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지난 주에 이어서 오늘 본문에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의 오해를 풀기 위해서 말씀을 선포하십니다.
* 왜냐하면 이 신앙의 오해가 안 풀리면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생활은 계속 하나님과 다른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 이스라엘 백성들의 오해하는 신앙을 향해서 주신 말씀이 우리들의 신앙을 조명해서 우리도 하나님과 더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신앙생활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본문 1절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내가 너희의 어미를 내보낸 이혼 증서가 어디 있느냐 내가 어느 채주에게 너희를 팔았느냐 보라 너희는 너희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팔렸고 너희의 어미는 너희의 배역함으로 말미암아 내보냄을 받았느니라.”]
▶ 여기서 ‘어미’는 남 유다라는 국가를 의미하고, ‘채주’는 남 유다를 정복한 ‘바벨론’을 의미합니다.
* 율법에서는 아내가 간음한 이유 외에는 이혼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다른 이유로 이혼을 하기 위해서 전통적으로 이혼증서를 준비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혼이 성립이 되지 않습니다.
* 여기서 하나님께서는 남 유다가 이혼(멸망)하도록 이혼증서를 써준 적이 없다고 하십니다.
* 그리고 하나님께서 채주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을 팔지 않았다고 말씀합니다.
▶ 남 유다가 이렇게 이혼(멸망)하게 되고, 이방나라에 팔려가게 된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악과 배역 때문이라고 말씀합니다.
▶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버려서 자기들이 멸망하였다고 하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희들의 죄악 때문에 이렇게 멸망한 것이라고 합니다.
* 이럴 때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이렇게 서로 상대방에게 책임을 떠넘긴다면 정말 어려울 것입니다.
* 이럴 때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오늘 본문처럼 하나님 앞에 서야 합니다.
* 하나님 앞에 서서 자신을 돌아보며,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살펴야 합니다.
▶ 지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이렇게 서로 논쟁하시는 이유도 결국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 하나님 앞에 나와야 답이 있고, 하나님 앞에 나와야 문제가 풀어지고, 하나님 앞에 나와야 회복이 이루어진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 그러므로 우리의 삶이 항상 하나님 앞에 나와서 하나님 앞에 설 수 있어야 합니다.
[본문 2절 “내가 왔어도 사람이 없었으며 내가 불러도 대답하는 자가 없었음은 어찌 됨이냐 내 손이 어찌 짧아 구속하지 못하겠느냐 내게 어찌 건질 능력이 없겠느냐 보라 내가 꾸짖어 바다를 마르게 하며 강들을 사막이 되게 하며 물이 없어졌으므로 그 물고기들이 악취를 내며 갈하여 죽으리라.”]
▶ 하나님께서는 얼마든지 이스라엘을 보호하실 수 있고, 도우실 수 있고, 건져낼 수 있는 하나님이십니다.
*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호하고, 돕고, 건져내기 위해서 그들을 찾아오셔서 부르셨습니다.
*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무도 환영하지 않고,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 진정 이스라엘을 도우실 수 있는 하나님, 그리고 친히 돕기 위해서 그들을 찾아와 주셔서 그들을 부르시는 하나님께 믿음의 반응을 하지 않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안타까워하시는 것입니다.
▶ 우리는 하나님께 반응할 수 있는 신앙생활이 되어야 합니다.
* 하나님을 간절히 사모하는 믿음이 되어야 합니다.
* 하나님께서 찾아오셨을 때 환영할 수 있는 믿음이 되어야 합니다.
* 하나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믿음으로 듣고 깨달아 순종할 수 있는 믿음이 되어야 합니다.
[본문 4~5절 “4. 주 여호와께서 학자들의 혀를 내게 주사 나로 곤고한 자를 말로 어떻게 도와 줄 줄을 알게 하시고 아침마다 깨우치시되 나의 귀를 깨우치사 학자들 같이 알아듣게 하시도다. 5. 주 여호와께서 나의 귀를 여셨으므로 내가 거역하지도 아니하며 뒤로 물러가지도 아니하며”]
▶ 하나님의 종이 고난을 겪게 되는 배경을 말씀합니다.
