각각 위치해 있다. 섬의 면적은 6.44㎢, 해안선 길이는 17㎞이다. 육지와의 항만거리는 목포항 기점으로 63.2㎞이다. 인근에 있는 각흘도·항도·방아섬은 썰물 때 관매도와 연결된다.
관매도에는 관매, 관호의 2개 마을이 있다. 관매도는 인근의 섬사람들에 의해 ‘볼매섬’, 또는 ‘볼매도’라고 불리었는데, 볼매도의 ‘볼’을 볼 관의 ‘觀’으로, ‘매’를 매화 매의 ‘梅’로 바꿔서 관매도라 한 것이다. 189가구에 440명(남211명, 여 229명)의 주민이 살고 있는데 주업은 농, 어업이다. 민박을 하는 집도 다수 있다. 농작물로는 콩과 쑥을 재배한다. 근해에서는 멸치, 조기, 민어, 삼치, 농어 등이 잡히며, 김, 미역, 톳 등이 양식된다. 특산물로는 궁중에 진상했다는 독거곽(자연산 돌미역)과 일본에 전량 수출되는 톳, 다시마, 우뭇가사리 등이 있다. 관매도는 다도해 해상국립공원으로 지정 고시된 조도 6군도 중의 대표적인 절경의 집산지이다. 조도가 자랑하는 천연기념물 제212호인 후박나무가 이곳에 있고, 원추리·참나리·바위채송화·해국 등이 자생한다. 또 길고 고운 모래사장으로 유명한 관매도 해수욕장이 있다. 관매도 해수욕장은 경사가 완만하여 150m를 들어가도 한길을 넘지 않을 만큼 수심이 얕다. 그리고 해수욕장 주변에 노송방풍림과 관매8경이 있어 여름철 피서지로는 최적지라고 볼 수 있다. 한마디로 관매도는 다도해 해상국립공원으로 지정 고시된 조도 6군도 중의 대표적인 절경의 집산지인 것이다. 뿐만 아니라 사계절 전국에서 찾아오는 강태공들의 낚시터로도 유명하다. 2011년 6월 KBS-TV '1박2일' 관매도 편이 방영된 이후부터는 수많은 관광객의 발길이 연중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관매도행 선편으로는, 한림페리3호가 진도 팽목항에서 9시 50분에 출항하여 관매도까지는 2시간 정도가 소요되고, 조도고속훼리호는 진도 팽목항에서 12시 10분에 출항하여 관매도에는 13시 20분에 도착한다.
관매도에는 전설과 설화가 많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특히, 땅이름의 유래와 관련된 지명 설화가 많은데 구렁이 바우, 꽁돌바위, 돌묘바위, 서들바굴, 형제섬 등이 그것들이다.
구렁이 바우는 이 바위의 형상이 두 마리의 구렁이가 바다에서 서로 엉기어 산으로 올라가는 것과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옛날에 당제를 지내던 청년이 몰래 벼락바우 밑에서 애인을 만나 속삭이다가 천벌로 벼락을 맞아 구렁이 바우가 되었다고 하며, 여자들이 이 바위를 보면 애를 낳지 못한다는 속설이 있다고 한다.
형제섬은 관매도 남쪽에 있는 섬으로, 두 개의 섬이 나란히 있다. 옛날에 꽁돌을 가져가려고 내려온 하늘장사와 사자가 거문고소리에 넋을 잃자, 옥황상제가 두 사람을 돌묘에 가둔 뒤 다시 두 왕자를 내려 보냈는데, 왕자들 또한 거문고소리에 매혹되어 넋을 잃으므로, 바닷물 속에 잠기게 하여 형제섬이 되었다고 한다.
나머지 꽁돌바위, 돌묘바위, 서들바굴은 다음에 설명되는 관매 8경에서 설명하기로 한다.
관매도 절경을 언급하면서 관매 8경을 빼놓을 수가 없다. 제 1경은 관매도해변이다. 관매도 해변은 관매도에 있는 동서 2km의 백사장이다. 바닷물을 따라 150m를 들어가도 목물 밖에 깊지 않은 천혜의 해수욕장이다. 해수욕장 주위에는 약 3만평의 소나무 숲이 있어 여름철 피서객들의 좋은 휴식처가 되고 있다.
제 2경은 방아섬(남근바위)이다. 관매도 해안을 따라 걷노라면 눈앞에 작은 섬이 나타나면서 그 산정에 방아(절굿대) 모양의 약 10m 이상이 되는 바위가 보이는데, 이곳이 선녀가 방아 찧던 방아섬(남근바위)이다. 지나가는 여인들은 그 모양이 어찌나 희한한지 붉어지는 얼굴을 두 손으로 가리면서 혼자 웃게 되는 그런 곳이다. 방아섬 앞에 있는 신전마을 처녀들이 부엌에서 밥을 할 때 아궁이에 불을 지피면서 언뜻 고개를 들어 방아섬을 바라보면 큰 파도에 바위가 움직이는 것 같아서 얼굴을 붉히며 가슴에 부지깽이를 들고 숨었다고 한다. 옛날부터 이곳 방아섬에는 관매도의 총각과 신전마을의 처녀들이 결혼을 하면 못살고 헤어진다고 하여 결혼을 하지 않는 풍속이 있다고 한다. 그 이유는 신전마을에서 남근바위를 보면 호랑이가 입을 벌리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어 음이 양을 당해내지 못하여 불화가 생기기 때문이라고 한다. 반면 이곳 섬 지방에서는 자식이 없는 사람이 남근바위를 보고 자식을 낳아 달라고 기원하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제 3경은 돌묘와 꽁돌이다. 관매 2구인 관호마을 뒷재를 넘으면 바닷가로 널따랗게 널려져 있는 괴상한 바위가 있다. 여기가 하늘장사가 묻힌 왕돌끼미인 돌묘와 꽁돌이 있는 곳이다. 꽁돌바위는 지름 4~5m 정도로 마치 공처럼 생겼다. 자세히 살펴보면 마치 사람의 왼손을 펴서 받쳐 든 모양으로 꽁돌 중하단에 움푹 팬 홈이 손바닥의 손금까지도 새겨져 있는 듯 그 형체가 뚜렷하다고 한다. 그리고 꽁돌 바로 앞에는 마치 인위적으로 정교하게 조각하여 놓은 듯이 길이 1m 정도의 왕의 묘와 같이 생긴 돌묘가 일품이다. 돌묘바위는 꽁돌 옆에 있는 바위로 1m 정도의 바위가 마치 금관처럼 덮어 씌어져 있고, 둘레에는 고랑이 패여 있다. 사연인즉 이렇다. 옥황상제의 명을 받고 왕돌끼미에 내려온 하늘장사가 막 꽁돌을 받쳐 들려는 순간, 어디선가 은은하게 거문고소리가 들려 너무도 아름다운 소리에 매혹되어 넋을 잃고 말았다. 옥황상제가 다시 사자를 보냈으나 그 또한 거문고소리에 홀려서 꽁돌 옆에서 일어설 줄을 몰랐다. 이에 옥황상제가 노하여 그 자리에 돌무덤을 만들어버렸다고 한다.
