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홍종효선생의 증거장막성전 출신입니다.
이젠 기독교회에 대한 믿음은 떠났지만
이 카페에 와서 이런저런 글들을 보면 감회가
새롭습니다.
홍종효선생이 (호칭을 선생으로 부르는 것은
그에 대한 믿음이 남아서가 아니라
승려를 스님이라 부르는 것
같은 것이기도 하고 고인에 대한 예의 차원입니다
혹 거슬리신다면 죄송합니다)
세검정 자하문 근처에서
집회를 인도하던 모습,
이만희 씨가 그 곳을 찾아와서
저와 같이 술 잔을 기울이던 것이 어제 같네요.
이제 곧 이루어진다, 얼마 안 남았다란 이야기
수도 없이 듣고 살았지요.
그런데 아무 것도 이루어 진 것도
달라진 것도 없이
그 두 증인 중 한 명은 고인이 되었고
또 한 명은 후계를 염려하고
끝까지 자신을 변호하는
모습만 보고 있습니다.
홍종효, 이만희, 윤요한, 이복용, 지재섭, 윤재명,
양을규,신상훈, 갈렙, 김건남, 김병희, 김풍일,
이영길, 나병준, 베드로라 불리던 김 모,
강영시 등등 ...
참 많은 이 들을 보고 살았네요
허무합니다...
첫 장막, 둘째 장막, 셋째 장막...
첫 장막 사람들은 아직도 어린 종이
야곱의 환란이 끝나면 제단 숯불받아
다시 역사한다고 믿고 있고
둘째 장막은 1987년에 부도, 1991년인가요?
이젠 기억도 안 나네요 부도...
셋째 장막은 스스로 실상에 예수라던 분은
고인이 되고 그 따른 자 중 하나가
어린양의 신부라고 하며 또 시작...
언제 끝날까요? ...
홍선생과 이선생의 결별 사연은 이러합니다.
홍선생이 두 증인 반열에서 이탈하게 된 사연은 순전히
감정적인 이유가 가장 컸습니다. 때는 1987년 3월 14일 유월절 예배 시에 일어난 사건인데
보통의 예배 시 사회와 기도는 홍선생이 맡아서 봤고 말씀은 이선생이 전하시는 것이 관례였지요
그런데 그 날은 보통의 날도 아니고 유월절 예배일인데 사회와 기도를 윤 모 강사에게 맡기라고
이선생이 지시를 한 것 입니다 홍선생을 아시는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그 분 성격이 매우 다혈질
입니다. 그러다 보니 욱하는 성미에 이선생에게 거칠게 항의를 하지요 들은 바를 그대로 표현하자면
홍선생이 거칠게 대들자 이선생은 뭐라고 제대로 된 답변도 못 하고 '어~어~ 와 이라노 와 이라노' 라고
하니까 홍선생이 '와 말도 못 하고 ㅂ ㅅ 같이 어~어~ 만 하노 니가 천국을 이루면 개가 천국을 이룬다'라고
난리가 났습니다 그러다 지 모 씨를 필두로 몇 청년들이 홍선생을 끌어내는 지경까지 온거지요 이 후 홍선생은
비산동 쪽과 관계를 단절하며 지내다 자신만의 신비체험를 거치고 나름의 교리를 정립하여 셋째 하늘 교리를
만들어서 세검정에 증거장막성전을 이룩하게 되는 과정이 있었는데 이게 그 날의 사건전모입니다.
초기 보좌 구성
초기엔 가족 친지가 주축이 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였습니다
그 작은 무리들이 아무리 외쳐봐도
그들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았을테니까요
그러다 보니 이선생 쪽에서는 자신의 친동생이
홍선생 쪽에서도 자신의 매부(여동생의 남편)인
양을규 씨가
또 한 윤 씨 형제들... 등 등
이젠 다 들 짝잃은 외기러기가 되어버렸지만...
홍선생이 신탄에 대해서 보인 반응은
정말 난리였답니다.
그 과정에서 김병희 씨는 빰까지 맞았지요.
그 때 당시 돈을 2천만원이나 투자해서 낸 책인데
어디서 듣도 보도 못 한 통일교 이론이 가득한 책을
내밀었으니 (사실 통일교책이라고 표현한건 홍선생
표현이고 그 책은 생령교회의 영향이 더 크지요)
통일교나 생령교회는 근처에 가보지도 않았고
오로지 장막신앙만 해 온 홍선생 입장에선
기가 찰 노릇 있었지요
제 개인적인 사견으론 87년 사건에 배후엔
이런 점도 작용했을거 같습니다.
