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김기춘(金淇春, 1939년~ ) 박근혜 정부 청와대 전 비서실장
박근혜 정부 시절 : 제3의 전성시대
비서실장 재임 : 기춘대원군
드물게 보는, 사심이 없는 분
박근혜(2015년 신년기자회견에서 김기춘에 대한 평) JTBC
2013년 8월 허태열 대통령비서실장이 윤창중 성추행 사태가 터지자 인사 실패를 책임지고 물러났다. 한 언론인터뷰에서 익명의 청와대 관계자는 “인사와 관련해 허태열 전 실장과 보좌진 그룹이 나뉘면서 두 그룹 간 마찰이 생겼다”고 말하여 허태열 전 실장과 3인방과의 알력이 있었을 수 있다는 지적이 있었다.
2013년 8월 5일에 제2대 대통령비서실장으로 임명되었다. 허태열 전 실장에 이어 새로 취임한 김기춘 비서실장은 부속실로 쏠리던 힘을 비서실로 당겨왔다는 평을 듣는다. 김기춘 비서실장은 이재만 총무비서관을 포함해 5명으로 구성된 청와대 인사위원회의 위원장을 맡고 있었으며, 평소 인사 문제에 있어서 뜻을 강력히 관철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이렇듯 막강한 권력을 자랑했기에 붙은 별명이 기춘대원군.
2013년 9월 13일 채동욱 검찰총장이 혼외자 문제가 불거지며 사퇴를 결정하자, 이의 배후에 김기춘 실장이 거론되며 사퇴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높아진다. 당시 야권에서는 국가정보원 여론조작 사건을 덮기위해 조선일보를 통해 채동욱의 개인정보를 흘려 수사 중이던 검찰 총장을 찍어내려고 했다는 주장이 있었다.
언론에서 김기춘 비서실장 경질설 등의 보도가 자주 나오자 상부에서 이에 대해 조사하라는 지시가 박관천에게 하달된다. 박관천은 조사 도중 정윤회에 관한 제보를 입수하고 이에 관해 보고서를 작성한다. 이때 작성된 보고서가 언론에 유출되며 비선실세 국정개입 의혹에 휘말리게 된다.
2013년 11월 5일에 시작된 통합진보당 위헌정당해산 사건을 황교안 총리와 함께 주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4년 4월 청와대 7시간 의혹 사건과 관련해서 대통령의 행방에 관해 모른다고 답변해 논란을 일으켰다.
2014년 7월 7일에는 최태민 일가의 비선실세 국정개입 의혹과 관련해서, "맹세코 비선라인은 없다"고 주장하였다. 이 같은 해명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면서 거짓말로 밝혀졌다.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국민적 비난이 가해지도록 언론 지도' 하라고 지시했다.
2015년 3월 자원외교 비리 조사에 따른 성완종에 대한 사정이 본격화하기 직전 비서실장직에서 사퇴한다. 이른바 성완종 리스트에서 그의 이름이 등장해서 해명하는 곤란을 겪어야 했다. 후임은 이병기.
이미 2014년부터 보수진영에서도 비서실장으로서는 평가가 극악이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이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서도 역시 등장하며, 최순실에 대해 모른다고 말했다. 그런데 청와대 재직 시절, '최순실을 주의하라'는 구두 보고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는 것이다. 게다가 최순실 소유의 건물에 김기춘이 활동하고 있는 증언이 나왔다.
최근에 비서실장에서 물러난 뒤 차움병원에서 줄기세포 치료를 받아서 논란이 되고 있다. 가명인 KKC를 써 치료를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기사 김기춘이 김종 문화체육부 제2차관에게 최순실을 소개했다는 기사가 나온다. 당초에 최순실을 모른다라는 것이 거짓말이었다는 증거인 셈이다. 이때 생긴 별명으로는 줄기춘이 있다.