제 4경은 할미중드랭이굴이다. 왕돌끼미 좌편 50-60m 해안 절벽하단을 지나 서북쪽 방향의 산등성을 넘어 해변에 이르면 비 오는 날 밤이면 할미도깨비가 나온다는 할미중드랭이굴이 있다. 너무 깊고 험상궂게 생긴 형태인데, 횃불을 들고 들어가도 산소가 부족해서인지 저절로 불이 꺼지고 이상한 소리가 들리는지라 감히 아무도 끝까지 들어간 사람이 없어 그 길이를 알 수가 없다고 한다. 그리고 옛날에는 이곳에서 할미도깨비가 나왔다고 해서 할미중드랭이굴이라고 이름이 붙여졌다. 이 굴이 진도군에서 가장 긴 굴이 아닌가 생각된다.
제 5경은 하늘다리이다. 하늘다리는 인근에 있는 방아섬에서 방아를 찧던 선녀들이 날개를 벗고 쉬던 곳이라 전해진다. 하나의 섬이 동지해의 거친 파도에 밀려나 50m 절벽으로 갈라져 쌍바위섬이 되었다고 하며, 섬과 섬 사이에 3m 간격의 틈을 두고 있는 이곳에 다리가 놓여 있어 이곳을 하늘다리라고 부른다. 그리고 그 폭이 3~4m로 밑으로 돌을 던지면 한참 후에야 떨어질 정도로 상당한 높이여서 그 위에 감히 서 있을 수 없어 엎드려서 머리만 내밀고 내려다보면 산이 움직이는 듯 온몸에 찬 기운이 오싹 할 정도이다. 그 주변 기암절벽 또한 감탄을 억제할 수 없는 절경 중의 절경이라고 한다.
제 6경은 서들바굴 폭포이다. 선녀들이 목욕하던 서들바굴 폭포는 안쪽으로 길이 10m 정도 되는 서들바굴이 있어 다른 지역 폭포와는 다른 경관을 느끼게 하는 곳이다. 방아 찧던 선녀들이 땀을 씻으며 이곳에서 목욕을 하고 밥을 지어 먹었다고 하여 이곳 주민들도 7월 백중이면 이곳에 와서 밥도 지어먹고 폭포수에 목욕을 한다. 그러면 각종 피부병이 씻은 듯 낫는다고 한다. 물이 들면(만조) 바닷물 위로 폭포수가 떨어지고 물이 쓸 때면(간조) 자갈 밭 위로 떨어지는데 그 아름다운 모습은 한 폭의 그림처럼 화려하고, 폭포수 밑에 섰노라면 떨어지는 물길이 어찌나 아픈지 1분도 채 견딜 수 없을 정도라고 한다.
제 7경은 다리여이다. 다리여는 바닷물이 많이 빠졌을 때, 한 달에 4~5회 정도 갈 수 있는 곳이다. 벼락바위 전설과 연관된 곳으로서, 청년과 처녀가 죽어서 되었다는 쌍구렁바위가 이곳에 있고 여자가 쳐다보면 아이를 낳을 수 없다는 전설이 있으며 자연산 돌미역, 톳, 돌김, 우뭇가사리 등 해산물이 풍부하다고 한다.
제 8경은 하늘담(벼락바위)이다. 그 옛날 관매 백사장 송림사이로 천연기념물인 후박 수림 부근에 당이 있었다. 이곳에서는 매년 가장 착실하고 모범적인 미혼청년을 제주(祭主)로 추대하여 당제를 올렸다. 추대된 제주는 당제를 올리기 전이나 올린 후에도 1년 동안은 몸과 마음을 정결하게 하고 특히 남녀가 만나는 것은 금기로 되어있었다. 그런데 어느 한해에는 이곳 제주로 당제를 지낸 청년이 전부터 몰래 사귀어오던 예쁜 처녀와 주민들의 눈을 피해 이곳 하늘담 아래서 만나게 되었다. 그런데 갑자기 맑던 하늘에 시커먼 먹구름이 일고 번개와 천둥이 치더니 폭우가 쏟아지면서 하늘 담에 벼락을 때려 그만 그 청년과 처녀가 돌벼락에 맞아 죽었다. 이 벼락바위는 높이는 20-30m 정도이나 밑에서 있노라면 간담이 서늘할 정도로 무섭기만 하며 지금도 번개치는 날이면 돌무더기가 떨어지는 아찔한 곳이라고도 하다. 여기서 벼락을 맞은 남녀는 그만 그 옆 다리축구석의 구렁이 바위가 되었으니 이 다리축구석의 구렁이바위는 바다 쪽에서 산력으로 수십 미터 되는 두 마리의 구렁이가 마치 휘어 감고 있는 듯 하여 여자들이 이곳을 보면 애기를 가질 수 없다는 전설을 가지고 있다. 그 후부터는 아예 당제를 지낼 때 제주는 덕망이 있는 마을 어른으로 추대하였다고 한다.