두 증인 중 한 명인 홍선생은 젊은 생령교회 출신
청년들을 이해 할 수 없었을 것이고
그래도 나름 말씀정립이 되어져 있었다고
자부해온 청년들에게 홍선생은 눈에 가시?
같은 존재 아니였을까요?
그에 반해 이선생은 통일교 출신 목영득에게
배운 것도 있고 또 한 홍선생처럼 자기 주장을
강하게 펴는것도 아니니 쉽지 않았을까요?
그러다 보니 나이도 그리 젊지 않고
인격적인 면에서 칭찬받고 있던 윤 모 강사를
사회로 세우는 일을 알게 모르게
진행 한 것 아닐까요?
제가 느낀 점입니다 너무 심각하게 받아드리진
마십시요.
백만봉교회 이야기
이건 저의 경험이 아니라 홍선생이 저한테 해 주신 이야기입니다.
1980년 3월 13일은 백만봉씨가 약속한 천국이 이루어지는 날이였습니다.
그래서 제 기억으론 아침 일찍부터 청계산에 모였답니다. 물론 그 자리엔 홍선생, 이선생, 양을규 씨 등등이 있었다고 합니다.
모여서 야외에서 예배를 보고선 또 다른 자리로 이동, 또 이동을 몇 차례하던 중 백만봉 씨가 이제 내려가자라고 하더랍니다. 다 끝났다고 하면서요
그랬더니 이선생이 매우 격앙되면서 '와 오늘 이룬다고 하더니만 이래됐노 이 ** 거짓말이가' 라고 하면서 격렬히 항의를 하고 이 과정에서 이선생이 백만봉 씨에게 매우 심한 폭행을 다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주변에선 말리고 해서 내려왔는데 그 다음 날인가 이선생이 홍선생에게 전화가 와서 '됐다 이제 우리가 하자' 라고 하더랍니다. 그 때까지 홍선생은 이 말의 뜻을 잘 몰랐다고 합니다. 위의 사건을 거치다 보니 초기에 멸망의 아들이 오평호로 증거된게 아니라 백만봉으로 증거되어 진거 같습니다. 이건 순전 홍선생에게 구전으로 전해 들은 이야기이다 보니 명확한 증거는 없지만 역사를 되집다 보면 비사에 의한 추리도 필요하겠다란 생각에 남겨 봅니다. 참고만 하십시요.
궁금한 게 있습니다.
둘째 장막에선 요즘 666을 뭐라고 설명합니까?
홍선생은 666을 오 목사 + 17명 안수자들
그러니까 6+6+6 = 18 이라고 했었는데 말입니다.
목영득교회 이야기
첫 장막에 목영득이란 사람이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을 '실로'라고 하였답니다.
그 목 씨는 첫 장막에서 나름 인기를 얻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첫 장막 종들과는 또 다른 차원의 이야기를
했기 때문인데 이 이유는 역시나 목영득은 통일교 출신이였습니다. 첫 장막의 주된 구성원은 전도관 출신이 많은데 기실 박태선장로는 말씀 위주가 아니라 기사이적을많이 보이는 위주인데 반해 통일교는 나름의 교리체계가 있었지 않습니까?
전도관이 흔들릴 정도로 첫 장막 어린 종이 인기를 얻은 이유가 뭐였을까요? 바로 성경을 통달했다. 두루마기를 받아먹은 어린 종이라는게 어필해서 인기를 얻었는데 그 앞에 실로라는 사람이 그들이 보기엔 새 말씀을 전하는 것을 보고 신기했겠지요 정말 저가 실로가 아닌가하고선 말입니다. 그러다 보니 첫 장막 종들은 황급히 진화에 나서게 되고 목영득을 내치게 됩니다. 그래서 목씨는 충북 속리산 집회를 열게 되지요. 이 집회에 이선생,갈렙 심재권장로 등등이 참석하게 됩니다. 집회를 마치고 첫 장막으로 돌아오니 어린종이 화가 나서 그 집회에 참석한 사람들 모두를 제명해 버리는 사건이 생기고
이선생과 갈렙 심재권 장로 등등이 목씨가 수유리에서 역사하는 제8일교회에 가게 됩니다.
