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6월에 몽골을 방문했을 때는 고비사막과 다얀산 천신제, 홉스콜 방문만 생각하고 여행을 하였다.
10여일이 지나 울란바토르를 돌아오면서 처음으로 사슴돌을 보았고 서울로 돌아와 2019년 8월 몽골에 다시 올 때까지 1년내내 몽골과 우코크고원에 널려 있는 많은 사슴돌에 대하여 생각하였다. 고대인들은 자기 옆에 사람들이 떠나면 정성을 다하여 무덤을 만들고 관을 준비했다. 관을 큰 나무에 매달아서 나무가 성장하면서 열매가 되기를 기원했고, 큰 나무는 하늘과 사람을 이어주는 신령수라고 여겼다. 죽음을 맞이하면 부족민들은 모두 힘을 합쳐 거대한 고분을 조성하고는 통나무로 만든 관을 놓고 말을 묻거나 사슴돌을 세웠다. 무덤에 말을 묻은 것은 말이 무덤의 주인공을 하늘나라로 데려간다고 굳게 믿었기 때문이다. 하늘과 땅을 이어지는 통나무관에 들어있는 주인공은 천마를 따라서 저승으로 머나먼 여행을 떠났다.
이번 힐링여행에서는 천마를 원없이 만나고 고대인들과 정신적으로 깊게 교감을 하였다. 또한 고대인들의 예술 솜씨를 높이 칭송하기 전에 죽음을 맞이하여 정성을 다하여 돌아가신 분을 배려하는 마음은 정말 본받을만했다. "지금도 알타이의 원주민들은 제사터에 말의 가죽을 나무에 걸어놓고 하늘과 소통한다." 시베리아 고고학자 강인욱 교수는 말한다.
몽골의 캄캄한 하늘에서 은하수를 보는 것은 정말 신비롭고 경이로운 일이다.
몽골에서 2번째 텐트 야영하는 날도 저녁 9시가 되어 골드체어산에 있는 아름다운 강가에 도착했다. 이 날은 중간에 오면서 볼거리도 많았고 비포장도로의 연속이라 시간이 많이 걸렸다. 밖애는 비가 조금씩 내리고 있었고 비가 온다는 소식이 있어서 텐트를 치는 장소 선택에 어려움이 있었다. 지난 6월에 선발대가 미리 봐 두었던 지점으로 갈 것인지, 산자락에 텐트를 칠 것인지를 두고 의논하다가 안 대장은 선발대가 사전에 정했던 곳으로 최종적으로 결정했다. 버스와 푸르공이 천천히 강가로 접근했다. 비가 많이 내려 바닥이 다른 날보다 더 미끄럽고 조심스러웠다. 습지에서는 차량이 빠질 수가 있어서 사람들이 모두 내리고 버스만 통과했다. 사방이 가축들의 똥이지만 연료라고 생각해서인지 대원들 아무도 불편해하지 않았다. 대원들은 강가의 물을 보고는 더욱 좋아했다.
하늘에 비구름이 많고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추워서 별을 기대하지 않았는데 밤 11시 지나 날씨가 점차 맑아지더니 하늘 서쪽에서부터 별이 하나씩 보이기 시작했다. 대원들은 늦은 식사를 마치고 늦게까지 별을보다가 자정이 되어서는 모두 잠을 자러갔다.
오늘도 신비로운 은하수를 보았다.
이효웅 선생님이 은하수를 촬영했는데 정말 장관이었다.
몽골 힐링여행을 통해 몽골초원에서 번창했던 유목민 국가들을 하나씩 알아가는 재미가 좋았다. 만주지역과 한반도 중심으로 번창했던 고조선·발해·말갈·옥저·고구려·백제·신라·왜·가야에서 밖으로 눈을 돌려 중앙아시아와 알타이를 돌아보니 알타이산맥과 만주 지역은 초원지대가 계속 연결되는 동일한 초원지역임을 깨닫게되었다. 꿈속에서 체체를렉 박물관의 비석이 자꾸 생각이 났다.
아침에 눈을 뜨니 역시 날씨가 춥고 매우 서늘한 날씨다. 몽골의 해뜨기 직전의 추위는 상상이상으로 춥고 매웠다. 옷을 있는대로 껴입고 텐트를 벗어나 해뜨는 동쪽 하늘을 바라다보았다.
하늘은 어느새 여명이 사라지고 날이 밝아오가 시작했다. 몽골의 아침은 정말 일찍 시작된다. 낮 길이가 17시간이나 돤다.
어제 저녁 깜깜할 때 도착하여 주변 경관의 아름다움을 몰랐는데 선발대 신익재 대표의 안목이 정말 대단함을 느꼈다. 강과 산이 아주 멋졌다. 야크 떼도 보이고 초원에 소와 양 떼가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아침 식사를 일찍 마치고 홍승원 단장님과 아침 산행을 나섰다.
오늘도 버스를 타고 장거리 이동을 하기때문에 시간이 날 때마다 걸어야 허리와 척추에 고통이 적기 때문이다.