관매도의 두 마을 중 하나인 관매리(觀梅里)는 관광객이 많은 만큼 민박집도 많다. 원래는 관매초교와 조도중학교 관매 분교가 있었지만 학생이 없어 폐교되었다. 보건진료소와 파출소 출장소 등이 있고, 선착장도 있다. 이 마을에는 천연기념물 제212호로 지정된 후박나무가 있는데, 2그루가 나란히 생립하고 있고, 수령은 약 300년 정도라고 한다. 이 동네에서는 매년 정초에 이곳에서 당산제를 모신다고 하는데, 제주는 섣달 말에 동네주민 중에서 가장 깨끗하고 덕이 높은 남자를 뽑는다. 제주는 지성을 들이기 전부터 3일간 성황당 안에서 지낸 다음 제사를 지냄과 동시에 부락민들의 농악소리에 맞추어 당(堂)에서 나온다. 제주는 제사를 끝낸 뒤에도 1년간은 몸을 근신하여 각종 범죄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하지만 현재 마을에서 지내던 당산제는 중단되어 지내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진도군은 후박나무를 군목으로 지정해 일부 가로수로 식재하고 경제 조림용으로 보급하기도 했다. 그런데 후박나무 껍질이 한약재로 이용된다는 소문 때문에 껍질을 벗겨서 판매하는 통에 자연산 후박나무들이 시련을 겪고 있다고 한다.
관호리(觀湖里)는 달 밝은 밤에 섬 주위를 보면 마치 병풍처럼 둘러 쌓여있어 달빛에 비추어진 모습이 호수처럼 보인다 하여 관호라고 하였다고 한다. 이 마을 남서쪽의 산비탈에는 삼국시대에서 고려시대에 이르는 유물산포지가 있다. 이곳에서 수습된 유물은 회청색경질토기편, 갈돌 등인데 현재는 이곳이 계단식 밭으로 경작되고 있다고 한다. 사면의 말단부에는 민가 건축으로 인해 절개면이 드러나 있고 이 절개면에서는 토양쐐기가 관찰되었다고도 한다.
관매 8경과 관매도의 아름다움에 빠지다보니 이런 생각이 든다. 이런 명승지를 관매도 사람들만, 조도면민들만 보고 즐기는 것으로 끝낼 게 아니라 전 국민이 알고, 보고, 누려야 될 것이라고.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러기 위해선 좀 더 다듬고 가꾸고 잘 보존해서 세상에 널리 알려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최소한 조도면사무소에 전담 부서 정도는 있어야 할 것이다. 물론 지금도 어느 부서 속에 관광업무가 포함되어 추진되고는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정도로는 약하다. 아예 관광만 전담하는 부서가 있어야 할 것이다. 관매도를 포함한 조도가 최고의 관광지로서의 가치는 이미 입증되었다. 해마다 늘고 있는 관광객의 수가 그걸 증명하고 있다. 천혜의 자연 환경을 갖고 있으면서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너무 무심코 넘겨버리는 것은 아닌가 하는 아쉬운 생각이다. 그래서는 안 될 것이다.
수많은 섬으로 이루어진 조도. 이중에서 가장 큰 섬이라고 할 수 있는 하조도, 상조도, 관매도에 있는 마을들을 먼저 살펴보았다. 이어서 나머지 마을들을 알아보자. 나머지 마을들은 대부분 하나의 섬에 하나의 마을이 있거나, 더러는 2~3개의 작은 마을이 있는 곳도 있다. 섬들은 불규칙하게 사방에 흩어져 있다. 그래서 편의상 상조도·하조도 주변에 있는 섬 마을, 상조도·하조도에서 위쪽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섬마을, 그리고 상조도·하조도에서 아래쪽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섬마을로 구분하여 알아보고자 한다. 참고로 흩어져 있는 섬마을 주민들의 생활상은 거의 비슷하다. 주요 수입원도 비슷하다. 공통적으로 어업 및 해초 채취가 주 수입원이다. 주요 농산물은 고구마, 마늘, 유채, 보리 등이고, 인근 바다에서는 멸치, 장어, 농어, 병어 등이 잡히고 조개류로는 고동, 전복, 그리고 해조류로는 참모자반, 가사리, 톳, 돌미역 등이 생산된다. 특히 겨울철에는 상조도, 하조도처럼 쑥을 많이 재배하여 소득을 올리기도 한다. 주 생활권은 목포이며, 부 생활권은 하조도이다. 기간시설물로 소규모 어항, 선착장 등이 있고, 섬에 간이 상수도가 설치되어 있으며, 전력은 하조도에서 인입하여 사용하는 곳이 많다. 섬마을에 분교가 있었으나 지금은 인구 감소로 대부분 폐교되고 있는 실정이다.