여기에서 이선생은 목씨로 부터 믿음을 인정받아
6번째 아들로 임명받게 되지요
참고로 말하자면 백만봉씨의 재창조교회에선 이선생이 11번째 아들, 이선생의 친동생 분이 12번째 아들이였지요
또 재미난 것은 이 목씨의 제8일교회에서 말씀을 전담하는 강사를 하나 초빙하게 되는데..
그가 바로 백만봉씨입니다.
사연인 즉 , 목씨가 통일교적인 내용으로 말씀을 전해서 사람을 모으는 것 까진 좋았는데 이미 육신영생신앙에 물이 들은 첫 장막 사람들(위에 말했듯 첫 장막 출신의 대부분이 전도관 출신입니다) 에게 뭔 가 더 어필할 수 있는 말씀이 필요했고 그걸 안 갈렙 심재권장로가 당시 포장마차를 하고 있던 첫 장막 백만봉천사를 영입하게 되는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여기에서 후 일 백만봉씨가 재창조교회에 역사할때
이선생을 끌어들인 계기 중 하나가 아니였나 생각해봅니다 이 내용은 사실확인을 해 줄 물적 자료는 없습니다
그냥 참고만 하십시요.
첫 장막 어린종 간통고소사건
첫 장막에 김양옥씨란 분이 계셨습니다.
그 분은 전도관 박태선장로의 비서실장을 하다가
이탈, 첫 장막으로 오게 되고
어린 종의 비서실장으로 일하게 되지요.
그런데 가만히 지켜보니 어린종의 사생활이
문란하다 이겁니다. 가까이서 보니 말이죠
그래서 그걸 세상 경찰에 고소하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이 고소건에
김양옥, 홍선생, 이선생 이렇게 3인이
공동으로 하게 됩니다.
70년대 사건 입니다.
이 자료는 지금도 영등포경찰서에
보관되어져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생령교회 이야기
제 글을 보시다 보면 여러 곳에서 생령교회와 그 출신들을 언급하는 내용을 보셨을 것 입니다.
궁금하실거 같아서 제가 경험한 것을 남기고자 합니다.
생령교회는 통일교회에서 이탈한 진진화씨가 만든 교단입니다. 정확한 명칭은 '우주기독일교생령안식낙원'이랍니다.
본부는 서울 방배동에 위치해 있고 통일교에 원리강론이 있는거처럼 그들은 '이력론'과 '0의 소리'를 주 텍스트로
신봉하고 있지요. '이력론'은 원리강론과 같이 교리서이고 '0의 소리'는 진진화씨의 깊은 영적 세계를 적은 것 입니다.
이 두 책은 구하기가 많이 힘듭니다. 그들은 매우 페쇄적인 방법으로 전도활동을 하기 때문에 쉽사리 접할 수도 없습니다.
'이력론'강의를 필해야 하는곳이기 때문에 접하기 힘들지요 여기서 왜 생령교회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나 궁금하실텐데
첫장막의 비유풀이와 둘째장막 비유풀이가 조금 차이가 나는 이유가 생령교회에 있기 때문입니다. 저의 다른 글에도 있는것처럼
둘째장막 초기 구성원 중엔 많은 수의 생령교회 출신이 있고 또 한 지금도 최고위층에 남아있지요. 그러다 보니 그 생령교회의
사상이 많이 투영되어졌을거라 생각해 봄 직 하지요. 첫 장막의 비유풀이와 둘째장막의 비유풀이가 차이가 있다고 했는데
그건 구인회씨의 비유풀이, 김풍일씨의 비유풀이와 이선생,홍선생의 비유풀이가 다름을 봐도 대충 짐작 가능하실 겁니다.
신탄의 제작과정에 그로 인한 갈등상황을 이해할려면 이 부분도 아시면 좋겠다 싶어서 이 글을 남깁니다. 참고로 말하자면
JMS 정명석씨도 비유론이란걸 가르키는데 둘째랑 비슷한 부분이 많습니다 그 이유는 정명석씨도 생령교회에서 이력론 강의를 듣고
갔기 때문이지요. 이상입니다.
너부리님께 별개의 질문이 있습니다...
먼저 저에게 이렇게 관심을 가져주시고
질문을 주시니 감사할 따름 입니다.
부족하지만 저의 의견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전 무수한 신흥교단들을 보면서
그 지도자 그룹인 두가지 부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 가지 부류는 자신의 메시아적 사명을
어떤 식으로던 인식하고 활동하는 그룹과
또 하나는 말 그대로의 돈벌이 수단...
