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에론레코드에서 발매된 <전장의 백합화>는 극 음반이므로 여기에 가사지
내용을 옮기지는 않겠다.104)
대신 그 내용을 요약해 정리해 보면, 죽음을 눈앞에 둔 군인과
그 군인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 주겠다는 여자가 대화를 나누는
장면을 설정하여 군국주의 이데올로기를 해학적으로 풍자하는 것이다.
‘진충보국(盡忠報國)’의 거창한 이념을 찬양해 만세를 부르거나, 용맹스런 죽음을
찬양하는 군가를 불러 주면 되겠냐는 여인의 물음에 대해,
‘조국의 광영을 위하여 전장에서 사라지는’ 군인은 그저 여인에게 키스나 한번 하고
싶다는 대답을 해 여인의 핀잔을 받는다.
보기에 따라서는 그냥 웃어 넘길 만한 내용일수도 있겠지만,
중일전쟁 이후 전시체제 돌입으로 사회가 경직된 상황에서는
검열을 통과할 수 없었던 것이다.
<구곡간장>, <뚱딴지 서울>, <인생주막>, <기로의 황혼> 등 네 가지는 다른
경우에 비해 상대적으로 강도가 약한 ‘가두연주 금지’ 처분을 받은 것이다.
그때문인지 이러한 곡들은 가사를 보아도 특별히 치안방해로 단속될 만한 문제
있는 대목을 찾기가 쉽지 않다. 이 정도 수준의 애상적인 정조나 풍자적인
표현(<뚱딴지 서울>의 경우)은 일제시대 대중가요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을 정도인데, 네 곡이 가두연주 금지 처분을 받은 것은
아무래도 1938년이라는 시점과 관련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1938년은 중일전쟁 발발 직후로 검열 강도가 갑자기 강해져서 감소추세에 있던
음반 단속이 일시 증가했던 때임을 이미 살펴보았다.
만약 이러한 노래들이 중일전쟁 전에 발매되었으면 발매 당시에는
검열을 무사히 통과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네 곡의 가사는 다음과 같다.
차라리 약속이나 말 것을/ 만나자 가실 걸음 왜 왔어요/ 가시면 난 몰라 떠나
면 난 싫어 가시지를 말아요/ 아 가시지 말아요 네 아 가시지 말아요 네네/ 가시
면 난 싫어 가시면 난 싫어 떠나지를 말아요
차라리 정을 주지 말 것을/ 정 주자 가신다니 왜 왔어요/ 가시면 난 몰라 떠나
면 난 싫어 가시지를 말아요/ 아 가시지 말아요 네 아 가시지 말아요 네네/ 가시
면 난 싫어 가시면 난 싫어 떠나지를 말아요
젊어서 이별이란 난처해/ 생초목 불이라오 모질어요/ 가시면 난 몰라 떠나면
난 싫어 가시지를 말아요/ 아 가시지 말아요 네 아 가시지 말아요 네네/ 가시면
난 싫어 떠나지를 말아요 가시면 난 싫어
(<구곡간장>105))
모던걸 아가씨들 둥근 종아리/ 데파트 출입에 굵어만 가고/ 저 모던보이들의
굵은 팔뚝은/ 네온의 밤거리에 야위어 가네/ 뚱딴지 서울 꼴불견 많다
/ 뚱딴지 뚱딴지 뚱딴지 서울 만나면 헬로 소리 러브파레드/ 뒷골목 행랑에 파티를 열고
/ 하룻밤 로맨스에 멀미가 나서/ 고스톱 네거리에 굳바이 하네/ 뚱딴지 서울 꼴불견 많다
/ 뚱딴지 뚱딴지 뚱딴지 서울
집에선 비지밥에 꼬리 치면서/ 나가선 양식에 게트림 하고/ 티룸과 카페로만
순회를 하며/ 금붕어새끼처럼 물만 마시네/ 뚱딴지 서울 꼴불견 많다/ 뚱딴지 뚱
딴지 뚱딴지 서울
(<뚱딴지 서울>106))
조각달도 넘어갔다 밤이 아까워/ 선지피 네온 속에 술컵을 들자/ 부어라 마셔
라 마셔라 부어라/ 모진 사랑 술에 풀어 이 밤을 드새자
눈 감고서 아웅하는 밤거리 사랑/ 술 기운이 날아가면 꺼지는 풋사랑/ 부어라
마셔라 마셔라 부어라/ 상한 가슴 잔에 담고 이 밤을 드새자
굴러왔다 굴러가는 전차길 사랑/ 날아왔다 날아가는 뜬 구름 풋사랑/ 부어라
마셔라 마셔라 부어라/ 깨진 심장 움켜안고 이 밤을 드새자
(<인생주막>107))
그러냐 그러냐 뜬 세상 인심이란 모두가 그러냐/ 흩어진 인정이요 흩어진 사랑
이언만/ 부평 같은 내 신세 흘러가는 내 팔자엔/ 인정도 없고 돈도 없고 사랑도
없다
그러냐 그러냐 낯설은 타관이란 모두가 그러냐/ 들어찬 사랑이요 들어찬 술집
이언만/ 봄을 등진 내 한 몸 버림받은 내 앞에는/ 사랑도 없고 길도 없고 술집도
없다
그러냐 그러냐 실없는 애정이란 모두가 그러냐/ 쌔 버린 웃음이요 쌔 버린 눈
물이언만/ 얼이 빠진 내 마음 넋이 빠진 내 얼굴엔/ 웃음도 없고 피도 없고 눈물
도 없다
(<기로의 황혼>108)
104) 이홍원 작, 신불출․신은봉, 1933년 3월 발매. <전장의 백합화> 가사지는 한국
고음반연구회․민속원 공편, 유성기음반 가사집 2, 935-937면에 수록되어 있다.