먼저 상조도, 하조도 주변에 있는 섬 마을이다. 9개 섬에 열 개의 마을이 있다. 하조도 신전리 아래쪽에 죽항도가 있고 이 섬에 죽항도리(竹項島里)가 있다. 죽항도리는 조도면 하조도의 신전나루에서 남동부로 2㎞ 정도 거리에 있고, 진도 본섬 팽목항에서 13.1㎞ 지점에 있다. 팽목항에서 하루 1차례 섬사랑2호가 다니고 있다. 대나무가 무성하고 인근 하조도의 산맥이 흐르는 목에 위치하고 있다 하여 ‘죽항도’라 부르게 되었다. 또 하조도와 죽항도 섬 사이에 바닷물이 세차게 흘러 ‘대목’이라 하여 ‘대목섬’이라고도 부른다. 주민들은 어업이 주업이지만 밭에서는 약초와 쑥을 재배한다. 모래밭과 자갈밭이 함께 있는 짧은 해변이 있으며, 섬의 중앙에 해발 157.1m의 도리산이 있다. 동쪽에는 옥황상제가 붓글씨를 쓰다가 떨어뜨린 붓이 그대로 봉우리가 되었다는 전설이 깃든 문필봉우리가 있다. 17가구, 50여명의 주민이 살고 있고, 후박나무가 많이 자생하며 특히 죽항도리의 멸치 어장은 유명하다.
상조도 위쪽에 옥도가 있고 이곳에 옥도리가 있다. 옥도리(玉島里)는 조도면 상조도 300m 북쪽에 떨어져 있다. 섬 모양이 구슬 옥(玉)자 같이 생겼다 하여 옥섬 또는 옥도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옥도는 산지, 평지, 사빈(파도의 작용에 의하여 모래가 많이 퇴적하여 형성된 해안 지형), 자갈해빈(해안에 모래와 자갈 등이 퇴적된 지형)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빈은 옥도리 마을 앞에 소규모로 나타난다. 자갈해빈은 1.5㎞에 달하며 기반암 노출이 심해 식생의 발달이 어렵다고 한다. 해안은 주로 암석해안이고, 동쪽 해안에는 서쪽 해안까지 닿을 정도로 깊숙한 만이 형성되어 있으며, 해안의 자연경관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주민들의 주 소득원은 어업과 해산물 채취이다. 주 생활권은 목포이며 부 생활권은 하조도라고 한다. 기간시설로 소규모항 1개소, 방파제 2개소, 선착장 등이 있으며, 집집마다 개별 급수탱크가 있다. 전력은 하조도에서 끌어다 쓴다고 한다. 한편 씁쓸한 소식도 있다. 옥도리 임야가 제곱미터 당 99원으로 전국 최저가라는 보도를 본 적이 있다(전남일보, 5월 31일). 아마도 암석이 많은 산지 때문인 것 같다.
상조도 아래쪽에 나배도, 소마도, 대마도, 모도가 있고 각각 나배도리, 소마도리, 대마도리, 모도리 마을이 있다. 나배도리(羅拜島里)는 하조도의 서북쪽에 있으며, 북쪽으로는 상조도가 있다. 진도 서망항까지는 12.3㎞, 하조도와는 0.3㎞, 상조도와는 0.5㎞정도 떨어져 있다. 교통은 나배도 나루터를 이용하여 하조도의 세목이나 명지를 지나면 면소재지와도 쉽게 연결된다. 주민들의 주요 소득원은 쌀, 고구마이지만 특히, 겨울철이면 쑥을 재배하여 농가 소득을 올리고 있다. 수산물로는 멸치, 우럭, 광어, 간재미, 자연산 톳, 미역 등이 어획되며 어류의 양식업도 병행하고 있다.
나비를 닮은 섬이라고 하여 나비섬, 나부도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마을에는 조기잡이를 할 때 행해지는 닻배노래가 전해오고 있다.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제40호로 지정된 ‘조도 닻배노래’는 조도면 일원의 어민들이 조기잡이를 하며 부르던 노래로서, 조기잡이와 관련된 서해안의 대표적 민요이다. 조기잡이는 제주도 연해에서부터 황해도에 이르기까지 서해안 전역에서 이루어지던 주된 어업이었다. 닻배는 닻그물로 조기잡이를 하는 배를 말하는데, 정선망 또는 정망이라고도 하는 닻그물은 그물에 수십, 수백 켤레의 나무 닻을 채운 모양의 기다란 장막처럼 생긴 자망을 해저 고기가 다니는 길에 닻으로 고정시켜 그곳을 통과하는 고기를 잡는 어망이다. ‘닻배노래’란 이 닻배에서 그물을 끌어올리거나 내릴 때, 또 닻배를 이동시킬 때 부르는 노래이다. 현재 닻배를 이용한 어로 작업은 사라지고 노래만 남아 조도를 중심으로 연행되고 있다. ‘닻배노래’는 일의 진행 순서에 따라, ‘그물 싣는 소리(술비소리)’, ‘노 젓는 소리(놋소리)’, ‘돛 다는 소리’, ‘풍장소리(풍어를 비는 고사)’, ‘그물 내리는 소리(기와자소리)’, ‘그물 올리는 소리(술비소리)’, ‘만선풍장소리’, ‘뒤풀이(배치기)’로 구성된다. 진도군에서는 조도군도의 나배도에서 불리는 노래를 닻배노래의 으뜸으로 꼽는다. 또 나배도의 닻배놀이는 1994년도에 민속예술 경연대회에서 문화부 장관상까지 받았으며 지금까지도 보존이 잘 되어 있다고 한다.
소마도리(少馬島里)는 하조도의 서쪽 바다에 면해 있으며, 대마도 위와 관사도리 아래에 해당된다. 하조도(下鳥島)에서 서쪽으로 3㎞ 정도 떨어져 있으며, 대마도와는 2㎞, 진도 서망항과는 1.6㎞ 거리에 있다. 조선 말엽 이곳에서 이웃 대마도와 함께 군마를 길렀다고 전해지고 있다. 일설에 의하면 ‘소마도’라는 이름은 대마도와 같이 섬의 생김새가 말처럼 생겼다고 하여 붙여진 지명으로, 대마도는 큰 말, 소마도는 작은 말을 의미한다.
