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6일
싱가르다르 스투파
부처님 생존시, 주위의 나라들은 석가족에서 왕비를 맞기를 소망했다. 석가족은 상대국을 무시해서 시녀를 공주로 꾸며 보냈다. 시녀가 왕자를 낳자 석가족에게 유학을 보냈는데, 종의 자식이라 하여 멸시했다. 원한을 품은 왕자가 무력을 길러 석가족을 쳤다. 가비라국이 멸망한 因 이 거기 있다.
사태의 위급함을 알리러 갔다가 축출당한 한 석가족의 후손은 히말라야에 가서 도를 닦고 왕이 되었다. 그는 부처님이 열반하심을 듣고 흰 코끼리를 타고 사리를 얻으로 갔다. 사리를 받아오는데 코끼리가 이 자리에서 죽었다. 싱가르다르 스투파는 코끼리가 죽은 자리에 세워진 부처님 진신사리탑이다.
커다란 종을 덮어놓은 듯한 이 인도식 스투파는 멀리서 보아도 참으로 잘생겼다. 돌은 벽돌 모양으로 다듬어 쌓아 올렸는데 어쩌면 이렇게 곧게 올라갔는지. 미국의 어느 산림에 갔을 때, 수 만 그루의 나무들이 하나같이 하늘을 보고 곧게 뻗어 있는 것을 보고 감탄한 일이 있는데, 이 탑 또한 한 치 기울어짐이 없다. 부처님을 향한 단심이 軸이 되었음인가. 주위의 산도 코끼리 모습으로 탑을 지키고 있다.
탁티바히 사원
세계 최초의 불교대학이 있었다는 탁티바히 사원은 산 정상이 바로 절이다. 이집트의 피라미드보다 우주의 기를 가장 많이 받아들인다는 이 사원은 확실히 나그네의 마음을 사로잡는 신령한 기운이 있다. 탁티바히는 샘물과 옥좌를 의미하는 것으로 산 정상에 샘이 솟았다 하는데 지금도 흔적이 남아있다. BC 2세기에서 AD 6세기까지 존속했다는 이 사원은 그 규모가 장엄하고 웅대하여 마치 거대한 성을 보는 듯하다. 本寺뿐 아니라 주위의 산들도 곳곳이 승방이니 전성기에는 산 전체가 불국토였으리라.
탁티바히는 가장 모범적인 사원으로 알려져 있다. 돌을 하나씩 하나씩 날라서 쌓은 이 석조 건물은 모두 스님들 손으로 이루어졌다. 오늘날 산중의 절집 하나를 짓는데도 헬리콥터가 동원되는 것을 생각하면 2천여년 전 무거운 돌을 짊어지고 산을 올랐을 스님들의 신심이 눈물겹다. 一日不作이면 一日不食이라 직접 농사도 지었다.
탁티바히 사원에는 예수님의 12제자 중 하나인 성 토마스의 명상실이 있다. 계단을 내려가면 어둠 속에 토마스의 명상실이 나타난다. 두꺼운 벽으로 둘러싸인 승방은 크기가 한평 남짓하여 혼자 명상에 잠기기에 알맞은 공간이다. 바깥마당으로 통하는 출입문이 있어 거기서 들어오는 햇빛으로 책도 읽고 글도 썼으리라. 마당을 거닐며 지친 머리를 식히기도 했으리라.
포교를 위해 간다라로 온 그는 여기서 불법을 만나 승려생활을 했다. 그가 쓴 불교논문이 20편이 된다. 예수의 말씀을 그대로 기록한 《토마스 복음서》는 1945년 이집트에서 발견이 되었다. 간다라 불교학자인 민희식 교수는 〈토마스 복음서를 통해 본 예수와 법화경〉이라는 글에서 그 복음서의 한 구절을 인용하고 있다.
"하느님의 나라는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잘못이다. 만일 너희들이 이끄는 사람들이 하느님의 나라가 하늘에 있다고 한다면 새가 너희들 보다 먼저 하느님의 나라에 갈 것이요. 만일 그들이 바다 속에 있다고 한다면 물고기가 너희들보다 하느님 나라에 먼저 갈 것이다. 그러나 하느님 나라는 너희들 안에 있다. 동시에 너희들 밖에도 있다. 너희들이 너희들 자신을 안다면 너희들은 아버지인 하느님의 아들이 너희들 자신임을 알게 될 것이다."
민희식 교수님 “하느님은 너희들 안에 있고 동시에 밖에 있다는 말은 불교의 佛性內在論이고 또 그 다음에 계속된 문장은 法華經方便品의 汝我等無異다. 《토마스 복음서》가 참된 예수의 말씀이라면 《신약성서》에 대한 불교의 영향이 뚜렷해지고 다른 복음서에 대한 해석에도 문제가 생긴다”고 견해를 밝히고 있다.
페샤와르 박물관
탁티바이에서 시간을 소모하다보니 알렉산더 대왕의 유적지는 두를 사이도 없이 페샤와르까지 달렸다. ‘아름다운 꽃의 향기가 넘치는 도시’라는 향기로운 이름을 가진 페샤와르는 간다라 시대의 여름 수도였다.
페샤와르 박물관에 들어서니 간다라 조감도가 눈에 들어온다. 간다라 지역은 산에 둘러싸인 커다란 분지다. 산따라 강물도 이 지역을 감싸고 있다. 이런 天惠의 기운을 힘입어 이토록 아름다운 불상이 조성되지 않았나 싶다.
페샤와르 박물관은 부처님 단독상으로 유명하다. 간다라 사람들은 왕을 신격화하는 자기네 방식대로 자기네 나라에서 제일 잘 생긴 남자를 모델로 불상을 조성했다. 석가모니불, 미륵존불, 관세음보살, 아미타불 많은 불상들이 하나같이 아름답고 완벽하다. 자비롭고 온화하고, 그들의 신심은 외형뿐 아니라 부처가 나투시는 최고의 경지를 상으로 표현하는데 모자람이 없었다.
박물관 입구에는 쿠샨왕국의 카니시카왕의 사리함이 있다. 부처님의 가피를 입고자 몸에 간직했던 것이다. 왕은 불교를 보호 장려하여 제 4차 불전을 결집하였으며 불교의 전성기를 이루었다. 카니시카왕이 불교에 귀의하게 된 이야기가 전해진다. 왕이 한 때 탑을 쌓은 적이 있었는데, 쌓아도 쌓아도 탑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 불법에 귀의하게 되었다고 한다.
첫댓글 _()_
감사합니다.
페샤와르 박물관 부처님 생동감이 넘칩니다.
기행문을 읽다보면 직접 가보고 싶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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