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새로 바뀌었다. 군자는 새해를 맞이하면 반드시 그 마음과 행동을 한번 새롭게 하여야 한다. 나는 젊었을 때에 새해를 맞이할 적마다 반드시 그해의 공과(工課)를 미리 정하였는데, 예를 들면 무슨 책을 읽고 어떤 책을 뽑아 적어야 하는가를 미리 정하여 놓은 뒤에 실행하였다. 간혹 몇 달 뒤에 이르러 사고가 발생해서 계획대로 실행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선(善)을 즐기고 앞으로 전진하려는 뜻만큼은 스스로 숨길 수 없었다. 내가 지금까지 너희들에게 편지로써 공부를 힘쓸 것을 권면한 것이 여러 차례이다. 그런데 아직 한번도 경전(經傳)의 의심스러운 곳이나, 예악(禮樂)의 의문스러운 점, 사책(史冊)에 대한 논란을 한 조목도 묻는 적이 없었으니 어찌하여 너희들은 이렇게 내 말을 마음에 새겨 두지 않느냐.
너희들은 시장[市井] 옆에서 생장하여 어린 시절에 접한 것이 대부분 문전 잡객이나 시중 드는 하인배, 아전들이어서 입에 올리고 마음에 두는 것이 약삭빠르고 경박하며 비루하고 어지러운 것이 아님이 없다. 이러한 병통이 깊이 골수에 침입하여 마음에 선을 즐기고 학문을 힘쓰려는 뜻이 전혀 없게 된 것이다. 내가 밤낮으로 초조하게 돌아가려 하는 것은 너희들이 뼈가 점점 굳어지고 기운이 점점 사나워져서 한두 해가 지나면 매우 불초한 자의 생활을 하게 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해에 이 때문에 병이 나서 여름 내내 병환으로 보냈고, 10월 이후로도 말할 수 없으니, 너희들도 이 아비의 심정을 알 것이다. 그러나 마음에 진실로 반푼의 성의라도 있다면 아무리 험난한 난리속이라 할지라도 반드시 진보가 있을 것이다. 너희들은 집에 책이 없느냐. 재주가 없느냐. 눈과 귀가 총명하지 못하느냐. 무엇 때문에 스스로 포기하려 드는 것이냐. 폐족(廢族)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냐. 폐족은 오직 벼슬길에만 꺼리는 자가 있을 뿐, 폐족으로서 성인(聖人)이 되고 문장가(文章家)가 되고 진리를 통달한 선비가 되기에는 아무런 거리낌이 없는 것이다. 거리낌이 없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크게 나은 점이 있으니, 그것은 과거(科擧)의 누가 없고, 또 빈곤하고 궁약(窮約)한 고통이 심지(心志)를 단련시키고 지려(知慮)를 개발해서 인정과 물태(物態)의 진실과 거짓을 두루 알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선배에 율곡(栗谷) 같으신 분은 어버이에게 사랑을 받지 못하고 괴로움으로 몇 해를 방황하다가 마침내 한번 돌이켜 도(道)에 이르렀으며, 또한 우리 우담(愚潭 정시한(丁 時翰)의 호) 선생도 세상의 배척을 받고서 더욱 그 덕이 진보되었으며, 성호(星湖)께서도 집안에 화를 당한 뒤로 이름난 유학자가 되었으니, 그 분들이 탁월하게 수립한 것은 권세를 잡은 부호가의 자제들이 미칠 수 있는 바가 아니다. 이것은 너희도 일찍부터 들어오지 않았느냐.
폐족 중에 재주 있고 걸출한 선비가 많은데, 이는 하늘이 폐족에게 재주 있는 사람을 내어 폐족을 후대하는 것이 아니라 영달(榮達)하려는 마음이 학문하려는 마음을 가리지 않으므로 책을 읽고 이치를 연구하여 능히 진면목(眞面目)과 참다운 골수(骨髓)를 알 수 있기 때문인 것이다. 평민(平民)으로서 학문을 하지 않는 자는 다만 용렬한 사람이 될 뿐이지만, 폐족으로서 학문을 하지 않으면 마침내는 패려(悖戾)하고 비루하여 가까이할 수 없는 자가 되어 세상의 버림을 받게 된다. 혼인길이 막혀서 천민에게 장가들고 시집가게 될 것이요, 한두 대가 지나 물고기 입이나 강아지의 이마를 한 자녀가 나오게 된다면, 그 집안은 영영 끝장나는 것이다.
