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호 통재(嗚呼痛哉)라, 자식(子息)이 귀(貴)하나 손에서 놓일 때도 있고, 비복(婢僕)이 순(順)하나 명(命)을 거스릴 때 있나니, 너의 미묘(微妙)한 재질(才質)이 나의 전후(前後)에 수응(酬應)함을 생각하면, 자식에게 지나고 비복(婢僕)에게 지나는지라. 천은(天銀)으로 집을 하고, 오색(五色)으로 파란을 놓아 곁고름에 채였으니, 부녀(婦女)의 노리개라. 밥 먹을 적 만져 보고 잠잘 적 만져 보아, 널로 더불어 벗이 되어, 여름 낮에 주렴(珠簾)이며, 겨울 밤에 등잔(燈盞)을 상대(相對)하여, 누비며, 호며, 감치며, 박으며, 공그릴 때에, 겹실을 꿰었으니 봉미(鳳尾)를 두르는 듯, 땀땀이 떠 갈 적에, 수미(首尾)가 상응(相應)하고, 솔솔이 붙여 내매 조화(造化)가 무궁(無窮)하다.』 조선 순조 유씨부인이 지은 ‘조침문’이란 수필 중 한 부분이다. 바느질을 낙으로 삼고 살아가던 유씨 부인. 하루는 시삼촌에게서 얻은 마지막 바늘이 부러지자 바늘에게 제를 올리며 쓴 글이다. 규방 안 여인네들의 벗이자 노리개였던 바늘..여인들은 태어난 아기의 건강을 빌며, 남편의 입신양명을 빌며 한땀 한땀 손수 옷을 지었다. 하지만 현재 침선은 서양의 퀼트나 십자수의 인기에도 밀린 채, 장인의 손을 통해 그 맥을 잇고 있다.
바느질 하는 남자, 김기상-내겐 바느질 유전자가 있다. 발렌타인데이로 난리법석이던 날, 종로 이화동 ‘박선영 전통 한복연구실’을 찾았다. 서울특별시 무형문화재 제 11호 침선장인 박선영(75)씨. 그리고 그 전통을 잇고 있는 아름다운 2세 김기상씨(51)를 만나기 위해서다. 바늘에 실을 꿰어 옷을 짓는 것으로, 봉제, 자수, 장신구 공예를 포함하는 침선. 2006년, 규방문화인 침선은 규방 바깥 남정네의 손에서 이어지고 있었다. 김기상씨가 어머니 박선영씨의 일을 전수받게 된 것은 1995년. “원래는 여행사를 했었습니다. 해외에 자주 나가보니 일본의 경우엔 우동집 하나를 해도 몇 대를 이어서 하더라구요. 어머니 명성이 쌓였는데도 불구하고 집에서는 그 기술을 이어나갈 사람이 저 밖에 없을 것 같아서 하게 됐어요.” 2남 1녀의 맏아들이었던 김기상씨. 당시 공무원이었던 아버지는 물론 어머니 박선영씨도 김씨가 전수받는 걸 반대했다. 규방문화 전수자로써 남자라는 게 걸림돌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철든 아들의 진정성과 섬세한 바느질 솜씨가 부모를 설득시켰다.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는 샵을 하셨기 때문에 교복 손질과 다림질은 제 몫이었죠. 바느질 솜씨도 제법이었습니다. 사실 아버님도 바느질 솜씨가 좋으셨죠. 제 반바지를 직접 만들어 주셨으니까요.” 이제 자신의 업이 되어버린 바느질. 김씨는 이제야 제 몸에 맞는 옷을 입은 듯하다고 말한다. “재밌습니다. 제 적성에도 맞구요. 작품을 하다보면 날 새우기 일쑤지만, 일단 작업을 시작하면 몰입하죠. 잡념도 없어지구요. 즐겁습니다.”김씨는 옷을 보기만 하면, 희한하게 한 번 만들어보지 않은 옷도 만들 수 있다고 말한다. “핵심기술은 여쭤보기도 하지만 이제껏 전수받는다고 해도 어머니한테 ‘특별히 이렇게 해라’라고 가르침 받은 것이 없습니다. 제가 해보고 정말 안 될 때만 여쭤보지요”DNA 속에 바느질 잘 하는 유전자라도 있는 것일까. 