대마도리(大馬島里)는 섬의 모양이 커다란 말의 머리 모양으로 되어 있어 대마도라 하였다. 조도면의 남서쪽에 있으며 하조도와는 2.7㎞ 정도 거리에 있다. 교통은 해남에서 진도대교를 지나 18번 국도를 따라 진도읍을 지나 임회면 서망항에서 관매도행 배를 타고 가다 대마도에서 내리면 된다. 또 목포항에서 출발하는 선편도 있다. 3시간 20분 정도 소요되고 항로는 목포항-가사도-하조도 창유-상조도-라배도-관사도-소마도-대마도-관매도-동거차도-서거차도-상하죽도-곽도-맹골도-죽도-서거차도(서거차도에 1일 정박한 후 아침 6시에 상기항로의 역순으로 출발) 등지로 연결된다. 대마, 대막 마을이 있으며 논이 조금 있으나 천수답이고, 밭농사는 주로 쑥을 재배하여 농가 소득을 올리며, 약간의 콩, 고구마도 재배한다. 주요 소득원은 어업으로 수산업인데, 여름에는 장어와 농어, 우럭 등이 많이 잡히고 겨울에는 돔이 많이 잡힌다. 해조류는 가사리, 미역, 톳 등이 채취된다. 대막리(大莫里)는 해당화가 피는 마을로도 통한다.
모도리(茅島里)는 대마도와 소마도 사이에 있어 소가 건너뛸 수 있을 정도로 가까이 있다고 하여 ‘뛰섬’이라 불렀다고 한다. 또한 띠섬은 대마도와 소마도에 말과 소를 먹이기 위해 필요한 띠풀이 많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기도 하다. 1㏊ 규모의 자갈(몽돌)밭이 있으며, 산은 높지 않고 큰 나무가 없다. 톳이 주요한 수입원이다. 다른 섬마을들처럼 지질이 암반이라 식수가 풍족하지가 않다.
상조도 좌측에 있는 관사도에는 관사, 관작 두 마을이 있다. 관사도리(觀沙島里)는 조도면소재지에서 6.4㎞ 지점에 있고, 진도의 팽목항 선착장에서는 17.1㎞ 지점에 있다. 본래 진도군 조도면의 관청지역으로서 섬의 모양이 황새처럼 생겼다해서 또한 예부터 고운 모래톱 해변이 형성되어 있어 관새섬 또는 관사도라고 했다. 겨울에 쑥을 많이 재배하는 것도 이 마을의 특성이다. 관사리라는 지명은 모래가 많은 마을이라는 뜻이며, “마을처녀가 모래 세말을 먹어야 시집간다.”는 말이 전할 정도다.
관작리(觀作里)는 옛날에 대마도, 소마도에서 군마를 길렀는데 이 말들을 관리하던 관청이 이 섬에 있었기 때문에 관청도라 부르기도 하였다. 군마를 키우던 막사의 흔적과 목장성이 남아있다.
관사, 관작 마을을 이야기 하다 보니 옛 생각이 떠오른다. 벌써 34년 전의 일이다. 풋내기 공무원 시절이었다. 그때는 한 달에 한번 있는 반상회에 마을 담당 공무원이 참석해서 지도를 했다. 관사, 관작 마을은 당연히 배를 타고 가야만 하고 당일에 돌아올 수가 없는 그런 열악한 교통 사정이었다. 반상회가 있는 날은 으레 이장 댁에서 먹고 자야만 했다. 한 방에서 모든 가족과 함께 말이다. 잠자리보다는 식사 시간이 더 고역이었던 것 같다. 그 당시 섬 마을의 생활환경은 극도로 열악했다. 섬 마을들은 기본적인 의식주조차 해결이 어려운 때였으니. 최고의 정성을 들인 밥상도, 잠자리도 젊은 총각에게는 쉽게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이장님과 그 가족들은 자기 집을 찾은 손님이라고 나이 어린 공무원에게 정성을, 최선을 다 하셨다. 그때의 이장님이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검붉게 탄 얼굴에 구레나룻이 있었다. 지금은 그 이장님이 그립다.
역시 상조도 좌측에 있는 진목도리(進木島里)는 하조도의 서쪽 바다에 있으며, 근처에는 관사도리, 소마도리가 있다. 하조도와 5㎞, 진도 서망항과는 16㎞ 정도 거리에 있다. 동서방향으로 길쭉한 모양의 이 섬은 구릉성 산지가 늘어서 있는데, 그 사이 사이에 농경지가 조성되어 있다. 논은 없고 주로 밭으로 되어 있어 적은 토지의 밭에서는 콩, 고구마 등이 경작된다. 주민들의 주요 소득원은 수산물인 전복, 돌미역, 톳 채취 등이다. 주민의 대부분은 어업과 농업을 겸하고 있으며, 부근 해역에서는 갈치, 전갱이, 쥐치 등이 많이 잡힌다. 주생활권은 목포, 부생활권은 하조도이며, 기간시설로는 소규모 어항과 선착장 등이 있다.
관매도 동북쪽에 청등도(靑藤島)가 있고, 이곳에 청등도리가 있다. 청등도리는 목포를 기점으로 약 65.4㎞ 떨어져 있으며 가장 가까운 섬은 관매도(觀梅島)로 서쪽으로 1.3㎞ 떨어져 있다. 주민들의 주요 소득원은 부근 해역 어장에서의 어업과 톳, 돌미역, 김, 파래, 우뭇가사리 등 자연산 해초류 채취이고, 소규모의 산록 완경사면은 밭으로 개간되어 보리·콩·고구마 농사가 이루어진다. 기간시설로 소규모 어항, 선착장 등이 있다. 섬 모양이 등처럼 생겨서 ‘청등섬’이라고도 한다.