가령 내가 몇 년 안에 유배에서 풀려나 너희들로 하여금 몸을 닦고 행동을 가다듬어 효도와 공경을 숭상하고 화목을 일으키며, 경사(經史)를 연구하고 시ㆍ예(詩禮)를 담론하며, 서가(書架)에 3~4천 권의 책을 꽂아 놓고 1년을 지탱할 만한 양식이 있으며, 원포(園圃)에 뽕나무ㆍ삼[麻]ㆍ채소ㆍ과일ㆍ꽃ㆍ약초들이 질서정연하게 심어져 있어 그 그늘을 즐길 만하며, 마루에 오르고 방에 들어가면 거문고 하나와 투호(投壺) 1구(口)와 붓ㆍ벼루 및 책상에 볼 만한 도서가 있어서 그 청아하고 깨끗함이 기뻐할 만하며, 때때로 손님이 찾아오면 닭을 잡고 회(膾)를 만들어서 탁주와 좋은 나물 안주에 흔연히 한번 배불리 먹고 서로 더불어 고금의 대략을 평론할 수 있다면, 비록 폐족이라 할지라도 장차 안목이 있는 사람들이 흠모할 것이니, 이렇게 세월이 점점 흘러간다면 중흥(中興)하지 못할 리가 있겠느냐. 너희는 생각하고 생각하라. 차마 이것을 하지 않으려느냐.
요즈음 일종의 학술은 오로지 반관(反觀)으로 명목(名目)을 삼아 외모(外貌) 수식하는 것을 가식이라 지목하여 약삭빠르고 방탕하여 속박을 싫어하는 젊은이들이 이 말을 듣고 뛸 듯이 기뻐하여 드디어 기거동작(起居動作)의 예절까지 멋대로 한다. 나도 지난날에 이 병에 깊이 걸렸기 때문에 늙어서도 뼈마디가 익숙지 못하여 후회하여도 고치기 어려우니, 몹시 후회스러울 뿐이다. 지난번에 너를 보니, 전혀 옷깃을 여미고 무릎꿇고 앉으려 하지 않아, 단정하고 엄숙한 빛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이는 나의 병통이 한번 옮겨가서 너의 이 못된 병통이 된 것이니, 이는 성인이 사람을 가르칠 때에 ‘먼저 외모로부터 수습해 나가야 바야흐로 마음을 안정시킬 수 있다.’는 것을 모른 것이다. 세상에 비스듬히 눕고 삐딱하게 서서 큰 소리로 지껄이고 어지러이 보면서 주경 존심(主敬存心)할 수 있는 자는 없다.
그러므로 ‘용모를 움직임’[動容貌], ‘말을 함’[出辭氣], 안색을 바로하는 것’[正顔色]이 학문을 하는 데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이니, 진실로 이 세 가지에 힘을 쓰지 못한다면 아무리 하늘을 꿰뚫는 재주와 남보다 뛰어난 식견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끝내 발을 땅에 붙이고 다리를 세울 수 없을 것이다. 그리하여 그 폐단은 말을 함부로 하고 멋대로 행동하여 도적이 되고 큰 악(惡)이 되며 이단(異端)과 잡술(雜術)이 되어서 세상에 못하는 일이 없게 된다. 나는 ‘삼사(三斯)’로써 서재(書齋)에 이름하고자 하는데, 이는 거칠고 태만함을 멀리하며[斯遠暴漫], 비루하고 패려함을 멀리하며[斯遠鄙倍], 진실에 가깝게 한다[斯近信] 함을 이름이다. 지금 너를 덕에 나아가게 하기 위하여 이로써 너에게 주는 것이니, 너는 이 ‘삼사(三斯)’로써 네 서재를 이름하고 그 기문(記文)을 지어 차후 인편에 부치도록 하여라. 나 또한 너를 위하여 기문을 짓도록 하겠다. 너는 또 이 내용으로 잠(箴) 세 편을 짓고 삼사잠(三斯箴)이라고 이름하도록 하여라. 그렇게 하면 정 부자(程夫子)께서 지으신 사물잠(四勿箴)의 아름다움을 계승할 수 있을 것이니, 무슨 복이 이만하겠느냐. 깊이 바라고 깊이 바란다.
