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서급익(載胥及溺)
서로 함께 빠진다
載 : 실을 재(車/6)
胥 : 서로 서(⺼/5)
及 : 미칠 급(又/2)
溺 : 빠질 닉(氵/10)
20세기까지 종말에 관한 이야기는 인간을 위협하는 큰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주기적으로 회자되었다. 그런데 이 문제는 꼭 큰 사건이 벌어질 때만 관심을 갖는 것은 아니다. 또 그 큰 건이란 것도 시대에 따라 달리 인정되기 때문에 종말에 관한 이야기는 주기적으로 대두된다.
수천 년 전 기록인 열자(列子)에 보면 기우(杞憂)의 고사가 나온다. 기(杞)나라에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질까봐 근심하는 사람을 두고 벌어진 논쟁이었다.
하늘은 사방에 기운이 쌓인 곳이고 땅은 사방에 덩어리가 쌓인 곳이기 때문에 무너지거나 꺼질 염려가 없다는 주장과 천지도 크긴 하지만 하나의 물건일 뿐이기 때문에 끝나고 마치기 어렵고 헤아리고 알기 어려울 뿐 언젠가 무너질 때가 되면 무너진다는 주장이 맞섰다.
열자(列子)는 천지가 무너지든 말든 그래서 죽든 말든 사람이 지나치게 신경 쓸 일이 아니라는 투로 결말을 맺는다.
'맹자'에 보면 세상에 망조가 들어 망하게 생겼을 땐 다소 늦더라도 막아야하지 그렇지 않으면 정말 망한다고 걱정하는 대목이 나온다.
물론 망하는 주체가 열자는 자연이고 맹자는 인문으로 차이는 있지만 망할 때를 대하는 마음자세를 읽을 수 있다. 맹자의 이야기처럼 시기가 어느 정도 깊숙이 진척이 되면 막고 싶어도 못 막는 게 진실이다.
맹자는 도탄에 빠진 세상을 구하기 위한 자격을 갖추지 못하면 망하고야 만다는 주장을 '시경'의 재서급익(載胥及溺)이란 구절을 통해 이야기한다. 최근 자연계의 망가지는 상태를 보자면 숨을 조여 오는듯한 느낌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시경(詩經) 대아(大雅) 상유(桑柔) 5장
為謀為毖, 亂況斯削.
꾀하는 일은 신중하게 하나 난이 점차 커져 이에 깎이도다.
告爾憂恤, 誨爾序爵.
네게 근심거리를 알리며 네게 벼슬의 질서를 가르치노라.
誰能執熱, 逝不以濯.
누가 뜨거운 것을 잡고서 씻으러 가지 아니하리오.
其何能淑, 載胥及溺.
그 어찌하여야 능히 착할가. 서로가 빠짐에 이르리로다
▶️ 載(실을 재, 떠받들 대)는 ❶형성문자로 縡(재)와 동자(同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車(거; 수레, 차)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동시에 올려 놓는다는 뜻을 나타내기 위한 부수를 제외한 글자 𢦏(재)로 이루어졌다. 수레 위에 물건을 싣다는 뜻을 나타낸다. ❷형성문자로 載자는 '싣다'나 '오르다', '등재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載자는 車(수레 차)자와 哉(어조사 재)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哉자는 뜻과는 관계없이 발음역할만을 하고 있다. 載자는 수레에 짐을 싣는 것을 뜻하기 위해 만든 글자였다. 그러나 수레에 짐을 올리는 모습에서 '오르다'나 '올라타다'라는 뜻이 확대되었고 짐을 실어야 출발한다는 의미가 파생되면서 '시행하다'라는 뜻도 가지게 되었다. 載자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수레에 짐을 올리듯이 글을 싣는다는 의미에서 '등재하다'라는 뜻으로까지 쓰이고 있다. 