물론 그런 부분도 있겠지만, 혼자서도 알아내고 말겠다는 근성이 그런 눈썰미와 손놀림을 만든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사실 김기상씨의 첫인상은 한복을 짓는 사람이라기보다는 오토바이 할리데이비슨과 더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검은 색 가죽자켓과 가죽바지를 연상케 하는 옷차림. 하지만 기자의 질문에 김씨는 너무나 ‘장이’다운 대답을 한다. “이 옷을 입으면 실밥이 전혀 묻질 않습니다. 오랫동안 일을 하는데 도움이 되지요.” 지난 해 10월 전수조교 자격증을 딴 김씨는 현재 성신여대 의상학과에 강의를 나가고 있으며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매일 6시간씩은 어머니와 함께 이곳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전통고수의 고집, 배우려는 고집 김기상씨와 얘기를 나누고 있는 사이, 어머니 박선영씨가 들어와 앉으셨다. 키 큰 아들과는 상반되는 자그마한 체구의 박선영씨. 하지만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한복의 선을 닮은 박선영씨의 자태는 참으로 고왔고, 전통의 맥을 꿋꿋이 이어온 곧은 장인의 숨결이 느껴졌다. 계속되는 강의와 작품제작 등으로 빠듯한 일정.. 모자가 나란히 앉아 잠시 쉬는 시간조차 이렇게 취재기자들에게 뺏기기 일쑤다. 모자가 가르치는 학생들은 대학생이나 대학원생부터 한복집을 오래 해 온 고수들까지 다양하다. 제주도, 부산, 대구 등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다. 바쁜 일정이 버겁지 않냐는 질문에 박씨는 “하지만 사람들이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면 뿌듯하지요. 요즘에 와서 아들이 잘 하는 걸 보니까 이젠 쉬어도 되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한편 아들의 몸이 축날까 걱정되는 박선영씨. “얘는 눈대중이나 어림으로 가르치지 않아요. 치수를 정확히 재서 샘플을 만들지요. 그러니까 자기 작품 만들어야 하는데 강의 때문에 그건 느려요..” 한복을 만드는데 있어 초보들을 주로 가르치는 김기상씨. 전통기술을 가르치는 데 있어 초보에겐 샘플만한 교재가 없다고 생각하는 김씨는 배내옷에서부터 수의까지 모든 옷의 샘플을 직접 만들어, 보여주면서 강의한다. 그러기 때문에 본인의 작품 활동의 진도는 느려지는 편, 밤을 새기도 일쑤다. 그러다보니 전수자이지만 어머니기도 한 박선영씨의 걱정을 듣는 경우가 많다. “밤을 새며 일하다보면 어머니가 옆에서 패턴을 미리 잘라두시기도 합니다. 그럼 전 꿰메기만 하면 되거든요..하지만 그런 경우, 전 그 패턴으로 바느질하지 않습니다. 제가 원단 자르고 처음부터 끝까지 다하죠. 그렇지 않으면 그건 제가 한 게 아니예요. 실력이 늘지 않습니다.”오랜 세월, 전통을 고집해온 어머니의 뜻 만큼 아들의 배우고자 하는 의지도 꽤나 강하다. 그것은 어머니의 명성이 가져다주는 부담 때문이기도 하다. “어머니의 이름이 부담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열심히 해서 전수조교 인가증까지 받았지만 아들이기 때문이라는 눈초리도 있고.. 게으름을 부릴 수 없습니다. 두 배로 열심히 해야 합니다.”