이어서 상조도, 하조도에서 위쪽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섬마을들을 살펴보자. 이곳에는 성남도, 외병도, 내병도, 가사도, 눌옥도가 있고, 각각 성남도리(城南島里), 외병도리(外竝島里), 내병도리(內竝島里), 가사도리(加沙島里) 그리고 눌옥도리(訥玉島里) 마을이 있다.
성남도리는 조도면의 최북단에 있다. 성남도리는 임회면 서망으로부터 9㎞ 떨어져 있으며, 소성남도까지는 0.2㎞ 떨어져 있다. 맹성관방성(孟城關防城)이 남쪽에 있다하여 성남으로 붙여진 이름이며, 돌로 이루어진 섬이라 하여 석남(石南)으로 표기하기도 한다. 또 재미있는 명칭 유래가 있다. 과거에 해적들이 조세 운반선의 곡물 등을 노략질하며 살아 왔는데, 당시 해적 두목은 자신의 성인 성(城)씨와 이 섬이 남방에 있다는 점을 연결하여 ‘성남도’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주민들의 주요 소득원은 쌀, 마늘, 고구마 등과 수산물인 멸치, 톳, 미역, 각종 해산물 등이다. 어류는 멸치, 우럭, 광어, 돔, 아나고, 농어가 주를 이루며, 조개류는 고동과 전복, 그리고 해조류로는 톳과 김이 주를 이룬다. 기간시설물로는 선착장 2개소, 물양장 1개소, 방파제 7개소가 있다. 성남도리에 속한 소성남도는 옛날에 해적들이 살면서 제주도에 조세를 운반하는 곡물을 노략질하면서 살았다고도 한다.
외병도리는 조도면의 서북쪽 바다에 있으며, 상조도 위 내병도와 가까이 있다. 내병도(內竝島)와 눌옥도(訥玉島)를 마주본다. 서망항과는 18㎞, 상조도와는 6.2㎞, 눌옥도와는 1.8㎞ 떨어져 있다. 섬의 생김새가 갈매기 형으로 생겨서 ‘갈미’라고도 하고 흔히 바깥갈매기(밭갈미)라 부른다. 기간시설로 소규모 어항과 선착장, 방파제 등이 있다. 외병도리 앞 해상에는 등대(외병도등표)가 신설되기도 했다(높이 14m, 직경 2.5m의 콘크리트 구조물). 또 외병도리는 전라남도의 도서별 태양광 발전 사업대상 도서로 선정되어 진도군에서 처음으로 태양광발전소를 건설하여 낙도 섬주민의 고통인 불(전기)과 물 중 불을 해결해서 섬 역사상 가장 큰 경사가 되기도 했다.
내병도리는 진도 남서쪽 약 43㎞ 지점, 팽목항에서 25.5㎞, 외병도와 1.9㎞ 떨어져 있다. 주민들의 주 소득원은 자연산 미역과 톳 채취이다. 과거에 내병도는 꽃게가 유명했으나 이제는 멸치가 주요 어종이다. 1816년에 영국함대가 진도해역을 지나면서 내병도를 섬 모양이 엉겅퀴와 비슷하다고 해서 ‘디스틀’(Thistle) 아일랜드라고 이름 지었다고도 한다. 내병도리는 지형이 갈매기처럼 생겼다고 하여 갈미섬, 갈매기섬, 구도(鷗島) 혹은 안에 있다고 하여 안갈미섬으로도 불리고, 또 두 섬이 나란히 있다고 하여 병도(竝島)라고도 불렸다.
가사도리는 목포항으로부터 직선거리로 45㎞ 떨어져 있으며, 목포에서 출발하는 정기 여객선이 운항된다. 면적은 5.58㎢이며 해안선은 18.10㎞에 달한다. 취락은 섬 중심부인 가사마을과 활목마을에 주로 밀집해 있으며, 주생활권은 목포시이고 부생활권은 진도읍이다. 1896년 행정구역 개편 때 가사면으로 독립했다가 1914년에 조도면에 편입되었고, 1964년 7월에 가사출장소가 개설되었다. 가사, 궁항, 돌목 마을이 있다. 가사도리는 해상 교통체계상 목포 생활 권역의 어촌이다. 조도해역에서 톳양식이 가장 많은 섬이며, 품질이 좋아 일본으로 수출되고 있다. 섬 남쪽에 맥반석 해수욕장이 있으며, 해류의 영향으로 1년의 반 이상이 안개가 끼는 섬이다. 가사도에서는 붉은 빛을 띤 납석과 옥돌이 나오기도 한다. 조도면의 섬들은 모조리 다도해해상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으나 가사도만 제외되어 있으며, 해역이 외국선박의 불개항장(외국과의 통상이나 교통이 허락되지 않은 항구로, 개항이나 관세항 이외의 항구를 말한다)으로 지정되어 있다. 공공기관으로 진도서초등학교 가사분교와 농협 면출장소, 보건진료소, 진도경찰서 가사도초소, 한국통신공사 가사도중계소, 가사도내연발전소, 가사도항로표지관리소 등이 있다. 기간시설로는 소규모 어항, 선착장, 물항장, 방파제 등이 있다. 궁항리는 해수욕장과 맥반석 암괴가 유명하고, 돌목리는 장삼위에 걸치는 붉은 빛 가사를 닮듯 붉은 빛을 띤 납석과 옥돌이 나오고, 유인 등대인 가사등대가 이곳에 있다. 가사도는 주지도, 양덕도, 공도, 송도, 광도 등 크고 작은 섬들이 가사군도를 이루고 있다. 주지도는 손가락섬, 상투섬이라고도 부르는데, 엄지손가락처럼 섬 중앙에 우뚝 솟은 바위가 있다. 양덕도는 섬의 형상이 발가락처럼 생겼다고 하여 ‘발가락섬’이라 하며, 이를 한자 표기한 것이 양덕도이다. 공도는 섬의 형상이 활같은 형상을 하고 있다고 하여 ‘활목섬’이라 부르기도 하고 섬의 중앙에 동서(수평구멍)로 구멍이 나 있어 독거혈도(수직구멍)와 쌍을 이루는 섬이다. 송도에는 섬 안이 온통 소나무만 자생한다고 하여 ‘솔섬’이라고도 한다. 광도에는 섬의 형상이 군함처럼 생기기도하고 사자처럼 생겼다고 하여 광도 또는 광대도라고도 한다.
