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작)
큰 나무
피귀자
아버님,
오늘 생각지도 못했던 고향 분을 만나고 왔습니다. 아버님께서 그 자리에 계셨더라면 더없이 기뻐하셨을 사람이지요. 부산형님과 셋이 서울역에서 만났는데 우리를 얼싸안고 아버님을 뵌 듯하다며 몇 번이나 되뇌이더군요.
재작년 가을, 한 통의 전화를 받았지요. 아버님께 도움을 받았던 적이 있다며 우리 형제의 연락처를 알려고 이리저리 노력했다는 그 어른의 목소리는 중후했어요. 고향의 초등학교 동창회에 수소문하여 전화번호를 알아냈다는 말에 진심이 느껴졌고 예의바른 분인 것 같았지요. 집안의 대소사에 꼭 불러달라던 당부도 곧 잊고 지내다가 그저께 다시 전화가 와서 상봉을 하고 옛날이야기를 들으며 아버님 생각이 사무쳤습니다. 그는 60여 년 전의 이야기를 명주실 풀듯이 풀어놓았지요.
여보, 우짜면 좋소. 수재들만 들어간다는 사범핵교 시험에 우리 아가 떡 붙었는데도 돈을 못 구하이. 마감 날이 며칠 남지 않았다 아잉교.
그러게 큰일났구만. 앞집 뒷집 돈 있을만한 집은 다 댕기봐도 나올 구멍이 없으이.
하루하루 기한은 다가오고 부모님은 애간장이 다 녹고 나는 이제 입학은 글렀다고 포기하니 저절로 한숨만 나고 부모님 안 보는데서 눈물도 많이 흘렸지.
그때 윗마을에 사시는 자네 부친께서 바로 우리의 구세주였다네. 마감 전날 소문을 듣고 우리에게 선뜻 이 만원이라는 큰돈을 내주시며 그래, 니가 그 공부 잘한다는 준섭이구나. 앞으로 공부 열심히 해서 큰사람 되라꼬 주는기다.
하시던 말씀이 아직도 귀에 선하다네. 만원만 있어도 된다는 우리 아버지께 기어이 빳빳한 지폐 두 장을 손에 쥐어 주셨지.
그때 나는 꼭 훌륭한 사람이 되겠노라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네. 졸업 후 초등학교 교사로 출발하여 야간대학을 다니며 중학교 교사로 옮겨 갔다가 국비로 유학을 마치고 대학교수가 되었다네. 나중엔 대학 총장으로 근무하다가 은퇴를 하게 되었지. 내가 살아오는 동안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자네들 부친을 생각하며 견딜 수 있었다네. 그 어른의 자비심이 없었더라면 아마 오늘의 나는 없었을 것이네.
어린 나무에게 물울 주고 비료를 주신 자네 부친이 일찍 세상을 떴다는 소식을 듣고 얼마나 애통했는지 모른다네. 자네 부친의 큰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나도 나의 제자들에게 등록금이나 입학금을 주며 온갖 정성을 쏟았다네. 지금은 내 제자들이 세계로 퍼져나가 열심히 일하고 있고 각자 성공을 거두고 있으니 밑거름이 되어 주셨던 분의 자녀들이라도 찾아보고 싶었다네. 늦었지만 자네들을 찾을 수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라네.
그는 일흔 여덟이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게 기억력이 좋았고 한 편의 자서전을 청산유수처럼 풀어 놓았습니다. 그 많은 사람들의 이름과 있었던 일들을 정확히 기억하고 말도 조리 있게 잘하더군요. 아버님께 들려드리고 싶은 이야기를 우리에게 털어놓는 그는 제자라는 수많은 가지를 단 큰 나무 같았습니다. 돌아서 가는 그의 등을 보며 은혜 갚은 까치 이야기가 생각났습니다.
우리형제는 늘 도움이 필요한 이웃을 어루만지시던 크고 넓은 아버지의 품을 다시 한번 느꼈다. 아버지가 하신 일로 우리가 보람을 느끼니 스피노자의 유명한 말이 떠오른다.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 해도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
첫댓글 <외부소재>를 소설적 허구화 할 수 있다는 다양한 가능성 중 한 가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종결에서 여하히 <허구적 사실의 소재 형식>을 만들어서 빠져나오느냐의 문제를 해결한다면 창작문예수필 작품이 될 것입니다.
네~ 마지막 세 줄을 편지형식에서 따로 빼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