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모스의 말에 파란바람의 제외한 정신들은 놀랐다. 파란바람의 말이 사실이라면 자신들은 할 일 없이 가만히 있는 것이 그들이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인가?
“그게 무슨 소리지? 대기의 정신 말해봐!”
파란바람은 조금 전에 내렸던 초록빛 투명한 주먹을 다시 들어올리며 말했다.
“파란바람이라고 부르라니까!! 흠. 너희들이 우리 정신들이 해야 할 일들을 찾기 위해 돌아다닐 적에 나는 세상을 돌아다녀 보았지. 그러면서 느낀 것이 내가 없어도 세상은 잘 돌아 가더라구? 바람은 바람대로 잘 불고, 물은 물대로 흐르며 빛과 어둠은 공존하고. 그래서 생각해본게 그거지. 우리가 할일 이라는 것은 그냥 존재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고서 말이야.”
“그...그런...”
다른 정신들은 파란바람의 말에 적잖이 당황한 듯 싶었다. 그들로서는 생각조차 해보지 못한 것이었다. 자신들의 존재이유를 찾기 위해 움직였지, 사물을 둘러보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고정관념에 사로 잡힌 건가? 자신들이 존재하는 이상 그들에게도 해야 할 일이 있을 것이라는 고정관념에? 완벽한 존재라고 할 수 있는 그들이 고정관념에 잡혔었다. 이것은 그들에게는 커다란 충격으로 다가왔다.
“음? 잠깐만... 그렇다는 이야기는... 파란바람 네 녀석은 우리들이 고생을 하던 말던 가만히 놀고만 있었단 밀이냐?!”
-움찔
파란바람은 자신에게로 쏘아져 내려오는 복잡 미묘한 시선들을 느낄 수 있었다. 불의 정신의 활활 타오르는 듯한 눈빛, 물의 정신의 서늘하게 식어버린 눈빛. 나머지는 그저 그렇구나 하는 식의 눈빛.
“아..아하핫. 왜 그래? 자자. 릴랙스 릴랙스. 인간들한테 배운건데 말야. 가슴 깊숙이까지 숨을 들이쉬고 내뱉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우린 숨쉴 코 따윈 없다.”
불의 정신이 파란바람에게로 달려들면서 말했다. 불의 정신이 내뻗은 주먹에는 무엇이든지 태워버릴 듯한 불이 타오르고 있었다. 파란바람은 재빠르게 그 주먹을 피하며 불의 정신의 주먹 근처에 있는 산소들을 고정시켜버렸다. 불의 정신의 주먹에 있던 불길은 그 화력만큼 맹렬히 산소를 흡수했고, 더 이상 태울 산소가 부족하게 되자 그 힘이 약해졌다.
“어..어? 이..이게!!”
불의 정신은 짜증이 난 듯 팔을 휘휘 젓더니 불을 더 크게 붙였다. 그러자 불길은 산소가 없음에도 활활 타올랐다. 불의 정신은 자신의 몸을 불로 바꾼 것이었다.
“어..어이. 이봐!”
“이놈!!”
다시 주먹에 불을 붙인 불의 정신은 파란바람에게 달려들었다. 몇 번의 공격을 주고받았다.
“.다된 게치미 이향영 에상세 .만그”
세상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카오스의 말에 두 정신은 멈추었다. 파란바람은 카오스의 말에 멈추었지만, 불의 정신은 아니었다. 익숙한 기운이 느껴졌다. 다른 정신들도 느낀 것인지 한 곳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곳에는 처음 보는 정신이 있었다.
“금속의.... 정신이군.”
코스모스가 말했다.
금속의 정신은 코스모스를 보고는 고개를 한번 까딱 했을 뿐이다. 금속의 정신. 그는 차가웠다.
“헤에? 금속의 정신? 으음. 동생이로구만! 하하핫. 형이라고 불러보렴.”
파란바람이 너스레를 떨며 금속의 정신에게로 다가갔다. 파란바람은 금속의 정신의 머리로 짐작되는 부분에 손을 가져갔다.
-탁!
“손 치워.”
냉랭한 목소리에 싸늘함이 물씬 풍겨나오는 말투.
“흑... 상처받았어.”
파란바람은 그렇게 말하며 힘없이 다른 정신들에게로 갔다. 그의 뒤를 따라(단지 금속의 정신도 다른 정신들에게로 가는 것 뿐이었지만 파란바람이 앞서가고 있었기에) 다른 정신들에게로 갔다.