자기 자신의 메시아적 사명의식은
계시던 꿈이던 깨달음이던
신앙적 자의식을 깨치면서 이루어진 반면
하위 그룹은 오로지 시종일관 돈벌이...
여기서 어느 교단은 전자,
어느 교단은 후자다라고 정의하긴
어렵지만
단언컨대 제가 경험한 홍선생은
진정코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치매던 노망이던 어찌 된건 간에
어떠한 종교적 확신이 뚜렸했지요
하지만 나머지 한 명은 ...
정의 내리고 싶지 않군요
답변이 이 정도면 될 지 모르겠네요
감사합니다
덧붙임 글 : 혹 오해 하실까봐
덧붙입니다. 홍선생이 메시아란 뜻
절대 아닙니다.
메시아 자의식이 있는가를 설명하는
이야기였습니다
오해없으시길 바랍니다.
홍선생이 첫 장막에 들어가게 된 사연
홍선생이 첫 장막에 들어간 된 사연을
남기고자 합니다.
개인의 증언과 주변인의 증언을
토대로 구성된 이야기임을 밝힙니다.
홍선생은 성경과는 전혀 무관한
사람이였다고 합니다.
대구에 부유한 가정의 아들로써
그 당시 이미 사업체를 거늘인
사업가였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 처이모( 이 부분은
정확하지 않습니다. 친고모라는 이도
있고 처고모, 처이모라는 이도 있음)
가 첫장막에서 은혜를 받게 되고
홍선생의 부인분께 전도를 하지요
그래서 부인 분이 먼저 첫 장막을
왕래하게 되고 당시 첫 장막은 신자들끼리
자급자족하는 시스템이다 보니
그 안에서 사업을 하는 이들이 있었지요
그래서 홍선생도 그 안에서 사업을 할 생각에
첫 장막에 처음 발을 들이게 됩니다.
그런데 예배를 참석하던 중!
당시 7곱종들 중에 하나인 여종 디라천사가
영언(방언)예배를 하는것을 보고
감복하게 되었다고 합니다(본인 간증)
그래서 아 뭐가 있다 이건 사람일이 아니다
라고 판단, 신앙의 길을 걷게 됩니다.
이 글을 남기는 이유는
홍선생은 왜 생령교회 출신들에 대해서
극도의 반감을 느꼈지에 대한 팁인데
위의 글처럼 홍선생은 어찌보면
영언예배 한 가지에 감복할만큼
순수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단순한거지요
그에 반해 또 한 분의 그는
이 곳 저 곳 종교집시의 삶도 경험하고
뭔 가를 집중해서 해내는 성미였다고 보면
왜 반목이 있었는지 알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이 글을 남깁니다.
글의 마지막으로 또 한분의 그를 엿볼수
있는 대목 하나를 소개코자 합니다.
백만봉천사의 재창조교회 당시
천국이 이루어지는 시기가 계속 연장될 즈음
그 분은 이런 말을 남깁니다.
'선생님(백만봉)이 이루어도 좋고
못 이루어도 좋다
안 되면 내가 이룬다'
국사봉 이야기
이제부터 구술할 내용은 홍선생으로부터 들은 이야기입니다. 고인이 되신 분이니 확인할 방법은 없지만 일단 거짓은 아닌거 같습니다. 같은 내용을 신선생에게서도 확인 한 바 있습니다.
홍선생과 이선생은 80년 10월 경 사정당국에 체포되어서 98일 정도 고초를 겪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홍선생의 성미가 자신의 핀단에 대해서 확신이 강한 성격이다보니 그렇게 고초를 겪고도 다시 유재열에게 편지를 보내게 됩니다 그 시기가 83년 말 즈음해서 84년까지라고 하더군요 이렇게 홍선생은 겁 내지 않고 편지를 보내는 와중에 이선생이 갑자기 사라진 것입니다. 홍선생 성격에 가만히 있었겠습니까? 이리저리 수소문을 해 보니 국사봉에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찾아가 보니 신선생과 같이 어느 할머니 댁에 은신해 있더랍니다. 아마 이 때 신선생은 종교세계관심사란 책을 저작한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 책이 84년 2월 중에 출간됐다고 하니까요. 그래서 왜 여기 이러고 있나를 추궁하니까 홍선생이 또 편지를 막 보내기 시작하니까 다시 잡혀갈까봐 겁이 나서 그런것처럽 보였답니다.