寄兩兒【癸亥元日】
歲新矣。君子履新,必其心與行,亦要一新。吾少時每遇新正,必預定一年工課,如讀某書鈔某文,然後從而行之,或至數月之後,雖未免爲事故所奪,然其樂善向前之志,自亦有不能掩者矣。吾之前後勸汝曹爲學,以書以札,凡幾遭矣,而未嘗以一條經傳之疑,一條禮樂之問,一條史冊之論,偶或相示,何汝輩之聽我,藐藐至此之極也?汝輩生長於市井之側,幼年所接,多是門客ㆍ傔從ㆍ吏胥之等,口業心筭,無不儇薄鄙悖,此病深入骨髓,心中都無樂善向學之意。吾之日夕焦熬,以歸爲急者,以汝輩骨漸硬氣漸悍,差過一二年,便成大不肖生活也。前年自此得病,去三夏遂以病患度了,十月以後又不論,若在可恕也。然心中苟有一半分誠意,雖干戈亂離之中也,必有進步處。家無書乎?身無才乎?耳目不聰明乎?何故欲自暴而自棄耶?以爲廢族耶?廢族唯於科宦有忌耳。以之爲聖人,無忌也,以之爲文章,無忌也,以之爲通識達理之士,無忌也。不唯無忌,抑大有勝焉,以無科擧之累,而貧困窮約之苦,又有以鍛鍊其心志,開摭其知慮,而周知人情ㆍ物態ㆍ誠僞之所形也。故先輩如栗谷,以不得於親而困蹇數年,遂一反至道,亦我愚潭先生,爲世所擯而彌進其德,星湖自禍家而爲名儒,皆卓然樹立,非當路綺紈子弟之所能及。汝亦嘗聞之乎?廢族多才傑之士,非天之生才而厚於廢族也。以無榮達之心爲之遮蔽,故讀書窮理,能得眞面目正骨髓也。平民而不學者,特爲庸劣人而已,廢族而不學,遂爲悖戾鄙穢不可近之物,爲世所棄。婚姻不通,而嫁娶及於賤流,一傳而有魚吻ㆍ犬顙之子出焉,則家遂不可問矣。使我而得數年間赦還,使汝輩而能飭躬礪行,崇孝弟風敦睦,研窮經史,談論詩禮,揷架書三四千卷,粟可支一年,園圃桑麻ㆍ蔬果ㆍ花卉ㆍ藥草之植,位置井井,蔭翳可悅,上其堂入其室,有琴一張,投壺一口,筆硯ㆍ几案ㆍ圖書之觀,雅潔可喜,而時有客至,能殺雞切膾,濁酒ㆍ嘉蔬,欣然一飽,相與揚扢古今,則雖曰廢族,亦將爲具眼人所豔慕。一年二年,水雲漸邈,有如是而不中興者乎?汝其思之,汝其思之。忍而不爲是耶?
近世一種學術,專以反觀立名而修飾外貌者,指之爲假僞,年少儇蕩心厭拘束者,聞此皆躍然大喜,遂於起居動作之節,任情眞率。吾亦向來深中此病,到老筋骸不習,雖悔難改,甚可悔恨耳。向見,汝都不肯整襟危坐,端莊凝肅之色,未或一見,此吾一轉而爲汝也。殊不知聖人敎人,先從外貌收將去,方纔得安頓此心,世未有偃臥側立,胡言亂視,而可以主敬存心者也。故曰動容貌,曰出辭氣,曰正顏色,爲學問最初入頭處,苟不能於此三者乎用力,則雖有通天之才ㆍ絶人之識,終無以著得跟立得脚,其敝也,爲悖口,爲戾行,爲盜賊,爲大惡,爲異端雜術,無所止泊。吾欲以三斯名齋,謂‘斯遠暴慢’ㆍ‘斯遠鄙倍’ㆍ‘斯近信’也。今爲汝進德,以此贈汝,汝以名汝齋,仍自記文,付之後便也。吾亦當爲汝作記耳。汝又以此作三箴,名之曰〈三斯箴〉,可以繼美於程夫子〈四勿箴〉矣。何福如之?深望深望。
첫댓글 지난해 많은 자료를 올려주심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염치 없지만 올해에도 많은 자료를 부탁드립니다.
새해에는 원하시는 바 모든 일을 이루어 지소서!
자주 찾아 주셔서 고맙습니다. 새해에도 더욱 강령하시길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