105) 박영호 작사, 김송규 작곡, 니키타키오 편곡, 박향림 노래, 1938년 8월 발매. 한
국고음반연구회 편, 유성기음반 가사집 4, 1018면.
106) 고마부 작사, 정진규 작곡, 니키타키오 편곡, 유종섭 노래, 1938년 8월 발매. 한
국고음반연구회 편, 유성기음반 가사집 4, 1026면.
107) 박영호 작사, 이용준 작곡, 니키타키오 편곡, 박향림 노래, 1938년 9월 발매. 한
국고음반연구회 편, 유성기음반 가사집 4, 1034면.
108) 조명암 작사, 박시춘 작편곡, 남인수 노래, 1938년 10월 발매. 남인수팬클럽,
2001, <남인수 전집> 가사집, 27면. <기로의 황혼>은 작사자 조명암이 월북했다
는 이유로 1965년 3월에 방송금지가요 1번으로 등록되기도 했다. 방송심의위원
회, 1987, 방송금지가요곡목일람, 14면.
2) 풍속괴란
풍속괴란으로 금지된 음반 가운데 가사나 음원이 확보되어 있는 것은
<범벅타령> 3종(오케레코드, 콜럼비아레코드 40074, 40246),<속신가정생활>,109)
<사설난봉가>(리갈레코드), <서울띄기>, <전화일기>, <여천하>(시에론레코드.
고라이레코드 발매 음반은 시에론레코드와 동일한 내용)110) 등 8종이다.
<오몽녀>의 경우 <해적 블러드>와 마찬가지로 일본어로 표기된 것만 있어서 일단
제외했다.111)
각 음반회사에서 발매한 음반이 7종이나 금지되어 이채를 띠는 <범벅타령>
은 오케레코드에서 낸 것이 가사지가 남아 있어112) 그 내용을 살필 수 있다.
사설이 긴 편이므로 다 옮길 필요는 없겠지만, 이도령과 김도령 사이에서 행
실이 좋지 않은 여인의 모습을 해학적으로 표현하면서 ‘두 몸이 한 몸 되어
굼실굼실 잘도 논다’ 같은 성적 표현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 쉽게 발견된
다.
음원만 공개되어 있는 콜럼비아레코드에서 발매된 두 가지 <범벅타령> 역시
세부적인 표현에서는 약간 차이가 있어도, 기본적인 서사 구조와 노골적인
성적 표현은 오케레코드 <범벅타령>과 같다.
다른 음반회사에서 나온 <범벅타령>들도 대체로 이와 비슷한 경우일 것으로 짐작된다.
금지된 일곱 가지 <범벅타령> 음반 외에 일제시대에 발매된 <범벅타령> 음반은
빅타레코드 KJ1003, 오케레코드 12243, 콜럼비아레코드 40917 등 세 가지가 더 있다.
이 <범벅타령> 3종이 다른 음반들과 달리 검열에 걸리지 않은 것은 아마도 가사에서
노골적인 성적 표현을 제거했기 때문일 것이다. 음원이 남아 있어 가사 내용을
알 수 있는 오케레코드 12243 <범벅타령>은 일제시대에 ‘신민요의 여왕’이라
불리던 이화자가 녹음한 것인데,
제목은 <범벅타령>이라 되어 있지만 내용으로 보면 사실상 <창부타령>이라 할 수 있다.
이는 <범벅타령>과 <창부타령>이 음악적으로 유사한 작품이라는 점과 관련이 있다고
할 수도 있겠고, <범벅타령>의 성적 표현을 완전히 제거한 뒤 <창부타령>과
그다지 구별되지 않는 결과가 나온 것으로도 볼 수 있다.