그래서 載(재, 대)는 ①싣다 ②머리에 이다(물건을 머리 위에 얹다)(=戴) ③오르다, 올라 타다 ④행(行)하다, 시행(施行)하다 ⑤비롯하다, 개시(開始)하다 ⑥맡다 ⑦진설(陳設)하다(음식을 법식에 따라 상 위에 차려 놓다) ⑧갈무리하다(물건 따위를 잘 정리하거나 간수하다) ⑨이루다, 완성(完成)하다 ⑩처(處)하다, 있다 ⑪알다 ⑫가득하다 ⑬지니다, 휴대(携帶)하다 ⑭기록(記錄)하다, 등재(登載)하다 ⑮쌓다, 더하다 ⑯세우다 ⑰일구다, 경작(耕作)하다 ⑱꾸미다 ⑲일, 사업(事業) ⑳해, 년(年) ㉑화물(貨物) ㉒탈것 ㉓담틀(흙담을 쌓을 때 양쪽에 세운 널로 된 틀) ㉔재앙(災殃) ㉕거듭 ㉖비로소, 그리고 ⓐ떠받들다(대)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실어 쌓음을 재적(載積), 도덕적 가치를 실음을 재도(載道), 물건을 쌓아 실은 분량이나 중량을 재량(載量), 물건을 실어 보냄을 재송(載送), 절기가 비로소 따뜻하여 짐을 재양(載陽), 짐작하여 처리함을 재처(載處), 붓을 가지고 감 또는 기록함을 재필(載筆), 차나 배 따위에 실은 짐을 재화(載貨), 실어 올림을 재록(載錄), 석탄을 실음을 재탄(載炭), 물건을 실어 나름을 재운(載運), 태어나려고 함을 재탄(載誕), 재앙을 실어 옴을 재화(載禍), 신문 따위에 글이나 그림을 실음을 게재(揭載), 서적 또는 잡지 등에 올려 적음을 등재(登載), 문서에 기록하여 실음을 기재(記載), 배나 수레나 비행기 등에 물건을 실음을 탑재(搭載), 물건을 실음을 적재(積載), 긴 글이나 여러 장면의 그림 따위를 여러 번에 나누어 신문이나 잡지 등에 계속하여 실음을 연재(連載), 물품 따위를 수레에 실음을 차재(車載), 도를 싣는 그릇이란 뜻으로 문학 또는 시를 정의하는 말을 재도지기(載道之器),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기회를 일컫는 말을 천재일시(千載一時), 수레에 싣고 말로 될 수 있을 정도라는 뜻으로 인재나 물건이 아주 많음을 이르는 말을 거재두량(車載斗量), 천 년에 한 번 만난다는 뜻으로 좀처럼 얻기 어려운 좋은 기회를 이르는 말을 천재일우(千載一遇), 짐을 실을 수 있는 정량을 일컫는 말을 적재정량(積載定量) 등에 쓰인다.
▶️ 胥(서로 서)는 형성문자로 縃는 속자, 偦, 楈는 동자이다. 뜻을 나타내는 육달월(月=肉; 살, 몸)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글자 疋(소)가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그래서 胥(서)는 ①서로, 함께 ②다, 모두 ③잠깐 동안 ④아전(衙前: 조선 시대(時代)에, 중앙과 지방의 관아에 속한 구실아치) ⑤재주꾼 ⑥게장, 게젓 ⑦악관(樂官) ⑧어조사(語助辭)(시구의 무의미한 조사) ⑨(때를)기다리다 ⑩멀다, 소원하다(疏遠--) ⑪보다, 관찰하다(觀察--) ⑫따르다, 추종하다(追從--) ⑬기뻐하다, 즐거워하다 ⑭엿보다 따위의 뜻이 있다. 유의어로는 吏(벼슬아치 리/이, 관리 리/이)이고, 통자로는 諝(슬기 서)이다. 용례로는 서로 잘못한 허물을 서실(胥失), 서리의 무리를 서도(胥徒), 서리와 하례를 서례(胥隸), 서로 웃사람으로 떠받듦을 서대(胥戴), 서리들의 임명에 관한 일을 서선(胥選), 임금의 처분 명령을 기다림을 서명(胥命), 게로 담근 젓 또는 게젓을 담근 간장을 해서(蟹胥), 각 관아에 딸린 구실아치의 통틀어 일컬음을 이서(吏胥), 마음에 드는 사위를 쾌서(快胥), 거간이나 중개인을 쾌서(儈胥), 선비와 서리를 유서(儒胥), 역관과 서리를 역서(譯胥), 시골 관아의 아전을 촌서(村胥), 잇따라 죽음에 빠지게 될 환난을 일컫는 말을 서닉지환(胥溺之患), 거짓말을 퍼뜨려 민심을 선동함을 일컫는 말을 서동부언(胥動浮言), 화서가 꾸었던 꿈이란 뜻으로 좋은 꿈을 일컫는 말을 화서지몽(華胥之夢), 잘 다스려진 태평한 나라를 일컫는 말을 화서지국(華胥之國) 등에 쓰인다.