* 이사야 선지자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했습니다.
*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백성들이 듣지 않아도, 심지어는 그 말씀을 싫어해도 전하지 않을 수 없음을 먼저 고백하는 것입니다.
* 결국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전하지 않을 수가 없어 선포하게 되고, 그로 인해 백성들에게 고난을 겪게 되는 것을 이어서 말씀합니다.
* 이럴 때는 하나님의 말씀일지라도 좀 적당히 요령껏 전하면 좋지 않았을까요?
* 그러나 이사야는 하나님 때문에 그럴 수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 가장 좋은 믿음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 앞에 경외심으로 설 수 있을 때 만들어집니다.
* 하나님의 말씀이 나를 결정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나를 움직일 때 가장 형통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본문 6절 “나를 때리는 자들에게 내 등을 맡기며 나의 수염을 뽑는 자들에게 나의 뺨을 맡기며 모욕과 침 뱉음을 당하여도 내 얼굴을 가리지 아니하였느니라.”]
▶ 결국 이사야는 고난을 겪게 됩니다.
* 등을 때리고, 수염을 뽑고, 침을 뱉는 수모를 겪습니다.
* 그런데 이사야 선지자는 얼굴을 가리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 진리 위에 섰기 때문입니다.
* 진리 위에 서는 믿음에는 고난이 따릅니다.
* 그러나 진리 위에 서는 믿음은 항상 자유하고 견고합니다.
▶ 그럴 수 있는 이유가 본문 7절에 나옵니다.
* 본문 7절 “주 여호와께서 나를 도우시므로 내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내 얼굴을 부싯돌 같이 굳게 하였으므로 내가 수치를 당하지 아니할 줄 아노라.”
▶ 우리의 믿음이 진리 위에 서고, 우리의 믿음이 하나님 편에 설 수 있어야 합니다.
* 이 믿음은 하나님께서 살아계시며, 항상 믿음의 사람과 함께 하신다는 것을 신뢰할 때 가능한 믿음입니다.
(사도행전 6~7장에는 스데반 집사님의 설교와 순교의 장면이 나옵니다. 스데반 집사님이 성령이 충만하여 복음을 외칩니다. 그러나 생명을 살리는 복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유대주의자들은 스데반 집사님을 향해서 이를 갈았습니다. 그리고 결국은 스데반 집사님에게 돌을 던져서 죽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순교를 당하는 스데반 집사님의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았습니다. 그 이유가 사도행전 7:55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스데반 집사님은 험악한 분위기 속에서도 담대하게 복음을 외쳤습니다. 죽음을 무릅쓰고 생명을 살리는 복음을 외쳤습니다. 결국 사람들은 스데반 집사님을 향해서 돌을 던졌습니다. 그 순간 스데반 집사님을 하나님을 바라보고 예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 믿음생활은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 환경도 봐야 하고, 사람도 봐야 하지만, 그 순간 하나님을 보지 못하면 안 됩니다.
* 하나님을 볼 수 있을 때, 예수님을 볼 수 있을 때 우리의 믿음이 흔들림이 없습니다.
▶ 오늘 이사야 선지자께서 고백한 것처럼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을 때 사람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됩니다.
* 하나님 앞에 자신 있게 설 수 있는 믿음이 되어야 합니다.
* 그러면 우리의 믿음이 결국 천국에까지 갈 수 있게 됩니다.
[본문 9절 “보라 주 여호와께서 나를 도우시리니 나를 정죄할 자 누구냐 보라 그들은 다 옷과 같이 해어지며 좀이 그들을 먹으리라.”]
▶ 여기서 이사야 선지자의 ‘주 여호와께서 나를 두우시리니 나를 정죄할 자 누구냐?’고백이 맞아들어 갈까요?
* 현실적으로는 틀리게 됩니다.
* 왜냐하면 이사야 선지자는 나중에 남 유다의 므낫세 왕에 의해서 순교를 당합니다.