그리고선 이 후엔 그 국사봉에서 초기 서책 두권을 만들어 내려왔다란 식으로 간증하는 일이 있었지요.
위의 글 내용 중에 보면 구속된 시기가 80년 10월 경이고 그 사유는 어린 종에게 보낸 편지가 문제가 되어서인데 홍선생에게 들은 내용도 그러한것처럼 이 편지의 내용이 성경에 대한 변론도 있긴 한데 주된 내용은 어린 종 개인에 대한 비방이나 루머를 주로 편지한 것 같습니다
만약 성경변론에 대한 것만이 주된 내용이였다면 그게 과연 구속사유가 될까요? 또 한 구속시기를 비추어보고 편지한 시기를 봐도 둘째장막 첫 예배일은 앞 전에 백만봉교회 이야기에서 말한것처럼 1980년 3월 14일 맞습니다. 그 날이 첫 예배일이라는건 증언할 사람이 많습니다.
김목사 이야기
지나가는 이야기 한 마디 하겠습니다. 이 이야기는 홍선생에게 제가 들은 이야기 입니다 .
그래서 정확한 시기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은 홍선생과 이선생이 결별하기 전의 사건으로 보이며 아마 둘째 장막이 제대로 자리 잡기 전에
사건으로 보입니다 제 기억으로 국종교회 출석 당시라고 한것 같습니다. 두 분이서 같이 봉천동으로 아래의 기사에 나오는 김목사를 만나러
갔답니다. 그래서 그 둘과 김목사는 근처 다방에서 조우를 하게 된답니다. 이 셋은 첫 장막 동료들이기였기에 초면은 당연히 아니지요
홍선생은 첫 장막에서 바구니공장을 했었고 이선생은 역군, 김목사는 연탄장사를 했다고 합니다. 만남의 자리에서 홍선생이 먼저 포문을
열였다고 합니다. 우리 둘이 두 감람나무이고 이선생은 살구나무 사명자이다 그러니 너도 굴복하고 우리하고 하나되자 김목사 입장에선
웃기는 일입니다 이미 그는 자리가 잡힌 상태이고 상당 수의 식구들이 있는데 그 제안을 받아드릴 이유가 없지요 또 한 김목사는
감람나무니 살구나무니 다 필요없고 스룹바벨사명자 포도나무사명자가 천국을 이룬다고 하는 사람인데 뜬금없는 감람나무 타령이니 실소를
금할 수 없었겠지요 그래서 김목사는 자신의 교리로서 조목조목 반박을 하고선 마지막에 살구나무가 천국을 이루면 지나던 개가 천국을 이룬다고
일침을 놓았다고 합니다. ( 첫 장막 사람들은 개들을 잘 끌어다 쓰는거 같습니다 ㅎㅎ ) 그랬더니 이 또 성미급한 홍선생이 김목사 따귀를
두어 차례 갈겼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김목사는 황급히 자리를 뜨지요 흥분한 홍선생은 이선생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 와 한 마디도 안 하능교? 꿀 먹었는능교? 뭔 말을 해야될거 아이요?' 그랬더니 이선생은 '뭐 딱히 할 말도 없고 홍선생은 잘 말하는데
내가 뭔 소릴 하노 그라고 그 쪼매 사람 좀 때리지 마소 내가 간이 떨어진다' 라고 하더랍니다 그렇게 첫 장막 동기동창들의 만남은 허무하게
끝이 났다고 합니다.
오목사 이야기
둘째 장막이던 셋째 장막이던
오목사를 멸망의 아들이라고
증거하지요
첫 언약받은 장막을 훼파한 인물이다
이거지요
그런데 요즘 들어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는 멸망의 아들이 아니라
어린 종의 구원자였습니다
몇 해 전 교회와 신앙에서
그에 대한 특집기사를 다룬 적이 있지요
물론 인터뷰도 있었답니다
그런데 그 내용을 보면
오목사는 여러 특이한 성경의 주장을
하는데 그 중 하나가 또 다른 보혜사론
입니다.바로 육신을 입고 오는 또 다른
보혜사가 있다고 믿는다는거지요
이 부분은 역대 자기를 보여 다른 보혜사
또는 또 다른 보혜사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주장이고
과거 첫 장막 어린 종 또 한 자신이
육신을 입은 또 다른 보혜사라고
했단 말입니다.
어린 종은 당시 매우 어려운 지경에
있었지요
75년 10월 사기혐의로 구속도 되고
또 한 이미 7곱종들은 와해되고
돌파구가 필요하지 않았을까요?