아침 일찍 탁본을 간 안 대장팀을 멀리서 보기 위하여 인근 산에 올랐다.
산에 오르니 참으로 전망이 좋다. 산 전체가 옛 무덤들이다.
멀리 비어있는 목장터가 보인다. 현재는 사용하지 않지만 겨울이면 가축들의 집으로 사용하는 것으로 추즉돤다. 주위를 둘러보아도 정말 조용하다. 이렇게 고요하고 적말할 수가 없다. 몽골의 가축들도 소리를 내지않는 점이 정말 이상했다.
사슴돌 탁본팀을 현장에 태어다주고 한참 후 푸르공이 되돌아오고 있다. 나는 산위에서 이 차를 푸르공이 아니고 다른 목장의 화물차로 착각했다. 멀리 오보가 보이고 차량이 있어서 처음에는 우리 팀으로 생각했는데 멀리서보니 유목민인것 같아서 탁본팀을 찾아가는 것을 포기하고 돌아섰다. 눈앞에 보이는 거리인데 실제로는 엄청나게 먼 거리였다. 몽골 여행을 하면서 느낀 것은 유목민들의 시력은 엄청 좋고 항상 자연과 더불어 살아서 그런지 안경을 쓴 사람이 거의 없었다.
산 정상까지 올라가 봉우리를 2개 넘고 주변을 돌아보다고 텐트로 복귀하려고 사진을 남겼다.
산에 올라간 우리를 수색하는 드론이 하늘로 올랐다. 드론은 탁본 현장을 촬영하러가다가 통신이 안되고 너무 멀어 스스로 되돌아왔다.
드론 촬영은 오지에서는 정말 긴요하게 사용된다.
텐트를 방문한 유목민 가족과 아이에게 홍승원 단장님과 대원들이 선물을 주었다.
우리가 저녁 늦게 텐트칠 장소를 고를 때도 찾아와 인사를 나누었던 유목민은 아침 일찍 승용차을 타고와 우유와 치즈를 가져오고 아이들까지 함께와서 인사를 시켰다.
강가에서 정말 꿀맛같은 잠을 잔 대원들은 아침식사를 마친 후 텐트를 정비하고 출발 준비를 서둘러 마쳤다.
월드체어산의 사슴돌 탁본을 뜨고 있는 안 대장과 조은아 대원.
몽골 지도를 들여다보면 석인상과 사슴돌 유적지가 굉장히 많이 표시되어 있다.
사슴돌(鹿石, 보긍쇼, Deer Stone)은 시베리아와 몽골 등지에서 발견되는데 사슴이 많이 그려져 있는 고대 거석 기념물이다. 사슴돌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지금부터 4,000년~3,000년전에 살았던 청동기 시대인들이 돌에 새긴 유목민의 삶과 꿈이 남긴 거석문화라고 추정한다.
넓게는 1400개가 있고 몽골에 900여개가 발견되었다. 대표적인 곳이 몇군데 있는데 홉스콜 아이막의 무릉 17km 서쪽에 있는 오시긴 오브레에 있는 사슴돌은 최고로 치기도 한다 모두 유적지로 보호를 하고 있다.
채탁하려고 조심스럽게 한지를 비에다 붙였다. 안 대장과 2명의 대원은 날씨가 더워지기 전에 탁본을 시작하여 한지가 잘 붙고 먹이 잘먹어서 탁본작업이 신속하게 진행되었다. 탁본에 앞서 비를 깨끗이 청소하고나서 종이를 붙이고 초벌과 재벌 먹올리고 마무리 먹과 사진촬영 실측, 결과물 정리 등은 상당히 어려운 작업이다. 특히 몽골에서의 탁본 작업은 기상이 아주 요란하여 금세 비가 왔다 지나가고 날씨 변화가 심해 고통이 많이 따른다.
사슴돌에 종이를 입히고 조심스럽게 먹을 올리는 작업을 하고 있다.( 안동립 대장)
사슴돌의 크기는 높이가 1~3.8m로 다양하고 두께가 20~40cm이며 너비가 30~80cm 화강암입니다. 청동기인들의 사슴돌 조각상에는 다양한 예숙 제작 기법의 조합이 적용되어 있습니다. 엄청난 노력과 정교한 기술을 필요로 하는 조각상에는 사슴의 모양, 케이스가 있는 활, 창, 방패, 거울, 장식 패턴이 있는 벨트, 단검, 태양, 달, 별,귀걸이, 말달리는 사람, 가축 등이 새겨져 있습니다.
사슴돌에 대한 최초의 연구는 100년 전부터 비로서 시작되었습니다.
방사성 탄소연대 측정 결과 사슴돌의 역사는 몽골에 많은 히르기수르(돌무덤 유구)와 비슷한 기원전 14~8세기로 조사되었다.
사슴돌은 유목민 집단의 부족장을 위해 세운 것으로 제사와 샤마니즘과 관계가 있으며 영원불명을 믿었던 고대인들의 장례 풍속이다.
오보가 있는 이곳운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대표적인 사슴돌 명소이다.
