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관(判官)보다 관망자(觀望者)
글을 써야 하는데 도무지 써지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노트북과 책 몇 권을 들고서 카페를 찾아갑니다.
익숙한 제 방을 벗어나 새로운 공간에 가면 써지지 않던 글의 실마리를 찾게 됩니다.
그날도 글이 써지지 않아서 카페를 찾아갔습니다.
커피 한 잔을 주문하고, 가지고 간 노트북과 책을 펼쳐놓는데 문자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친한 신부의 문자였습니다.
다음은 그 신부와의 대화 내용입니다.
“뭐 해?”
“일해.”
“어딘데?”
“카페.”
“일하는 것 아니네. 쉬는 거네.”
글 쓰는 것은 제게 일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카페에 앉아 있다는 것을 친한 신부는 노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어디에 있느냐보다 무엇을 하고 있느냐를 봐야 하지 않을까요?
사실 저 역시도 이런 식으로 다른 사람들을)섣부르게 바라보고 판단할 때가 많았음을 반성합니다. 사람에게도 또 하느님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하면서도 이러쿵저러쿵 많은 말을 하는 우리였습니다. 그 판단이 맞을 때도 있겠지만, 틀릴 때가 더 많습니다. 그래서 좀 더 상대의 처지에서 생각하고 바라볼 수 있는 신중함)겸손함이 필요합니다.
2021년 4월 26일 복음묵상에서 발췌(조명연 신부님)
덧붙임:
"판관보다 관망자"란 제목은 저가 임의로 붙여 보았습니다.
유독 대한민국 사람들은 관망자역보다 판관역을 선호합니다.
가정,학교,조직사회,교회 공동체, 이상을 실현하려는 수도 공동체내에서도 관망자 보다 판관이 훨씬 많습니다.
우리 관계와 사회가 그래서 거칠고 난폭합니다. 적절한 때 판관도 필요하겠지만 웅변보다 좋은 침묵으로 관망의 성숙함을 통해 성장하는 조직과 사회 관계들이 되기를 희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