가사지가 남아 있는 <속신가정생활>113)은 부부의 사소한 다툼이 벌어지는
109) 표 2에는 제목이 <신가정생활>로 되어 있으나 <속신가정생활>이
맞는 제목이다. 각주 66번 참조.
두 가지 에피소드를 통해 희극적인 가정풍속도를 그린 내용인데, 여기에도
일부 성적인 표현이 등장한다. 예컨대, ‘여보 전등은 왜 끄우. 그럼 다시 켤까?
아서요 달 밝은 것도 부끄러운데’나 ‘코 납작한 신랑을 누가 딸을 줍디까’
같은 대목은 <범버타령>처럼 노골적이지는 않지만, 누구라도 쉽게 성적인 연상
을 떠올릴 수 있는 것이다.
리갈레코드에서 발매한 <사설난봉가>도 가사지가남아 있어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114)
6절로 이루어진 <사설난봉가>115)사설 가운데 풍속괴란이라는 면에서
문제가 될 만한 내용은 제1, 2, 3절에서 특히두드러진다.
‘요런 사품에 벗고만 노잔다’, ‘총각을 데리고 밤길을 갈까’ 같은
대목은 물론, 달 밝은 밤에 처녀총각 단 둘이 만나 ‘애기나 들면은 어찌나
하나’ 싶은 행각을 벌이는 대목은 꽤 노골적인 표현이라 볼 수 있다.
계속
110) 각주 78번 참조.
111) 조선출판경찰월보 제103호 「피처분 축음기레코드 내용초록」.
112) 박부용 노래, 박인영 장고, 1933년 2월 발매. 한국고음반연구회․민속원 공편, 유
성기음반 가사집 2, 583-584면.
113) 이서구 작, 신불출․김연실, 김대근 노래, 1932년 12월 발매. 한국고음반연구
회․민속원 공편, 유성기음반 가사집 2, 923-926면.
114) 설중매․이진봉 노래, 1934년 6월 발매. 본고에서 인용한 <사설난봉가> 가사지
는 개인적으로 복사본을 입수한 것이다. 리갈레코드 가사지는 얼마 전 영인본
으로 간행되기도 했다. 최동현․임명진 편, 2003, 유성기음반가사집 5․6, 민
속원.
115) 에 놀아난다 놀아난다 산골 큰아기 놀아난다/ 놀아난다 놀아나 산골 큰애기 놀
아나/ 시애비 잡놈은 상에를 가고/ 시에미 잡년은 굿구경 하고/ 시뉘 잡년은
김매러 가고/ 노랑두 대가리 화토하러 가고/ 요런 사품에 벗고만 노잔다/ 에야
에야듸야 내 사랑아// 에 영감을 데리고 술장사를 할까/ 총각을 데리고 밤길을
갈까/ 영감을 데리고 술장사를 하자니/ 밤잠을 못 자니 고생이요/ 총각을 데리
고 직행을 타자니 나 많은 잡년이 실없는 년이라/ 에야 에야듸야 내 사랑아//
에 달도 밝다 달도 밝아 월명사창에 달도 밝다/ 달도 밝다 달도 밝아 월명사창
에 달도 밝아/ 처녀총각이 단 둘이 만나/ 죽을 둥 살 둥 살 둥 죽을 둥/ 우리
둘이 요러다가 애기나 들면은 어찌나 하나/ 애기가 들든지 어른이 들든지/ 바
싹 안아라 가슴이 죈다 꼭꼭 눌러라 뒷다리 들어라/ 반고수머리는 모주를 멕이
고 올창군놈아 내 고작 들어라/ 홈통에 빠져서 나 죽겠구나/ 에야 에야듸야 내
사랑아// 에 날 버리고 가는 님은 십리를 못 가서 발병이 나고/ 날 버리고 가
시는 님은 십리를 못 가서 발병이 나고/ 이십 리 가서 물매를 맞고/ 삼십 리를
가서 불안당 맞으면/ 내 생각 하고서 또 돌아오리라/ 에 에야듸야 내 사랑아//
에 왜 생겼나 왜 생겼나 요다지 곱게도 왜 생겼나/ 왜 생겼나 왜 생겼나 요다
지 곱게 왜 생겨/ 무쇠풍구 돌풍구 사람의 간장을 살짝 녹인다/ 에야 에야듸야
내 사랑아// 에 앞집의 처녀 뒷집을 가는데 뒷집 총각이 목매러 간다/ 앞집 처
녀 시집을 가는데 뒷집 총각이 목매러 간다/ 그 녀석 죽는 것은 아깝지 않으나
색기세바람 또 난봉 나누나/ 에야 에야듸야 내 사랑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