게다가 성완종 자살 직후 일본에서 반값’ 면역세포 치료했다는 것이 드러났다.기사
세월호 사건 이후 7시간 동안 김기춘은 수석들의 입과 귀를 막았다고 한다. 그것들과 관해서도 모른다고 발뺌했다. 게다가 최 씨 일가 국정개입에 대해 몰랐고 그것에 대해 자괴감이 들 정도라고 말한다. 그리고 김종 전차관이 그렇게 말했다면 나는 정신 나간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차은택이 최순실의 지시를 받고 김기춘과 만남을 가졌다고 주장하면서 김기춘이 최씨 일가를 몰랐다는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이후 차은택을 모른다고 발뺌하다가 차은택이 구속된 후 김기춘을 만났다는 것을 자백하자, 마지못해 인정하기도 했다. (마찬가지로 최순실을 모른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80년대부터 육영재단 관련 사안에 개입해온 그가 모를리 만무.) 하지만 워낙 빠져나가는 게 능한데다가 운빨이 상당하고, 여기에 검찰총장과 법무장관을 거쳤기에 전관예우(검찰의 비호)를 받고 있어서 이번에는 법적 처리가 될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결국 문화체육관광부 고위 공직자들의 집단 사표를 받는 데 관여한 혐의로 피의자로서 수사하게 되어 그의 불패신화가 흔들리고 있다.
고 김영한 민정수석이 남긴 비망록에 의해 통진당 해산을 헌재 결정 이틀 전에 알고 있었고,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법외노조화에도 손을 썼다는 사실까지 밝혀졌다. 기사 심지어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유가족과 동조 단식을 하는 문재인 전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당시 의원)와 가수 김장훈씨 등의 행동을 ‘자살방조죄’로 규정하고 ‘언론지도’를 통해 비난 여론을 조성하려고 한 정황까지 드러났다. 기사
2013년 말 개봉했던 영화 변호인을 본 직후 혀를 차고 못마땅해하며 왜 이런 영화를 만드는 회사들을 제재하지 않느냐고 유진룡 당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게 말했던 사실이 당사자인 유 전 장관의 인터뷰릍 통해 드러났다. 그는 CBS 노컷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순수 문화예술 쪽에서도 반정부적인, 반정부적인 행동을 하는 그런 사람들이나 단체에 대해서는 왜 지원을 하느냐? 왜 제재를 하지 않느냐는 요구를 김기춘 실장이 직접 또는 모철민 교육문화수석, 김소영 문화체육비서관을 통해서 다각도로 문체부에 전달했다"며 이것이 이후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로 이어졌다고 밝혔다.
2.8.3. 최순실 청문회에서의 증인출석
미꾸라지 김기춘. 미꾸라지라는 명성답게 요리조리 피해가다 마지막에 시민들의 힘과 집요한 추궁에 의해 무너지다.
2016년 12월 7일, 2차 청문회에 출석했다. 주요 증인이 대부분 핑계를 대고 불참한 가운데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출석한 것은 이례적이었다. 이렇게 빠질 수 있음에도 굳이 나온 이유에 대해 김어준은 자신의 건재를 과시하려 했다고 평가했다. 즉 자신이 상황을 컨트롤하고 있다는 사실을 과시하면서 도피 중인 우병우나, 아직 구속되지 않은 문고리 및 관련자에게 입다물라는 암시를 주려고 했다는 것이다.
과연 법률전문가 답게 대부분 법률지식이나 수사경험이 없는 의원들의 여러 질문을 요리저리 피해나가면서도 오후 늦게까지 헛점을 보이지 않았다. 자신이 실수한다 싶으면, 노령으로 인한 기억력 쇠퇴나 오래전에 발생한 일에 대한 기억착오라고 주장하며, 미꾸라지처럼 올가미에서 벗어났다.치매라고 요양원에 평생 가둬두면 되는데
특히 그는 고 김영한 수석의 비망록 내용을 전면 부인했으며, 본인이 내린 "(비판 여론 무마를 위해) 시신 인양을 늦추라"는 지시에 대해서도 고인이 된 아들까지 들먹이며 사실을 부인했다. 이를 보다못한 김경진 의원은 거의 울분의 찬 비판을 하였다. 이 문서 맨 위에 해당 문장이 그 내용. 위에 내용은 그때 장소가 공식적인 자리이기에 지옥에나 떨어지라는 말을 정중하게 표현한 말이고 밑에 말은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고인이 된 아들을 거의 능욕하다시피 하는 김기춘을 비판하는 말이다.