버스를 타고 온 대원들은 사슴돌과 구경하고 탁본을 정리하는 대원들을 도왔다. 사슴돌 유적지에는 여러 형태의 무덤이 함께 있었다.
사슴돌을 탁본하고 나서 기념사진을 남겼다. 탁본 전문가의 솜씨가 보인다.
사슴돌 방문 기념사진을 남기고 대원들은 다음 행선지를 향하여 차에 승차했다.
우리나라 국립중앙박물관과 몽골사회과학원 역사연구소는 1999년 공동 발간한 책에 1997년 조사한
1)상투 지역 유적
2)투구스구 지역 유적
3)알락 모리트 지역 사슴골 유적
4)오르홍 지역 적석묘
5)잘라 톨리고이 지역적석묘
6)이흐 돌란올 지역유적
7)오스팅 덴지 지역 유적
1998년에 조사한
1)우글룩칭골 A·B지구 유적 등 많은 지역의 사슴돌을 조사하고 탁본을 하였는데 책으로 발간하였다.
몽골 고비-알타이 지구의 문화유적 학술 연구 자료는 2013년에도 바앙 울 솜 돌러드 유적 등 2009년부터 2013년까지 수행한 몽골 유적 지표자료조사가 있어 공부에 큰 도움이 될것같다
오보
김상수 교수님
아침에 산에 올라서 탁본하는 현장까지 걸어가려고 했지만 길이 멀어서 단념했다. 산에서 보기에는 금방 갈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 거리는 엄청나게 멀었다. 아침에 등산한 산봉우리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몽골 현지에서 만난 사슴돌을 돌아보면서 몽골 사슴돌 선행 학자들인 백승정· 박원길 교수님께서 저술한 논문을 꼭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한국몽골학회에서 2012년 8월 발간한 «몽골학 33권»에는 해당 논문이 상세하게 적혀있다.
«몽골 청동기 시대 장식용품에 나타난 문양 디자인 고찰-특히 사슴돌문양의 시공(時空) 인식 체계를 중심으로 »(저자 백승정,박원길)
사슴돌에서 행복한 미소를 남기다.
사슴돌 기념비
안동립 대장이 어렵게 탁본한 사슴돌을 배경으로 사진을 남기다.
기념비에는 청동기 시대의 사슴돌이 중앙아시아 지역에 약 700여개 정도 있다고 적혀있다.
궁인창(생활문화아카데미 대표)
사슴돌 안내석
몽골지도
아르항가이 지역 Ikhtanir Soum(郡)
Deer Stone of the Altansandal mountain
사슴돌 기념비
제38차 고조선유적답사회 홍승원 단장과 안동립 탐사대장
사슴돌에는 제사를 많이 지내서인지 파리떼가 엄청나게 많았다. 이곳을 찾아오는 사람이 정말로 많다.
서잔가 이효웅 선생님은 우리나라의 바다를 카약과 손수 만든 선박으로 8,000km를 항해하셨다. 해양탐험가로 불러주기를 원하신다.
사슴돌을 떠나면서 기념사진을 남겼다. 사슴돌은 사슴이 여러 마리 새겨진 청동기 시대의 무덤이다.
청동기시대 사람들은 죽은 사람의 영혼이 사슴을 따라 천국에 갔다고 믿었고, 사후세계에 잘 살아남기 위해서 창과 도끼가 있는 벨트를 돌에 새겨 챙겨주었다.
말을 보러 간다.
몽골의 하늘은 정말 순수하다.
안동립 동아지도 대표는 지금까지 중국· 몽골 등 여러 지역을 답사했다.제38차 고조선유적답사회 회장으로 대원들을 인솔하여 정말 많은 것을 보여주었다. 작년에 동북아평화재단에서 주는 "독도사랑상"을 수상하셨다.
홍승원 단장님(72세)은 제22대 재경김포시민회장(2014년~2016년)을 역임했다. 회장으로 계시면서 50년 전통의 단체를 잘 이끌고, 회원 3,000여명을 화합시켜서 열린음악회를 개최하고 장학금을 학생들에게 지급하고 많은 재경 김포향우들을 잘 이끌고 결합시켜 많은 사람들로부터 깊은 존경을 받고 있다.
항상 어른들의 책임을 강조하고 몸소 실천하신다.
지난 밤 은하수의 깊은 의미를 되새겼다.
홉스콜 가는 길은 멀고,가는 길에 방문하고 싶은 곳은 왜 그렇게 많은지 버스를 타고 가면서 일정표를 계속 들여다 보았다.
오늘도 푸르공은 홉스콜을 향하여 힘차게 달린다. 8월의 몽골은 놀라울 정도로 푸른 초원이 끝없이 펼쳐졌다.
우리 대원중에서 제일 막내였고 귀염둥이었던 12세 몽골 소년. 인사성 좋고 항상 얼굴에 웃음이 있어 인기가 최고였다. 몽골에 도착하던날 가져갔던 작은 선물을 주었더니 자기가 가지고 있던 아끼던 과자를 나에게 가져왔다. 여행하는 동안 항상 붙어다니는 친한 친구가 돠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