눌옥도리는 목포항으로부터 직선거리로 60.2㎞ 떨어져 있고 근접섬은 1.4㎞ 떨어진 내병도이다. 지형이 누룩처럼 생겼으므로 누룩섬 또는 눌옥도, 눌옥리라 하였는데 이를 음역하여 눌옥도라 하였다. 주 생활권은 목포이며 부 생활권은 하조도이다. 주민들의 주 소득원은 자연산 미역채취, 톳 양식이고, 5년에 한 번씩 전복을 채취하여 마을 자금으로 사용한다. 다른 섬마을들처럼 눌옥도리 주민도 대부분이 60세 이상으로 겨울에는 추위를 피해 육지에서 지내기도 한다. 눌옥도리 내에 억새와 동백나무 군락이 있고, 눌옥도리 주변에는 납섬, 송도 등의 작은 섬들이 있다.
손으로는 이 글을 쓰면서도 마음속으론 바다 한가운데에 떠있는 섬마을들을 그려보고 있다. 눈을 감으면 섬마을의 풍경이 어렵지 않게 떠오른다. 망망대해 바다 한가운데에 떠 있는 작은 섬들. 그 섬에 올망졸망 자리 잡은 자그마한 몇 채의 가옥들. 낡은 어구들이 집 앞 바닷가에 널려 있고, 앞마당엔 갓 채취한 미역들이 뙤약볕에 말라가고 있다. 갈매기 쫓다 지친 백구는 지붕 밑 그늘에서 팔자 좋게 낮잠에 빠져 있고, 아는 듯 모르는 듯 태양은 언제나처럼 서쪽으로 기울고 있다. 태양은 내일도 어김없이 다시 나와 이 섬마을들을 밝혀줄 것이다. 갯바람이 자려한다. 그리고 곧 밤이 올 것이다.
진도에서도 멀리 떨어진 조도. 조도에서도 멀리 떨어진 작은 섬들, 그 마을들. 육지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고 원통해 할 일이 아니다. 바다 한가운데에 내팽개쳐져 있다고 서러워 할 일이 아니다. 육지에서 멀리 떨어져 있기에, 찾아가기 힘든 곳에 있기에 언젠가는 더 값이 나갈 것이다. 더 빛이 날 것이다. 사람들은 기를 쓰고 그런 곳을 더 찾으려 할 것이다. 그대들을 부러워 할 것이다. 그런 때가 올 것이다. 반드시 올 것이다.
마지막으로 상조도, 하조도에서 아래쪽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섬마을들을 살펴보자. 4개 섬에 다섯 마을이 있다. 관매도 서쪽에 동거차도, 서거차도, 맹골도가 있고 각각 동육, 동막리, 서거차도리, 맹골도리가 있다. 또 관매도 동쪽에 독거도가 있고 그곳에 독거도리가 있다.
동거차도(東巨次島)는 진도에서 남서쪽으로 14.5㎞, 서거차도(西巨次島)에서 남쪽으로 0.7㎞ 지점에 있다. 서거차도와 함께 거차군도를 형성하며, 부속섬으로는 망도, 북섬, 상송도, 하송도 등이 있다. 동육, 동막 마을이 있다. 동거차도까지의 교통은 해남에서 진도대교를 건너 18번 국도를 타고 진도읍을 지나 임회면 팽목항에서 정기 여객선을 이용하면 하조도와 상조도를 거쳐 관매도를 지나 동거차도에 도달한다. 동거차도라는 지명은 조도면 거차군도 가운데 동쪽에 있다하여 동거차도로 부르게 되었다고 하며, 또 다른 설로는 우리나라의 해상교통의 요지로 이 곳 해상을 지나는 선박들이 거쳐 가는 곳 또는 ‘거친 바다’라 하여 ‘거차’로 표기했다고도 한다. 동육리와 동막리의 특산물로는 즉석에서 가공하여 햇볕에 말리는 멸치가 유명하다. 해안에는 갈매기 떼가 서식하여 조류 연구학자들이 연구지로 이용하기도 한다. 동육리(東陸里)와 동막리는 ‘갱번’이라 하여 해마다 해조류를 공동으로 채취하는 마을 공동행사가 있다. 가사리는 5~6월, 톳은 6~7월, 미역은 6월말~7월말에 채취한다. 조도초등학교 동거차분교, 경찰초소, 동거차보건진료소, 무선전화국분국 등이 있다. 동거차도에 아주 기쁜 소식이 있다. 동거차도에는 70여세대 150여명의 주민이 살고 있는데 그동안 부족한 전력 사정으로 일상생활에 큰 불편을 겪어왔다고 한다. 그런데 이런 주민들의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진도군은 이곳 동거차도에 풍력발전기 100KW, 태양광 발전 116KW, 배터리 500KW, 디젤발전기 150KW를 건설하여 이곳 동거차도를 에너지 자립섬으로 조성하기로 하였다고 한다. 공사는 순조롭게 진행되어 오는 2016년 10월이면 준공된다고 하니 동거차도 주민들의 웃음꽃이 필 날도 머잖은 것 같다. 이런 게 바로 진정한 주민복지이고 지역발전이 아닐까싶다. 조도면 전체 섬마을들이 모두 에너지 자립섬으로 탈바꿈하기를 기원해 본다.
