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기사>
인테리 청년 성공 직업(1)
삼천리 제5권 제10호 1933년 10월 01일
• 필자 : 박옥화(朴玉花)
동경미술교(東京美術校) 출신(出身) 이순석씨(李舜石氏)의 끽다점(喫茶店) 낙랑(樂浪)팔라
대한문(大漢門) 압흐로 고색창연(古色蒼然)한 ? 궁궐을 끼고 조선(朝鮮) 호텔 잇는 곳으로 오다가 장곡천정(長谷川町) 초입(初入)에 양제(洋製) 2층(層)의 숙쇄(潚?)한 집 한채 잇다. 입구에는 남양(南洋)에서 이식(移植)하여 온드시 녹취(綠翠) 흐르는 파초가 노엿고 실내에 드러서면 대패밥과 백사(白沙)로 석근 토질 마루 우에다가 「슈-벨트, 데-도릿지」등의 예술가 사진을 걸엇고 조흔 뎃산도 알맛게 걸어 노아잇서 엇전지 실내 실외가 혼연조화(渾然調和)되고 그리고 실내에 떠도는 기분이 손님에게 안온(安穩)한 침정(沈靜)을 준다.
이것이 「낙랑(樂浪)팔라」다. 서울 안에 잇는 화가, 음악가, 문인들이 가장 만히 모히고 그리고 명곡연주회(名曲演奏會)도 매주 두어 번 열니고 문호(文豪) 「꾀-터」의 밤 가튼 회합(會合)도 각금 열니는 곳이다.
이 집에서는 맛난 틔(茶)와 「케-크」「푸룻」 등(等)을 판다.
이 차실(茶室)의 주인이 연전(年前) 동경미술학교(東京美術學校)를 마춘 화가 이순석씨(李舜石氏)다. 씨(氏)는 30을 상하(上下)하는 청년예술가다. 그래서 그의 2층에는 「아토리에」(화실)을 꾸미어 노코 제작에 늘 분주한다.
이 집의 감촉은 마치 파리(巴里) 「이정(裏町)」에서 청절(淸節)을 직혀가며 전심예도(傳心藝道)에 정진(精進)하는 예술가의 화실가튼 늣김을 준다.
명화 「파리(巴里)の옥근(屋根)の하(下)」에 나오는 셋트 속의 한 쪼각 갓기도 하다.
씨(氏)가 이 낙랑(樂浪) 팔라를 시작한 것이 2년 전이엇다. 그 때는 종로(鍾路)에 「멕시코」와 「뽄아미」가 잇서 인테리 청년을 흡수하든 때이다, 북촌(北村)하고 떠러진 이 아스팔드 길 엽헤 위치를 정하는 것이 성공하겟느냐 엇저겟느냐고 퍽도 의구(疑懼)하엿스나 경영자의 견식은 결국 탁월하엿든 모양으로 전차의 소음을 피하여 강철과 석재(石材)로 다신 양옥(洋屋)의 이 삼림가에 조고마한 쉬임터를 만든 것이 세인(世人)의 기호에 마젓섯다.
이리로 모아드는 인테리는 점점 만허 간다, 아마 씨(氏)의 사업은 인제는 터전이 서 젓다고 보겟다. 그리고 티룸의 일홈이 조타. 낙랑(樂浪)팔라! 이것은 강서(江西) 고구려(高句麗) 문화(文化)의 정화(精華)를 따다가 관사(冠辭)를 부첫는데 그 뜻도 무한히 조커니와 음향이 명랑한 품이 깍근 참배맛이 난다.
씨(氏)가 처음 이 차실(茶室)에 급하(扱下)한 자본은 약 2,000원이란 말이 잇다.
설비비 1,100원 유동자본 500원 선전비 30원
지금 매삭(每朔)의 수지(收支)는 이러하다.