전통잇기의 장벽 김씨는 어머니의 기술을 전수받는 것과 동시에 자기 나름의 바느질법을 고안해내는 데도 열중한다. “옷이 출토돼 복원할 경우 모양은 같게 하지만 바느질은 달리 합니다. 좀 더 쉽게 하는 방법은 없는지, 아니면 더 선이 잘 나오게 하는 방법은 없는지 제 나름의 바느질 법을 찾습니다. 예전에도 모든 이의 바느질법이 다 똑같지 않았을 테니까요.” 젊은 세대로서 새로운 디자인에 대한 아이디어가 넘치는 김기상씨. 하지만 침선전수조교가 된 이상 전통 그대로 복원하는 쪽에 서기로 했다. 그럼 전수받는데 있어 가장 어려운 점은 어떤 것일까. 김씨는 재정적 부담을 말한다. “활옷 등을 복원할 때 그냥 대충할 수 없습니다. 그대로 완벽하게 재연해야죠. 그러자면 활옷의 경우 수 값만 해도 엄청납니다. 하지만 지원은 터무니없이 부족한 상태입니다. 또한 복원하고 싶은 출토복식을 보고 싶어도 기회가 없습니다. 공개를 꺼려하기 때문이죠.”두 모자는 이 부분에 있어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 절실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복 만들기의 저변 확대 절실 박선영씨와 김기상씨가 이어가는 옷에 대한 생각은 무엇일까. 한복을 짓는 데 있어 이들이 잇고자 하는 것은, 어떤 옷을 만들더라도 선은 꼭 살렸으면 하는 것이다. 그와 관련해 생활한복은 한복이 아니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지금의 생활한복은 국적 없는 옷이라는 것이다. 한류가 거센 요즘, 드라마를 통해 한복이 세계에 알려지고 있는데, 이 부분에 대해선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김씨는 그럴수록 드라마 의상제작이 신중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것은 나중에 한국의 복식을 연구하는 하나의 기록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현재 드라마나 영화 속 한복의 제작수준은 형편없다고 말한다. 박선영, 김기상씨가 주력하는 것은 한복만들기의 전수! 일반인들이 가정에서 직접 한복을 지어 입을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수요는 있으나 프로그램이 부족하다는 것. “제가 인사동에서 프로그램을 진행해 봤는데 호기심이 아주 많았습니다. 단지 기회가 없었을 뿐이라는 거죠. 그런 면에서 한복 만들기의 저변을 확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요즘 문화센터 많잖아요. 그런데 그 많은 프로그램 중에 ‘조각보 만들기’ 하나가 없습니다. 그런 프로그램들을 많이 개설했으면 합니다. 대학교 교육과정에 있어서도 요즘 전통복식은 거의 가르치지 않습니다. 서양복식사에 통합돼있죠. 4년제 졸업해도 옷을 몇 벌 만들지 않고 졸업해 아이들이 취업도 되지 않습니다.” 박선영씨도 한 몫 거든다. “국가원수나 국회의원들이 때마다 한복을 잘 입어주기만 해도 좋겠어요. 나라의 어른이 한복을 입으면 아랫사람들도 따라 입어요. 필리핀, 일본에 가보면 국가원수가 꼭 전통의상을 입어요. 우린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죠.” 최근 바느질을 가정 내로 다시 돌아가게 하기 위한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는 박선영씨. 지난 해 출간한 ‘오방색 아이옷’을 시작으로 ‘전통복 쉽게 만드는 법’이 담긴 책을 계속해 낼 예정이다.
아름다운 2세의 꿈 박선영씨는 한복을 입는 이들에게도 당부한다.“머리에서 발끝까지 갖춰 입으라는 겁니다. 치마를 들면 속바지도 아니고 청바지가 나옵니다. 꼴불견이예요. 그리고 걸음걸이도 조심스럽게 걸어야죠. 또한 계절에 맞춰 입었으면 좋겠습니다.”2001년 ‘바늘과 벗삼은 한평생‘이란 주제로 전시를 열면서 그간 재현했던 전통복식 250여점을 국립민속박물관에 기증했다. 이런 어머니에게 보란 듯이 2세 김기상씨의 꿈은 대학교 교육기관에 속해 있는 박물관에 자신의 작품을 기증, 전시하고 싶다는 것이다.”국립민속박물관에 어머니가 작품을 기증하시면서 후학들이 보고 싶을 때는 언제든지 볼 수 있게 해달라고 약속했지만, 실제로는 힘들더라구요. 그래서 누구나 볼 수 있게 대학교 교육기관에 있는 박물관에 제 작품을 전시해 놓고 누구든지 보고 공부할 수 있게 하고 싶습니다.” 어머니의 외손녀딸에게 3대째 전통을 잇게 해주고 싶다는 김기상씨. 그의 바느질 끝에서 한복만들기의 저변확대와 전통복식 복원의 정책적 지원에 대한 희망을 느낀다.
첫댓글 김기상 선생님! 수염을 언제부터 붙이신 거여요? 소품이죠? (진지한 질문)
5월 시험 치루고 나며는 한복을 배울 생각을 갖고 있는데 가까운데서 배울때가 있는지 생각뿐입니다,이런기사들을 보고 나며는 한참동안 가슴이 두근 두근 하고는 합니다,좋은 기사 잘 보고 갑니다,,,,,,,,
캑 진지한 답변......심심해서 흰실하고 검은실 잘게 잘라서 풀로 함 붙여 봤지요..ㅎㅎㅎㅎㅎㅎ 혜련님아 모하러 올렸남유~~~`쩌비...ㅜ.ㅜ
선생님의 검정비닐(가죽인가요?큭) 패션이 정말 멋지신데...`쩌비... 팬관리를 하셔야 하시니께...`쩌브... 소품을 요구한 그 팬은 대체 누굽니껴?. `쯔ㅂ...
좋은기사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