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귀신과 박주가리
-안영식-
조그만 섬마을에 '박주가리'라는 넝쿨 풀들이 모여사는 마을이 있었어요
철석이는 파도소리와 따사로운 햇빛과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닷바람을 맞으며 아무 걱정 없이 살아가는 풍요로운 마을이었어요
박주가리들은 여름에는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으며 행복하게 살았어요
가을이 되어 열매가 익어 열매 속 솜털이 하얗게 피기 시작했어요
하얀 솜털에는 씨앗이 붙어 있어요
솜털에 붙어있는 씨앗을 관모라고 불렀어요
관모는 바람이 불면 이곳저곳으로 바람을 타고 날아다니다가 땅에 떨어지면 그곳에서 새로운 집을 짓고 다시 싹이 트고 잎이 나고 꽃을 피우고 그렇게 살아갔어요
가을이 되자 관모들은 모두 포근한 엄마 품을 떠나 모두들 훨훨훨 날아가는데
엄마를 떠나기 싫어서 엄마품에 매달리는 관모가 있었어요
엄마는 걱정이 되었어요
추운 겨울이 오기 전에 관모가 날아가서 땅에 자리를 잡아야 내년 봄에 푸른 싹을 틔울 수 있을 테니까요
어느 날 이웃섬에 사는 오목눈이가 섬마을에 놀러왔다가 엄마품에 매달려있는 하얀 솜털 옷을 입은 관모를 발견하였어요
오목눈이는 하얀 솜털이 탐이 났어요
"저 하얀 솜털을 물어다가 침대에 깔아야지 , "
관모는 엄마품을 떠나기 싫어 꼭 매달려 보았지만 오목눈이의 힘을 견딜 수 가없었어요
오목눈이는 관모를 물고 와서 침대에 깔아놓았어요
매일 오목눈이는 관모를 밟기도 하고 밤에는 깔고 잤어요
관모는 오목눈이 집이 싫어졌어요
이곳에 있다가는 숨이막혀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오목눈이가 집을 비운 어느 날 솔솔 불어오는 바람에게 부탁했어요
"바람아 바람아 나 좀 땅에 내려 줄 수없니?"
관모는 오목눈이한테 잡혀온 이야기를 바람에게 들려주었어요
착한 바람은 관모를 위해서 나무를 흔들기 시작했어요 "하나 둘, 하나 둘, "
워낙 꼼꼼하게 집을 지어서 좀처럼 빠져나올 수가 없었어요
있는 힘을 다해 바람은 나무를 흔들었어요
바람이 지쳐갈 때 겨우 관모는 오목눈이 집에서 탈출할 수 있었어요
바람이 관모에게 말했어요
"오목눈이가 올 시간이 다 되어 간다, "
"어서 빨리 숨지 않으면 이번에는 잡아다가 더러운 화장실 바닥에 깔 거야!"
급해진 관모는 모래밭 오목하게 파인 웅덩이 속에 몸을 숨겼어요
몸을 숨기는 순간 모래 속에서 누군가 확 낚아채는 것이었습니다
관모는 모래 속으로 질질 끌려 들어갔어요
관모를 낚아챈 것은 날카로운 집게같은 이빨과 여러 개의 팔을 가진 무섭게 생긴 개미귀신이었습니다
개미귀신은 관모를 금방 잡아먹을 듯 노려보다가
"뭐야 이건?"
"재수 없게, 못 먹는 씨앗이잖아!"
개미귀신은 개미나 메뚜기 같은 곤충을 먹고사는데 관모를 곤충으로 착각하고 낚아채었던 것이었어요
개미귀신은 먹고 버린 곤충들의 뼈가 있는 곳에 관모를 묻어두었어요
관모는 개미귀신이 무서워서 벌벌 떨다가 깊은 잠에 빠져들었어요
따뜻한 봄볕이 쬐는 어느 날 관모는 잠에서 깨어났어요. 잠에서 깨어보니 싹을 틔우고 세상 밖으로 나온 것이었어요
봄이 되자 개미귀신은 더 큰 분화구 같은 웅덩이 집을 짓고 지나가는 곤충들을 사냥하려고 노리고 있었지만 이른 봄이라 아무도 지나가는 곤충이 없었어요
배가 고픈 개미귀신은 무엇이라도 먹어야 되겠다고 생각하고 지난가을에 관모를 묻어두었던 자리를 파 보았지만 이미 관모는 싹이 나서 개미귀신보다 몇 배나 훌쩍 크서 감히 잡아먹을 수가 없었어요
굶주린 배를 움켜쥐고 개미귀신은 부지런히 사냥을 했어요
관모는 개미귀신이 먹고 버린 곤충들의 껍데기에 있는 영양분을 먹으면서 무럭무럭 컸어요
이제는 박주가리 넝쿨이 되었어요
여름이 되자 넓은 잎을 가진 박주가리의 시원한 그늘을 찾아오는 개미, 메뚜기 같은 곤충이 많아졌어요
덕분에 개미귀신은 더욱 바빠졌어요
많은 곤충을 사냥해서 배불리 먹고, 먹고 난 찌꺼기는 박주가리에게는 거름이 되고 개미귀신과 박주가리 넝쿨은 서로 돕고 사는 사이가 되었어요
개미귀신 덕분에 박주가리 넝쿨은 싱싱하고 건강한 꽃을 피울 수 있게 되었어요
개미귀신은 박주가리가 고맙게 느껴졌어요
박주가리도 개미귀신을 고맙게 여겼어요
그런데 개미귀신의 집이 며칠째 조용해졌어요
개미가 빠져 들어와도 잡아먹질 않았어요
어느 날 개미귀신의 집이 꿈틀꿈틀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개미귀신 집에서 예쁜 날개를 가진 천사 같은 명주잠자리가 나왔어요
잠자리는 박주가리의 꽃대로 기어올라왔어요
솔솔 부는 바람에 몸을 말리면서 지난이야기를 했습니다
"나는 본래 하늘을 날아다니는 명주잠자리였는데
편식이 너무 심하고 엄마의 말씀도 잘 듣지 않고 말썽을 부려서 보다 못한 하느님이 나를 땅속 감옥에 가두어놓고
한 가지라도 누군가에게 착한 일을 하고 편식하지 않고 몸무게가 많이 나가면 다시 너를 하늘을 자유로이 날 수 있는 잠자리로 만들어 주겠다!"
하늘을 날고 싶어 매일 부지런히사냥을 하려 해도 지나가는 개미나 곤충이 없어서 몸무게가 늘지 않아서
영원히 하늘을 못 날 줄 알았는데 박주가리 넝쿨이 그늘을 지어준 덕분에 많은 곤충들이 찾아와서 배불리 사냥할 수 있어서 일찍 하늘로 날 수 있게 되었다고 고마워했습니다
박주가리도 엄마의 말씀을 듣지 않고 있다가 오목눈이에게 잡혀서 여기까지 온 이야기를 하면서 모래 속에 자신을 묻어준 개미귀신에게 오히려 고맙다고 했습니다
관모를 오목눈이 집에서 구해준 바람이 살며시 다가와서 명주잠자리의 날개를 쓰다듬어 주었습니다
명주잠자리는 하늘로 훨훨 날아갔습니다