매상고(賣上高) 300원 원가급잡비(原價及雜費) 200원 순이익(純利益) 불명(不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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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풍(春風)의밤』개최 삼(三)일밤『낙랑』에서
『조선중앙일보』 1935년 12월 3일, 조간 2면
문예영화「춘풍(春風)」이제작상연된데대하야이는미약한조선영화운동에잇서서는큰수확인동시에
깃분일일이라하야 이기세(李基世)씨의 십구(十九)씨 (문예또는연예방면인사)의밤긔로
금삼(三)일오후 일곱(七)시에 부내 장곡천정「낙랑(樂浪)팡라」에서『춘풍의밤』을열기로되잇다는데
당야의회비는오십(五十)전이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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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진섭 소품집, 명십오일부터 낙랑「파라」에서
『동아일보』1936년 3월 15일. 석간 4면
오는 십오일(일○)부터 이십이일까지 팔일간 시내 장곡천정 낙랑파-라에서 양○○ 길진섭씨의 소품전이
개최되리라 한다. 서양○의 길진섭씨는 이미 ○○○○에서 상○한 ○정을 받고잇는 ○○어니와 씨는 현재경성에 잇어
모든 ○○와 싸워가며더욱○○에○○하야 백○○의 일원으로 중앙○○전 백일○○에도 입○되잇는바 이번에○○○
이순석씨 등재○우인의 ○○으로 우와여히씨의 ○작소품삼십○ 점으로 전시하고또이를 현지에서 절○하야 씨의
○진에 필요한 ○구대나마 ○○려하는것이라는데 일점의 가격은 십원으로부터 사십원까지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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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문(漫文), 차당여인(茶黨女人)
별건곤 제69호 1934년 01월 01일
• 필자 : 이선희(李善熙)
밤이다. -무섭게 추은 도시의 밤이다. 어차피 추울 바에는 영하 40도의 된 추이가 그립다.
털속에 파뭇처 가이업는 눈덥힌 벌판으로 헤매고 십흔 것도 인테리 녀성의 변덕의 하나다.
아모리 추어도 하숙집 아랙목에 쪼그리고 안저 잇슬 수는 업다. 그것은 크나큰 손실이다. 이반의 향락을 일허버리다니-.
밤거리로 나가거라. 그리하야 너의 젊은 날을 즐겁게 보내라.
무겁고 우울한 침통미(沈痛味)는 겨울밤의 감각이다. 불멸(不滅)의 세레나-데다. 나는 이 잠을 조와한다. 더구나 밤도 긴-겨울 깁흔밤을 조와한다. 심야장(深夜長)이란 말이다.
떼파트 쇼-윈도의 황홀한 색채가 나를 유혹하고 울트라 모-던니즘을 숭배하는 젊은 남녀의 야릇한 채림새가 내 호기심을 끈다.
거리로 나가거라. 입술을 ?앗케 물드리고 눈섭을 가늘게 그리고 윙쓰를 사방으로 보내며 레뷰-식으로 깡충깡충거러라. 단연이 갑싼 모-던니즘의 여왕이 될테니.
나는 이것이 조흔지 납븐지 모른다. 하기는 아마 조선의 녀성이 다 이모양이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그러나 내 눈은 변으로 아름다운 것을 구하고 내 가슴은 허영과 향락으로 차잇지 안은가. 나는 도회의 딸이다. 아스팔드의 딸이다.
티-룸 이것의 탄생은 퍽이나 유쾌한 일이다. 활동사진에도 실증이난 내게 유일한 사교장(社交場)이다. 일전 엇던 잡지에 차ㅅ집이 넘우 만허서 차만 마시면 사느냐고 하기는 햇지만.
장곡천정(長谷川町)으로 가다가 「낙랑(樂浪) 파-라」이집을 내가 제일 조와한다.
쏙 드러서면 그 화려하고 경쾌한 맛이라니. 현대인의 미감(美感)을 만족식힌다. 엇재든 얼마전 내가 시골에 단여와서 처음으로 이차ㅅ집에 갓슬 때 엇던케 조와햇든지 가티 갓든이가 요행 내 아저씨여서 연방 까불지 말나고 주의를 밧은 일도 잇다.
위선 빈 자리를 골나 안젓다. 커피를 가저 왓다. 가느다란 김이 몰-몰-난다. 흑-드리컷다. 그 향기로운 맛이란-그래 집에서 숭융을 마시고 잇서.
마즌편 벽에 반나체(半裸體)의 여인초상화가 걸엿다. 보면 볼수록 눈을 옴길수 업게 매력이 잇다. 서양 배우의 「푸로마이드」도 뒤적 거려 본다.
사람이 상당이 만이 왓는데, 그래 하로종일 시달니다가 멧십분 동안이라도 이러케 쉬어야지 고부라진 신경이 펴질게다.
「레코드」가 돌아간다. 사람의 마음을 부드럽게 어루만저 주는 그 음향-. 모도다 이저바리고 아름다운 그 노래에 마음껏 취하는 복된 순간이여-.