하지만 10시경 박영선 의원이 국민의 제보를 바탕으로 빼도 박도 못할 증거를 제시하여 최순실을 모른다는 것도 거짓말로 들통 났다. 청문회에서 계속 최순실을 모른다고 하다가는 빼도박도 못하게 위증죄로 고발될 처지였기 때문에, "최순실을 못 들었다고 볼 수 없다"는 표현으로 위증죄를 피해나가려고 한 것. 과연 법비(法匪)라고 할 수 있다. 아래 취소선이 청문회 당시 그의 무적논리인데 그것이 깨진 것이 큰 충격이었던 듯. 청문회가 끝나고 퇴장한 장면이 나왔을 때를 잘 보면 거의 부축을 받다시피해서 걸어 나갔다.
모릅니다, 저는 알지 못합니다
그런 사실 없습니다 오해입니다
게다가 당시 후보 토론회에서는 주갤의 추가 제보로 정윤회에 대해 당시 행적까지 언급하는 발언까지 들어 있었던 게 확인되어 정윤회를 몰랐다는 말이 도저히 사실일 수가 없게 되었고 김기춘은 정윤회를 몰랐다는 게 개인적인 접촉이 없었다는 의미였다고 버티려 했으나 새누리당 황영철 의원이 이어서 질의하면서 "지금 증인이 유신 시절부터 해당 영상은 물론 박근혜 정권 비선실세 관련 보고서까지 최씨 일가에 대한 정보를 질리도록 반복해서 들은 위치인데 증인은 청문회 이전에는 존재를 아예 모른다고 말 해놓고 이제 와서 개인적 접촉이 없었던 의미라고 하면 사람들이 믿겠는가?"하고 힐난하자 오전 청문회 때와는 달리 제대로 대답을 잇지 못했다.
과거에도 자신을 결정적 위기에서 여러 번 구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화려한 부활을 만들어 준 박철언이 감옥에 갈 때도 김영삼에게 붙어서 모른 척 했듯이, 현재 보신을 위해서라면 의리나 충성심도 없는 듯, 차은택을 만난 사실을 극구 부인하다가 차은택이 자백하자 이를 박근혜 지시라고 하며 차은택 관련 비리 혐의를 위기에 몰린 박근혜에게 전가하는 추태까지 보이고 있다.
법을 훤히 꿰뚫었으며, 처신에도 능숙한 사나이라서 이것으로 실형 선고까지는 받을 가능성이 희박하지만, 정치가로서는 사형 선고를 받았다. 과거처럼 적절한 시기를 기다리며 재기를 노리는 것도 어려운 것이, 김기춘은 2017년 기준 78세이다.
당시 중앙정보부 소속으로 있던 김기춘이 납북 어부를 간첩으로 만들거나 재일동포 학생들을 간첩으로 만들었다는 의혹이 있다. 학원간첩단사건에 연루되었던 21명 중 2016년 현재까지 재심 신청자 12명 모두 무죄 판결이 났다.
국정원 간첩 조작 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자백에서 잠시 출연한다. 이 영화에서 1970년대 재일교포 유학생 간첩단 사건을 취재하던 최승호 기자는 아주 우연히 김포공항에서 일본으로 가는 김기춘을 마주쳐서, 그 사건의 조작여부에 대해 추궁하는데, 김기춘은 아는 바 없다고 모르는 척 한다. 최승호 기자의 회고에 의하면 화장실로 도망쳤다가 한참 지난 후 나왔는데, 그때까지 최 기자가 대기하여 질문하자 난감해했다고.
1989년 우지 파동
1989년 우지 파동이 벌어지자, 검찰총장이던 김기춘의 특별지시를 받은 검찰이 삼양식품을 대대적으로 수사해서 거의 파산직전까지 몰아간 적이 있다. 가뜩이나 88올림픽을 기점으로 농심그룹에게 업계 1위를 뺏겼던 삼양식품을 제대로 빅엿을 먹인 셈이다.