그런데 때 마침 자신의 그것과 유사한
사상을 가진 기성교회 목회자를 발견
한거지요 그 이가 오목사구요
그래서 인수인계 아닌 인수인계를 해주고
자신은 배후에서 신도들의 십일조를
받으면서 호화롭게 생활하게 되는데...
이거 멸망자입니까? 구원자입니까?
1987년 9월의 회고
요즘은 어떤 지 모르겠는데 매년 9월 14일은 장막절이지요 특히나 87년 장막절은 뜻깊은 해였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창세 7일의 사건처럼 첫 장막에 멸망의 가증한 것이 하나님의 거룩한 단에 서고 새언약이 이루어진
7주년되는 날이다보니 성경에 예언이 응해서 천국이 이루어진다고 하였답니다 간절했었데요 이젠 우린 왕이 되는거니까요
그런데 안 이루어졌데요 뭐라고 단 한 마디 말도 없이 그냥 넘어가 버렸어요 그래도 그런가 보다 했답니다 물론 뒤에선
수군수군 말들이 많았었다군요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연말인가 다음 해 연초인가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불렀데요 몇몇을 ...
그리고선 뭔 종이를 내밀었답니다. 거기에 싸인을 하라고 했는지 지장을 찍으라고 했는지 ... 하여튼 그냥 뭔 가 하고 대수롭지 않게
했어요 근데 그게 각서였답니다. 우리는 87년에 이루어진다라는 말 들은 적 없다는 이 후에 이걸로 인해서 문제삼지 않겠다는 거라더군요 ...
역사이야기
이 자리에선 제가 알고 있는 한국 신흥제단의 역사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 볼려고 합니다.
아래의 도약님을 글을 보면 많은 신흥제단들이 재림론에 대해서 엇비슷한 주장을 하게 되는데
그 연유가 무엇인가를 역사를 통해서 밝혀볼까합니다.
구전으로 내려오는 많은 단체들이 있었지만
문헌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는 첫 신흥제단은
해방 전 북한지역에서 활동한 새주파 김성도권사를 꼽을 수 있습니다. 이 새주파는 육신을 입고 온 재림주 사상을 전파한 거의 원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단체는 재림주는 육신을 입고 오면 동방 땅 끝 나라 즉 한국에 나타난다라는 것이 주된 교리이며 통일교회의 타락론처럼 인간타락의 원인이 성타락
즉 해와가 사탄을 꼬임에 빠져 선악과를 먹는데 이것이 바로 해와와 사탄의 성관계를 나타낸다라고 밝힙니다. 이 타락론을 따르는 단체는 아주 많습니다.
통일교, JMS, 생령교회 등등 통일교 계열의 신흥교단들은 거의 다 이 이론을 따르지요 하여튼 그러한 육신을 입은 재림주 개념이 설파되어지고 이 후
복중교회니 뭔 파니 해서 유사단체가 많이 발흥하지요 그러다 6.25전쟁이 발발합니다 그러니 자연히 이북파들이 남하하게 되지요 위의 언급한 교회에서
활동하던 자들도 남하하게 되는데 그 중에 하나 이스라엘수도원 김백문이란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위의 단체들과 유사한 가르침을 펴는데 특이점은
그걸 체계화해서 하나의 신학체계를 만드는 작업을 하게 되고 그 결과물이 바로 기독교근본원리, 성신신학 등 입니다. 이 김백문은 육신재림론, 성타락론 등을
제자들에게 전파하게 되는데 그 많은 제자들 중 하나가 문선명이고 또 다른 하나는 박태선입니다. 박태선 어디선가 들어본 이름이지요? 맞습니다 이 모씨가 과거에
신앙했다고 하는 그 전도관의 창설자 박태선장로입니다. 그리고 문선명 통일교 교주가 있지요? 제가 앞 전에 생령교회 이야기했습니다만 그 생령교회의 주장은 바로
통일교의 문선명씨의 가르침이 모티브가 되지요 문선명은 세례요한이고 생령교회 진진화씨는 재림주이다.. 뭔 가 비슷한 공통점이 있지요? 둘째 장막에 초기 구성원이
어디 출신이 가장 많았다고 했는지 기억나시지요? 맞습니다 생령교회 입니다. 신 탄의 저자들 김 건 남 김 병 희 이 두 사람 생령교회 출신입니다. 뭔 가 공통점이 많아 보이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