(외경에 의하면 이사야 선지자는 므낫세 왕에 의해서 산 채로 통에 갇혀서 톱으로 켜서 죽게 되었다고 합니다.)
▶ 그러나 이 말씀은 영적으로 보면 맞습니다.
* 왜냐하면 이사야 선지자께서 핍박과 순교를 당하면서 외쳤던 이 말씀은 결국 그대로 성취가 되기 때문입니다.
*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도우심이 자기 개인에게 적합한 도움의 차원이 아니라,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선포된 말씀이 성취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요 하나님의 도우심이었던 것입니다.
▶ 이사야 선지자는 모든 것을 하나님 중심에서 보았습니다.
* 그러니깐 자신은 지금 고난을 겪고 있지만,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있어서 괜찮다는 것입니다.
* 반대로 말해서, 지금 이사야는 아무 어려움도 생기지 않아서 너무 편안하고 좋은데, 자신을 통해서 선포한 말씀이 가로막히고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면 아마 이사야 선지자는 견딜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 이것이 하나님 중심의 믿음입니다.
* 우리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우리를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열매를 맺는 것이 가장 보람된 신앙생활인 것입니다.
▶ 항상 하나님 편에 서십시오.
* 항상 하나님과 함께 하십시오.
* 그곳에서 언제나 하나님께서 앞서 가시는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 그러면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아름답게 형통하게 이루실 것을 믿습니다.
* 그것은 다름 아닌, 바로 하나님의 뜻,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본문 11절 (새번역) “너희가 모두 불을 피우고, 횃불을 들고 나섰지만, 너희가 피운 그 불에 너희가 탈 것이며, 너희가 들고 나선 그 횃불에 너희가 소멸될 것이다. 내가 직접 이 형벌을 너희에게 내리고, 너희는 이 고문을 견디어야 할 것이다.”]
▶ 하나님 없이 하는 최선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를 외치는 말씀입니다.
* 특히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사야 선지자가 외치는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자기들의 방법으로 최선을 다해보겠다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수고가 헛되다는 것입니다.
▶ 사람들의 수고가 무조건 헛되다는 것이 아닙니다.
* 사람이 자기에게 주어진 삶과 일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아름답습니다.
* 또한 하나님께서도 그런 삶을 원하십니다.
* 그러나 우리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무조건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이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는 본문 10절에서 이렇게 외쳤습니다. “너희 중에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종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자가 누구냐 흑암 중에 행하여 빛이 없는 자라도 여호와의 이름을 의뢰하며 자기 하나님께 의지할지어다.”
* 우리는 무조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 무슨 일을 하든지, 무슨 말을 하든지 그곳에 하나님께서 함께 계셔야 합니다.
(예레미야 성경은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하나님께서 바벨론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심판하신다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볼 때는 바벨론은 정말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애굽을 의지합니다. 애굽도 전쟁의 요충지인 남 유다와 앗수르의 도움을 받아서 바벨론과 전쟁을 하게 됩니다. 이번 전쟁은 충분히 애굽이 유리하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이렇게 벌어진 전쟁이 바로 B.C.605년에 일어난 갈그미스 전투입니다.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여겼던 갈그미스 전투에서 애굽은 전멸을 합니다. 이 처참한 광경을 예레미야 46장에 그대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 아무리 좋은 조건과 계획일지라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지 않으시면 결코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기드온은 300명의 용사만 데리고 미디안 연합군과 전쟁을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믿음을 갖기 위해서 하나님께 양털솜 뭉치에 이슬이 내리는 기적, 양털솜 뭉치에만 이슬이 내리지 않는 기적을 요구합니다. 그만큼 기드온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 우리에게 이사야 선지자와 같이, 기드온과 같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수 있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 그리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믿음 때문에 언제나 더 담대하고 더 승리할 수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기를 기뻐하십니다.
* 하나님은 임마누엘의 하나님, 에벤에셀의 하나님이십니다.
*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더 환영하고 함께 하는 믿음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 그래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삶이 더 평안하고, 더 형통하게 펼쳐질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