이후 삼양식품은 한때는 후발주자인 빙그레나 오뚜기에게도 위협당했다.
이 사건은 1997년 삼양라면이 무죄를 받음으로써 결백이 밝혀졌다. 문제는 김기춘은 퇴임 후에 이 사건으로 엄청난 수혜를 입은 농심의 비상근(출근 안 하는) 고문변호사를 맡으면서 매달 천만 원씩의 급여를 수년간 받아왔다는 것이다.
이렇게 무죄로 판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검찰이나 특별수사를 지시한 김기춘은 파산할 뻔한 삼양식품에 대한 사과를 한 적이 한 번도 없다.
1990년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 사건
노태우정권 시절, 김기춘이 법무부 장관 재직시 일어난 국가적 차원의 조작 사건. 그 모든 지휘를 했다는 의혹이 있다.
1992년 초원복집 사건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법무부 장관에서 물러난지 2달 된 김기춘이 주도하여 부산의 기관장들이 모여 우리가 남이가를 외치며, 지역감정을 유발하고 돈과 권력을 이용하자고 불법 관건선거를 모의했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결의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당시 국회 법사위원장으로 탄핵소추위원장을 맡았다.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심판청구를 기각하자, 헌법재판소 재판관들 탄핵의 찬반 여부를 실명으로 공개하도록 "심판에 관여한 재판관은 결정서에 의견을 표시하여야 한다."(헌재법 제36조 제3항)고 헌법재판소법을 개정하였다. 따라서 최순실 게이트로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소추안이 국회를 통과된 이후 헌재 재판관들이 국민의 여론에 반하는 반대의견을 내놓기가 부담스러워지면서 본의아니게 팀킬을 하게 되었다.
2014년 정윤회 국정개입 의혹 사건
사실상 이 사건이 발생한 원인이자 흑막이다.
2015년 경남기업 회장 자살 사건
이명박 자원외교 비리 조사를 받던 성 전 회장은 이날 서울 청담동 자택을 나온 직후인 오전 6시부터 50분간 경향신문과 전화 인터뷰를 통해 “김 전 실장이 2006년 9월 VIP(박근혜 대통령) 모시고 독일 갈 때 10만달러를 바꿔서 롯데호텔 헬스클럽에서 전달했다.”며 “당시 수행비서도 함께 왔었다고 알려왔다. 이후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은 자살하였고, 이후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애초에 수사선상에서 제외되면서 그 어떠한 조사도 받지 않았다.
2016년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
유진룡 전 문화체육부 장관의 증언에 의하면, 문화 예술계 인사와 단체의 탄압을 수차례 직접 종용했고, 블랙리스트 작성의 흑막이다.
또한, 김희범 전 문체부 차관에게 블랙리스트에 반대한 문체부 1급 공무원 6명의 사표를 받아오라고 지시를 한 의혹도 있다. 사실이면 직권남용죄에 해당한다.
○ 박정희가 김기춘을 김똘똘이라고 부르며 총애했다고 전해진다.
○ 부인 박화자는 김기춘의 서울 법대 동기 동창의 동생으로 알려져 있으며, 장인은 박찬일 변호사(1906년~1989년. 1931년 조선변호사시험 합격)이다. 부부 금슬도 매우 좋은 듯하다.
○ 자녀로 1남 2녀를 두었는데, 아들 김성원은 의사이고, 김도영 변호사(사시 31회 차석. 김앤장 근무)가 첫째 사위이며, 안상훈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가 둘째 사위이다. 안상훈은 박근혜 정부 인수위에서 위원을 하기도 했다.
○ 외아들이 2013년 12월 31일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하여 의식불명이 되었고 결국 2016년 8월 22일 며느리와 공동으로 아들의 성년후견인이 되었다.
○ 2016년 11월 17일, JTBC 뉴스룸이 김기춘과 최순실이 불법 줄기세포 치료를 받았다는 의혹을 보도했다.
○ 그의 본관은 김해 김씨이다.
○ 6공시절(노태우 시절) 검찰총장을 맡았을 때, 운동권을 악의 세력이라고 지칭한 바 있다. 적반하장 그 당시 별명이 미스터 "법질서" 인데, 그의 행적을 보면 매우 가소로운 일.