“보다시피 난 금속의 정신. 귀찮게 친한척은 하지 않아줬으면 하는군.”
그 말을 끝으로 금속의 정신은 어디론가로 사라졌다.
카오스와 코스모스는 이미 자신들이 할 일을 찾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머지 정신들은... 멍하니 그가 사라진 곳을 바라보았다.
“흑... 나 쟤 무서워.”
파란바람의 목소리만이 무의 공간이었던 곳에 울려 퍼졌다.
***
파란바람은 세상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존재 자체가 그가 할 일이니 그저 빈둥거리는 것밖에 할 짓이 없었다. 파란바람은 이전과 그 모습이 상당히 달라져 있었다. 이전의 모습이 그저 초록색의 반투명한 모습의 슬라임 같았다면, 지금의 모습은 성인의 손바닥 정도의 크기의 자그마하게 귀여운 모습이 되어 있었다. 정신에게 성별을 따지는 것이 이상하지만 지금 그의 모습은 남성의 모습이었다.
그 뿐만이 아니라 다른 정신들 대다수가 그들의 모습을 바꾸었다. 불의 정신은 여성체로. 솔직히 그 성격에 여성체라니!! 파란바람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어디서 보고 온 것인지 붉은 머리의 인간형을 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역시 그녀의 성격을 안으로 숨기지는 못하는 듯 털털한 성격이 그대로 나타나고 있었다.
물의 정신은 중성체. 하지만 모습은 누가 봐도 아름다울 정도로 바꾸어버렸다. 다만... 신장이 오거라고 하는 생명체와 맞먹을 정도라는 것이 한 가지 흠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언밸런스한 느낌을 주면서 묘하게 어울렸다.
대지의 정신은 스톤 골렘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골렘의 모습이니 성별을 따질 수는 없다. 왜 하필이면 골렘이냐는 파란바람의 물음에 그는 인자하게 웃으며 말했다.
“마음에 들었어.”
요컨대 취향이라는 것이다. 뭐, 남의 취향가지고 뭐라고 하는 것은 파란바람이 좋아하지 않는 일중 하나이다. 자신도 남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이름이 있는데 뭘. 그래서 이미 암묵적으로 합의가 이루어진 상태였다. 남의 취향가지고 뭐라고 하지 않는다는...
빛의 정신은 그저 동그란 구체의 모습을 취하고 있었다. 동그란 구체에서 은은한 빛이 나오는 것이 어찌나 예쁜지 불의 정신이 빛의 정신을 가지고 놀려다가 된통 혼난 적이 있을 정도였다.
어둠의 정신은.... 어둠의 정신은 아무리 취향이라고는 해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어떻게 그저 안개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느냔 말이다!! 그것도 어두운 안개! 검은색이 아니다. 말 그대로 밝음이 없는 안개! 게다가 움직이는 모습이 좀 이상한가? 어디가 손이고 어디가 발인지 구분이 가질 않는다(그것은 빛의 정신도 마찬가지이긴 하지만 빛의 정신은 예쁘기라도 하지!!). 어느 부분인지 모를 부분이 앞으로 스윽 미끄러져나가는 모습에 소름이 끼칠 정도이다. 게다가... 본인은 남성체라고 바득바득 우긴다. 저런게 남성체면 도대체 여성체는 어떻게 생긴건데!!
그리고 금속의 정신. 그는 그때 이후로 본적이 없다. 어디에 있는 지는 대충 알 수 있어도 그가 찾아오지 않고, 그들이 찾아가지 않고 있으니 단절되어 있다고 할까?
그리고 마지막으로 번개의 정신. 이 녀석은 얼마 전에 나타난 새로운 정신이다. 이미 금속의 정신에게서 상당한 충격을 받은 정신들은 이번의 정신에게도 그다지 기대를 하지 않았다. 느낌으로 볼 때는 번개였다. 그렇다면 성격 파탄이 아닐까 하는 추측이 조심스럽게 제기되는 가운데 번개의 정신이 모습을 드러냈다. 파란바람 역시 아직 충격에서 헤어나오질 못한 상태여서 ‘형이라고 부르렴’이라는 말은 꺼내지 않았다.
“야하하핫. 반가워! 뭐, 알고 있겠지만 난 번개의 정신! 우리에겐 나이 따윈 상관없으니 형이나 누나 같은 건 안 따져도 되는 거지? 편하게 살자구 편하게! 자! 그럼 잘 부탁해.”