서거차도리(西巨次島里)는 진도군 임회면 팽목항으로부터 23.7㎞ 떨어져 있다. 근접 섬으로는 동쪽에 윗대섬·아랫대섬이 있고, 남서쪽에는 동거차도가 있다. 주민들의 주요 소득원은 멸치잡이와 자연산 돌미역 채취이다. 주생활권역은 목포이며 부생활권은 하조도이다. 조도초등학교 거차분교, 경찰파출소, 서거차보건진료소, 서거차내연발전소 등이 있다. 명칭 유래가 재미있다. 물길이 거친 곳이라 하여 거차도라고 하였으며, 또 다른 유래로 백제시대 이래 무역선과 여객선이 거차(去次)한다는 뜻에서 거차도라 하였다고 한다. 서거차도리는 거차도의 서쪽에 위치하는 데서 기인한다. 통일신라시대 일본인 엔닌의 ‘입당구법순례행기’에 나오는 구초도(丘草島)가 거차도로 알려지고 있고,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거추도(巨趨島)로 나오며, ‘비변사등록’ 등에는 거차도로 나온다고 한다. 이곳에 국가어항(이용범위가 전국적인 어항)인 서거차 어항이 있어 연간 100척 이상의 외래 어선이 이용하고 있다. 1966년 4월에 거차출장소를 설치하였다.
맹골도리(孟骨島里)는 육지에서 52.6㎞나 떨어져 있는데, 흔히 죽도수로라고 말하는 죽도, 곽도, 명도, 몽덕도 등 진도 서남쪽 군도에 있으며 남동쪽에 곽도, 북서쪽에 죽도를 마주하고 있다. 북동쪽에 서거차도가 있다. 섬 주위에 매가 있어 ‘매응골도’라고 하였다고 하며, 맹수처럼 사나운 바다에 떠있는 섬이라하여 맹골도라 하였다고도 한다. 맹골도는 진도의 서남쪽 모서리 가장 끝에 있는 섬으로서 진도 섬들의 방풍, 방파제 역할을 한다. 맹골도와 거차도 사이 해역은 맹골수도(孟骨水道)로 조류가 울돌목 다음으로 빠르며, 맹골도는 죽도, 곽도 등 여러 섬이 맹골 군도를 이루고 있다. 이곳 맹골수도에서 아직까지도 전 국민적 아픔으로 남아있는 세월호 침몰 사고가 발생하였다. 1907년 국제수로인 맹골수도의 길안내를 위해 맹골죽도 등대가 개소되었다. 이곳 등대는 주변을 다니는 초대형 선박과 어선들을 위해 설치한 유인 등대로서 등탑의 높이가 8.5미터이고 불을 켜는 등의 높이가 해수면으로부터 85미터에 이른다.
독거도리(獨巨島里)는 조도면의 동남쪽에 있으며, 동남북이 바다와 면하고 있다. 하조도와는 8㎞, 진도 서망항과는 12.2㎞ 사이에 있다. 교통은 해남에서 진도대교를 건너 18번 국도를 따라 진도읍을 지나 임회면 팽목항에서 조도행 배를 타면 상조도의 성등포에서 하조도 창유를 거쳐 청등도, 독거도에 도달하게 된다. 역시 이곳 지명 유래가 재미있다. 정조13년(1897)에 진상품으로 독거도 미역과 김을 가져오기 위해 조정에서 관리가 이곳에 왔었으나 거센 파도 때문에 오도 가도 못하였다고 하여 독거라 하였다고 한다. 독거도는 주변의 슬도, 탄항도, 혈도 등이 독거군도를 이루고 있다. 슬도는 큰 거문고에서 나오는 소리처럼 파도소리가 크고 파도가 많다 하여 슬도라고 했고, 탄항도는 섬 전체가 역시 산악으로 형성되어 수림이 아름답고, 간조 시 독거도와 자갈층으로 연결되어 일명 ‘여울목’이라고도 한다. 또 혈도는 급한 해류에 의해 수직으로 천연동굴(구멍)이 있어 조도지역에서는 구멍독거라고 불린다. 주민들의 주요소득원은 자연산미역, 톳양식, 전복양식이고, 숭어, 우럭, 돔, 장어도 많이 잡힌다고 한다. 이곳 독거도 등에서 생산되어 진도의 특산품으로 자리매김된 진도 미역에 대하여 좀 더 자세히 알아보자.
국내산 미역 중에서는 진도 자연산 미역(돌미역)을 최고의 상품으로 친다. 이런 진도 돌미역의 주요 산지는 고군면 금호도 인근(5월 채취), 의신면 접도 인근(6월 채취), 조도면 독거도, 혈도, 관매도 인근(7월 중순부터 8월 초순까지 20여 일 동안 채취) 등인데, 이중에서도 조도 미역을 최상품으로 치고 그 조도미역 중에서도 최상품은 ‘독거 미역’이라고 한다. 왜 그럴까? 미역이 자라고 있는 곳은 수심이 깊고 파도가 세야 하는데 진도는 지리적으로 한반도의 최서남단에 위치하여 파도와 조류가 강한 외해의 청정해역이다. 그렇기에 진도 미역은 조선시대부터 대표적인 진상품 가운데 하나였고, 일제강점기에도 일왕은 지산면 보전해연안산과 조도면 명지산만 먹었다고 한다. 또 ‘진도곽’으로도 알려진 진도 미역은 딸을 가진 어머니가 혼수감으로 미리 준비할 정도였다고도 한다.
첫댓글 즐감하고 갑니다. 추석 잘 보내시오!
감사 감사. 추석 명절 잘 보내시게. 서늘해지면 북한산이나 한번 오르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