○ 사이비종교인 오대양이나 구원파와 커넥션이 있다는 의혹이 있으며, 2014년 이런 의혹을 제기한 검찰후배인 심재륜 전 대구고검장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기도 했다. 기사
○ 종교는 천주교라고 한다. 세례명은 스테파노.
○ 라면성애자 '라면의 상식(常食)화'를 언급했다. 청와대 비서실 주재 회의에서. 물론 그 뒷면에는 추접한 이권 관계가 있었다.
○ 검찰총장을 퇴임할 당시의 퇴임식 광경이 한국일보 1990년 12월 6일자에 보도된 바 있는데, 돌이켜 보면 뭔가 씁쓸한 내용이다. 유체이탈화법의 원조
혼자 있을 때 더욱 조심하라는 신독의 자세를 강조해온 김 총장의 임기만료를 앞두고 인천 조직폭력배 전과누락사건, 대전 조직폭력배와 현직 검사의 술자리 합석사건 등 검찰의 체면에 중대한 타격을 가한 「추문」이 연이어 터져 후배 검사들은 총장 볼 낯이 없다고 입을 모았다.
김 총장은 이런 분위기를 의식한 듯 3분여의 짧은 퇴임사에서도 『정의를 지키려는 검사의 직무는 태산보다 무겁고 크다』며 『이는 말로서가 아니라 반드시 행동으로 지켜나아가야 하는 것』이라고 강조해 후배들을 숙연케 했다.
김 총장은 또 단호한 목소리로 후배들에게 『강력한 검찰이 되고 싶은가』라고 질문을 한 다음 곧 『그러려면 높은 도덕률과 탁월한 실력으로 무장하라』고 뼈아픈 충고의 답을 밝혔다.
김 총장이 「충고의 퇴임사」를 하는 동안 대부분의 후배 검사들은 다소 붉어진 얼굴을 들지 못하고 그저 고개만 끄덕거렸다.
맨 뒷줄에 서 있던 한 부장검사는 『후배들이 김 총장의 생활태도를 반만이라도 따라간다면 절대 국민들로부터 손가락질 받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총장의 퇴임사를 마음에 새기고 검사 개개인이 도덕 재무장을 해 범죄와의 전쟁에 나서야만 한다』고 곤혹스러운 심정을 털어놓았다.
퇴임사에서 "학생시절의 순수성 정의감이 끝까지 퇴색되지 않았으면 한다."라는 말도 했다고 하는데, 이에 대해 훗날 한홍구 교수는 "남다른 흑역사를 간직한 김기춘에게 묻고 싶다. 당신의 학생시절의 순수성과 정의감은 안녕들 하십니까?"라고 비웃었다.
○ 키는 165cm 내외로 추정된다. 나이대를 감안하면 보통키. 몸무게는 62kg이라고 본인이 부산일보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
○ 바둑실력은 8급인데, 한국기원 부이사장을 맡은 바 있다.
○ 2013년 비서실장 취임 당시 재산을 공개했는데, 당시 재산이 39억 원이었다. 야인시절에는 거물급 변호사로 일했기 때문에, 예금성 자산(약 30억 원) 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여기에는 평창동 저택이 포함되어 있지 않아서 (바로 옆집인 아들네 집까지) 재산 불성실 신고 문제가 불거지기도 했다.
○ 시간관념이 매우 철저하다고 한다. 법무장관에서 물러나 집에서 야인으로 지낼 때도 짜놓은 시간에 맞춰 움직였다고. 또 자기 집 2층 서재로 출근했는데, 이때도 정장을 했다고 한다.
○ 본인이 맡은 자리 중에서 가장 재미있었던 자리로 KBO 총재를 들었다. 이 당시 한일 슈퍼게임 참관차 일본을 방문하고는 도쿄돔을 보고 감명을 받아, 돔구장 설립을 주장하기도 했다. 또한 용병 제도도 검토하긴 하지만, 본격적인 용병수입은 그가 물러난 이후에 도입되었다.