뭔가 묘하게 정신이 없다. 도저히 성격을 종잡을 수가 없다. 그래도 금속의 정신보다는 낫다는 생각을 가지고 정신들은 인사를 나누었다.
“얼레? 불의 정령은 웬 여자? 에헤라~ 딱 보아하니 성격을 알겠구만. 털털하지? 남.자.처.럼.”
불의 정신은 굳었다. 불의 정신 아웃!
“으음. 물의 정신? 호오. 예쁘게 생겼는데? 근데... 남자야? 여자야? 흐음. 변태기질이 있나? 게다가 뭐가 이렇게 커? 떠있지않으면 올려다 봐야 하잖아.”
물의 정신은 어디론가 달려 나갔다. 물의 정신 아웃!
“크흐음. 대지의 정신? 뭐 꼴을 보아하니 성별 무시. 몸은 돌덩이 덕지덕지 붙이고 다니고.. 으음. 얼라? 몸에 이끼까지 끼어있는데?”
번개의 정신은... 미약한 전기를 일으켜 대지의 정신에게 붙어있던 이끼를 태워버렸다. 대지의 정신은... 이끼가 탄 부분을 손으로 감싸 쥐고는 울면서 뛰쳐나갔다. 눈물은 조그마한 돌맹이들... 대지의 정신 아웃!
번개의 정신은 빛의 정신을 쳐다보았다. 빛의 정신은 그의 시선을 받자 몸을 움찔하며 놀란 모습을 여과 없이 보여주었다.
“호오? 이 예쁘게 생긴게 빛의 정신?”
의외로 좋은 말이 나오자 빛의 정신은 안심하는 듯 했다.
“작고 예뻐서 가지고 다니기엔 참 좋겠는데 말야. 목걸이? 흐음. 아니야 반지로는 조금 큰 거 같고... 음... 아! 머리에 얹고 다닐까?”
빛의 정령은... 몸을 크게 부풀리고는 눈이 부실만큼 강렬한 빛을 뿜어내었다. 마치 자신은 작고 예쁘지 않다고 몸으로 보여주려는 듯이. 저 밝고 낙천적이었던 빛의 정신까지 저상태로 만들어 버리다니... 강적이다. 빛의 정신 아웃!
천천히 시선을 돌리는 번개의 정신. 그리고 그 시선이 멈춘 곳에 있는 것은 어둠의 정신. 어둠의 정신은 그 특유의 흐느적(?)거리는 움직임을 멈춘 체로 그 시선을 받고 있었다. 그 검은 안개가 조금 떨리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더니 이내 갑자기 사라져버렸다. 어둠의 정신 아웃!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아있는 것은... 대기의 정신 파란바람. 파란바람은 눈앞의 새로운 정신이 결코 하수가 아님을 알아봤다. 그리고 온몸의 세포(세포가 있는지를 확인 할 수 없지만)하나하나를 긴장시켰다.
“흐음? 참 귀여운 모습이군.”
“훗~ 그렇지?”
“남성체로군.”
“그렇지!”
“자그마한 것이 정말로 귀여워 보이네. 바람의 정신?”
“하핫. 나도 만족하고 있다구. 파란바람이라고 불러줘.”
“야하하핫. 파란바람? 이름이 있구만. 반가워.”
“하하하하핫.”
“야하하하하”
“하하하하하하.”
파란바람 세이프!
번개의 정신. 왠지 좋은 녀석일 것 같다. 번개의 정신은 금속의 정신에게도 인사를 하고 온다고 하며 갑자기 사라져버렸다. 파란바람은 미처 주의를 주지 못한 자식을 탓하며 번개의 정신이 어디 있는지를 탐지했다. 그리고 그를 탐지해냈고, 그에게로 가려고 했을 때, 눈앞에 번개의 정신이 나타났다.
“크흑. 귀찮게 하지 말고 꺼지래”
파란바람은 생각했다. 어쩌면... 가장 강한 것은 금속의 정신.
금속의 정신 세이프!
번개의 정신은 딱히 말하자면 정신이 없는 녀석이다. 실컷 떠든다. 그것이 비록 혼자일 지라도. 게다가 갑자기 끼어들기도 잘한다. 상당히 시끄러운 녀석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 녀석이다.
첫댓글 어둠이 밀렸다....[충격] 금속의 정신이랑 한번 떠보고 싶군..=_=a
잇힝. 어둠의 정신이 안개의 모습이라면.. 통과해 지나갈 수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