차ㅅ심부름 하는 아희! 참 깜직하기도 하다. 외형보다 속이 넘우 여무진데 놀냇다. 나이를 무러보니 아홉 살이나 열살밧게 안되여 보이는 군(君)이 열네살 이란다.
흥 이 직업이 이 아희의 성장을 방해햇다. 누구나 이 아해를 보면 이런 생각을 하지 안을 수 업슬 것처럼 그는 직업적으로 별나게 되엿다. 조라든 모양이다.
이 차한잔이 얼만지. 십전? 오십전? 멧번 왓서도 머 차갑을 내가 내나. 녀자의게서 찻ㅅ갑을 밧는 사람이 어되잇담.
켁을 폭으로 국찔너 먹엇다. 갑작이 내가 몹시 올나가는 것 갓다. 김치를 젓가락으로 먹는 것보다 한층 더 문화적임에 괘감을 늣긴다.
한푼에 두 개짜리 갑싼 인테리 그중에도 팔자에 업는 허영을 찻는 나가튼 게집애-그 머리속이란
대중을 잡을 수 업는 것이다. 유쾌하고 즐거울 때면 세상은 차차로 「보까쓰」되여 오는 거이다. 서울은 파리와 가티 생각되고 조고만 차점도 세게에서 제일 큰 사교장가티 생각된다. 나는 그 가온대로 것는 화형으로 자처하고-. 이리하야 화미(華美)와 형악욕(亨樂慾)의 절정에서 춤추는 것이다.
뽀이를 불너 신문을 청햇다. 활동사진에 나오는 서양뽀이의 채림새다. 그리고 또 미남인데.
미남을 뽀이로 선택한 것도 직업적 수단인가.
마즌 편에 엇던 사람 하나가 안저잇다. 친구도 업시 혼자온 모양인데 차ㅅ잔은 벌-서 비여잇는지가 오래고-. 네 활개를 여?팔자로 쩍벌니고 안젓는 모양이 일백 이십분 이상인지 일백 팔십분 이상인지 저 모양을 게속한 모양인데 나로서는 그 길이를 알길이 없다.
음악을 어느 만큼 아는지 몰나도 렬심으로 듯고 잇고 또 아조 흠신취한 것 갓다. 그의 탄력만흔 신경은 이 밤의 모든 것을 흡수할 때로 흡수해서 차ㅅ갑 20전이나 삼십전을 밋지지 안켓다는 생각x20보다.
그도 그러 것이 집에라고 가야 별것이 업다. 재미는커녕 을쓰년 스러워 드러갈 수부터 업다. 조고만 셋방에 늙으신 어머님 어린애들이 뒤법석을 치고 게다가 그리 탐탁지 안은 고생주머니 안해가 잇고... 김치 냄새가 후더분한 신선치 못한 방안의 공기와 합해서 야릇하게 불유쾌한 냄새가 코를 지르는 그 속에 화로에서 보글보글 끌코 잇는 된장찌개-이런 것을 생각하면 그만 질색이 나서 발길이 도라선 것이다. 차ㅅ집! 이것은 우리의게 현대의 감각을 자극식히는 매개장이 아니야. 이만한 데만 와도 훨신 명랑한 긔분을 맛보는 소득이 잇다.
그리하야 그 귀중한 돈 이십전이나 오십전을 앗김업시 내여 놋는 것이다. 만일 그 돈을 오늘 아츰 그의 안해의게 맛겻든들 늙은이 아히들 또 그 현숙한 안해 자긔까지 하다 못해 고깃국이나 생선 한토막이라도 어더먹엇을 것을-.
그러나 그런것까지 생각하면 남자가 궁해서 못쓴느 법이고 또 노-모던이 되어서 안되는 것이니 호주머니의 단 몃십전이라도 잇서든 차ㅅ집으로 가거나 식당에라도 가서 「라이쓰카레」 한그릇이라도 먹으면 뱃속은 엇더튼지 기분 그 놈의 긔분만은 백이십퍼센트로 유쾌하리라. 차 한잔 또 청햇다. 나는 단연이 이 사교장의 녀왕이나 된 것가튼 자부심이 생긴다. 그리고 밋칠 듯이 깃브다. 레코드가 도라간다.
나는 언제가지나 심야파(深夜派)가 되고 언제까지나 이 차(茶)당 여인(女人)으로 행세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