○ KBO 총재 시절 선동열을 주니치 드래곤즈에 보내는 것을 꺼리던 해태 타이거즈 구단주를 설득, 일본에 진출시키는 데도 큰 역할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선동열이 김기춘을 고맙게 생각하고, 교분이 있다고 한다.
○ 정치 행보는 매우 음험하고 교활하며 사악하지만, 사람 자체는 매우 예의바르고 교양이 있다고 한다. 지금은 더민주 이철희 의원도 썰전 패널 시절 그렇게 증언한 바 있다. 영화 자백에 출연한 모습에서도 잠시 그런 모습을 볼 수 있는데, 부부동반 일본 나들이를 위해 온 공항에서 우연히 만나 끈질기게 재일교포 유학생 간첩 조작사건을 캐묻는 최승호 피디에게 정중한 목소리로 "모릅니다", "그런 적 없습니다"라고 사실을 부인하면서도 끝까지 분노를 감추었다. 같은 영화에 비슷하게 강제 출연한 국정원 간첩 조작 사건의 피의자인 전 국정원장 원세훈이 역정을 내는 것과는 대조적. 이 점이 바로 김기춘이 오랫동안 버틴 비결이다. 김기춘과 비슷한 정치검사-출세주의자 우병우는 평소에도 오만방자해서 적을 수없이 만들었으며 결국 검사장 승진에서 탈락해서 검찰을 떠난다. 김기춘은 적어도 겉으로는 주위에 친절하여 불필요한 적을 만들지 않았기 때문에 암흑기 때 한직에서나마 살아남았고, 검찰총장과 법무장관까지 지낼 수 있었던 것.
○ 검찰후배이자 같은 친박 정치인인 전 대법관 안대희는 김기춘은 "내가 아이큐 130인데, 김기춘은 170이다"라고 김기춘을 높이 평가하였다. 또 다른 검찰 후배이지만, 정치적으로 정반대인 금태섭은 "김기춘은 항상 권력의 전면에 나서지 않고 2인자에 만족했기 때문에 장수할 수 있었다"고 평가. 즉, 대통령 비서실장으로서, 최순실의 전횡을 막지 않고, 최순실에 이어 2인자 노릇을 하면서 권력을 공유했기 때문에 비서실장으로 오래 재임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포스코 회장을 뽑을 때, 자신이 추천한 인사를 접고 최순실이 미는 인사를 순순히 받아들였다고 한다.
○ 조응천이 초임검사 시절 (1992년) 김기춘이 법무부장관이었는데, 그 당시 조응천에게 김기춘은 검찰의 레전드 같은 인물이었다고 한다. 그의 발언 하나하나를 교과서 같은 말로 여겼다고. 김기춘과 조응천은 박근혜 정부시절 청와대에서 함께 근무하게 되었으나, 2014년 정윤회 문건파동을 계기로 조응천이 쫓겨나면서 둘은 원수지간이 된다. 그리고 2016년 야당 국회의원이 된 조응천은 누구보다도 앞장서 김기춘을 디스하고 있다. 동아일보
○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합류하기 전, 야인시절에 전립선 비대증 수술을 받았다고 한다. 청와대가 구입한 약물 중 전립선 비대증 치료제인 프로스카는 김기춘용이라는 설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탈모증에도 약효가 있기 때문에 온갖 억측이 나오는 모양.
○ 2016년 12월 국회에서 열린 청문회에서 모르쇠로 일관하면서 여러 의원의 질문공세를 피했으나, 막바지에 주갤의 지원사격을 받은 박영선 의원에게 크게 털리면서, 마지못해 최순실을 안다는 것을 인정했다. 기사에 따르면 청문회 이후에 박영선에 대해서 울분을 토했다고 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문회가 끝나자 박영선 의원석을 찾아가 공손히 악수를 청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자기 속내를 100% 감출 수 있고 속마음과는 정반대로 행동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매우 위험한 남자다. 2017년 시점에서 78세인데도, 정치권 핵심인사로 계속 살아남은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출처 : 나무위키
첫댓글 본인은 성경을 잘 모르고 잘 인용하지 않지만 생각이 나는 글이 있습니다. 누가복음-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할 것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