▶️ 及(미칠 급)은 ❶회의문자로 사람의 뒤에 손이 닿음을 나타내며, 앞지른 사람을 따라 붙는 뜻으로 사물이 미침을 나타낸다. 전(轉)하여 도달하다의 뜻을 나타낸다. ❷회의문자로 及자는 '미치다'나 '이르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여기서 말하는 '미치다'라는 것은 어떠한 지점에 '도달하다'라는 뜻이다. 及자의 갑골문을 보면 人(사람 인)자에 又(또 우)자가 그려져 있었다. 마치 누군가를 붙잡으려는 듯한 모습이다. 이것은 누군가에게 다다르고 있다는 뜻을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及자는 '미치다'나 '이르다', '도달하다'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그래서 及(급)은 ①미치다(영향이나 작용 따위가 대상에 가하여지다), 닿다 ②미치게 하다, 끼치게 하다 ③이르다, 도달하다 ④함께 하다, 더불어 하다 ⑤함께, 더불어 ⑥및, 와 ⑦급제(及第)의 준말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떨어질 락/낙(落)이다. 용례로는 과거에 합격함을 급제(及第), 임기가 다 되었음을 급과(及瓜), 뒤쫓아서 잡음을 급포(及捕), 마침내나 드디어라는 급기(及其), 배우려고 문하생이 됨을 급문(及門), 어떤 일과 관련하여 말함을 언급(言及), 지나간 일에까지 거슬러 올라가서 미치게 하는 것을 소급(遡及), 널리 펴서 골고루 미치게 함을 보급(普及), 마침내나 마지막이라는 급기야(及其也), 어떤한 일의 여파나 영향이 미치는 범위가 차차 넓어짐을 파급(波及), 모든 사물이 정도를 지나치면 미치지 못한 것과 같다는 뜻으로 중용이 중요함을 가리키는 말을 과유불급(過猶不及), 네 마리 말이 끄는 빠른 수레도 사람의 혀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뜻으로 소문은 빨리 퍼지므로 말조심하라는 말을 사불급설(駟不及舌), 맨발로 뛰어도 따라가지 못한다는 뜻으로 능력이나 재질이나 역량 따위가 뚜렷한 차이가 있음을 이르는 말을 족탈불급(足脫不及), 학문은 미치지 못함과 같으니 쉬지 말고 노력해야 함을 이르는 말을 학여불급(學如不及), 자기 마음을 미루어 보아 남에게도 그렇게 대하거나 행동한다는 뜻으로 제 배 부르면 남의 배 고픈 줄 모른다는 속담과 그 뜻이 일맥상통하는 말을 추기급인(推己及人), 아무리 후회하여도 다시 어찌할 수가 없음이나 일이 잘못된 뒤라 아무리 뉘우쳐도 어찌할 수 없음을 이르는 말을 후회막급(後悔莫及), 채찍이 길어도 말의 배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뜻으로 인생에는 인력만으로는 되지 않는 일이 있음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불급마복(不及馬腹), 형세가 급박하여 아침에 저녁일이 어떻게 될지 알지 못함을 이르는 말을 조불급석(朝不及夕) 등에 쓰인다.
▶️ 溺(빠질 닉/익, 오줌 뇨/요, 약할 약)은 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삼수변(氵=水, 氺; 물)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弱(약)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그래서 溺(닉, 뇨, 약)은 ①빠지다 ②빠뜨리다 ③그르치다 ④지나치다, 정도를 넘다 그리고 ⓐ오줌, 소변(뇨) ⓑ오줌을 누다(뇨) ⓒ약하다(약) ⓓ연약하다(약)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빠질 면(沔), 빠질 몰(沒), 잠길 침(沈), 빠질 륜/윤(淪), 묻힐 인(湮)이다. 용례로는 물에 빠져 죽음을 익사(溺死), 어떤 일에 즐겨 빠짐을 익혹(溺惑), 직무를 감당하지 못함을 익직(溺職), 지나치게 사랑에 빠짐을 익애(溺愛), 사람의 마음을 음탕하게 만드는 소리를 익음(溺音), 물에 빠져 속으로 가라앉음을 익몰(溺沒), 어떤 일을 몹시 즐겨서 거기에 빠짐을 탐닉(耽溺), 헤어날 수 없게 깊이 빠짐을 몰닉(沒溺), 굶주림과 물에 빠져 헤어나지 못함을 기닉(饑溺), 침몰이나 술이나 계집이나 노름 따위에 빠짐을 침닉(沈溺), 물 속으로 빠져 들어감을 함닉(陷溺), 몹시 반하여 제 정신을 잃고 빠짐을 혹닉(惑溺), 오줌을 받음을 봉뇨(捧溺), 오줌을 눔을 사뇨(捨溺)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